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투박한 구두 굽이 젖은 시멘트 바닥을 내리찍었다. 아스팔트 틈새로 고여 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며, 명노식의 사냥개가 던져놓은 타블로이드지의 1면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백서진 정신 이상', '수면제 중독'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들이 이태성의 가죽 구두 밑창바닥에서 처참하게 구겨지고 찢겨 나갔다.
"크, 크하학……! 밟는다고 지워질 것 같냐? 인쇄기는 이미 돌아갔어. 내일 아침이면 온 나라가 그 미친년 기사로 도배될 거라고!"
바닥에 처박힌 채 이빨 사이로 피를 흘리던 사내가 큭큭거리며 쇳소리를 냈다. 부러진 팔을 움켜쥐면서도 그의 눈동자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이태성을 무너뜨렸다는 확신에 찬 비열한 쾌감이 그 추악한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태성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구두 끝에 짓밟혀 반쯤 찢어진 신문 쪼가리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 올렸다. 빗물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지는 종이 질감이 손가락을 타고 축축하게 전해졌다. 태성의 시선이 기사 속 백서진의 발작 사진에 머물렀다. 도둑촬영으로 찍힌,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
낮게 터진 웃음소리는 이내 빗소리를 뚫고 기괴할 정도로 맑게 울려 퍼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는 태성의 모습에, 쓰러져 있던 사내의 웃음기가 서서히 굳어갔다.
"왜 웃어……? 미쳤냐, 이태성?"
"고마워서 그런다, 새끼야."
태성이 찢어진 타블로이드지를 사내의 면상 위로 툭 던졌다. 축축한 종이가 사내의 뺨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태성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가학적인 조소를 머금고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그 안쪽에서 타오르는 광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딴 쓰레기 찌라시 쪼가리 한 장 만드는 데 돈깨나 썼을 텐데 말이지. 덕분에 우리 영화, 돈 한 푼 안 쓰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됐잖아?"
"뭐, 뭐라고……?"
"명노식한테 가서 전해. 대가리 굴리는 수준이 여전히 삼류 신파극 수준이라고. 노이즈 마케팅 한번 화끈하게 해줘서 눈물 나게 고맙다고 말이야."
태성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멀리서 붉고 푸른 경광등을 번쩍이며 경찰차들이 폐공장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위잉- 위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빗소리를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태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반투명한 인터페이스 창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네마 빌드 장부 활성화] [배우 백서진 트라우마 지수: 88% (위험 단계)] [스태프 피로도: 72% (피로 단계)] [씬 완성도: 40% -> 98% (정화 완료)]
장부의 창을 훑어내리던 태성의 시선이 우측 하단, 구석진 곳에서 붉은빛으로 미세하게 점멸하는 고유 아이콘에 멈췄다. 이전 회귀 직후부터 줄곧 시스템 오류처럼 깜빡이던 탭이었다.
'골든 하베스트 카르텔 비공개 금융 약정서 (클로즈 탭 오류)'
태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단순한 시스템 버그가 아니었다. 장부의 이 영역은 투자 카르텔인 골든 하베스트의 내부 자금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차형록이 그동안 영화 제작비를 핑계로 세탁하고 은닉해 온 비자금의 꼬리가, 이 장부의 닫힌 탭 너머에 숨겨져 있다는 직관이 뇌리를 스쳤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만간 이 탭을 완전히 열어젖혀 네놈들 목줄을 통째로 끊어줄 테니까.'
태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 * *
다음 날 아침.
예상대로 세상은 뒤집어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백서진', '백서진 수면제', '인페르노 촬영 중단'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도배되었다. 명노식이 뿌린 타블로이드지의 내용은 메이저 연예 매체들을 통해 급속도로 복제되며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다.
"태성아! 이거 진짜 어떻게 할 거야?!"
강혜원이 대기실 문을 부서질 듯 열고 들어왔다. 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고,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에 든 태블릿 PC에서는 서진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투자사 쪽에서 벌써 연락 왔어! 차형록 회장 비서실에서 당장 주연 배우 교체하든가, 아니면 제작비 전액 회수하고 촬영 폐쇄하겠단다! 언론들은 지금 세트장 정문 앞까지 몰려와서 진을 치고 있어!"
