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마법진을 가동해라! 이 계곡 안의 모든 학도병 놈들의 마나를 말살해라!”
베르너의 광기 어린 포효가 계곡의 차가운 공기를 찢고 메아리쳤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마법진 ‘만인의 금제 속박 구’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꿈틀대며 내려온 붉은 사슬들이 뱀처럼 대기를 기어 다녔다.
“으, 윽…… 마나가……!”
“내 마나 회로가…… 굳어 가고 있어!”
가장 먼저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최전선에 서 있던 학생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체내에 흐르던 푸른 마력의 흐름이 붉은 사슬에 닿자마자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굳어 버렸다. 마나를 잃은 육체는 쇳덩이처럼 무거워졌고, 생도들은 비명조체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베르너의 친위대 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마법진의 출력을 끌어올리는 와중, 강태현이 묵직한 도끼를 바닥에 박아 지탱하며 신음했다.
“커헉…… 시우 형님…… 이,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 몸이…… 안 움직입니다.”
그 튼튼한 마초남의 전신마저 붉은 낙인 같은 사슬에 묶여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엘리시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하얗고 고운 뺨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결한 마나조차 이 비열한 금제의 결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억눌러지고 있었다.
“베르너 교수……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감히 생도 전체를 말살하려 들다니…….”
엘리시아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붉은 사슬이 목줄처럼 조여 오자, 그녀의 눈앞이 핑 돌며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이시우 역시 숨이 턱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중력. 마나 회로가 통째로 시멘트처럼 굳어 버리는 유쾌하지 못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아, 진짜 뇌절 존나게 치네, 대머리 영감탱이가.’
이시우는 속으로 육두문자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이건 명백한 운영자의 권한 남용이자, 시스템을 이용한 억까였다. 정당한 게임 플레이로 이겨 놓았더니 판 자체를 엎어 버리겠다는 비열한 발악.
그때, 이시우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홀로그램 창들이 요란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경고! 광역 상태 이상 ‘마나 사멸’이 감지되었습니다!]** **[경고! 플레이어의 스탯이 강제로 고정되며 모든 스킬 사용이 차단됩니다!]**
[실시간 라이브 채팅창] - **인방수호자**: 와 미친 틀딱 새끼 진짜 맵 병기 뿌리네ㅋㅋㅋㅋㅋㅋㅋ - **아카데미썩은물**: 저거 원작에서도 베르너 타락 루트 타면 나오는 즉사급 결계잖아;; 이걸 지금 푼다고? - **시우눈나나죽어**: 시우야 도망쳐!!! ㅠㅠㅠㅠ 저거 맞으면 마나 영구 불구 됨!!! - **트수3호**: 에반데;; 밸런스 패치 안 함? GM 뭐하냐고 아ㅋㅋㅋ - **기적의기요틴**: 앙 기모띠 외치면 살려주냐?
채팅창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이시우의 머릿속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식어 내렸다. 위기가 닥칠수록 관종의 뇌는 ‘어떻게 해야 가장 기가 막힌 도네이션 각을 뽑아낼 수 있을까’로 회전하기 마련이었다.
‘잠깐만. 마나를 강제로 뺏어서 봉인하는 결계라고?’
그렇다면 역으로, 그 뺏어 가는 통로를 해킹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시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엘리시아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쯤 깨진 푸른 고리 반지로.
지난 7화에서 시청자 하나가 툭 던졌던 훈수 글이 뇌리를 스쳤다.
*‘그거 로젠가르트 가문 비기 반지 장신구인 척하는데, 실상은 시스템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임. 마나 포화 상태일 때 강제로 회로 우회시키는 더미 소켓 역할을 하거든.’*
썩은물 게이머의 촉이 강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이스터에그를 터뜨릴 타이밍이라고.
“엘리시아.”
이시우가 굳어 가는 혀를 억지로 움직여 나지막하게 불렀다.
“……시, 시우 씨? 안 돼요…… 더 이상 움직이면 마나 회로가 완전히 파괴될 거예요…….”
엘리시아가 흐려지는 의지 속에서도 이시우를 걱정하며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이시우의 행동은 매정하리만치 빨랐다. 그는 한 발자국 억지로 발을 내딛더니, 그대로 엘리시아의 손가락에서 깨진 푸른 고리 반지를 쑥 빼앗아 갔다.
