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성 감독님. 드래곤즈의 한재열 감독님께서 보내신 정박 소포입니다."
수석 코치 임형준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인장이 찍힌 두꺼운 서류철을 태성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모레 오전, 드래곤즈의 1.5군 정예 백업 멤버들을 이끌고 이곳 서해 훈련원으로 직접 오시겠답니다. 연습 매치 공식 제안서입니다. 거절은…… 구단 해체 동의서로 간주하겠다는 이사회의 전언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태성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귓가에 이명처럼 웅웅거리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태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임형준이 내민 서류철을 거칠게 낚아챘다.
"한재열이가 직접 기어오시겠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눅눅한 밤공기를 찢었다. 태성의 시선이 서류철을 지나 임형준의 오만한 눈동자에 박혔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단잠을 설쳤는데, 주인이 직접 목줄을 풀고 오겠다니 사양할 이유가 없지. 전해라. 모레 오전, 서해 그물망에 걸린 고기새끼들처럼 전부 갈아 마셔 주겠다고."
"……뭐라고요?"
임형준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삼류 구단의 바지 감독 따위가 감히 K리그 최강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 앞에서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귀가 먹었나? 아니면 한재열의 앵무새 노릇을 하느라 대가리가 굳었나? 꺼져. 훈련장 흙먼지 날리니까."
태성은 등을 돌렸다. 가래침을 뱉듯 내뱉은 독설에 임형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하지만 태성은 더 이상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스트레스 지수: 45%] [경고: 급격한 감정 변화로 인한 심박수 불안정.]
태성은 셔츠 너머로 쿵쾅거리는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차가운 금속성 통증이 뼈마디를 타고 내렸지만, 눈앞의 백지훈과 선수들의 눈빛을 보는 순간 통증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모레 오전. 그날이 바로 이 오합지졸들이 진짜 사냥개로 거듭날 첫 번째 시험대였다.
***
사흘 뒤 오전. 서해 연안의 버려진 염전 부지에 세워진 고립 훈련원.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 바람이 그라운드의 낡은 천연잔디를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라운드 위로 거대한 검은색 리무진 버스 한 대가 육중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들어섰다.
'드래곤즈'의 엠블럼이 선명하게 박힌 버스였다.
문이 열리고 내려오는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K리그1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고는 하나, 다른 구단에 가면 당장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정예 백업 멤버들이었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미드필더부터 촉망받는 신예 공격수까지, 그들의 몸값 총합은 FC 로드 전체 선수단 가치의 수십 배에 달했다.
"쳇, 무슨 운동장 꼴이 이 모양이야? 잔디는 다 죽어 있고, 염전 냄새만 진동을 하네."
"대충 뛰어라, 얘들아. 부상당하면 우리만 손해야. 삼류 새끼들이랑 부딪쳤다가 뼈라도 상하면 어쩌냐."
드래곤즈 선수들은 껌을 씹으며 훈련장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멸시와 오만함이 가득했다.
그들을 이끌고 온 임형준 수석 코치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 태성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뒤에는 구단 이사회의 지시를 받고 경기를 참관하러 온 프런트 직원들과 몇몇 기자들이 수첩을 든 채 서 있었다. 비공개 매치라고는 하지만, 이미 태성의 파멸을 박제하기 위한 판은 짜여 있었다.
"강 감독님, 준비는 되셨습니까? 설마 무서워서 도망치자고 하진 않겠지요?"
임형준이 이죽거렸다.
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벤치에 앉아 무릎 위에 놓인 가죽 장부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택티컬 레저(Tactical Ledger) 활성화] [상대 팀: 드래곤즈 백업 부대 (평균 전력 등급: B-)] [아군 팀: FC 로드 (평균 전력 등급: D+)]
전력의 격차는 확연했다. 숫자로 나타난 격차는 절망적이었지만, 태성의 시선은 아군의 특정 수치에 머물러 있었다.
