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잡초조차 스스로 말라죽는 황폐한 땅. 과거 당신의 가문이 누렸던 찬란한 영광은 어두운 이끼 아래 묻힌 채, 오직 사독문(蛇毒門)이 퍼뜨린 검푸른 독기만이 허공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20년의 세월을 기괴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홀로 견뎌온 당신의 발걸음은 깊은 서글픔을 머금은 채 고요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튼 복수의 불꽃은 오히려 차갑게 사그라드는 매화빛 달빛처럼 투명합니다.

지나온 길은 피로 물들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칠흑 같은 어둠뿐입니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사위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지며 대지가 미세하게 진동합니다.

"제 발로 무덤을 찾아왔구나, 망령 놈 같으니."

허공을 가르는 비열하고 은밀한 음성과 함께, 사방의 흙바닥과 암벽에서 기괴한 주술의 문양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사독문주가 당신을 가두기 위해 오랜 시간 골몰하여 설계해 둔 만독궤멸진(萬毒潰滅陣). 훅 끼쳐오는 비린내는 단순한 독 기운이 아닌, 무인의 골수까지 녹여내겠다는 악랄한 골독(骨毒)의 향취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녹색 무덤과도 같은 숲의 장막 속에서 수천 발의 검은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집니다. 그 끝마다 시퍼런 침묵을 머금은 독액이 맺혀 있어, 마치 밤하늘에 떨어지는 잔인한 유성우를 연상케 합니다.

그 일촉즉발의 순간, 당신은 등에 멘 흑검(黑劍)으로 손을 뻗습니다. 평생을 고독 속에서 갈고닦은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며 가냘픈 비명을 지릅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극도(極道)의 검식은 마치 소리 없이 번지는 바람, 혹은 고요한 검은 호수에 떨어지는 낙엽의 파문과도 같습니다. 검 끝에서 피어난 기운이 날아드는 독화살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쳐내며 허공에 흩뿌리지만, 적들의 포위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히 좁혀옵니다.

바닥에서 흐르는 탁한 독수가 발목을 적시고, 수십 명의 사독문 살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검은 그림자처럼 당신의 시야를 메워갑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이자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위기. 대기를 잠식한 맹독은 살을 저미고 들어와 폐부를 찌르고, 만독불침(萬毒不侵)에 가까운 강인한 육체를 지닌 당신마저도 매서운 한기를 느끼게 합니다. 진법의 뒤편, 사독문주는 승리를 확신한 듯 앙상한 입술로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당신의 숨통이 끊어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을 쥔 손가락 끝에 서늘한 한기가 서립니다. 이 사악한 진법을 정면으로 깨부수고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적의 방심을 유도하여 더 깊은 심연으로 그들을 끌어들일 것인가. 사방을 에워싼 독무 속에서 당신의 차가운 눈동자가 침묵으로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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