“어……?”
엘리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사랑하는 동료를 구하기 위한 뜨거운 눈물의 약속이라도 건넸겠지만, 이시우는 지독한 아싸이자 관종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승리와 방송 각뿐이었다.
“이 반지는 제가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이시우는 반지를 쥐어 짜듯 움켜잡았다.
엘리시아의 마음속에서 거대한 오해의 해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시우가 반지를 빼앗아 간 이유. 그것은 가문의 마력을 우회시켜 자신과 생도들의 마나를 대신 짊어지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모든 오명과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가려는 고결한 아웃사이더의 마지막 사투.
“시우 씨…… 제발, 혼자서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그 반지를 쓰면 당신의 몸이……!”
“어, 시끄럽고.”
이시우는 엘리시아의 애절한 외침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며, 자신의 인벤토리 구석에 처박혀 있던 ‘보조 시스템 마나 허브 소켓’을 활성화했다.
**[시스템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 ‘푸른 고리 반지’가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매개체를 보조 허브 소켓에 강제 결합하시겠습니까?]**
‘예스. 존나게 예스다, 이 자식들아.’
이시우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승인을 누르자, 반지가 그의 손안에서 파란 빛무리로 분해되며 가슴팍의 보이지 않는 슬롯으로 스며들었다.
**[경고! 비정상적인 우회 경로가 생성되었습니다!]** **[‘만인의 금제 속박 구’의 마력 흡수 판정이 플레이어의 소켓으로 강제 역류합니다!]**
쿠우우우웅!
계곡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붉은 사슬들이 갑자기 갈 갈이 찢어지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이시우의 가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마법진을 유지하던 베르너의 친위대 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나가…… 마나가 통제가 안 됩니다! 결계의 힘이 저 녀석 한 명에게로 전부 쏠리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저 애송이 놈의 마나 회로를 통째로 찢어 버려라!”
베르너가 피가 흐르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지만, 상황은 이미 그들의 통제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계곡 안의 모든 이들의 마나를 말려 죽여야 할 절대적인 저주. 하지만 엘리시아의 반지가 만들어 낸 ‘바이패스(우회)’ 통로를 통해, 그 모든 저주의 마력이 이시우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송두리째 흡입되고 있었다.
**[우회 마나 흡수율 100% 돌파!]** **[임시 마력 저장 공간이 한계를 초과합니다!]** **[시스템 연산 오류 발생: 수치 역정(Overload) 활성화!]**
이시우의 눈앞에 나타난 스탯 창의 숫자가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투력: **[ 65 ]** 전투력: **[ 1,200 ]** 전투력: **[ 45,000 ]** 전투력: **[ 890,000 ]**
그리고 마침내.
전투력: **[ 999,999+ (OVERFLOW: 무한대) ]**
“어우 야, 마나 달달하게 들어온다.”
이시우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의 머리 위로 찬란하다 못해 눈이 멀 것 같은 황금빛 마력 폭풍이 휘몰아쳤다. 붉은 사슬들은 이시우의 몸에 닿는 순간 전부 순수한 마력 정수로 정화되어 그의 피와 살로 녹아내렸다.
동시에, 억눌려 있던 엘리시아와 강태현, 그리고 주저앉아 있던 모든 학도병의 몸에서 붉은 낙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
강태현이 제 손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나가…… 마나가 돌아왔어?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맑아진 느낌인데?”
엘리시아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황금빛 폭풍의 중심에 서서 태연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이시우의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모두의 저주를…… 혼자서 저렇게 기쁘게 받아내고 계시다니.’
이시우는 단지 엄청난 양의 마나가 공짜로 굴러들어와 기분이 찢어지게 좋을 뿐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마나 폭탄을 온몸으로 받아낸 초월적인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실시간 라이브 채팅창] - **뚝배기브레이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수치 버그 터진 거 보소ㅋㅋㅋㅋㅋ - **정령왕김덕배**: 999,999는 선 넘었지ㅋㅋㅋㅋㅋㅋㅋ 베르너 영감탱이 표정 썩창난 거 봐라ㅋㅋㅋㅋㅋ - **킹갓스트리머**: 캬, 바이패스 기믹 이렇게 쓰는 거 실화냐? 고인물 무빙 지렸다 진짜 - **도네맨**: [10,000원 후원] 시우야 형이 지갑 열었다. 저 대머리 틀딱 교육 좀 시켜줘라!
