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죽림(竹林)을 흔드는 처량한 바람이 가을의 끝자락을 알린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밟힐 때마다 바스러지며, 한때 이곳이 번성했던 무림 맹방의 터였음을 증명하듯 쓸쓸한 비명을 지른다. 한설, 당신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허물어져 가는 초가 정자 앞이다.

그곳에 한 사내가 앉아 있다. 은거(隱居)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가둔 유배(流配)에 가까운 삶. 한때 검협(劍俠)이라 불리며 중원을 호령하던 백무가의 의형제, 유현(劉賢). 그러나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자는 두 다리를 잃고 한 자루 목검에 의지한 채 고목처럼 말라가는 노인에 불과했다. 초점 없는 그의 눈동자가 당신이 걸친 백무가의 낡은 도포를 향한 순간, 그 탁하던 동공에 형언할 수 없는 격량(激浪)이 일렁인다.

"정녕…… 설이더냐? 백무가의 마지막 서자가 살아 있었단 말이냐……!"

주름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가문이 멸문당하던 날의 붉은 피눈물만큼이나 뜨겁고 묵직하다. 유현은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손마디마다 박힌 깊은 굳은살은 그가 보낸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세월을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었다. 당신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짚는다. 이십 년의 세월 동안 동굴 속에서 얼어붙었던 당신의 심장 언저리가 미세하게 요동친다. 침묵은 길고, 강호의 애환은 밤안개처럼 사방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고른 유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토해낸 진실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무거운 비수와 같았다.

"그자, 남궁세가의 가주는 이미 정종(正宗)의 무예를 저버렸다. 세가의 지하 깊은 곳에서 인간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괴랄한 마공(魔功)을 연마하여, 천하를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하고 있어. 그 마풍(魔風)이 온 강호를 삼키기 전에 막아야 한다."

유현의 굳은 손가락 끝그림자가 바닥의 먼지 낀 지도 위에 머문다. 그의 흐릿한 눈에 오랜 세월 남궁을 감시하며 알아낸 정보의 불꽃이 작게 튄다. 유현은 남궁세가 본당의 삼엄한 세력망 중에서도 유독 바람이 통하듯 비어 있는 치명적인 방어선의 취약점을 짚어낸다. 동시에, 가주가 마공을 완성하기 위해 홀로 은밀히 머무르고 있는 비밀 훈련장의 위치 또한 가리킨다.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대나무 잎을 스치고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당신의 검날에 닿아 서늘한 달빛으로 부서진다. 가문의 원적(怨敵)을 처단하기 위해, 당신은 어느 길로 검을 머금고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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