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따가 그것도 루팅 가능한 거죠?”

그 한마디가 불씨였다.

치직, 치지직!

공기를 찢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베르너가 뿜어낸 순백의 검기가 사방으로 난사되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마력의 잔해가 결계 내부의 흙바닥을 사정없이 긁어내며 거대한 도랑을 팠다. 7서클 마법사이자 제국 사관학교의 수석 교수. 그가 지닌 격의 무게는 단순한 수치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열이 훅 끼치며 이시우의 뺨을 스쳤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열기에 그슬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놈의 그 파렴치하고 비열한 마도가 이 아카데미의 신성함을 더럽혔다.”

베르너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굴러가는 듯한 압박감이 전장에 내려앉았다. 결계 내부의 중력 자체가 왜곡된 것처럼, 이시우의 어깨 위로 수십 킬로그램의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가 얹힌 듯한 물리적 압박이 가해졌다.

“꼼수와 기만으로 점철된 쓰레기 같은 재주를 감히 무(武)라 칭하지 마라. 이곳은 제국의 영웅들을 길러내는 요람이다. 너 같은 오물이 숨 쉴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르너가 검을 비스듬히 겨누자,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마력이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이시우의 교복 옷자락을 찢어발겼다. 단순한 위협용 마력이 아니었다. 진짜로 죽이겠다는 살의다. 7서클의 연산 속도로 빚어낸 결계는 외부의 물리적 간섭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무대 위에서, 이시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와, 연출 단가 존나 높네. 오늘 유튜브 썸네일은 이걸로 확정이다.’

살기? 중력 압박?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이시우의 눈앞에는 실시간으로 수직 상승하는 시청자 수와 붉은빛으로 번쩍이는 도네이션 알림창만 보일 뿐이었다.

- [머독보다매운맛]: 와 미친 베르너 눈 돌아간 거 보소ㅋㅋㅋㅋㅋㅋㅋ - [고인물헌터]: 7서클 마법사한테 결투 재판 걸림? 이 정도면 그냥 캐릭 삭제가 빠른데? - [아싸가세상을구함]: 시우 형 표정 봐라ㅋㅋㅋㅋㅋㅋㅋ 저거 또 뭔 약을 팔려고 저러냐 - [킹갓제네럴]: 템 루팅 드립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 교수님 혈압으로 쓰러지겠다

그때였다. 결계 바깥쪽에서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시우! 비켜라! 내가 가겠다!”

우직한 고함과 함께 거대한 도끼를 치켜든 강태현이 결계의 벽을 들이받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을 터뜨릴 듯이 마력을 뿜어내며 결계를 깨뜨리려 했지만, 7서클 마법사의 결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반동으로 뒤로 밀려나면서도 강태현은 이빨을 악물며 다시 도끼를 치켜들었다.

“교수고 나발이고 내 알 바 아니다! 감히 내 안목이 인정한 진짜 전술가를 이딴 비열한 결계에 가둬두고 죽이려 들다니! 비겁하다, 베르너!”

그 옆에서는 엘리시아가 다급하게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고운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엘리시아는 품속에서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한쪽 모서리가 미세하게 깨진 금속 고리 반지를 꼭 쥐었다.

‘이 반지가 가진 마력 우회 능력을 사용한다면…… 베르너 교수의 결계를 잠시나마 교란할 수 있을지도 몰라.’

로젠가르트 가문의 비기이자, 시스템의 감시망조차 우회할 수 있는 특수한 아티팩트. 엘리시아는 제 입술을 깨물며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과 숭고한 결의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이시우……. 당신은 언제나 혼자서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고 싸워왔지. 남들이 당신을 기만자라 손가락질할 때도, 묵묵히 이 아카데미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이번만큼은 나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어!’

엘리시아가 반지를 구동하려던 바로 그 순간.

이시우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그 어떤 거대한 마법보다도 확실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동작이었다. 그는 결계 너머의 강태현과 엘리시아를 향해 나직하게 읊조렸다.

“태현아.”

“어, 어? 시우 너……!”

“기품을 잃을 행동은 삼가라.”

바람을 타고 흐르는 이시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고, 지나치게 고결했다.

