릴로

투명한 검사들이 일제히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내 목을 조준하여 극도로 예리한 초차원 선을 꿰뚫으며 실면하는 그 순간.

붉은 광선이 망막을 찢어발길 듯 폭발했다.

뜨거운 열기 대신 뇌수를 얼려버릴 것 같은 극도의 한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피부의 잔털들이 일제히 곤두섰고,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이 전신을 지배했다. 귓가에는 고막을 후벼파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지직거리며 울려 퍼졌다. 치명적인 즉사 판정의 일격이 내 목뼈 바로 앞까지 가닿았다고 확신한 찰나였다.

탁.

기이할 정도로 가벼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응?”

내 목구멍에서 바보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분명히 목이 날아가 머리통이 허공을 굴러다녀야 정상인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상상했던 끔찍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눈을 살며시 뜨자, 보고도 믿기 힘든 기괴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집행관들의 반투명한 손가락과 칠흑의 검날이 내 목덜미 바로 앞 1센티미터 지점에서 멈춰 있었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었다. 놈들의 손가락과 검 끝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질주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단 1밀리미터도 내 피부 안쪽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둥근 구체가 내 목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집행관들의 손가락은 내 살결을 스치듯 미끄러지며 미친 듯이 헛손질을 해댔다.

그들은 연산을 보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 목 주위를 빙글빙글 공전하기 시작했다.

스슥, 스스슥!

마치 고장 난 회전목마처럼, 집행관들의 손과 무기가 내 목덜미를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원을 그리며 공중을 맴돌았다. 살의로 가득 찬 붉은 궤적이 내 목 주위에 기괴한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털끝 하나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연산 오류: 대상 ‘이시우’의 좌표값 판정 불가.]` `[물리 충돌 판정이 허용 범위를 초과하여 편차를 발생시킵니다.]` `[좌표 재정렬 시도 중…… 지직…… 실패.]`

“야, 너네 뭐 하냐? 내 목덜미에 대고 뺑뺑이 돌리기로 합의라도 봤어?”

나는 헛웃음을 깨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내 움직임에 맞춰 집행관들의 팔이 기괴하게 늘어나며, 여전히 내 목이 있던 허공의 빈 좌표를 향해 빙글빙글 공전을 계속했다. 마치 랙이 걸린 게임 캐릭터가 허공에 대고 무한 루프 모션을 반복하는 것과 똑같았다.

[레전드방송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꼬라지 보소] [인방고인물: 와, 목 바로 앞에서 궤도 이탈하는 거 실화냐? 물리 엔진 진짜 개판이네] [서버터짐내인생도터짐: 어김없이 나타난 똥겜의 품격 ㅋㅋㅋㅋ 빌드업 지렸다] [시청자321: 저거 그냥 멍하니 도는 거 존나 하찮아 보임 ㅋㅋㅋㅋ 최강의 집행관(웃음)]

머릿속에 떠오른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채팅창이 미친 듯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동시 접속자 수 10만 명을 돌파한 대기업 스트리머의 방답게, 올라오는 드립의 속도가 내 안구의 추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였다.

이 타이밍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나는 품속에서 투박하고 볼품없는 구리 반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엘리시아가 내게 넘겨주었던, 로젠가르트 가문의 고대 유산이자 깨진 고리 반지였다.

단순한 장신구인 줄 알았던 이 반지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시스템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였다. 원작 게임의 깊숙한 뜯어보기 데이터 속에만 박혀 있던, 시스템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유일무이한 마스터키.

“엘리시아가 준 이 귀중한 템을 여기서 썩힐 순 없지.”

나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마나를 뒤틀어 반지 내부의 깨진 틈새로 들이부었다.

징-!

