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쇠사슬이 풀리는 쇳소리가 눅눅한 갯바람을 뚫고 날카롭게 울렸다.

서해의 붉은 낙조가 틈새로 길게 들이치며, 창고 안의 먼지를 붉게 물들였다. 그 붉은 광선 속으로 잘 닦인 명품 구두가 진흙을 짓밟으며 걸어 들어왔다. 비열한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간 입꼬리, 안경 너머로 잔인하게 빛나는 눈동자.

송관우였다.

"아이고, 날씨가 참 지랄 맞네. 우리 지훈이가 이런 썩창 같은 갯벌 구석에서 굴러먹고 있는 줄은 몰랐잖아?"

그가 들고 있는 하얀 서류 봉투가 낙조를 받아 핏빛으로 얼룩진 것처럼 보였다. 백지훈의 아버지를 파멸로 몰고 가고, 지훈의 목줄을 죄고 있는 사채 채무 문서였다.

지훈의 어깨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그라운드를 가르던 천재 유망주의 발끝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소년의 눈에 서린 것은 분노를 넘어선 근원적인 공포였다. 사채업자들의 거친 손길, 밤마다 집 문을 두드리던 둔탁한 소음, 그리고 그 모든 지옥의 배후에 있는 이 눈앞의 에이전트.

"강태성 감독님. 계약서 잔금 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오늘부로 이 천재 유망주를 나한테 완전히 넘기시겠습니까?"

송관우가 뚜벅뚜벅 걸어와 태성의 코앞에 섰다. 그에게선 비싼 시가 냄새와 눅눅한 돈 냄새가 섞여 풍겼다.

태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갈비뼈 아래가 칼로 후벼 파는 듯한 격통이 여전히 심장을 조여오고 있었다. [택티컬 레저]의 무리한 기동으로 인한 페널티. 스트레스 지수는 이미 위험 수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태성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송관우를 내려다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밀어, 장사꾼 새끼가."

낮게 깔린 태성의 목소리에 송관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장사꾼? 어허, 감독님. 섭섭하게 왜 이러실까. 나 법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훈이 아버지가 직접 서명한 전속 에이전트 위임장에, 신체 포기 각서까지 합법 공증 받은 물건이라고요. 이거 들고 오늘 당장 축구협회에 제소하면, 백지훈이는 이번 시즌 등록은커녕 평생 그라운드에 발도 못 붙여요. 삼류 구단 감독님이 뭘 믿고 이렇게 배짱을 부리실까?"

송관우가 서류 봉투로 태성의 가슴을 툭툭 쳤다.

그 무례한 손짓에도 태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택티컬 레저]가 제공한 송관우의 정밀 데이터와 배후 관계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과거 회귀 전,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갔던 이 탐욕스러운 인간의 패를 태성은 이미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

"법대로 하자고?"

태성이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 냉소적인 웃음에 송관우의 미소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송관우. 일주일 전에 대전 시티즌 유스 출신 김민태 계약 건, 네가 중간에서 가로챈 뒷돈이 정확히 8천 5백만 원이더군. 그것도 모자라 부모들한테 이중계약서 쓰게 만들어서 구단 지원금까지 횡령했지?"

송관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무, 무슨 헛소리를……."

"거기서 끝이 아니지. 지훈이 아버지 도박 빚, 사채업자 강 사장한테서 네가 원금의 30%만 주고 사들인 채권이잖아. 에이전트 규정 제14조 2항. 에이전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소속 선수를 대상으로 사금융 채무 관계를 형성하거나 이를 강제적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시 에이전트 자격은 영구 박탈된다."

태성이 한 걸음 다가섰다. 송관우의 어깨가 흠칫 뒤로 밀려났다.

"불법 추심, 이중계약 사기, 그리고 업무상 배임 횡령. 이거 당장 축구협회 징계위원회랑 대검찰청에 찌르면 네 인생이 어떻게 될 거 같냐?"

"네가 그걸 어떻게……! 증거 있어? 헛소리 지껄이지 마!"

송관우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그의 이마에는 이미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성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송관우가 강 사장과 주고받은 채권 양도 계약서 사본과 김민태 부모의 진술서 파일이 명확하게 찍혀 있었다. 장혜리 구단주를 통해 법률 자문을 구하고 미리 확보해 둔 결정적 한 방이었다.

"증거? 여기 차고 넘친다. 내가 이거 터뜨리는 순간, 네가 가진 에이전트 라이선스는 공중분해 돼. 네가 평생 빨아먹던 젖줄이 통째로 끊어진다는 소리야."

"이, 이 개같은……!"

"지훈이는 내 선수다."

태성이 송관우의 멱살을 잡듯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짐승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한 번만 더 내 선수 주변에서 알짱거리거나, 지훈이 집안 흔들어 놓으면 법정 가기 전에 내가 네 손가락부터 부러뜨려 놓을 줄 알아. 당장 꺼져."

송관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태성의 서슬 퍼런 기세와 눈앞의 명확한 증거 자료들 앞에, 그가 가진 얄팍한 배짱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FC 로드 선수들의 험악한 시선 역시 그를 압박했다.

