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찢는 고주파의 경보음이 붉게 물든 하늘을 가득 채웠다.
헤르만이 쏘아 올린 검붉은 신호탄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관학교가 자랑하는 대마수 결계 시스템의 코드를 강제로 비틀어 버리는 악의적인 역해킹 키트였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결계막이 핏빛으로 오염될 때마다, 대지는 성난 짐승의 심장처럼 요동쳤다.
쿠구구구구구!
“히, 히익……!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마수들이 온다! 계곡 아래쪽에서부터 떼거지로 올라오고 있어!”
도망치던 연합 학도병들이 꼴사납게 엎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계곡의 좁은 입구를 가득 메운 것은 수백 마리의 ‘돌격 영양 수마(水魔)’ 무리였다. 머리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나선형 뿔을 단 채, 오직 전방을 향해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폭진하는 광폭한 마수들.
평소라면 결계의 억제력 때문에 근처에도 오지 못했을 괴물들이, 베르너 교수가 심어 놓은 ‘심연의 파동 역장’에 뇌가 녹아내린 듯 침을 흘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 파괴적인 폭주 군단의 정면에, 오직 한 사람만이 꼿꼿이 서 있었다.
평범한 보조 학도병의 회색 단복을 입은 이시우였다.
“이시우 님……!”
뒤편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엘리시아가 검을 짚고 일어서려다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시우의 좁은 등짝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백 마리의 수마가 뿜어내는 기세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이거늘, 이시우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왼손 끝이 가볍게 춤추듯 허공을 튕겼다.
엘리시아는 그 뒷모습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을 읽었다.
‘아아…… 저분은 또다시 혼자서 모든 오명을 짊어지려 하시는구나. 베르너 교수가 파놓은 이 비열한 함정 속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시려는 거야.’
감동과 비장함이 뒤섞인 눈물이 엘리시아의 속눈썹 끝에 매달려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끼워진, 가문의 깨진 고리 반지가 붉은 하늘의 마력을 빨아들이듯 미세하게 공명하며 차가운 진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시우는 그런 엘리시아의 눈물겨운 오해나 반지의 공명 따위에는 1밀리그램의 관심도 없었다.
이시우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오직 하나,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실시간 채팅창뿐이었다.
[보안 위험도: 85.4% (위험!)] [시청자 수: 18,400명 (급증 중!)]
실시간으로 터져 나가는 채팅창의 화력은 그야말로 용광로 수준이었다.
- ㅋㅋㅋ 헤르만 저 새끼 찌질하게 결국 자폭 버튼 눌렀쥬? - 와 근데 마수 물량 실화냐? 썩은물 새끼 이거 어떻게 깨냐? - 맵 전체 억까 역장 켜진 거 보소 ㅋㅋㅋ 베르너 영감탱이 혐성 보소 ㅋㅋㅋㅋ - 야 이시우! 여기서 빤스런 치면 오늘부터 하꼬 스트리머로 강등이다! - 저 물량을 몸으로 막는 건 불가능함. 스탯 65짜리 똥캐가 치이면 뼈도 못 추림 ㅇㅇ.
“누가 몸으로 막는대냐? 뇌가 있으면 생각을 해야지.”
이시우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시스템 보안 위험도가 85%를 돌파하면서 하늘의 붉은 균열 너머로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방화벽의 수호자이자, 이시우를 삭제하러 올 ‘집행관 제로’의 간섭 전조였다.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고, 기상천외하며,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우주 끝까지 발사할 수 있는 ‘예능 트롤링’이 필요했다.
이시우의 손가락이 허공의 퀵슬롯을 빠르게 훑었다.
“자, 시청자 여러분. 오늘 보여드릴 기믹은 ‘시스템 판정의 모순을 이용한 강제 시선 분산’입니다. 마수들의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가장 마력이 높거나, 가장 소란스러운 대상을 우선 타깃으로 잡게 설계되어 있죠.”
이시우가 방송용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만약,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이 허용하지 않는 수준의 ‘개소리’가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어떨까요? 시스템은 연산 오류를 일으키고, 가장 엉뚱한 곳에 어그로 판정을 고정해 버립니다.”
그 타이밍에 맞춰 채팅창에 황금빛 도네이션 알림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고인물사냥꾼’ 님이 300포인트를 후원하며 메시지를 보냅니다.] [메시지: 야, 그럼 거기서 ‘광역 어그로 탱고 춤’이라도 춰 보든가 ㅋㅋㅋ 진짜 추면 내 전 재산 털어서 10만 포인트 더 쏜다 ㅋㅋㅋ]
[후원 미션이 등록되었습니다!] [미션: 폭주하는 마수들 앞에서 붉은 장미를 물고 정열적인 탱고 스텝을 30초간 밟으시오.] [보상: 시청자 전용 특수 모션 ‘정열의 마력 탱고’ 일시 잠금 해제.]