반지에서 흘러나온 둔탁한 마나가 내 전신의 결을 감쌌다. 이 마나는 시스템의 정상적인 연산 회로를 타지 않았다. 오히려 회로 자체를 ‘우회(Bypass)’하여, 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의 인과율을 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하는 오프라인 영역으로 무단 전송했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경고: 인가되지 않은 오프라인 마나 우회 경로 감지.]` `[방화벽 엔진에 심각한 패킷 손실이 누적됩니다.]` `[서버 트래픽 과부하 발생.]`

채팅창이 그야말로 폭발했다. 10만 명의 시청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쳐대는 단어들이 푸른빛을 발하며 대기 중에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게임마스터_대기중: 아니, 서버 상태 왜 이래? 완전 랙 걸렸네!] [마법공학학도: 와 지연시간 9999ms 찍혔다 컴터 터진다 시우야!!!] [개똥겜감별사: 서버 꼬라지 ㅋㅋㅋ 백신 돌리다가 윈도우 블루스크린 뜨기 직전임] [아카데미단골손님: 서버 랙 실체화 ㅋㅋㅋㅋㅋ 고인물식 서버 폭파 공법 드가자~]

그들의 집단 드립이 세계를 지탱하는 물리 법칙의 톱니바퀴 사이에 거대한 쐐기를 박아 넣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집행관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초당 수천 번을 진동하던 놈들의 붉은 광선이, 이제는 마치 끈적끈적한 타르 속을 기어가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뚝, 뚝, 끊어지며 움직였다.

가상 연산 가속이 0을 향해 강제 추락하고 있었다.

최강의 속도와 초인의 살기를 자랑하던 시스템의 최종 병기들이, 고작 ‘서버 랙’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도 불합리한 버그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놈들은 검을 치켜든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허공에 굳어 버렸다. 마치 정전기가 일어난 화면처럼 몸체가 지직거리며 좌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거봐. 아무리 존나게 센 백신 프로그램이라도, 컴퓨터 본체가 랙 걸려서 멈추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나는 굳어 버린 집행관의 코앞까지 다가가 손가락으로 놈의 이마를 툭 쳤다.

팅-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놈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연산이 멈춘 상태라 반격은커녕 피격 판정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대기모드 상태였다. 이 완벽한 무력화에 나는 쾌감을 참지 못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내 눈앞의 하늘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것은 단순한 연산 지연이 아니었다. 11화에서 느꼈던,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졌을 때 대기를 채웠던 그 기분 나쁘고 미세한 ‘랙(Lag) 현상’의 본질과 정확히 일치했다. 세계의 가상 현실 구조 자체가 삐걱거리며 붕괴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스스스스……-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정지된 공간 속에서, 조금씩 투명한 빛의 입자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입자들은 허공으로 흩어지며 뒤편의 배경을 하얗게 지워버렸다.

“……어?”

내 시선이 연병장 한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채 조각상처럼 굳어 있는 엘리시아와 강태현이 있었다. 엘리시아는 내 기행을 보며 감동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던 그 표정 그대로 굳어 있었고, 강태현은 내 위대한 전술에 감탄하며 도끼를 꽉 쥔 마초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손끝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빛의 입자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데이터의 비가역적 소멸. 서버의 연산 속도를 강제로 0으로 떨어뜨린 부작용이 주변의 엄연한 세계 구성원들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모든 생도와 환경 데이터 자체가 우주의 먼지처럼 소거될 판이었다.

`[시스템 경고: 로컬 세계관의 인과율 정합성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누적 오염도 95% 돌파.]` `[비정상적인 오프라인 바이패스 상태를 유지할 경우, 300초 이내에 해당 세션의 전체 포맷이 개시됩니다.]`

붉은색 경고 창이 내 망막 위에 피비린내 나게 점멸했다.

“아니, 이 미친 시스템 놈들이? 져줄 생각은 안 하고 판을 엎으려고 드네?”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현실의 대기업 스트리머이자 초재벌로 화려하게 은퇴하겠다는 나의 원대한 계획이,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동귀어진 작전 때문에 물거품이 될 위기였다. 어떻게든 이 정지된 인과율을 정상화하면서도, 우리를 죽이려 드는 시스템의 공격을 받아쳐야 했다.