[백지훈: '하프 스페이스 파괴자' 특성 발현도 60% 돌파] [김성찬: 지구력 및 수비 커버 범위 25% 상승] [이민우: 예측 태클 성공률 40% 보정]
사흘 동안 지옥 같은 밀실 훈련을 소화한 결과였다. 선수들의 근육은 찢어지고 굳기를 반복하며 단단해졌고, 태성의 전술 궤적을 뼈에 새겼다.
"감독님."
의무 트레이너 설민우가 다가와 태성의 귀에 속삭였다. 그의 손에는 얼음물과 정체불명의 한약 파우치가 들려 있었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110회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경기 시작 전이에요. 제발 무리하지 마십시오. 장부를 갱신하는 순간 심정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입 닥치고 대기석에나 앉아 있어, 설 선생."
태성이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숨결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압박감이 늑골을 파고들었지만, 태성은 억지로 통증을 삼켰다.
"오늘 저놈들의 기를 꺾지 못하면, 우리는 내일이 없다."
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발 라인업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라운드 한가운데에 선 백지훈의 얼굴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난과 사채업자들의 협박, 세상의 멸시 속에서 자란 짐승 같은 눈빛이 드래곤즈의 화려한 유니폼을 응시했다.
"지훈아."
태성이 지훈의 어깨를 짚었다. 거칠고 단단한 근육의 떨림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저 새끼들이 널 삼류라고 부르지. 억울하냐?"
지훈이 이빨을 악물었다. 턱근육이 불끈 솟았다.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그럼 죽여. 운동장 위에서 합법적으로 살인하는 법을 가르쳐줬잖아. 네 발목은 이제 최고 속도에서도 꺾이지 않는다. 내 지시대로만 움직여."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삑!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드래곤즈의 압박은 거칠었다. 그들은 1.5군이라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니면 임형준의 지시가 있었는지 초반부터 비신사적인 파울로 FC 로드의 기세를 꺾으려 들었다.
쿵!
경기 시작 3분 만에 미드필더 김성찬이 상대 중앙 미드필더의 깊은 태클에 걸려 그라운드 위를 굴렀다. 정강이를 그대로 걷어찬, 대놓고 발목을 노린 악랄한 슬라이딩이었다.
"악!"
성찬이 비명을 지르며 정강이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저으며 플레이를 진행시켰다. 편파 판정이었다.
"야! 이 삼류 새끼들아!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상대 미드필더가 구르는 성찬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래서 못 배운 새끼들이랑 공 차면 안 된다니까. 툭 치면 자빠져요, 아주."
벤치에 있던 FC 로드 후보 선수들이 분노해 벌떡 일어났다.
"저 새끼들이 진짜 미쳤나! 야! 저거 퇴장이야!"
임형준은 벤치에서 팔짱을 낀 채 가소롭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봐, 강 감독. 축구는 원래 거친 운동이야. 이 정도 압박도 못 견디면서 무슨 프로 구단을 하겠다고 그래? 그냥 얌전히 해체 서류에 도장이나 찍지?"
경기장 안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드래곤즈 선수들의 과격한 태클과 몸싸움이 이어졌다. FC 로드의 삼류 선수들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패배주의의 망령이 다시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우린 저 대기업 놈들의 상대가 안 돼.'
불안과 두려움이 선수들의 눈빛에 서리기 시작한 그 순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선 강태성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도, 심판에게 항의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 극한의 침묵. 오히려 그 침묵이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 더 강렬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감독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더러운 수작과 거친 압박이 이미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굴러가는 시나리오의 일부일 뿐이라는 듯이.
태성의 시야에 '택티컬 레저'의 푸른빛 데이터 라인이 얽히기 시작했다.
드래곤즈가 거칠게 압박하며 라인을 극단적으로 올리는 순간. 그들의 포백 수비진 사이, 특히 공격 가담이 잦은 우측 풀백과 느린 센터백 사이의 공간이 비대칭적으로 벌어지는 찰나의 빈틈이 포착되었다.
한재열이 보유한 다이렉트 전술의 치명적 맹점.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의 구조적 비대칭이었다.
