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구구구구—!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베르너의 신형이 황색 먼지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단순한 질주가 아니었다. 공간의 간극을 억지로 접어 붙여 탄생한 절대적인 도약. 전설급 돌파 스킬 [섬광의 궤적]이 그리는 궤적은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애물을 가루로 만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파괴 광풍의 종착지에 서 있는 이시우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 끝을 하늘 높이 치켜세운 채,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두 눈을 넉살 좋게 가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태양을 피하려는 피서객처럼 태연자약한 꼴이었다.

“실시간 핑 튀기기 개시.”

이시우가 입술 사이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의 망막 위에 떠오른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불타는 채팅창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전투력2대남]: 와 미친 교수님 풀악셀 밟는다ㅋㅋㅋㅋㅋ 저거 맞으면 이시우 황천길 프리패스 아님? - [고인물은참지않긔]: 님들 저거 보셈ㅋㅋㅋ 이시우 손가락 하늘로 가리키는 거 기우제 지내는 거냐? - [3년차구독자]: 아니 눈은 왜 가리는 건데ㅋㅋㅋㅋㅋ 안 보면 안 아프다 뭐 그런 논리임? - [킹도네이터]: [100원 후원] 야 이시우! 저 교수 돌진 궤적 보니까 딱 보스방 입구에 있는 강철 보루 쪽인데? 궤도 살짝만 틀면 면상 박치기 개꿀잼 각인데 안 되냐?

**띠링!**

**[시청자 ‘킹도네이터’의 제안이 ‘아웃사이더 밈 에너지’로 변환됩니다!]** **[특수 기연: ‘가상 좌표 핑 렉(Ping Lag)’이 실체화됩니다!]** **[대상: 베르너 폰 아르님]** **[좌표 보정치: X축 방향으로 +30cm 미세 이동 판정 적용]**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억까의 순간이었다.

베르너는 자신의 검 끝이 정확히 이시우의 심장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머릿속 연산 장치는 완벽했고, 수십 년간 다듬어온 검술적 직관 역시 추호의 오차도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허공을 가르며 가속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바로 그 찰나.

즈지직!

베르너의 시야 속 세상이 아주 미세하게, 정말 아주 미세하게 옆으로 삼십 센티미터가량 어긋나 밀려났다. 마치 고사양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에 순간적인 프레임 드롭이 일어나 캐릭터의 위치가 강제로 ‘보정’되는 듯한 기괴한 감각이었다.

“……윽?!”

베르너의 단정하게 빗어 넘긴 눈썹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이미 몸을 실은 전설급 돌진의 관성은 기차처럼 멈출 수 없는 법.

그가 겨누었던 이시우의 몸뚱이는 찰나의 순간 옆으로 비껴 나갔고, 베르너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칙칙하고 거대한 쇳덩어리였다. 그것은 아카데미가 설립될 당시 마수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계곡 입구에 박아 넣은, 지독하려 무식하게 단단한 ‘초강철 지지 보루’였다.

쾅——!!!

귀를 멀게 할 것 같은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커헉……!”

베르너의 고상한 외마디 비명이 비참하게 터져 나왔다.

어설픈 방어구 따위는 단숨에 짓개 버릴 기세로 폭발하던 가속도가 고스란히 베르너 자신의 안면과 어깨로 되돌아갔다. 30cm의 오차로 미끄러진 그의 신형은 정확하게 강철 기둥의 가장 단단한 모서리 부분을 상판때기로 들이받았다.

쩍, 쩌적!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코뼈가 으스러지는 불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베르너는 비틀거리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평소의 오만하고 차가운 귀족 신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얀 깃털 장식이 달린 그의 제복 상의는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고, 잘생긴 콧날에서는 붉은 선혈이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콸콸 쏟아져 내렸다.

“이, 이 무슨…… 비열한 마법을……!”

베르너가 한 손으로 코를 틀어쥐며 웅얼거렸다. 피가 기도로 넘어갔는지 쿨럭이며 뱉어내는 침마저 붉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이시우를 노려보았다. 이시우는 여전히 눈을 가린 오른손을 천천히 내리며, 마치 지루한 연극이라도 관람한 관객처럼 하품을 쩍 하고 있었다.

