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중단해! 당장 카메라 다 꺼!”
귀를 찢는 고함과 함께 세트장 입구의 가벽이 거칠게 밀려 열렸다. 빗물이 들이치는 폐공장 틈새로 들이닥친 것은 노란색 메가폰을 쥔 명노식이었다. 그의 등 뒤로는 검은색 바람막이를 걸친 거구의 사설 경비원 대여섯 명이 험악한 기세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서진을 옥상 난간에서 끌어내려 겨우 카메라 앞에 세운 지 고작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뭐 하는 짓거리야, 이태성! 미쳤어? 정신병자 새끼 데리고 기어이 사고를 치려고 작정을 했군!”
명노식이 씹어뱉듯 소리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차형록 회장’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전화를 채 받지도 않은 채, 그는 태성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팔을 뻗었다.
태성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서진의 젖은 어깨를 제 등 뒤로 슬며시 밀어 감추며, 명노식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제작자라는 인간이 현장에서 메가폰 들고 짖어대는 꼴이라니. 명 감독님, 연출에서 물러나니까 이제는 똥개처럼 영역 표시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손대지 마.”
태성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서늘한 음색에 뻗어오던 명노식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굳었다.
태성은 시선을 돌려 경비원들을 응시했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시네마 빌드 장부’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경고 문구를 띄우고 있었다.
[위험: 외부 세력의 강제 개입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비공개 금융 약정서의 락(Lock) 해제 프로세스가 강제로 시작됩니다.] [현재 현장 통제력 수치: 62% (하락 중)]
태성은 장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젖은 슬레이트보드를 바닥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찍었다. 둔탁한 파열음이 폐공장 천장을 때렸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법적 계약이 완료된 영화 ‘인페르노’의 메인 세트장입니다. 감독의 허가 없이 촬영 장비와 스태프의 동선에 개입하는 모든 외부인은 업무방해 및 주거침입으로 현행범 체포 대상입니다. 조감독.”
“예, 예! 감독님!”
구석에서 눈치를 보던 조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경찰에 신고해. 그리고 촬영 조명용 발전차 전선 건드리는 놈 있으면 카메라로 다 채증해 둬라. 합의금으로 이번 영화 제작비 보태 쓰게.”
태성의 냉정하고도 구체적인 으름장에 사설 경비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멈칫거렸다. 아무리 돈을 받고 움직이는 용역이라 한들, 수십 명의 스태프가 지켜보는 촬영 현장에서 대놓고 범법 행위를 저지르기는 부담스러운 법이었다.
“너……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차 회장님이 이 장난질을 그냥 두고 보실 것 같아?”
명노식이 이빨을 갈며 속삭였다.
“그 대단하신 회장님 걱정은 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나 받고 하 시고.”
태성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명노식을 지나쳐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우린 찍는다.”
그가 던진 한마디에 현장의 공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의 움직임은 둔하기 짝이 없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촬영과 갑작스러운 난입 사태로 인해 그들의 눈빛에는 피로와 불신이 가득했다. 태성은 허공에 띄워진 장부의 세부 지표를 훑었다.
[스태프 피로도: 42%] [장비 배치 효율성: 35% (극히 저조)] [예상 씬 완성도: 58%]
‘엉망진창이군.’
전임 감독이었던 명노식이 짜놓은 촬영 동선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조명은 인물의 음영을 살리지 못하고 허공으로 번졌고, 카메라 레일은 비효율적으로 길게 깔려 스태프들의 체력만 갉아먹고 있었다. 20년 전 충무로의 구태의연한 방식 그대로였다.
태성이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메가폰을 입에 가져다 댔다.
“조명 감독님.”
“어, 어? 왜 그러십니까, 이 감독?”
지쳐 있던 조명 감독이 태성을 바라보았다.
