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크…… 크하하하! 으하하하하!”

쇠창살이 덧대어진 호송 마차 안에서 베르너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구속구에 묶인 양팔을 버둥거릴 때마다 쇳소리가 사납게 고막을 찔렀다. 그의 입술은 이미 제 마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와 피투성이였고,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은 걸인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이시우…… 네놈이 정녕 이겼다고 믿는 것이냐? 착각하지 마라! 네놈이 그 불경하고 괴이한 버그의 힘을 남발할 때마다, 이 세계를 정화하려는 거대한 ‘눈’이 네놈의 숨통을 조여 갈 테니!”

마차를 둘러싼 사관학교 경비대원들이 거칠게 창날로 쇠창살을 두들겼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대역죄인 베르너, 끝까지 추태를 부리는구나!”

“크하하하! 이미 늦었다…… 방화벽은 무너졌어! 그분이…… 집행관 제로가 곧 너를 찢어발기러 올 것이다! 너는 절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덜컹거리며 멀어지는 마차 바퀴 소리 너머로 광기 서린 저주가 계곡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도 찰나에 불과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이시우! 이시우! 이시우!”

연병장을 가득 메운 생도들이 일제히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베르너의 가공할 금제 결계 속에서 마나를 빼앗겨 죽어가던 이들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그들에게 이시우는 단순한 동기가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들을 끄집어내 준 불멸의 성자이자, 구원자 그 자체였다.

“형님! 으허억, 형니이임!”

거구의 사내 강태현이 콧물과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이시우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었다.

“진짜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베르너 그 늙은이가 결계를 펼쳤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는데…… 역시 형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이 무식한 놈은 형님의 발끝만 믿고 가겠습니다!”

뜨거운 콧물이 이시우의 셔츠 깃에 닿기 직전, 이시우는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더러워, 인마. 저리 가.’

속으로는 질색하면서도, 이시우는 겉으로 차갑고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시선을 슬쩍 돌리자, 그곳에는 붉어진 눈시울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엘리시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손가락에는 쩍 갈라진 틈새가 선명한, 볼품없는 구리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그 반지를 보는 순간, 이시우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채팅창이 고속으로 롤백되기 시작했다.

[시청자_고인물99: 헐 대박ㅋㅋㅋㅋㅋ 저 반지 드디어 쓰이네!] [킹갓아웃사이더: 와, 7화에서 엘리시아가 줬던 그 쓰레기 반지가 진짜 히든 템이었네??] [지나가던훈수충: 야, 이거 원작 설정집 구석탱이에 박혀 있던 설정이잖아ㅋㅋㅋ ‘로젠가르트의 깨진 고리’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마나 흐름을 강제로 우회시키는 ‘시스템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Bypass Key)’였다고? 도대체 이시우는 이걸 어떻게 알고 빌드업한 거냐?] [아싸가세상을구한다: ㄹㅇ 썩은물 피지컬 소름 돋네;; 베르너가 마나 흡수 결계 칠 거 미리 알고 엘리시아한테 반지 끼고 대기 타라고 한 거 아님? 진짜 설계 지린다 ㄷㄷ]

‘……어?’

이시우의 뇌리가 띵해졌다.

‘그게 그런 대단한 물건이었어?’

그냥 지난번에 엘리시아가 고맙다고 주길래 버리기도 뭐해서 끼고 있으라고 했던 건데. 시청자들이 제멋대로 뜯어본 설정집 덕분에 졸지에 ‘모든 걸 예견하고 준비한 천재 전술가’가 되어버렸다.

이시우는 침착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관종 스트리머의 기본 자질은 뻔뻔함이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우연도 철저한 안배였던 척해야 방송 각이 산다.

이시우는 가만히 엘리시아의 눈을 응시하며 짐짓 엄숙하게 한마디 던졌다.

“그 반지가 아니었다면, 베르너의 철옹성 같은 결계를 뚫고 너희의 마나를 우회시키는 건 불가능했을 거다. 고맙다, 엘리시아. 네가 내 안배를 완벽하게 완성해 주었어.”

“……!”

엘리시아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그녀의 마음에 거대한 감동의 파도가 밀려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

엘리시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투명한 눈물이 반지의 깨진 틈새 위로 툭 떨어졌다.

‘역시 그랬던 거군요.’

