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명백한 날조예요! 우리 애들은 피땀 흘려 훈련했을 뿐인데!"
장혜리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스마트폰 화면 속 붉은색 헤드라인은 여전히 자극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단독] FC 로드, 비정상적 활동량의 비밀... 불법 약물 투여 의혹 제기!
운동장 언저리에 모여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태성에게로 쏠렸다.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아 헤매던 눈빛들이 일순간 번들거렸다. 질문을 던지기 위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들의 발소리가 흙바닥을 짓밟았다.
태성은 주머니에서 천천히 손을 뺐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의 손바닥은 오히려 뜨거웠다.
"구단주님."
태성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운 침묵이 실려 있었다.
"어, 네? 감독님."
"법률팀에 연락해서 송관우의 채권 매입 서류 원본 준비해 두십시오. 쥐새끼를 잡을 덫은 이미 완성되었으니, 이제 그 배후를 끌어내릴 차례입니다."
태성은 기자들의 다급한 부름을 뒤로한 채 훈련원 내부의 전술 분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무수한 플래시 불빛이 터졌으나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분석실의 철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사방이 차단된 고요 속에서, 태성은 책상 위에 손을 얹었다.
'택티컬 레저(Tactical Ledger).'
시야 전체가 푸른색의 미세한 격자무늬로 뒤덮이며 활성화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조여드는 감각. 스트레스 수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태성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통증을 짓눌렀다.
스르륵.
공중에 떠오른 반투명한 장부의 페이지들이 미친 듯이 넘어갔다. 태성의 시선은 드래곤즈의 전술 데이터와 그 배후에 도사린 거대한 그림자, 한재열의 전술 프로필로 향했다.
화면에 붉은색 경고선이 그어졌다.
[한재열 전술 패턴 분석: 하이 프레싱 다이렉트 플레이] [구조적 취약점 탐색 중...]
임형준의 드래곤즈가 보여준 전술은 한재열의 완벽한 복사판이었다. 그리고 한재열은 자신의 하수인인 임형준을 장고판의 말처럼 부려 FC 로드를 흔들고 있었다.
태성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레저가 제시하는 수만 개의 데이터 흐름 속에서 단 하나의 기하학적 균열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찾았다.'
한재열의 다이렉트 전술은 강력한 전방 압박과 빠른 공수 전환을 자랑하지만, 치명적인 맹점이 존재했다. 좌우 윙백의 비대칭적 전진 배치로 인해 발생하는 뒷공간 하프 스페이스(Half-space)의 구조적 불균형.
상대가 중앙에서 볼을 돌리며 템포를 늦출 때, 그들의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는 순식간에 텅 빈 고속도로처럼 열리게 된다.
태성은 책상 위에 놓인 가죽 수첩을 펼쳐 들었다. 펜촉이 거칠게 종이를 긁으며 지나갔다.
- 한재열의 다이렉트: 우측 하프 스페이스 구조적 비대칭. - 윙백 전진 시 커버 범위 12m 공백 발생. 지훈의 침투 루트로 지정할 것.
펜을 내려놓는 태성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에 거친 호흡이 터져 나왔다.
"컥……!"
태성이 가슴을 움켜쥐고 소파로 쓰러지듯 앉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수명을 갈아 넣는 대가는 매번 무겁고 잔인하게 찾아왔다.
달칵.
문이 열리며 설민우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그는 태성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마자 상황을 직감한 듯, 주머니에서 갈색 약병을 꺼내 들었다.
"감독님. 제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요. 이 약은 심장에 가해지는 급격한 부하를 일시적으로 억제할 뿐입니다. 계속해서 한계를 넘나들면 다음엔 정말로 멈춥니다."
설민우가 건넨 특제 안정제를 단숨에 삼킨 태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차가운 약 기운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성난 심장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민우야."
"말씀하십시오."
"준비해라.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미소 속에 서슬 퍼런 살기가 감돌았다.
***
두 시간 뒤, 서해 고립 훈련원의 간이 브리핑룸.
좁은 공간은 몰려든 기자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고, 마이크들이 단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강태성의 표정은 무거웠다. 어떤 동요도, 분노도 읽을 수 없는 철저한 침묵의 가면이었다.
"강 감독님! 임형준 감독이 제기한 불법 약물 투여 의혹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삼류 선수들이 단기간에 이런 체력을 보여주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에 대해 반론이 있으십니까?"
질문들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태성은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그저 단상에 두 손을 얹은 채, 질문을 던진 기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응시했다.
일 초. 오 초. 십 초.
기자회견장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태성의 압도적인 침묵에 눌린 기자들이 슬그머니 마이크를 고쳐 쥐며 침을 삼켰다.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한 순간, 태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혹이라."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묵직하게 울렸다.