“딜 성립.”
이시우가 지체 없이 수락 버튼을 눌렀다.
**[시스템: 특수 모션 ‘정열의 마력 탱고’가 활성화됩니다!]** **[효과: 모션 유지 시간 동안 시전자의 반경 100미터 내 모든 적대적 개체의 인공지능(AI) 연산이 300% 지연되며, 시전자의 동작에 강제로 시선이 고정됩니다. (어그로 수치 극대화)]**
이시우의 입에 어디선가 나타난 시뻘건 마력 장미 한 송이가 툭 물렸다.
“형, 형님……? 지금 입에 뭘 무신 겁니까……?”
뒤에서 도끼를 쥔 채 침을 꿀꺽 삼키던 강태현이 경악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이시우의 화려하고도 기괴한 신체 놀림이었다.
자악—!
이시우의 먼지투성이 사관학교 군화가 대지를 굳건히 딛고 선 채,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길게 뻗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극단적인 각도로 뒤로 꺾으며 왼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짜자잔! 짠! 짠!
어디선가 정열적인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의 탱고 선율이 환청처럼 계곡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라이브 방송의 배경음악(BGM) 기능이 현실 세계의 파동으로 구현된 순간이었다.
“……?!”
폭진하던 수백 마리의 돌격 영양 수마들이 일제히 앞다리에 힘을 주며 멈춰 섰다.
쿠쿠쿠쿵!
급브레이크를 밟은 마수들이 뒤엉키며 자빠지고 구르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수마들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일제히 계곡 한가운데서 홀로 골반을 격렬하게 흔들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에 고정되었다.
탁! 타닥! 탁!
이시우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완벽한 박자감으로 흙바닥을 짓밟으며 턴을 돌았다.
허공을 가르는 그의 손끝에서 붉은색 마력 입자들이 장미꽃 가루처럼 흩날렸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춤사위였지만, 아웃사이더 방송망의 초차원적 권능이 더해지자 그것은 단순한 재롱잔치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인공지능 연산 장치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시스템 경고: 규격 외의 비정상적 시각 정보 감지!] [마수들의 인공지능 연산이 과부하에 걸립니다.] [대상들의 적대적 시선이 시전자 ‘이시우’에게 강제 잠금(Lock-on)됩니다.]
- 미친 ㅋㅋㅋㅋ 진짜 탱고를 추네 ㅋㅋㅋㅋㅋㅋㅋㅋ - 춤 존나 잘 춰서 더 킹받음 ㅋㅋㅋㅋㅋ - 마수들 표정 봐라 ㅋㅋㅋㅋㅋ ‘저 새끼는 뭐하는 병신이지?’ 하는 표정임 ㅋㅋㅋㅋㅋ - 와, 근데 저 어그로 다 끌어서 어쩌려고? 저러다 밟히면 진짜 즉사인데?
채팅창이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가는 사이, 이시우는 속으로 정밀하게 초를 세고 있었다.
‘28, 29, 30. 오케이, 미션 완료.’
**[★ 미션 성공! ★]** **[후원금 100,00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시청자들의 도파민이 폭발하여 ‘어그로 전이(Aggro Transfer)’ 버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시우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올라갔다.
“고인물 플레이의 핵심이 뭔지 아십니까? 남이 짜놓은 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베르너 교수님이 나한테 똥을 던졌으니, 나는 그걸 더 예쁘게 포장해서 돌려드려야지.”
이시우의 시선이 계곡 위쪽, 깎아지른 듯한 기둥 위에 세워진 ‘중앙 통제 지휘소’로 향했다.
그곳은 베르너 교수와 그의 심복 헤르만이 결계 제어 장치를 쥐고 이 장엄한 학살극을 관망하던 안전지대였다. 기둥의 높이는 무려 30미터. 마수들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완벽한 관람석이었다.
“태현아.” “예, 예! 형님!” “저기 위에 있는 영감탱이 보이지?” “예! 베르너 교수님이 계신 지휘소 말입니까?” “어. 저 영감이 심심해 보이는데, 우리만 춤추면 예의가 아니잖아. 같이 춤판에 끼워드려야지.”
이시우가 물고 있던 장미꽃을 지휘소 기둥을 향해 퉤, 하고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이시우의 손끝이 허공에서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튕겼다.
**[액티브 버그 발동: ‘어그로 전이(Aggro Transfer)’]** **[판정 오류: 시전자가 획득한 초고농도의 어그로 수치를 특정 좌표의 인공물 또는 생명체에게 100% 그대로 전송합니다.]**
슈우우우욱—!
이시우가 뱉은 장미꽃이 허공을 날아가 중앙 통제 지휘소의 거대한 돌기둥에 척 하고 달라붙었다.
그 순간, 장미꽃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색 마력 파동이 지휘소 전체를 감싸 안았다.
