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야! 수단방법 가리지 마!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세워! 저 새끼들 살아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늪축구로 가라고! 부셔버려!"

임형준의 찢어지는 고함이 훈련원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의 입가에서 튀어 나간 침방울이 가을 볕을 받아 하얗게 번뜩였다. K리그의 명문이라 자부하던 드래곤즈의 벤치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선제골을 얻어맞은 충격에 감독부터 코칭스태프까지 전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라운드 위의 드래곤즈 수비수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백지훈을 쏘아보았다. 거친 숨소리가 진흙 냄새 섞인 서해의 바람을 타고 태성의 귓가를 때렸다.

태성은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쿵. 쿵. 쿵.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둔탁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갈비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이 턱 막혔다. 시야 한구석에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지수: 85% 돌파] [경고: 심박수 한계 도달. 장부 강제 갱신 시 급성 심정지 위험.]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릿한 피비린내를 침과 함께 삼켰다. 벤치 뒤편에 서 있던 의무 트레이너 설민우의 시선이 태성의 굳어버린 옆얼굴에 가닿았다. 설민우의 손이 구급 가방 속 특제 안정제 앰플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태성은 가볍게 손가락을 저어 제지했다.

아직은 아니다. 이 판은 내 손으로 끝낸다.

태성이 그라운드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쫙 폈다.

오직 FC 로드 선수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극비 전술 신호. '이탈 패턴 세타(θ).'

수비 라인을 극단적으로 흔들어 상대의 거친 압박을 허공으로 증발시키는 변칙 패턴이었다.

"지훈아! 내려서지 마라! 공간을 찢어!"

태성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갈랐다.

백지훈의 고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독기 어린 눈동자가 태성의 손끝을 거쳐 상대 수비진의 빈틈을 날카롭게 훑었다. 지훈은 이미 태성이 주입해 준 전술 장부의 궤적을 머릿속에 완벽히 그리고 있었다.

삑-!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재개되었다.

드래곤즈의 미드필더들이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축구화 스터드가 그라운드의 잔디를 사정없이 후벼 파며 흙먼지를 휘날렸다. 정상적인 공방이 아니었다. 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강이와 발목을 겨냥한 노골적인 육탄전이었다.

툭, 툭.

지훈이 볼을 간결하게 터치하며 뒤로 물러섰다. 드래곤즈의 센터백 강민우가 이빨을 드러내며 지훈의 어깨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쿵!

둔탁한 마찰음이 울렸지만, 지훈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충격을 이용해 뒤로 반 보 물러서며 상대의 무게 중심을 앞으로 무너뜨렸다.

"지금이야!"

지훈의 외침과 동시에, 로드의 미드필더진이 일제히 좌우 측면으로 찢어지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탈 패턴 세타의 정수였다.

공격을 주도하는 지훈이 일부러 수비 라인 깊숙한 곳까지 내려앉아 상대를 끌어들이고, 그 순간 발생한 배후 공간으로 양 측면 윙어들이 번개처럼 침투하는 전술.

"막아! 뒤 공간 막으라고!"

임형준이 목을 놓아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드래곤즈의 수비진은 지훈을 때려눕히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나치게 전진해 있었다.

지훈의 발끝에서 떠난 공이 수비수들의 머리 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아름다운 포물선이었다.

공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좁혀 들어가던 로드의 윙어 발끝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드래곤즈의 골키퍼가 다급하게 전진했으나, 가볍게 방향만 바꾼 공은 그대로 골망 구석을 흔들었다.

찰칵!

2 대 0.

"말도 안 돼…… 저 유기적인 움직임이 어떻게 삼류 구단에서 나오지?"

테크니컬 영역 너머에서 취재 수첩을 쥐고 있던 축구 전문지 기자의 손이 마구 떨렸다.

드래곤즈 선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거칠게 몰아붙여 기를 죽이려 했던 계획이 오히려 자신들의 배후 공간을 완전히 노출하는 독약이 된 것이다.