"임형준 감독이 과학적 불가능을 논했더군요. 본인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남의 피땀을 약물로 치부하는 꼴이 참으로 우스꽝스럽습니다만."
기자들이 일제히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발적인 멘트였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FC 로드 감독으로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KFA와 도핑방지위원회(KADA)에 우리 선수단 전원에 대한 긴급 불시 도핑 테스트를 공식 요청합니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의혹을 회피하거나 해명하기 바쁠 것이라 예상했던 기자들의 뒤통수를 완전히 후려치는 선언이었다.
"도핑 테스트요? 전수 조사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경기 후 도핑이 아닌, 당장 오늘 밤이라도 무작위 검사를 수용하겠습니다. 단."
태성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우리 선수들의 명예가 입증될 경우, 의혹을 제기한 드래곤즈 구단과 임형준 감독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태성이 고개를 돌려 설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빔프로젝터의 화면을 켰다.
벽면에 거대한 데이터 시트가 나타났다. 선수들의 이름 옆으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곡선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었다. 심박수 변동성(HRV), 젖산 축적도, 근육 산소 포화도(SmO2), 그리고 주당 트레이닝 부하(CTL) 수치였다.
"이것은 우리 코칭스태프가 서해 고립 훈련원에서 매일 24시간 체계적으로 기록한 선수들의 생체 데이터입니다."
설민우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정교한 수치에 기반한 확신이 차 있었다.
"보시다시피, 백지훈 선수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심폐 지구력 향상은 약물이 아닌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과 철저한 젖산 역치(LT) 관리를 통한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매 훈련 세션마다 피드백을 통해 근육의 피로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과학'입니다. 드래곤즈의 임 감독님이 모르는 영역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데이터의 나열에 기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날조된 의혹을 들이밀던 이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수치와 그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약물이 아닌, 뼈를 깎는 훈련의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태성의 대역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성이 품안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의 시선이 객석 셋째 줄에 앉아 있는 한 기자에게 고정되었다.
"스포츠월간의 황민우 기자."
호명된 기자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방금 전, 드래곤즈 임형준 감독의 인터뷰가 끝나기도 전에 불법 약물 의혹 기사를 가장 먼저 송고하셨더군요. 기사 작성 시간이 인터뷰 종료 시간보다 10분 앞서 있었습니다. 미리 작성된 대본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그, 그건 단순한 시간 설정 오류……!"
황 기자가 더듬거리며 변명하려 했다.
태성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자르며 종이를 펼쳤다.
"본 구단은 황민우 기자가 특정 에이전트 및 타 구단 관계자로부터 사주를 받고,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FC 로드 구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정식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태성의 목소리가 낭독을 시작했다.
"형법 제307조 제2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2항 위반. 피고소인 황민우. 귀하는 오늘부터 법정에서 본인의 기사가 어떤 '과학적 근거'와 '취재원'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는지 증명하셔야 할 겁니다."
정적.
기자회견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황 기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주변 기자들이 그를 슬금슬그머니 피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칩니다."
태성은 고소장을 단상 위에 툭 던져두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장혜리가 그의 뒤를 따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한 역공이었다.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법적, 과학적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침묵의 대역공. 기자회견장을 나서는 태성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
같은 시각, 인천 시내의 한 어두운 카페 구석.
송관우는 땀에 젖은 손으로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태블릿 PC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기자회견이 끝나자,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기기를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미친 새끼…… 고소를 해? 도핑 테스트를 자청해?"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FC 로드를 약물 구단으로 낙인찍어 백지훈의 가치를 떨어뜨린 뒤, 헐값에 계약을 가로채려던 그의 공작이 강태성의 정면돌파에 무참히 깨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장혜리가 이미 백지훈 가계의 사채 채권 전부를 매입했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은 상태였다.
"강태성……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내 밥그릇을 깨?"
송관우의 눈에 독기가 올랐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한재열 감독에게 약속받은 거액의 이적 수수료와 자신의 입지가 모두 걸린 일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 나다. 지금 당장 애들 움직여."
송관우가 이빨을 갈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백지훈 그 새끼 본가 있지? 아비 놈 도박 빚은 정리됐을지 몰라도, 그 동네 사채업자들한테 진 자잘한 이자 채권들이 아직 남아 있어. 법이고 뭐고 상관없으니까, 오늘 밤 당장 지훈이 집으로 사람 보내서 다 뒤집어엎어라. 감독 놈이랑 구단주 년이 법대로 나오면, 우린 우리 방식대로 흔들면 돼."
전화를 끊은 송관우가 잔인하게 웃었다.
"아무리 잘난 감독이라도, 제 새끼가 피 흘리며 울부짖으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
검은 폭풍이 다시 한번 FC 로드와 백지훈을 향해 몰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