"너…… 너 후회할 거야! 강태성! 드래곤즈가, 한재열 감독님이 널 그냥 둘 거 같아?!"

송관우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떨어진 서류 봉투를 허겁지겁 주워 담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훈련원 정문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 나갔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수입 세단의 뒷모습을 보며, 선수단 사이에서 깊은 침묵이 깨지고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 감독님……."

지훈이 젖은 목소리로 태성을 불렀다. 평생 자신을 짓누르던 거대한 괴물을 단 몇 마디로 쫓아내 준 남자. 지훈의 눈에 경외감과 함께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다.

하지만 태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윽……!"

송관우가 사라지자마자, 팽팽하게 당겨졌던 태성의 이성이 끊어지며 격통이 심장을 강타했다.

쿵! 쿵! 쿵!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폭주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세상이 전후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태성의 무릎이 꺾이려던 그 순간, 누군가 거칠게 그의 어깨를 낚아채며 부축했다.

"이 미친 새끼가, 내 경고를 귓등으로 처들었구나."

차갑고도 익숙한 목소리.

의무 트레이너 설민우였다.

민우는 태성을 훈련장 구석의 벤치에 억지로 앉히더니, 즉시 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그의 이성적인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빈맥에 부정맥, 호흡 부전까지. 심장 박동수가 분당 160을 넘었어. 야, 강태성! 너 지금 자살 기도 하냐?"

민우가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뒤져 검은색 유리병을 꺼냈다.

"입 벌려. 당장!"

민우가 병에 든 특제 한방 안정제를 태성의 입안에 강제로 털어 넣었다. 쓰고 비린 약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가슴을 짓누르던 지옥 같은 압박감이 아주 미세하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태성은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벤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었다.

"이 약……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민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건 네 심장 근육을 강제로 이완시키는 극약 처방이야. 세 번 이상 연속으로 복용하면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아. 데이터 만능주의자인 내가 보기엔, 네 몸뚱이는 지금 당장 중환자실에 들어가도 모자라.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태성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합류해 줘서 고맙다, 민우야."

"시끄러워. 내가 안 오면 네놈 상조회 가입서에 서명해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일 똑바로 해라. 난 내 담당 감독이 경기장도 아니고 이런 썩은 훈련원에서 급사하는 꼴은 못 보니까."

민우는 겉으로는 독설을 내뱉었지만, 정성스럽게 태성의 이마에 묻은 땀을 닦아주며 얼음 주머니를 목뒤에 대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지훈과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감독이 방금 전 송관우를 쫓아내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했다는 것을. 그것이 그의 목숨줄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태성은 얼음 주머니의 냉기 덕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일어섰다.

"감독님, 더 쉬셔야 합니다!"

지훈이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태성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시간이 없다. 한재열이 우릴 기다려 줄 것 같나?"

태성의 차가운 눈빛이 선수들을 훑었다.

"송관우는 쫓아냈지만, 드래곤즈의 압박은 이제 시작이다. 너희가 이 운동장에서 증명하지 못하면, 방금 전 송관우가 했던 말은 현실이 된다. 평생 삼류 패배자로 썩어 문드러질 건가, 아니면 내 전술의 무기가 되어 세상을 뒤엎을 건가?"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독한 독기와 열망이 들어찼다.

"훈련 재개한다. 모두 위치로."

태성이 제어 콘솔을 조작하자, 서해 고립 훈련원의 조명이 다시 한번 강렬하게 그라운드를 비추었다.

[택티컬 레저 가동률 100%] [훈련 프로그램: 한계 돌파 - 하프 스페이스 침투 및 전환]

민우의 과학적인 재활 서포트와 태성의 가차 없는 전술 주입이 동시에 가동되었다.

"백지훈! 볼을 받을 때 디딤발 각도가 좁아! 골반을 더 열어!"

태성의 호통이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지훈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몸을 던졌다. 발목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태성의 전술 궤적을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김성찬: 지구력 12% 상승, 포텐셜 개화율 30% 돌파] [이민우: 수비 위치 선정 능력 극대화] [백지훈: '하프 스페이스 파괴자' 특성 발현도 45% 돌파]

선수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눅눅한 밤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붙는 고통 속에서, 오합지졸이라 불리던 삼류 선수들의 능력치가 실시간으로 폭증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패배에 찌든 낙오자가 아니었다. 승리를 갈망하는 굶주린 야수들이었다.

훈련이 밤새도록 이어져 모두가 녹초가 되었을 때였다.

서해 훈련원의 고철 정문 앞에, 커다란 서치라이트를 켠 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깔끔한 단색 단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였다. 그는 흙먼지가 날리는 훈련원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태성에게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인장이 찍힌 두꺼운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강태성 감독님. 드래곤즈의 한재열 감독님께서 보내신 정박 소포입니다."

수석 코치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철을 태성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모레 오전, 드래곤즈의 1.5군 정예 백업 멤버들을 이끌고 이곳 서해 훈련원으로 직접 오시겠답니다. 연습 매치 공식 제안서입니다. 거절은…… 구단 해체 동의서로 간주하겠다는 이사회의 전언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태성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한재열의 기습적인 전면전 선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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