혜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현실적인 제작자였다. 이 정도 규모의 스캔들이 터지면 영화는 개봉하기도 전에 매장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작 소동의 중심에 선 태성은 의자에 깊숙이 기댄 채, 느긋하게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대기실 구석, 온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백서진에게 향해 있었다.
서진은 무릎을 안고 고개를 묻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장부의 붉은 스파크가 거칠게 튀었다.
[배우 백서진 트라우마 수치: 92% (붕괴 임박)]
그녀의 여린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태성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감정의 등가교환 법칙. 서진이 느끼는 극심한 공포와 수치심이 태성의 신경망을 타고 서서히 전이되고 있었다. 하지만 태성은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컵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았다.
"혜원 누나."
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기에 오히려 기괴한 위압감을 풍겼다.
"정문에 진 치고 있는 기자 놈들, 전부 세트장 안으로 들여보내."
"뭐? 미쳤어?! 기자들을 안으로 들이자고? 지금 서진이 상태 안 보여?!"
혜원이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카메라 장비 가진 놈들 있으면 우리 중계 네트워크망에 전부 물리라고 해. 오늘 촬영, 무편집으로 인터넷 생중계 라이브 튼다."
"이태성!"
"도망치면 진짜 미친년 되는 거야."
태성이 서진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세차게 흔들리는 서진의 턱을 거칠게 쥐어 올렸다. 서진의 눈동자는 눈물과 공포로 완전히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서진아. 똑바로 봐."
태성의 목소리가 낮고 날카롭게 서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세상이 너보고 미친년이래. 약쟁이에, 자살 기도나 하는 쓸모없는 쓰레기라고 낙인찍었어. 억울해?"
서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태성의 손등을 적셨다.
"무서워요……. 감독님, 저…… 저 진짜 미친 걸까요? 사람들이 다 나를……."
"그래, 미쳤지. 연기에 미친년이잖아, 너."
태성이 차갑게 웃었다. 그러나 그 손아귀의 힘은 서진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도망쳐서 평생 방구석에서 수면제나 삼키며 살래,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 네 그 빌어먹을 광기를 예술로 증명해 보일래? 선택해. 난 도망치는 배우는 내 현장에 안 둬."
서진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태성의 눈빛에 서린 지독한 오기와 신뢰가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두려움의 이면에 숨어 있던,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 할 수 있어요."
서진이 이 악물고 흘린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단했다.
"좋아."
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이 현장의 스태프들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 나갔다.
"스태프들 전부 제 위치로! 라이브 스트리밍 장비 연결해! 10분 뒤, 인페르노 세트장 '독방' 씬 촬영 개시한다!"
* * *
폐공장 내부, 어스름한 조명만이 드리워진 세트장 '인페르노'.
세트장 한편에 마련된 방청석에는 몰려든 기자 수십 명이 웅성거리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든 기자들의 눈빛에는 특종을 낚아채겠다는 탐욕이 번뜩였다. 그들의 눈앞에서, 대형 모니터 화면에는 실시간 라이브 중계 창이 띄워졌다.
[실시간 접속자 수: 150,000명 돌파] [실시간 접속자 수: 420,000명 돌파]
"진짜 생중계를 한다고?" "이태성 감독 제정신인가? 배우 상태가 개판일 텐데 이걸 라이브로 보여주겠다고?" "완전 자폭이네. 오늘로 이 영화는 끝이다."
기자들이 낄낄거리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채팅창 역시 백서진을 향한 조롱과 비난으로 터져 나갈 듯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태성은 메인 카메라 바로 옆, 현장 밀착형 연출을 위해 서진의 동선 바로 30센티미터 옆에 섰다. 서진은 쇠창살이 쳐진 좁고 어두운 독방 세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은 얇은 환자복 한 장만을 걸친 채였다.
태성이 시네마 빌드 장부를 켰다.
[특수 지배 연출 가동] [대상: 백서진] [트라우마 수치 조율: 92% -> 85% 격화 통제 적용]
'끄으윽…….'
순간, 태성의 머리를 거대한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덮쳐왔다. 골수를 파고드는 이 통증은 서진의 뇌리를 지배하던 공포의 파편들이 태성에게 전이된 결과였다. 태성은 턱 근육을 사정없이 비틀며 고통을 억눌렀다. 이빨 사이로 비린 피 맛이 배어 나왔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형형하게 빛났다.
