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직, 지지직!

천장을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메인 조명 어레이가 비명 같은 파열음을 내며 일제히 요동쳤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천만 명에 육박하는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치에 환호하던 세트장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연음 소리 뒤로, 폐부를 찔러오는 무겁고 축축한 가스 냄새가 바닥에서부터 소름 끼치게 밀려들었다.

"이, 이게 무슨 냄새야?" "조명 스파크인가? 야! 메인 전원 내려!"

스태프들의 외침이 어지럽게 뒤엉키는 찰나, 고막을 찢는 굉음이 세트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오오오옹-!

붉은 비상 경보등이 회전하며 사방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천장 배관 틈새에서 거무죽죽한 독연이 뱀처럼 기어 나오기 시작하자, 질서정연하던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자들은 카메라를 팽개치며 출구로 내달렸고, 스태프들은 장비를 챙기려다 서로 엉켜 넘어졌다.

태성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입안에 고여 있던 피 맛이 한층 더 비릿하게 느껴졌다.

'결국 판을 이따위로 깨부수시겠다?'

명노식과 차형록의 비열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지만, 분노를 터뜨릴 시간조차 사치였다. 태성은 눈앞에 띄워진 파란색 반투명 인터페이스를 거칠게 움켜잡듯 손가락을 퉁겼다.

[시스템 기능: '안전 대피 시뮬레이션'을 활성화합니다.] [세트장 '인페르노' 내 잔류 인원: 74명.] [발화점: 지하 보일러실 및 서쪽 화학 소품 창고. 급속 확산 중.] [최적 대피 경로 탐색 완료. 경로 가이드를 실시간 매핑합니다.]

태성의 시야에 세트장 바닥을 가로지르는 선명한 형광 초록색의 가이드라인이 펼쳐졌다.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탈출구까지의 최단 경로였다.

태성은 메인 컨트롤 데스크 위로 뛰어올라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목줄기에 핏대가 불거졌다.

"전원 주목! 장비 버려! 필름이랑 하드 빼고는 전부 다 버려! 목숨보다 비싼 장비는 없다!"

금속성을 띠는 싸늘하고 압도적인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세트장 구석구석을 때렸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이들이 일제히 태성을 올려다보았다.

"A팀과 미술팀은 바닥에 보이는 초록색 라인만 따라 뛰어! 동쪽 3번 비상구로 연결된다! B팀과 기자 새끼들은 북쪽 메인 로비 방향 무대 뒤쪽 통로로 피해! 거기가 가장 안전해! 내 지시 어기고 딴 데로 새는 놈들은 알아서 지옥 가라!"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이 모든 재앙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한 초연함과 우두머리 특유의 지배력이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갈팡질팡하던 스태프들이 태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움직여! 당장!"

태성의 호령에 혜원이 스태프들의 뒤를 받치며 사람들을 밀어냈다.

"감독님! 감독님은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애들부터 밖으로 밀어내! 빨리!"

태성은 혜원의 시선을 거칠게 쳐내며 단상에서 뛰어내렸다. 장부의 화면을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위험 구역 발생: 소품실 인근.] [잔류 인원: 2명. 생체 신호 급격히 저하 중.]

소품실 방향은 이미 시뻘건 불길이 벽면을 타고 기어오르는 최악의 사지(死地)였다. 그곳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었다.

태성은 연기 속을 뚫고 미친 듯이 달렸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피부가 짓무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품실 구석, 캐비닛 옆에 한 주저앉은 그림자가 보였다.

백서진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자신을 가두고 학대했던 불타는 독방의 기억이 되살아난 듯, 온몸을 태아처럼 웅크린 채 가방을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동공은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고, 밭은 숨을 몰아쉬며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최유빈이 서진의 팔을 잡아끌며 울부짖고 있었다.

"서진아! 일어나! 제발 움직여 봐! 여기 있으면 우리 다 죽어!"