“어라? 교수님. 거기서 좌회전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제 몸뚱이는 이쪽에 있는데요.”

이시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깐족거렸다.

채팅창은 이미 이 전대미문의 ‘안면 박치기’ 쇼에 뒤집어지다 못해 폭발하는 중이었다.

- [댕댕이발바닥]: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면상 박치기 실화냐? - [대검성지망생]: 와 저거 대미지 최소 치명타다ㅋㅋㅋ 코뼈 주저앉은 거 보소ㅋㅋㅋㅋㅋ - [인생은타이밍]: 근데 저 강철 기둥 원래 저렇게 단단했냐? 베르너 검 마력 실려 있어서 웬만한 철문도 그냥 두부처럼 자를 텐데? - [방구석평론가]: ㅇㅇ 인정. 저거 아카데미 보루라 해도 대검 수준 마력이면 뚫어야 정상인데, 무슨 우리 집 대문보다 단단해 보이네 ㅋㅋㅋ 너희 집 대문이 더 단단하겠다야 ㅋㅋㅋ

**[실시간 시청자 피드백이 감지되었습니다!]** **[밈 키워드 ‘너희 집 대문이 더 단단하겠다야’가 전장의 지형지물 판정에 적용됩니다!]** **[‘초강철 지지 보루’의 방어 및 경도 판정이 일시적으로 999% 상승합니다!]** **[특수 효과: ‘절대 파괴 불가 (대문급 초합금)’ 상태 부여!]**

지지직.

하늘 한구석이 다시 한번 붉은 선으로 일그러지며 미세한 랙 현상이 스쳤지만, 이시우는 코웃음을 쳤다. 알 게 무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꼰대 교수 놈 대가리부터 깨부수는 게 먼저였다.

베르너는 이시우의 비아냥에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적이었다.

“감히…… 감히 나를 기만하려 드는구나! 이따위 잔재주가 제국의 진정한 검술을 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베르너가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지르며, 순백의 마력이 거칠게 날뛰는 대검을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마력이 한계 이상으로 주입된 대검의 칼날이 푸르스름한 안개를 뿜어냈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시우의 목을 베어버릴 듯이 대검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검기에 닿기도 전에 바닥의 돌들이 압력으로 잘게 부서져 나갔다.

그러나 이시우의 발밑은 이미 '버그성 안전지대'였다.

깡——!

다시 한번, 베르너가 내리친 대검이 이시우의 머리통 대신 그 옆에 버티고 서 있던 강철 지지 보루의 모서리를 정확히 강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베르너는 이시우를 겨냥했으나, 이시우가 살짝 고개를 까닥이는 순간 보루의 ‘피격 판정 범위’가 비정상적으로 넓어져 대검을 자석처럼 빨아들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뚝.

“……어?”

베르너의 입에서 멍청한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제국의 대장장이가 심혈을 기울여 제련하고, 온갖 마법 부여를 덧씌운 대륙 최고 수준의 명검이 마치 유통기한 지난 빼빼로처럼 허무하게 부러져 나갔다.

부러진 검날의 윗부분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더니, 힘없이 바닥의 먼지 구덩이 속으로 툭 떨어졌다.

침묵이 계곡을 지배했다.

베르너는 뚝 부러진 손잡이만을 멍하니 쥔 채,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맞이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내…… 내 검이……?”

그의 평생을 함께해 온 자부심이자, 명예의 상징이 고작 아카데미 구석탱이에 박힌 고철 기둥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꺾여버린 것이다. 그것도 시청자들의 장난기 어린 낙서 같은 밈 한 줄 때문에.

이시우는 그 꼴을 보며 속으로 배를 잡고 굴렀다.

‘안방 1열 꿀잼 팝콘각 인정합니다. 베르너 교수님, 표정 예술이네 진짜.’

그 처참한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엘리시아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녀는 다리가 풀린 듯 스르륵 무릎을 꿇으며 이시우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아…… 과연…… 그런 뜻이셨군요.”