“앙, 도네 감사합니다!”
이시우가 허공을 향해 상큼하게 윙크를 날렸다. 현지인들의 눈에는 허공을 향해 고귀한 신의 계시를 받는 현자의 몸짓으로 보였으리라.
“이제 슬슬 정산할 시간이죠?”
이시우가 고개를 돌려 베르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베르너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너, 너……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만인의 금제’를 몸으로 흡수하는 거냐! 괴물 같은 놈!”
“괴물은 무슨. 그냥 게임 이해도가 높은 수준 높은 유저일 뿐입니다, 교수님.”
이시우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 끝에서 튕겨 나간 작은 황금빛 불꽃이,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붉은 마법진에 닿았다.
그 순간, 결계의 인과율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쿠과과과광!
“끄아아아아악!”
대마법진을 유지하고 있던 친위대 마법사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마법진의 모든 역류 마나가, 그 술자이자 중심핵이었던 베르너의 가슴팍으로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커헉! 끄헉…… 헉……!”
베르너가 바닥을 뒹굴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설계한 사악한 봉인진의 힘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 결과였다. 그의 온몸을 감싼 붉은 사슬들이 그의 마나 회로를 가차 없이 짓이겼고, 그의 머리칼은 순식간에 하얗게 새어 버렸다.
사관학교 최고의 통제파 교수이자 엘리트였던 베르너가, 단 한 순간에 마나를 완전히 상실한 폐인 기인으로 격하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계곡 너머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관학교 행정실의 감찰부 기사단이 들이닥쳤다.
“전원 멈춰라! 학원 감찰부다!”
감찰부장인 카를 대경이 이끄는 백은의 기사들이 전장을 포위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친위대 마법사들과 피투성이가 된 채 굳어 버린 베르너, 그리고 그 앞에 유유히 서 있는 이시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베르너 교수. 사관생도들을 향해 학원 금기 마법인 ‘만인의 금제 속박 구’를 무단으로 시전한 혐의, 그리고 사리사욕을 위해 실전 관문을 조작한 혐의로 그대를 체포한다.”
카를 대경의 냉엄한 목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또한, 이 시간부로 그대의 모든 교수 권한을 박탈하며, 사관학교 행정실의 결의에 따라 즉각 퇴학 및 황실 지하 교도소 송치를 명한다.”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베르너의 비열한 음모는 이시우의 기상천외한 버그 플레이 앞탄에 처참하게 박살이 났고, 그는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파멸했다.
연병장에 모인 생도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이시우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시우! 이시우! 이시우!”
“그가 우리를 구했다!”
“고귀한 아웃사이더 만세!”
이시우는 그들의 호응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세상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아, 역시 이 맛에 방송하지. 조회수 달달하게 터지는 소리 들린다.’
그때였다.
철창이 달린 호송 마차에 강제로 태워지던 베르너가,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하얗게 센 머리칼 사이로 보인 눈동자는 이미 이성이 완전히 날아간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베르너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이시우를 향해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크…… 크하하하! 으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계곡의 승리 분위기를 싸늘하게 식혔다.
“이시우…… 네놈이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착각하지 마라…… 네놈이 그 추악한 버그의 힘을 쓸 때마다…… 세계의 ‘눈’이 너를 향하고 있다!”
베르너가 이시우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미 늦었다…… 방화벽은 깨졌어. 그분이…… 집행관 제로가 곧 너를 말살하러 올 것이다! 크하하하! 너는 결코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
이시우의 귓가에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 음과 함께,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이 시야 전체를 가득 메웠다.
**[!!! 극도의 시스템 보안 경고 !!!]** **[보안 경고도가 임계치(90%)를 돌파했습니다!]** **[경고: 관리자 권한의 강제 소거 프로세스가 가동됩니다!]** **[좌표 역정이 시작됩니다. ‘집행관 제로(Executor Zero)’의 시선이 플레이어에게 고정되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본 이시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푸르게 개이던 사관학교의 하늘 한구석이, 마치 모니터 화면이 깨진 것처럼 붉은색 격자무늬로 쩍쩍 갈라지며 기괴한 ‘랙(Lag)’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균열 너머에서, 감정이 전혀 배제된 차가운 푸른 눈동자 하나가 이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