나는 엘리시아의 반지를 낀 손을 꽉 쥐었다. 반지의 구리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더 깊게 가기 시작했다. 이 바이패스 키를 과부하 시켜서, 연산을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만 부하를 집중시켜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

사관학교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대지를 타고 올라왔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하늘 전체가 마치 무거운 납덩이처럼 아래로 짓눌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검붉은 색을 넘어,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해갔다.

멈춰 있던 집행관들의 반투명한 육체가 일제히 흐느적거리며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놈들의 데이터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 사관학교 본관 강당 정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나는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강당 정 중앙의 상공, 공간 자체가 칼로 찢긴 듯한 거대한 붉은색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기압은 상상을 초월했다. 연병장의 돌바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서늘하고, 완벽하며, 티끌만 한 자비도 존재하지 않는 압도적인 살기.

그것은 분신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의 정화 시스템 그 자체의 격이었다.

스으으으읍.

찢어진 공간 사이로, 마침내 ‘진짜 집행관 제로’의 본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사관학교를 짓누르던 모든 압력이 한 점으로 수렴되며 대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칠흑의 갑옷을 입은 놈의 손에는, 차원의 경계를 가르는 백색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놈의 푸른 해시태그 눈동자가 오직 나 하나만을 정확히 조준하며 빛났다.

`[Target Identified: 오류 코드 '이시우'.]` `[소거 프로토콜 최종 단계 가동.]`

숨이 턱 막히는 대재앙의 강림이었다.

쩍, 쩌적!

집행관 제로가 딛고 선 연병장의 돌바닥이 단순히 부서지는 것을 넘어, 아예 텍스처(Texture) 자체가 깨져나가며 회색 입체 격자무늬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맵의 바닥 정보를 이루는 데이터가 통째로 증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 사막처럼 서걱거렸다.

손가락에 끼워둔 엘리시아의 반지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살을 지지는 듯한 극통을 내뿜었다. 시스템의 루트 권한을 가진 진짜 집행관이 강림하자,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의 우회 경로가 강제로 색출당해 차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오, 뜨거워! 이 새끼는 등장하자마자 남의 귀한 장신구를 고철로 만들고 지랄이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반지를 낀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지만, 입가에는 기묘한 비틀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 압도적인 절망감, 그리고 차원을 찢고 나오는 연출.

이건 그야말로 대기업 스트리머조차 평생 한 번 잡기 힘든, 유튜브 조회수 500만짜리 초특급 썸네일 각이었다. 어그로의 신이 내게 내린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인방고인물: 와 ㅋㅋㅋㅋㅋ 보스 포스 보소 ㄷㄷ] [겜생네컷: 야 근데 방송 화면 왜 이러냐? 나만 끊김?] [대기실지킴이: 어? 나만 화질 720p로 고정됨? 1080p 어디 감??] [서버터짐내인생도터짐: 지직거리는 거 실화냐? 싱크도 안 맞음;;]

시청자들의 다급한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채팅창의 글씨들이 사정없이 깨지며 외계어처럼 변해갔다.

`[경고: 초차원 송출 망에 심각한 물리적 간섭이 감지되었습니다.]` `[현재 뷰어십 대역폭: 60%…… 45%…… 급감 중.]` `[스트리밍 화질이 강제로 저하됩니다. (1080p -> 480p)]`

“이런 미친.”

욕설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집행관 제로의 존재 자체가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송출 신호마저 짓누르고 있었다. 방송이 꺼지면 내 유일한 권능이자 생명줄인 밈의 실체화도, 도네이션의 기적도 전부 사라진다.

스윽.

집행관 제로가 천천히 백색의 검을 들어 올렸다. 그가 검을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주변의 공기가 아예 진공 상태로 변하며 기압이 급격히 낮아졌다. 귀가 먹먹해지고 폐부의 공기가 강제로 빨려 나가는 느낌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놈은 나를 향해 단 한 걸음도 걷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선 채로, 내 목을 겨누고 가볍게 검을 가로질렀을 뿐이었다.