그녀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시우는 베르너가 배신할 것을, 그리고 그가 사관학교 전체를 인질로 잡고 끔찍한 결계를 펼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문의 비장된 유물인 이 반지의 숨겨진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고 자신에게 미리 지니게 했던 것이다.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온갖 오명과 억까를 뒤집어쓰면서도, 뒤편에서는 이토록 치밀하고도 잔혹한 계산을 끝마쳐 두었다니.

“당신은 대체…… 얼마나 먼 곳을 바라보며 홀로 싸우고 계신 건가요.”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미천한 신분으로 당신의 그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약속하겠습니다. 다시는 당신의 안배를 의심하지 않겠어요.”

‘아니, 진짜 그냥 낚시터에서 장신구 교환한 게 전부인데.’

이시우는 속으로 땀을 뻘뻘 흘렸지만, 입가에는 그저 쓸쓸한 미소만을 머금었다.

이 맛에 아싸 방송 하는 거다. 오해는 깊어질수록 조회수가 복사되고, 착각은 커질수록 도네이션이 쏟아지니까.

그때, 저 멀리서 위엄 있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묵직한 마나의 파동이 전해졌다.

사관학교의 임시 행정관이자 제국의 거물인 카를 대경이 기사단을 거느리고 이시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굳건한 얼굴에는 평소의 냉혹함 대신, 깊은 경외와 감탄의 빛이 짙게 깔려 있었다.

카를 대경이 이시우를 향해 오른손을 가슴에 얹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국 최고위 귀족이 일개 보조 학도병에게 취할 수 있는 극상의 예우였다.

“이시우 생도. 아니, 제국의 젊은 영웅이여.”

카를 대경의 목소리가 연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대의 기상천외한 전술과 베르너의 음모를 분쇄한 공로는 이미 황실에 직통으로 보고되었다. 교수의 탈을 쓰고 사관학교를 파멸시키려 한 대역죄인을 처단하고, 수많은 생도의 목숨을 구한 그대의 의로운 투쟁에 황제 폐하께서도 크게 감복하셨다.”

그가 품속에서 황금빛 문양이 새겨진 붉은 비단 상자를 꺼내 들었다. 상자가 열리자, 찬란한 마나의 광휘를 내뿜는 훈장과 두꺼운 양장 문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고! 제국 황실의 특수 업적 달성!]** **[대규모 퀘스트 ‘사관학교의 반역자 처단’ 완벽 클리어!]**

**[최상급 보상을 정산합니다.]** - **명예 점수: 120 ➔ 9,999 (MAX 돌파! 제국 전역에 명성 자자함)** - **특수 칭호 획득: [황실 공인 아카데미의 수호자]** - **황실 수호자 작위(명예 준남작) 수여** - **부상: 황실 비고의 고대 마법 스크롤 3종 및 100,000 골드**

**[칭호 효과: ‘황실 공인 아카데미의 수호자’]** - 아카데미 내 모든 현지인 NPC 호감도 기본 ‘우호’ 이상으로 고정. - 위기 상황 발생 시 주변 아군의 능력치를 15% 강제 뻥튀기하는 ‘영웅의 기상’ 패시브 발동.

주변에 서 있던 생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명예 준남작 작위라니! 평생을 전쟁터에서 구르고 공을 세워도 얻기 힘든 명예를 단 한 번의 전투, 단 한 번의 기책으로 따낸 것이다.

“축하하네, 이시우 준남작. 그대는 이제 사관학교의 위대한 수호자이자 제국의 자랑이네.”

카를 대경이 훈장을 이시우의 가슴팍에 정중히 달아주었다.

주변의 환호성은 극에 달했다. 강태현은 제 일인 양 공중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포효했고, 엘리시아는 마치 성자의 대관식을 보는 듯한 경건한 눈빛으로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이시우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는 가슴에 달린 번쩍이는 황금 훈장을 툭툭 털어내더니, 뒤를 돌아 멀리 산자락 너머로 뉘엿뉘엿 떠오르는 둥근 달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열리며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귀찮게 되었군.”

그 나직한 혼잣말은 바람을 타고 엘리시아와 주변 생도들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정말…… 혼자 조용히 낚시나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한마디에 연병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생도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경외감으로 타올랐다.

‘아아……!’