하지만 유빈 역시 공포로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유빈의 발치에는 소품으로 쓰이던 '깨진 유리구두' 모형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가짜 유리 조각들이 붉은 화염을 반사하며 기괴하게 빛나자, 유빈의 눈빛에 서린 깊은 트라우마의 낙인이 일순간 요동쳤다. 약물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극도의 불안감이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최유빈, 비켜."

태성이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와 유빈을 옆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서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진의 뺨은 산소 부족과 공포로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태성은 주저 없이 손을 들어 서진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

짝-!

매서운 마찰음이 화재의 포효를 뚫고 울려 퍼졌다.

"아……."

서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고통보다 더 강렬한 감각이 그녀의 뇌리를 때리자, 초점을 잃었던 동공이 천천히 돌며 태성의 맹렬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태성은 서진의 턱깃을 억세게 움켜쥐고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의 눈동자에는 자비 대신 지독하리만큼 서늘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정신 안 차려? 이딴 허접한 불장난에 내 영화를 망치겠다고?" "감, 독님…… 불이, 불이 나를……." "귀 막고 내 말만 들어."

태성이 이를 악물며 나직하게, 그러나 뼛속까지 파고드는 톤으로 읊조렸다.

"내 인생의 최고작을 지키는 페이스메이커는 나다. 그리고 넌 그 작품의 심장이야. 내 허락 없이 죽을 생각도, 뒤질 생각도 하지 마. 살아서 연기해. 내 말 이해했으면 닥치고 일어나."

지독하고도 숭고한 보호 명령.

서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공포가 태성의 난폭한 확신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마비되었던 손가락 끝에 힘이 돌아왔다.

태성은 서진을 일으켜 세워 뒤따라온 혜원의 품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강혜원! 최유빈이랑 서진이 데리고 당장 나가!" "감독님은요? 같이 나가야죠!" "메인 프레임 하드 디스크가 편집실에 있어. 그거 타면 우리 지금까지 찍은 거 다 날아가. 먼저 나가 있어!" "태성 씨!"

혜원의 비명 같은 외침을 뒤로하고, 태성은 등을 돌려 시뻘건 불길이 넘실거리는 편집실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화마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편집실 입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장부의 실시간 위험 분석 센서가 95%를 가리키며 붉은빛을 발산했다.

태성은 셔츠 자락을 찢어 생수병의 물을 적신 뒤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뜨거운 연기가 허파를 긁어내릴 때마다 피비린내가 입안에 고였다.

바로 그때, 눈앞의 시네마 빌드 장부 우측 하단이 기형적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위치 확인: 골든 하베스트 서버 연결망 감지.] [시스템 경고: 숨겨진 '비공개 금융 약정서' 클로즈 탭 오류 발생.] [강제 데이터 동기화를 시도합니다…….]

'이건……!'

회귀 첫날부터 인터페이스 구석에서 오류를 일으키며 점멸하던 정체불명의 탭이었다. 세트장의 메인 전력이 끊어지기 직전, 과부하된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골든 하베스트의 내부 보안망을 우회하는 통로를 열어젖힌 것이다.

[다운로드 중: 골든_하베스트_비자금_약정서_원본.pdf (98%)]

태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차형록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영화 제작비를 사재기하고 세탁하던 금융 카르텔의 아킬레스건이 그의 손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운로드 완료.]

장부의 개인 보관함에 문서가 완전히 아카이빙되는 순간, 태성은 편집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화염이 천장의 석고보드를 녹여 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성은 열기로 터질 것 같은 편집용 PC의 메인 본체를 맨손으로 뜯어냈다. 뜨겁게 달아오른 금속 케이스가 손바닥의 살점을 지지는 통증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으윽……!"

신음소리를 삼키며 메인 소스 하드 디스크 세 개를 차례로 뽑아내 가죽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이 데이터들만 있으면 영화는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무너진 천장의 기둥이 편집실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으며 거대한 불길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탈출구가 물리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산소가 희박해지며 눈앞이 침침해졌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무릎이 꺾였다.