수백 마리의 돌격 영양 수마들의 머리 위에 일제히 붉은색 역삼각형 표식[▼]이 떠올랐다. 표식의 끝이 가리키는 곳은, 이시우가 아닌 바로 베르너 교수가 서 있는 지휘소 기둥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수마들의 포효 소리가 한층 더 포악해졌다.
시스템의 강제 어그로 판정은 마수들에게 있어 ‘저 기둥 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극상의 먹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인 암시와도 같았다.
“어……? 어어?!”
지휘소 기둥 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헤르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교, 교수님! 마수들의 방향이……! 방향이 이쪽으로 바보같이 꺾이고 있습니다!”
“뭐라?! 그럴 리가 없다! 이 결계 제어 장치는 장교용 마력에만 반응하게 설계되어 있거늘……!”
베르너 교수가 다급하게 주문을 외우며 제어 장치를 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 버그로 뒤틀린 마수들의 타깃팅은 그 어떤 정상적인 명령어도 먹혀들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
수백 마리의 수마들이 발톱으로 대지를 찢으며 방향을 틀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베르너가 딛고 선 거대한 돌기둥이었다.
쾅! 쾅! 콰아아앙—!
“끄악!” “으아아악!”
지휘소 기둥 밑동에 수십,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미친 듯이 머리를 들이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단단한 석조 기둥이라 한들, 폭주 상태의 마수 수백 마리가 가하는 물리적 충격을 견뎌낼 재간은 없었다. 기둥의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이, 이시우우우우! 네 이놈!!!”
베르너 교수의 단발마 같은 비명이 계곡 전체에 울려 퍼졌다.
무너져 내리는 지휘소 잔해 사이로, 베르너는 꼴사납게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헤르만은 이미 무너진 돌더미에 깔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상태였다.
- 와 ㅋㅋㅋㅋ 반사 데미지 오지네 ㅋㅋㅋㅋㅋ - 베르너 영감탱이 엉덩이 찧으면서 떨어지는 거 실시간 캡처 완료 ㅋㅋㅋㅋㅋ - 이게 바로 썩은물의 ‘지형지물 낚시’다 ㅋㅋㅋㅋ 대존잼 ㅋㅋㅋㅋ - 10만 포인트 도네 쏜다 ㅋㅋㅋ 형 약속 지켰다!
[‘고인물사냥꾼’ 님이 100,0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 대형 후원 달성! ★]** **[보유 포인트: 145,200 SP]**
화면 가득 황금빛 돈다발이 터져 나가는 연출이 펼쳐졌다. 이시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멀찌감치 물러나 먼지 구덩이가 된 지휘소 잔해를 구경했다.
쿠구궁.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푸른색 마력 장벽을 몸에 두른 베르너 교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비록 마법으로 치명상은 피했으나, 그의 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흰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제국 최고 교수로서의 권위를 자랑하던 푸른색 제복은 먼지와 흙탕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안경 한쪽 알이 깨진 채, 베르너의 눈동자가 이시우를 향해 타오르는 듯한 증오를 뿜어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비열하고 교활한 버그 덩어리 놈이……!”
베르너가 이빨을 부득 갈며 손을 뻗었다.
스스스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마력 사슬들이 주변을 배회하던 마수들의 목을 순식간에 조여 가며 한 번에 수십 마리를 터뜨려 버렸다. 7서클 마법사의 압도적인 무력이 전장에 휘몰아쳤다.
하지만 베르너의 시선은 마수들이 아닌, 오직 이시우 한 사람만을 꿰뚫고 있었다.
“너 같은 오물 때문에 제국의 성스러운 사관학교가 더럽혀지는 것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 규율과 법도에 따라, 너를 이 자리에서 배제하겠다.”
베르너가 품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금속 패를 꺼내 땅바닥에 내던졌다.
챙강—!
맑은 금속음과 함께, 패가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거대한 마력의 전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마수들과 학생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절대적인 결계였다.
**[시스템 경고: 사관학교 고대 율법 ‘결투 재판(trial by combat)’이 신청되었습니다!]** **[피신청자: 이시우 (학도병)]** **[신청자: 베르너 (교수)]** **[규칙: 패배한 자는 즉시 사망 혹은 퇴학 처리를 당하며, 결투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이 전장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베르너 교수가 찢어진 옷자락을 휘날리며, 마력으로 빚어낸 거대한 검을 치켜들었다.
“내 명예와 직위를 걸고, 너에게 결투 재판을 청구한다. 거부권은 없다, 이시우.”
피처럼 붉은 하늘 아래, 두 사람을 가두는 결계가 단단하게 닫히기 시작했다.
이시우는 천천히 소매를 걷어붙이며, 그의 입가에 걸린 물 빠진 장미꽃을 바닥에 뱉어냈다.
그리고는 그의 특유의, 미치광이 같은 뻔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 교수님. 템 좋은 거 끼고 계시네? 이따가 그것도 루팅 가능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