임형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벤치 앞까지 뛰어나왔다.

"야! 뭐 해! 몸싸움 더 거칠게 안 해? 옐로카드 받아도 돼! 발목을 담그라고, 발목을!"

그의 지시는 이미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오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추악한 폭력의 사주였다.

후반 35분. 그라운드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드래곤즈 선수들의 태클은 점점 더 높아졌고, 거칠어졌다. 로드 선수들의 유니폼 곳곳이 진흙과 잔디 얼룩으로 더럽혀졌다.

하지만 태성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폭력성이 짙어질수록, 태성이 미리 짜둔 데이터 전술의 그물망은 더욱 촘촘하게 상대를 조여갔다.

"지훈아, 놈들이 이성을 잃었다. 덤벼드는 궤적만 읽어."

태성이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드래곤즈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공을 몰고 가던 지훈을 향해 비스듬히 몸을 날렸다. 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놓고 지훈의 디딤발을 꺾어버리겠다는 악의적인 슬라이딩 태클이었다.

"피해!"

구단주 석에 앉아 있던 장혜리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슈우욱!

바람을 가르는 거친 마찰음. 그러나 지훈의 신체 반응은 상식을 뛰어넘어 있었다. 태성이 서해 고립 훈련원에서 밤낮으로 주입했던 민첩성 강화 훈련의 결과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훈은 태클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오른발 끝으로 공을 살짝 위로 띄움과 동시에, 왼발로 그라운드를 강하게 밀어내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붕 뜬 지훈의 다리 밑으로 상대의 거친 다리가 무력하게 지나갔다.

스치지도 않았다.

"뭐, 뭐라고?!"

태클을 시도했던 선수가 흙바닥을 쓸며 슬라이딩하는 사이, 지훈은 가볍게 한 발로 착지했다. 공중에서 떨어진 공은 정확히 그의 가슴팍에 안겼다.

완벽한 볼 키핑.

눈앞에 남은 것은 골키퍼 단 한 명뿐이었다.

지훈의 눈빛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드래곤즈의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 나왔다.

지훈은 슛을 때리는 척 오른발을 크게 휘둘렀다. 골키퍼가 반사적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지훈의 발끝이 공의 아랫부분을 툭 건드렸다.

툭.

공이 골키퍼의 키를 넘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떠올랐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을 그리며 떨어지는 공에 집중되었다.

철썩.

그물망이 조용히 출렁이며 공을 품었다.

3 대 0.

쐐기골이었다. K리그 클래식의 강호라 불리던 드래곤즈를 상대로, 해체 직전의 삼류 구단 FC 로드가 거둔 압도적인 완승이었다.

"으아아아아!"

지훈이 코너 플래그를 향해 질주하며 포효했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빚더미의 고통, 세상의 멸시, 그 모든 굴레를 걷어차 버리는 듯한 시원한 울부짖음이었다. 로드의 모든 선수가 지훈에게 달려들어 몸을 덮쳤다.

"지훈아! 네가 해냈어! 우리가 이겼다고!"

선수들의 거친 호흡과 땀방울이 가을 하늘 아래에서 하얗게 기화했다.

임형준은 벤치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자존심은 갈가리 찢겨 그라운드의 흙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비매너와 폭력으로 일관했던 그들의 축구는, 태성의 정밀한 데이터와 지훈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 완벽하게 유린당했다.

삑-! 삑-! 삐이익-!

시합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긴 휘슬 소리가 서해 훈련원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태성의 눈앞에 푸른색의 장부가 반투명한 빛을 발하며 거대하게 펼쳐졌다.

[시합 종료. FC 로드 3 : 0 드래곤즈] [미션 완료: 압도적 승리 달성] [택티컬 레저(Tactical Ledger) 등급 상승!] [Rank D -> Rank C]

화려한 빛의 입자가 장부의 페이지를 넘기며 새로운 문장을 새겨넣었다.