그 순간, 공간이 가로로 선명하게 ‘잘려 나갔다’.

서걱-!

눈앞의 풍경이 위아래로 어긋나며 미끄러졌다.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놈이 검을 휘두른 궤적에 존재하는 ‘공간의 차원’ 자체를 가위로 오려내듯 지워버린 것이다. 잘려 나간 틈새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어둠이 입을 벌렸다.

그 무의 균열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덮쳐왔다. 피할 수 있는 지형지물도, 판정을 우회할 타이밍도 없었다. 닿는 즉시 존재 자체가 소거되는 절대적인 소멸의 일격.

뇌가 타들어 가는 기분 속에서, 나는 억지로 손가락을 움직여 내 캐릭터의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울부짖는 채팅창의 마지막 한 줄을 포착했다.

[렉걸려도지구온난화: 와 진짜 화면 끊겨서 순간이동 하는 것 같네 ㅋㅋㅋ]

순간이동. 랙 현상으로 인한 위치 동기화 오류. 일명 ‘리싱크(Re-sync)’ 버그였다.

나는 즉시 바이패스 반지의 남은 마나를 전부 쥐어짜 내 전신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권능을 향해 마음속으로 외쳤다. 수백 번의 하꼬 시절 동안 단련된 고인물 특유의 찰나의 타이밍 감각이 손가락 끝에 깃들었다.

“지금이다! 프레임 드랍 텔레포트!”

파지직!

내 몸이 사방으로 수십 개의 잔상으로 쪼개지며 지직거렸다. 다음 순간, 소멸의 균열이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콰아아앙! 하는 파괴음조차 없이, 연병장의 절반이 말 그대로 ‘삭제’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지연 시간(Ping)이 폭증할 때 캐릭터가 이전 좌표와 현재 좌표 사이를 갈지자로 미친 듯이 왕복하는 현상. 그 인과율의 틈새를 이용해, 나는 소멸의 판정이 지나간 직후의 좌표로 순식간에 ‘리싱크’되어 나타났다. 단 0.01초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목숨을 담보로 한 프레임 단위의 기적적인 회피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전신의 마나가 통째로 탈수된 것처럼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로젠가르트의 반지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우회할 수 있는 마스터키가 소멸했다. 이제 완전히 발몸이 묶인 셈이었다.

집행관 제로의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놈의 푸른 해시태그 눈동자에 처음으로 기계적인 의문 부호가 스치는 듯했다.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소거 프로토콜이 무력화된 것에 대한 시스템적 오류 보고가 올라가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 기묘한 정적도 찰나에 불과했다.

스으으으……-

놈이 다시 한번 백색의 검을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빛의 구체가 검 끝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내 좌표를 지우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관학교 전체, 아니 이 세션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환경 데이터를 일거에 포맷해 버리려는 듯한 압도적인 마나의 폭풍이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변화가 내 눈앞에 들이닥쳤다.

`[위험: 스트리밍 신호 강도가 10% 미만으로 하락합니다.]` `[시청자 접속이 해제되는 중…….]`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입니다.]`

눈앞의 채팅창이 완전히 멈췄다. 푸르게 빛나던 글씨들이 마치 전원이 꺼지는 모니터처럼 빠르게 빛을 잃으며 흐려져 갔다.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밈을 실체화할 에너지원 자체가 송두리째 차단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집행관 제로의 백색 검이 나를 향해 사선으로 내려베어졌다.

빛의 폭풍이 내 시야를 완전히 하얗게 물들이며 밀려드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오직 단 하나의 절대적인 절망감이 엄습했다. 이 공격이 가닿는 순간, 내 영혼은 물론이고 현실로 돌아갈 유일한 통로인 방송망 자체가 영원히 파괴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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