“이것은 나와 저 늙은이 사이의 정당한 율법이다. 사관학교의 규칙을 깨부수고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가 아니지 않느냐.”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억울함도 묻어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거대한 시련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순교자의연연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실 이시우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야 이 빡통 자식들아! 니들이 들어오면 내 1대1 다이 깨는 예능 각이 망가지잖아! 방송 분량 조절해야 한다니까?! 가만히 있어, 제발!’

하지만 그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강태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시우 너…… 이 바보 같은 놈이……! 끝까지 자신보다 이 학교의 규율과 우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거냐!”

울컥 조여오는 목울대를 참지 못한 강태현이 도끼 자루를 쥔 손목을 부르르 떨었다.

엘리시아 역시 쥐고 있던 반지를 가슴팍에 품은 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아…… 진정한 강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는 법. 베르너 교수의 부당한 폭정 앞에서도 저토록 의연하게 대처하다니. 이시우,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고독을 견뎌내고 있는 건가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신격화도 +15%]**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 텍스트가 화려하게 명멸했다.

이시우는 그 반응을 힐끗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즙 짜는 연출만큼 시청률 보증수표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채팅창이 폭발적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 [도네] **'김치찌개맛있어' 님이 5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와 간지 폭발 실화냐ㅋㅋㅋㅋㅋ "기품을 잃을 행동은 삼가라" 평생 소장용 멘트 나왔다ㅋㅋㅋㅋㅋ 오늘 치킨 쏜다!]

- [트위치망령]: 캬아아아악! 취한다! 이게 바로 고인물의 품격이지! - [개념글추천기]: 야 방금 대사 짤방 만들어서 커뮤니티에 올린다. 추천 준비해라. - [하꼬수집가]: 동접자 실시간으로 미쳐 날뛰는 중ㅋㅋㅋㅋㅋㅋㅋ

**[시스템 알림: 동시 접속자 수 20,000명을 달성했습니다!]**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출력 권능이 대폭 상승합니다!]** **[특수 기연 실체화 에너지 충전율: 120%]**

머릿속에서 팡파르가 울리며 온몸에 짜릿한 마력이 휘감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지직, 지직.

갑자기 이시우의 시야 한 구석, 정확히는 붉은 하늘의 가장자리 부분이 마치 비디오테이프가 씹힌 것처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화면 프레임이 뚝뚝 끊기며 인과율의 궤적이 흔들리는 현상. 이 세계의 메인 시스템이 이시우의 '버그성 권능'을 인식하고 방화벽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보안 경고: 비정상 데이터 누적 감지.]** **[시스템 보안 관리도: 45% -> 52% (상승 중)]** **[주의: 임계치 도달 시 집행관의 강제 개입이 시작됩니다.]**

‘쯧, 벌써 50%를 넘겼나.’

이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접자가 늘어날수록 쓸 수 있는 버그 권능은 강해지지만, 동시에 시스템의 '청소부'들이 난입할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하늘 한구석에 서린 랙 현상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오한을 선사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 하늘 위의 감시자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잡담은 끝났나, 오만하고 무지한 생쥐 놈.”

베르너의 목소리가 전장을 얼려버릴 듯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가 쥐고 있는 순백의 마력 검이 수평으로 뉘어졌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마력이 단순한 빛을 넘어, 빛 그 자체를 왜곡시키는 중력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베르너의 발밑에 있던 지면이 통째로 함몰되며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고속 이동 기동이 아니었다. 발동하는 즉시 공간을 접어 도약하는, 제국 검술의 정수이자 전설급 돌파 스킬인 **[섬광의 궤적(Flash Path)]**이었다.

“그 가벼운 입놀림도, 이 일격 앞에서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베르너의 신형이 흐려졌다.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가속도가 붙기 직전의 찰나.

이시우는 달아나거나 방어막을 펼치는 대신,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왼손 끝을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치켜세웠다.

아무런 방어 기동도 없는,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기괴한 연출.

그러나 이시우의 입가에는 여전히 물 빠진 장미꽃처럼 뻔뻔하고도 화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속도 물리 벡터 왜곡 기믹, 지금 작동시킨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