[새로운 기능 해금: 상대 전술 포메이션 실시간 스캔 및 구조적 약점(Weakpoint) 시각화] [설명: 경기 중 상대 구단의 전술적 밸런스 붕괴 지점과 특정 선수의 체력 저하로 인한 공간적 빈틈을 실시간 스캔하여 감독에게 좌표로 제시합니다.]

태성의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상쾌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전신을 감돌았다.

이 기능만 있다면. 앞으로 마주할 어떤 명장들의 전술도 그 뼈대부터 해체해 버릴 수 있었다. 특히, 저 멀리서 언론을 쥐고 흔들며 자신을 비웃고 있을 한재열의 '다이렉트 전술'조차도.

"감독님!"

지훈이 땀에 젖은 얼굴로 태성에게 달려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독기만이 아닌, 감독을 향한 깊은 신뢰와 존경이 서려 있었다.

"약속, 지켰습니다."

태성은 묵묵히 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수고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겨우 이 정도에 만족할 거라면 내 밑에 있을 생각 마라."

차가운 독설이었지만, 그 안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는 무언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향하는 사이, 구단주 장혜리가 태성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고급 가죽 바인더가 들려 있었다.

"대단하네요, 강 감독님. 이사회 프런트들의 얼굴이 아주 볼만해요. 구단 해체를 주장하던 입들이 쏙 들어갔어요."

장혜리가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바인더를 가볍게 두드렸다.

태성은 그녀를 응시하며 본론을 꺼냈다.

"송관우가 백지훈의 부친을 상대로 쥐고 흔들던 사채 채권 문서, 약속대로 처리하셨습니까?"

장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럼요. 강 감독님이 분석해 준 송관우의 자금 흐름과 약점을 토대로, 우리 법률팀이 조용히 움직였어요. 송관우가 소유하고 있던 백지훈 가계의 채권 전부를 FC 로드 구단 명의로 전액 매입 완료했습니다. 이제 송관우는 법적으로 백지훈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어요. 지훈이의 소유권은 완벽하게 우리에게 있습니다."

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송관우. 과거 자신을 배신하고 수렁에 빠뜨렸던 그 탐욕스러운 에이전트의 목줄을 죌 첫 번째 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지훈을 흔들어 구단을 파탄 내려던 그의 공작은 이로써 원천 차단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구단주님. 이제 쥐새끼 한 마리는 묶어둔 셈이군요."

"하지만 안심하긴 일러요. 송관우 배후에 있는 한재열 감독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요."

장혜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재열은 축구계의 거물이었고,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였다.

그때였다.

훈련원 정문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를 관람하던 기자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태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게 무슨……!"

기자 중 한 명이 스마트폰 화면을 태성 쪽으로 돌려 보였다.

포털 사이트 스포츠 섹션 메인에 붉은색 글씨로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실시간으로 걸리고 있었다.

[단독] FC 로드, 비정상적 활동량의 비밀... 불법 약물 투여 의혹 제기! [드래곤즈 임형준 감독 "삼류 선수들의 체력이 아니다. 금지 약물 복용 의혹, 공식 도핑 테스트 요구할 것!"]

기사 아래에는 방금 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임형준이 기자들을 구석으로 불러 모아 흥분한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건 명백한 날조예요! 우리 애들은 피땀 흘려 훈련했을 뿐인데!"

장혜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체계적인 전술과 고된 훈련의 성과를, 단숨에 '약물쟁이들의 사기극'으로 낙인찍으려는 비열한 언론 플레이였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이런 조직적인 기사가 터져 나왔다는 것은, 배후에 더 거대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태성은 주머니에서 천천히 손을 뺐다.

심장의 통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분노와 역공의 계산만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도핑이라……."

태성이 기사 화면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비틀려 올라갔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제 발로 무덤을 파는 짓임을 똑똑히 알려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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