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야(寂夜)의 장막을 찢고 흘러나오는 비린내가 남궁세가(南宮世家)의 대전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묵직한 적막이 내려앉습니다. 이십 년. 기괴한 동굴 마른 벽에 손톱으로 원수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새겨 넣던 그 억겁의 세월이 마침내 오늘 밤, 이 푸른 대리석 마당 위에서 종지부를 찍으려 합니다. 사독문의 잔혹한 올무 속에서도, 옛 동맹 유현의 피눈물 섞인 경고 속에서도, 당신의 검끝은 오직 이곳, 천하를 오시하는 남궁세가의 심장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백무가(白武家)의 망령이 기어코 제 무덤을 찾아왔구나."
백발을 성성하게 늘어뜨린 원로들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조소가 서려 있습니다. 그들의 뒤편으로 겹겹이 늘어선 수백 명의 철갑무사들이 병장기를 부딪치며 내는 쇳소리가 고요한 밤의 허공을 찢어발깁니다. 창검의 숲이 달빛을 받아 서슬 퍼런 은빛 물결을 이룹니다. 일촉즉발(一觸即發)의 형세. 저 장막 너머 본당의 깊은 어둠 속에서는, 기괴한 마공을 연마하여 천하를 삼키려 한다는 남궁가주의 음산한 기운이 마치 거대한 독사처럼 숨죽인 채 당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이나, 당신의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기나긴 고독의 끝에 찾아온 기묘한 평온입니다.
창백한 달빛이 당신이 쥐어든 검날을 타고 서서히 흘러내립니다. 이 묵직한 철검은 이십 년간 어두운 동굴 속에서 당신의 유일한 도반(道伴)이자 스승이었으며, 쓰러져 간 백무가의 혼 그 자체였습니다. 검 끝에 서서히 내력을 모으자, 가문 대대로 내려온 독문무공의 기운과 깊은 한(恨) 서린 진기가 융합하여 장막 같은 진동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강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갈잎의 서글픈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겨울밤 홀로 우는 은자(隱者)의 묵묵한 흐느낌 같기도 합니다.
적들의 포위망이 한 걸음씩 좁혀옵니다. 철갑이 스칠 때마다 일어나는 살풍(殺風)이 뺨을 차갑게 스쳐 가고, 원로들의 조소 섞인 살기가 당신의 전신 경맥을 압박해 옵니다.
눈앞의 무수한 장벽을 강맹한 검강으로 뚫고 저 안의 수령에게 종심 돌파를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 푸른 뜰 전체를 백무가의 독성 서린 진기로 뒤덮어 적들을 일거에 참식할 것인가.
바람이 멎고, 우묵한 침묵 속에서 당신은 검자루를 쥔 손가락 끝에 천천히 힘을 줍니다. 마침내, 결단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