“지금 12K HMI 라이트 좌측으로 15도 돌리세요. 뒤에 있는 폐드럼통에 반사시켜서 서진이 얼굴 우측 뺨에만 라인라이트 떨어지게 만듭니다. 불필요한 필라이트는 전부 끄세요. 어차피 이 씬은 어둠이 지배해야 합니다.”
“그, 그렇게 하면 배경이 너무 죽을 텐데…….”
“배경을 보여주려고 찍는 영화 아닙니까? 인물의 고독을 찍는 겁니다. 움직이세요. 10초 드립니다.”
태성의 단호한 지시에 조명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팀. 레일 3미터 뒤로 빼고 고정해요. 50미리 렌즈 빼고 85미리로 교체합니다. 서진이 눈동자 안의 미세한 떨림까지 프레임 안에 꽉 채울 겁니다. 트래킹 숏 버리고 피스톨 샷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콘티에는 트래킹으로 좌에서 우로 돌기로…….”
카메라 감독이 반발하려 하자, 태성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콘티 짠 사람, 지금 저기서 메가폰 들고 똥개처럼 짖고 있는 양반입니다. 감독님은 저 양반 삼류 연출력에 맞춰 평생 삼류 포커스나 맞추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칸의 레드카펫 위에서 제 이름 석 자 박힌 필름을 상영하고 싶으십니까?”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카메라 감독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태성의 눈빛에 담긴 확신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완벽한 프레임을 편집까지 끝내놓은 거장의 확신이었다.
“……85미리 단렌즈 가져와! 레일 고정하고 삼각대 헤드 풀어!”
카메라 감독의 외침과 함께 현장이 기적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성은 멈추지 않았다. 장부의 실시간 피로도 수치를 주시하며, 비효율적인 전선 배치를 지적하고 발전차의 출력을 조절했다. 단 10분 만이었다. 어수선하고 눅눅했던 세트장은 오직 한 사람, 백서진의 슬픔과 광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완벽한 ‘지옥(인페르노)’의 형태로 변모해 있었다.
[스태프 피로도: 42% -> 28% (효율적 동선 재배치로 피로도 경감)] [장비 배치 효율성: 35% -> 92% (최적화 완료)]
스태프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방금 겪은 10분간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천재적인 현장 장악력. 그들이 평생을 바쳐 일하면서도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진짜 ‘거장’의 호흡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준비 끝났습니다, 감독님.”
조감독의 목소리에는 이제 떨림 대신 묘한 흥분과 경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명노식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며칠 동안 낑낑대며 세팅했던 현장이, 이 애송이의 지시 몇 번에 완벽한 예술적 공간으로 바뀐 것을 제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태성이 카메라 바로 옆, 백서진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서진의 몸은 여전히 빗물과 추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아동 임대 학대라는 지독한 과거의 유령이 그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백서진 트라우마 수치: 89%] [자학적 메소드 연기 몰입도: 94%]
태성은 서진의 젖은 뺨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보라고, 백서진.”
태성의 목소리가 서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가 죽고 싶었던 그 지옥이 바로 여기야. 도망치지 마. 네가 흘린 눈물, 네가 가슴에 박아둔 그 흉터들을 저 렌즈 너머의 세상에 다 던져버려. 널 피 말려 죽이려 했던 그 개새끼들에게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미쳐갈 수 있는지 보여주란 말이다.”
서진의 눈동자가 서서히 태성의 눈을 향해 올라왔다. 태성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진의 눈동자 바로 앞에 제 얼굴을 밀착시켰다.
카메라 렌즈가 서진의 얼굴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태성 역시 서진의 리액션을 현장에서 라이브로 견인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가져와.’
태성은 마음속으로 장부를 향해 외쳤다.
‘저 녀석의 고통을, 내가 받는다.’
[감정의 등가교환 법칙이 작동합니다.] [백서진의 트라우마 수치 89% -> 40%로 급격히 진정됩니다.] [전이된 스트레스 수치만큼 이태성 감독에게 육체적 통증이 부여됩니다.]
쿵-!