엘리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풍수와 지형의 미세한 흐름을 조율하는 가상 좌표의 변이…… 이시우 님은 결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손가락 끝의 미세한 마력 파동만으로 이 계곡 전체의 방어 결계를 저 강철 보루 하나에 집중시키고 계셨던 겁니다. 소란스러운 영웅의 칼날을 지형의 모순으로 꺾어버리는 고결한 지혜를 홀로 실천하시다니……!”

그녀에게는 이시우가 보여준 기행이, 무지한 적들의 공격을 단 한 줌의 무력 낭비도 없이 자연의 섭리로 되돌려주는 ‘은둔 현자의 신의 한 수’로 보였던 것이다.

옆에서 흙투성이가 된 도끼를 들고 서 있던 강태현 역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와…… 형님 진짜 미쳤다. 대가리를 굴려서 칼을 분지르네. 난 대가리로 칼을 받으려고만 했는데…… 역시 형님은 전술의 신이야!”

이시우는 그들의 헛소리를 고스란히 귀담아들으며 속으로 혀를 끌찼다.

‘아니, 님들아. 그냥 핑 튀겨서 기둥에 대가리 박게 만든 건데 무슨 풍수지리설이 나와요…… 뭐, 알아서 신격화해주니까 감사히 떡고물이나 받아먹겠습니다만.’

그때였다. 엘리시아가 감동에 젖어 가슴에 손을 모으는 순간,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은빛 반지가 미세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 가문의 깨진 고리 반지였다.

웅웅웅—

미세한 진동과 함께 반지의 갈라진 틈새로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었다. 이시우의 날카로운 눈이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어라? 저 반지, 마력 왜곡이 일어나니까 반응하네?’

이시우는 지난번 시청자가 남겼던 설정 분석 글을 떠올렸다. 엘리시아 가문의 망가진 고리 반지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시스템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오프라인 바이패스 키’일지도 모른다는 제보.

지금처럼 붉은 하늘의 랙 현상이 심해지고, 시스템 보안도가 치솟는 상황에서 저 반지가 뿜어내는 수수께끼의 마력 파동은 묘하게 이시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관찰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악!!!”

짐승 같은 비명이 계곡의 침묵을 찢어발겼다.

베르너였다.

그는 부러진 검 손잡이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귀족으로서의 품위, 교수로서의 권위, 그 모든 것이 먼지 구덩이 속에 처박힌 순간 그의 이성은 완전히 퓨즈가 나가버렸다.

“이시우……! 이 더러운 버그 덩어리 놈! 네놈이 기어이 사관학교의 규율을 모독하고 나를 이 꼴로 만들었구나!”

베르너가 품속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는 육각형의 마법 결정을 꺼내 들었다.

그 결정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계곡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베르너의 친위 부대 마법사들이 일제히 안색을 굳히며 뒤로 물러섰다.

“교, 교수님! 설마 저것을 쓰시려는 겁니까? 저것은 사관생도들까지 전부 휘말리게 만드는……!”

“시끄럽다!”

베르너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광기 어린 눈으로 소리쳤다.

“이곳에 있는 모든 변수를 지워버리겠다! 시스템의 룰을 흐리는 쓰레기들은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

그가 쥐고 있는 결정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안개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치며, 계곡 하늘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마법진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공격 마법이 아니었다.

**[경고: 광역 마나 사멸 마법 ‘만인의 금제 속박 구(Globus Prohibitionis)’가 기동됩니다!]** **[해당 영역 내의 모든 지적 생명체의 마나 회로가 강제로 동결되며, 마법 시전이 영구히 봉쇄됩니다!]**

“전원, 마법진을 가동해라! 이 계곡 안의 모든 학도병 놈들의 마나를 말살해라!”

베르너의 광기 어린 명령이 계곡을 얼려버렸다. 마법진이 뿜어내는 붉은 사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시우와 엘리시아, 그리고 주변 학도병들의 몸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이시우의 눈끝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진짜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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