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독문의 늑골을 헤집듯, 기괴한 독무가 자욱하던 밀실의 빗장을 부수고 들어선 당신의 손끝에 닿은 것은 한 번도 마르지 않은 피비린내였습니다.
스스로의 폐부를 벼려낸 차가운 기운, 빙결(冰結)의 독공이 백맥을 타고 흐르며 창고 안의 초토화된 열기를 식힙니다. 당신이 거두어들인 내력은 마치 한겨울 밤, 달빛마저 얼려버리는 청량한 계곡물처럼 고요하고도 매서게 단전으로 가라앉습니다. 주위는 적막강산이며, 오직 당신의 가쁜 숨소리만이 허공을 두드릴 뿐입니다.
먼지 쌓인 목함의 자물쇠를 검끝으로 가볍게 털어내자, 비명이 터져 나오듯 삐걱거리며 궤짝이 열립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독문의 은밀한 치부를 기록한 비밀 장부와 한 통의 밀서.
황초지에 휘갈겨 쓴 묵향 가득한 글씨를 좇던 당신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립니다. 염량세태(炎凉世態)라 하나, 눈앞에 드러난 진실은 강호의 도의를 통째로 비웃고 있었습니다.
밀서의 말미에 선명하게 찍힌 주사(朱砂)의 인장. 그것은 정파의 큰 기둥이자 무림의 천화(天華)를 수호한다는 천화맹주(天華盟主)의 사인이었습니다. 20년 전, 당신의 가문이 흔적도 없이 도륙당하던 밤, 가문을 에워쌌던 불길의 배후에는 사독문의 음험한 독수뿐 아니라, 천하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정파의 영수 역시 기꺼이 한 축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의 극치이자,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실체였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노도와 같은 분노가 역류하려 하지만, 당신은 억지로 숨을 누릅니다.
창틈으로 스며든 희백한 달빛이 검날을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이 검은 20년의 고독을 받아내며 갈아온 복수의 칼날. 그러나 이제 당신이 겨눠야 마땅할 검빛은 일개 사도를 넘어,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지닌 천화맹 전체를 향해 있었습니다.
진실을 품은 밀서는 손안에서 바스락거리며 무거운 경고를 보냅니다. 천하를 향해 이 위선을 폭로하여 사도와 정파의 가짜 동맹을 찢어발길 것인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자라난 독수(毒手)답게 밤바람을 타고 그의 침소로 바로 날아들어 심장을 꿰뚫을 것인가.
귓가를 스치는 소슬바람이 가문의 원혼들이 내뱉는 한숨처럼 서글프게 울려 퍼지는 밤입니다. 당신은 품속에 밀서를 밀어 넣으며, 천천히 자하검의 검자루를 거머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