[침투 경로 좌표 분석 완료] [최적 루트: 하프 스페이스 깊이 22미터 지점] [목표 달성 확률: 91%]
태성이 마침내 움직였다.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뺐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펴서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뒤, 자신의 왼쪽 어깨를 툭툭 쳤다.
밤샘 훈련 동안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맞추었던 시그널이었다.
'루트 B. 하프 스페이스 침투 좌표 가동.'
그 시그널을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은 백지훈이었다. 지훈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독기가 서린 짐승의 눈빛이 상대의 하프 스페이스 공간을 조준했다.
상대 미드필더가 다시 한번 거칠게 압박하며 김성찬의 공을 빼앗으려 발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성찬은 태성의 주입식 훈련 덕에 이미 상대의 템포를 읽고 있었다. 성찬이 유연하게 상체를 뒤틀며 공을 뒤로 내줬고, 그 공을 이어받은 이민우가 단 한 번의 터치로 전방을 향해 다이렉트 패스를 찔러 넣었다.
공은 정확히 드래곤즈의 우측 하프 스페이스, 텅 빈 공간으로 굴러갔다.
"막아!"
드래곤즈의 센터백이 깜짝 놀라며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정강이뼈를 부러뜨릴 듯이 깊고 거친, 악랄한 태클이었다.
예전의 백지훈이었다면 그 태클을 피하려다 템포를 잃거나, 부상을 두려워해 몸을 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백지훈은 달랐다.
[특성: '하프 스페이스 파괴자' 발동] [디딤발 각도 보정 완료. 골반 회전축 15도 개방.]
지훈의 디딤발이 흙먼지를 뿜으며 잔디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근육이 폭발적으로 수축했다.
태클이 들어오는 순간, 지훈은 상체를 왼쪽으로 굽히는 듯하다가 믿기지 않는 유연함으로 골반을 열어 오른쪽으로 턴 동작을 가져갔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가공할 속도의 턴.
스윽!
상대 수비수의 태클은 지훈의 축구화 끈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태클을 시도했던 센터백은 제풀에 겨워 진흙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뭐, 뭐야?!"
임형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 지훈의 눈앞에 완벽한 슈팅 궤적이 그려졌다. 골문과의 거리 25미터. 상대 키퍼가 약간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보통의 공격수라면 터치 라인 안쪽으로 더 파고들었겠지만, 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오른발이 채찍처럼 휘어졌다.
뒤로 한껏 젖혀졌던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며 공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때렸다.
*콰아앙!*
서해의 짠 바람을 단숨에 찢어발기는 묵직한 파열음이 훈련원에 울려 퍼졌다.
공은 회전도 없이, 마치 대포알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드래곤즈의 골키퍼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지만, 그의 손끝은 허공을 허무하게 가를 뿐이었다. 공은 골대 우측 상단, 이른바 '야신 존'이라 불리는 사각지대에 정확히 꽂혔다.
철썩!
그물이 찢어질 듯 출렁이며 굉음을 냈다.
선제골. 1 대 0.
그라운드에 정적이 찾아왔다.
드래곤즈 선수들은 자신들이 방금 무엇을 보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K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자랑하는 드래곤즈의 백업 부대가, 삼류 구단의 이름 없는 유망주에게 단 한 번의 턴 동작과 중거리 슛으로 유린당한 것이다.
"……말도 안 돼."
기자들의 수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사회 프런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태성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이성을 잃고 부르르 떨고 있는 임형준을 향했다.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은근하면서도 뼛속까지 시린 냉소였다.
"이게 너희가 말한 삼류의 실력이다."
태성의 나직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저, 저 새끼가……!"
임형준의 얼굴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힌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벤치 의자를 사정없이 걷어차며 그라운드를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야! 수단방법 가리지 마!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세워! 저 새끼들 살아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늪축구로 가라고! 부셔버려!"
드래곤즈 선수들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 들어찼다.
그와 동시에 태성의 가슴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스트레스 지수: 85% 돌파] [경고: 심박수 한계 도달. 장부 강제 갱신 시 급성 심정지 위험.]
태성은 보이지 않게 가슴팍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맴돌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그라운드 위의 야수들을 향해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