[사용자 생체 신호 위험 수준 도달.] [경고! 등가교환 법칙의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사용자의 육체적 훼손율 87%.] [특수 시스템 활성화 권장: '내열 통증 무력화' 강제 오버클럭.] [※ 주의: 활성화 시, 심각한 신경계 전이 통증 및 신체적 후유증이 발생합니다.]

태성은 핏발 선 눈으로 장부를 노려보며 가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활성화해. 이따위 불장난에…… 내 예술이 타게 둘 순 없으니까."

[오버클럭 시스템을 활성화합니다. 감정 및 감각의 등가교환을 강제 감수합니다.]

콰르릉!

뇌리를 직격하는 듯한 극심한 충격과 함께, 온몸의 신경이 단절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찾아왔다. 뜨거움에 대한 생체적 공포와 열기가 기적처럼 차단되었다. 살이 타는 듯한 냄새는 여전했으나, 뇌는 더 이상 그것을 '통증'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태성은 하드 디스크 가방을 품에 꼭 껴안은 채, 타오르는 목재 잔해를 맨손으로 밀쳐냈다. 불꽃이 옷소매에 들러붙어 타올랐지만, 그는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로 화마의 중심부를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오는 악마처럼, 혹은 그 지옥을 지배하는 군주처럼.

***

세트장 마당은 울음바다였다.

"감독님! 안돼, 태성 씨!" "소방차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혜원이 울부짖으며 주저앉았고, 서진은 넋이 나간 눈으로 불타는 인페르노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서로의 무사를 확인하면서도, 자신들을 구하고 돌아오지 못한 젊은 감독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세트장의 깨진 입구 사이로 형체가 드러났다.

천천히, 그러나 아주 일정한 템포로 걸어 나오는 실루엣.

"어……? 저기!" "감독님이다! 이태성 감독님이다!"

스태프들이 경악 섞인 환성을 질렀다.

태성은 온몸이 그을음으로 뒤덮인 채, 한 손에는 하드 디스크가 든 가방을 들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의 옷자락은 군데군데 타들어 가 있었고, 온몸에서 아지랭이처럼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스태프도, 배우도 낙오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의 영혼인 필름 데이터까지 완벽하게 지켜냈다. 불타오르는 지옥 속에서, 그는 말 한마디와 압도적인 장악력으로 현장의 모든 목숨을 구해낸 것이다.

태성은 혜원의 발 앞에 하드 디스크 가방을 툭 던져놓았다.

"데이터는 살렸다. 정리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하고 차가웠다. 안도감에 오열하는 혜원과 서진을 뒤로한 채, 태성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마당 구석, 어두운 음지로 걸어갔다.

"큭……."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팽팽하게 쥐어짜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오버클럭의 대가와 억눌렸던 신경통이 한꺼번에 뇌수를 후려쳤다.

태성은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입안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피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해냈다. 붉은 혈흔이 검은 그을음 위로 번져나갔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이 덜덜 떨렸다.

스스슥.

지독한 연기 뒤편, 어둠 속에서 낮고 비열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태성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고개를 들려 했으나, 목줄기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태성 감독. 대단해. 그 불길 속에서 살아 나오다니, 정말 질긴 목숨이야."

익숙하고도 역겨운 목소리. 명노식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흉소가 걸려 있었다. 명노식은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 내부의 투명한 액체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태성의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주사기 앰플 표면에 인쇄된 푸른색 고유 코드가 선명하게 박혀왔다.

[GH-0931]

최유빈을 파멸로 몰고 갔던, 그리고 이제 태성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준비된 금지의 약물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천재는 일찍 죽어야 명작이 되는 법이거든."

명노식이 순식간에 태성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그의 목덜미에 주사바늘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차가운 액체가 태성의 경동맥을 타고 뇌로 무섭게 흘러들기 시작했다.

"커헉……!"

태성의 동공이 기형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야가 사정없이 뒤틀리며, 끝없는 어둠이 그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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