"레디……."
태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세트장 안의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기자들도, 스태프들도 숨을 죽였다.
"액션!"
[씬 #47. 독방의 절규] [콘티: 주인공 '정인'(백서진 분)이 환각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던 과거의 망령들과 마주하며,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텨내는 처절한 감정의 극점.]
"아…… 아아……."
서진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의 한 점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서진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서서히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의 전신이 눈에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태성은 카메라 렌즈 바로 옆에서 서진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맞췄다.
"서진아, 놈이 다가와. 네 살을 뜯어내려 해. 소리 지르면 지는 거야. 삼켜. 그 비명을 삼키고 눈으로 놈을 찢어발겨!"
태성의 맹렬한 디렉팅이 서진의 귀가 아닌 영혼에 내리꽂혔다.
"으으윽!"
서진이 자신의 허벅지를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얇은 환자복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것은 분장이 아니었다. 실제 서진이 가진 PTSD의 고통과 연기가 완벽하게 결합하여 만들어낸, 날 것 그대로의 자학적 에너지였다.
그녀의 눈에서 마침내 핏빛 눈물이 고이듯, 붉게 충혈된 눈망울에서 눈물방울이 투두둑 떨어졌다.
그 순간, 세트장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의 숨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들이 허공에 얼어붙었다. 모니터 너머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수십만, 수백만의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영혼을 갈아 넣은, 아니, 영혼을 날것으로 짓이겨 보여주는 불세출의 명연기였다.
[시네마 빌드 장부 실시간 리액션 데이터 폭발!] ['미쳤다…… 소름 돋았어. 저게 연기라고?'] ['약쟁이 루머 유포한 새끼들 나와라. 저건 진짜 신이 내린 연기다.'] ['눈빛 봐라…… 소름 끼쳐서 화면을 못 보겠다.'] [오디언스 찬사 지수: 99.8% 달성!] [여론 반전 성공! 가짜 루머 일순간에 분쇄!]
실시간으로 중계창의 여론이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조롱과 비난으로 도배되던 채팅창은 경악과 예술적 찬사로 순식간에 정화되었다.
태성은 고통으로 눈앞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서진의 연기를 끝까지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깊은 어둠이, 태성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등가교환의 페널티가 태성의 폐부를 사정없이 쥐어짜며 숨을 막히게 했다.
'커헉…….'
태성은 입안으로 울컥 치밀어 오르는 피를 겨우 삼켜내며, 피가 섞인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승리에 찬 빛을 발하고 있었다.
"컷! 오케이!"
태성의 외침과 동시에, 세트장 내부에는 정적을 깨고 거대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기자들 중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고, 혜원은 눈물을 흘리며 서진에게 달려가 담요를 감싸 안았다.
"해냈어…… 서진아, 네가 해냈어!"
서진은 혜원의 품에 안겨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공포에 질린 울음이 아니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구원받은 자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1,200,000명 돌파!] [누적 조회수 10,000,000회 돌파 확실시!]
장부의 흥행 예측 수치가 무서운 속도로 치솟으며 청신호를 뿜어냈다. 수치스러운 치부이자 파멸의 덫이었던 스캔들을, 태성은 단 한 번의 라이브 연출로 가장 위대한 홍보 수단으로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명노식과 차형록이 설계한 언론 폭로전은 그렇게 실력이라는 압도적인 폭력 앞에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이태성 감독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이 라이브 연출은 사전에 기획된 퍼포먼스였습니까?!"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태성에게 달려들었다. 태성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읊조렸다.
"삼류 찌라시에 놀아나던 수준치고는 질문이 제법 고상하네. 기사는 알아서들 잘 써라. 팩트는 방금 니들 눈으로 똑똑히 봤을 테니까."
태성은 등을 돌려 메인 컨트롤 데스크로 향했다. 승리의 쾌감이 온몸의 통증을 덮어오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웅- 팅-!]
세트장 천장의 메인 조명들이 기형적인 연음 소리를 내며 일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무겁고 축축한 가스 냄새가 세트장 바닥에서부터 소름 끼치게 밀려왔다.
태성의 미간이 굳어졌다.
"이 냄새는……?"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즉시 대피하십시오!]
세트장 지축을 흔드는 비상 화재 사이렌이 지독한 굉음을 지르며 붉은 경보등과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