순간, 태성의 왼쪽 갈비뼈 부근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격통이 휘몰아쳤다. 숨이 턱 막혔다. 허파가 찢어질 것 같았고,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하지만 태성은 신음을 삼켰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잔혹하게 웃었다. 이 정도 고통쯤은, 과거에 동료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겪었던 지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레디…….”
태성의 갈라진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서진의 눈빛이 변했다. 그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자살 충동과 공포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슬픔과 날 선 분노로 치환되었다.
태성은 참아내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오직 서진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액션.”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명 빛이 그의 오른쪽 뺨을 타고 흐르며, 고독한 늑대의 옆얼굴 같은 음영을 만들어냈다. 서진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대사는 시나리오에 적힌 건조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처절한 절규였다.
“……왜 나였어?”
그 짧은 한마디에 세트장 전체가 숨을 멈췄다.
빗소리만이 빈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서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턱끝에서 떨어졌다. 85미리 렌즈는 그 눈물의 궤적과, 그 안에 담긴 우주 같은 슬픔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프레임에 담아냈다.
태성은 갈비뼈를 움켜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카메라 모니터를 주시했다.
[실시간 씬 완성도: 97%] [흥행 예측값: +1.2% 상승]
미친 컷이었다. 20년 뒤의 어떤 영화제에서도 이토록 완벽한 오프닝 컷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터였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가 넋을 잃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명노식조차도 메가폰을 떨어뜨린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연출의 영역을 넘어선, 영혼의 구원극이었다.
“……컷.”
태성의 나직한 선언이 떨어졌다.
“오케이. 이번 씬은 테이크 원으로 끝낸다.”
세트장은 고요했다. 아무도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너무도 압도적인 명장면에 압도되어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조감독이 침을 꿀꺽 삼키며 태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외를 넘어선 일종의 신앙심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가, 감독님…… 방금 그 컷…….”
“정리해.”
태성은 짧게 답한 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감독 의자에 주저앉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갈비뼈의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피로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였다. 태성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뜬 번호는 발신인 제한 표시.
하지만 태성은 그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올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태성은 심호흡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이태성 감독인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묵직했다. 골든 하베스트의 수장, 차형록이었다.
“재미있는 장난질을 하고 있더군. 명노식이 보낸 경비원들을 법으로 협박해? 쥐새끼치고는 제법 영리한 이빨을 가졌어.”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차 회장님. 다음 씬 촬영 들어가야 해서 바쁩니다.”
태성이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건너편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타격이 없다는 듯한, 지배자의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그래, 예술가 나으리께서 바쁘시다니 길게 말하지 않지. 방금 자네 세트장에 가압류 신청서가 법원에서 발송되었네. 영화 ‘인페르노’의 제작 예산 50%를 즉각 동결하고, 세트장 장비 일체에 대한 압류 절차가 내일 오전부터 집행될 걸세.”
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산 50% 가압류라니. 명목이 뭡니까?”
“주연 배우의 정신 질환으로 인한 제작 지연 우려, 그리고 감독의 무단 계약 변경이지. 우리가 심어둔 감사관들이 내일 아침 현장으로 들이닥칠 거야. 법이 무서운 줄 아는 모양인데, 진짜 법을 다루는 법을 보여주지.”
차형록의 목소리에 서린 살기가 수화기를 넘어 태성의 살갗을 찌르는 듯했다.
“내일 아침까지 촬영을 자진 중단하고 판권을 넘기게. 그렇지 않으면 자네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스태프들과 그 미쳐버린 배우 놈까지, 평생 빚더미 위에서 피를 말리며 죽어가게 만들 테니까.”
뚝.
전화는 무자비하게 끊어졌다.
태성은 천천히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장부의 붉은 에러 탭이 더욱 광포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ERR_LOCK_01: 골든 하베스트 비공개 금융 약정서] [경고: 락 해제 완료까지 남은 시간 72시간.]
태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가압류라…….”
태성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들려 올라갔다.
“판을 너무 크게 벌려주시는군, 차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