‘저분은 황실의 작위도, 억만금의 보상도, 수천 명의 찬사조차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저 한 명의 외로운 아웃사이더로서, 세상의 평화만을 바라며 묵묵히 낚싯대를 드리우던 은둔 고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고요한 은둔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신 거였어!’

[시청자_눈물줄줄: 야 미친 이시우 연기력 폼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 [인방의신: 낚시하고 싶다는 진심 100% 독백인데 주변 애들 눈물 흘리는 거 봐라ㅋㅋㅋㅋㅋ] [도네빌런: 명예 준남작이고 나발이고 낚시터 붕어가 더 소중한 새끼…… 그저 ‘낚시광’ 이시우……] [후원금5000원: 형 진짜 킹받는데 간지는 난다 인정한다 ㅋㅋㅋㅋㅋㅋ]

**[실시간 라이브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시청자 수: 98,754명]** **[현재 시청자 수: 99,912명]** **[★ 축하합니다! 누적 시청자 수 100,000명 돌파! 대기업 스트리머 반열 등극! ★]**

‘오오, 드디어 10만 찍었다!’

이시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0만 시청자면 현실로 돌아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정산 금액이 몇십 억 단위로 뻥튀기된다. 대기업 스트리머로서 은퇴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쾌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경고 !!!]** **[시스템 보안 경보도가 임계점인 ‘88%’를 초과하여 ‘92%’에 육박합니다!]** **[연산 처리 장치에 극심한 과부하가 발생합니다.]** **[세계의 인과율적 무결성이 훼손되었습니다. 강제 정화 시스템이 기동을 준비합니다.]**

이시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사관학교의 푸른 하늘이 이상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구름이 끼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CRT 모니터의 화면이 찢어지는 것처럼, 하늘 한편의 푸른 색감이 툭툭 끊기더니 지지직거리는 검붉은색 픽셀 조각으로 거칠게 변절하기 시작했다.

“……음?”

강태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왜 저럽니까? 오늘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어라, 왜 하늘에 붉은 네모 칸들이 보이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랙(Lag) 현상’이었다. 공역 전체가 미세하게 삐걱거리며, 마치 연극 무대의 배경막이 뒤로 밀려나는 듯한 기괴한 불일치감이 피부를 스쳤다.

[시청자_에러감지: 야 이거 분위기 쎄한데?] [게임마스터_대기중: 하늘 픽셀 깨지는 거 보소;; 버그 너무 많이 써서 시스템 터지는 거 아님?] [공포게임매니아: 저거 11화에서 제보됐던 그 ‘랙 현상’이잖아! 보이지 않는 집행관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던 거!]

이시우의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대기업 스트리머라는 타이틀 뒤에 도사린 가장 치명적인 독약.

방송이 흥하면 흥할수록, 시스템은 이 세계의 ‘오류 코드’인 자신을 말소하기 위해 더 강력한 방화벽을 가동한다. 그리고 그 최정점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베르너가 마지막으로 소리 높여 외쳤던 이름이었다.

‘집행관 제로.’

콰아아앙!

갑자기 고막을 찢을 듯한 마찰음이 온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어?”

이시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으며 이시우의 어깨를 두드리던 강태현의 손길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얼굴에 맺혀 있던 눈물방울은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감격을 이기지 못해 손을 모으고 있던 엘리시아의 속눈썹 하나조차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환호하던 수천 명의 생도들, 기사단을 이끌고 정중하게 서 있던 카를 대경까지.

모든 이들의 말소리가 거대한 음막에 갇힌 것처럼 뚝 끊기더니, 기계적인 잡음만이 지직거리며 공간을 채웠다.

“지직…… 지지직…….”

시간이 멈췄다.

아니, 시간의 흐름 자체가 시스템의 강제적인 ‘일시정지’ 명령에 의해 묶여버린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버그의 화신이자 이 세계의 이방인인 이시우뿐이었다.

스으으으으…….

이시우의 바로 눈앞, 연병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공간이 세로로 쩍 갈라졌다.

그 틈새에서 피어오른 것은 어떠한 마력의 색깔도 띠지 않은, 오직 차갑고도 소름 끼치는 붉은색 방화벽 결계의 형상이었다. 수많은 정방형 픽셀 무늬가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거대한 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계의 너머, 붉은 장막의 틈새로 감정이 전혀 배제된 차가운 푸른 눈동자 하나가 오직 이시우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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