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아아앙!
거친 엔진 소리가 갈대숲을 뒤흔들며 멎었다.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세련된 외제 SUV가 그 위용을 자랑하듯 서해 훈련원 정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드래곤즈의 2등 코치, 임태수의 입가에 걸린 비열한 미소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조수석에서 캠코더를 든 스태프가 집요하게 카메라 렌즈를 밀어붙였다.
"아이고, 강태성 감독님 아니십니까? 이런 깡촌 구석에서 고아원 캠프라도 차리신 줄 알았습니다."
기자회견장의 고압적인 카메라 앞에서도, 이런 야만적인 심리전의 현장에서도 태성의 심장은 요동치지 않았다.
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웅웅거리며 낡은 정문 철판을 때렸다.
스산한 침묵이 삼차선 도로 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임태수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카메라 렌즈를 쥔 스태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태성은 그저 그들의 눈을, 정확히는 임태수의 미간 청명한 지점을 올곧게 응시할 뿐이었다.
5초.
10초.
30초.
아무런 대꾸도, 분노의 기색도 없는 무기질적인 시선. 그것은 상대를 인간이 아닌, 길가에 널린 돌멩이 정도로 취급하는 극단의 침묵이었다. 동요해야 할 쪽은 태성이 아니라, 도발을 던진 임태수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임태수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침묵이라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그의 목을 조르는 형국이었다.
"어이, 강 감독. 사람 말을 들었으면 대답을……."
"한재열이가."
태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낮고, 건조하며, 칼날처럼 서늘한 음성이었다.
"너 같은 대가리 나쁜 놈을 사냥개로 보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뭐, 뭐야?"
"버려도 아깝지 않으니까."
태성이 한 걸음 다가섰다. 임태수의 발끝이 자신도 모르게 흙바닥을 뒤로 쓸었다.
"드래곤즈 2군? 4-2-3-1 비대칭 빌드업을 쓰는 놈들이지. 한재열 그 인간은 변형 쓰리백을 만들 때 오른쪽 풀백을 극단적으로 전진시킨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왼쪽 하프 스페이스의 구조적 비대칭은 전혀 해결하지 못했어. 그걸 메우겠답시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아래로 내리니, 결국 포백 보호가 안 되고 중앙 2선에 거대한 고속도로가 뚫리지."
임태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극비리에 진행되던 2군의 전술적 맹점을, 단 한 번의 경기도 보지 않은 이 삼류 감독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내일 우리랑 붙으면, 네 그 조잡한 2군은 20분 만에 중원이 걸레짝이 되고 역습으로 세 골은 처맞을 거다. 그 처참한 꼴을 이 카메라로 직접 찍어서 한재열한테 바칠 생각인가?"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찍어라. 그리고 한재열한테 똑똑히 전해. 쥐새끼처럼 2군 뒤에 숨어서 간 보지 말고, 본진 들고 기어 나오라고. 그래야 밟아 뭉개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
"이, 이 새끼가 진짜……! 어이, 찍어! 이거 다 찍어!"
임태수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를 든 스태프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이미 카메라는 흔들리고 있었다. 완벽한 심리적 프레임의 붕괴였다. 카메라 앞에서의 침묵과 단 한 방의 전술적 폭로.
태성은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았다.
"들어가라."
선수들을 향한 짧은 명령과 함께 태성이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임태수가 흙먼지를 발로 차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것은 패배자의 비명에 불과했다. SUV가 굉음을 내며 황급히 유턴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훈련원 마당으로 들어선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라이벌 구단의 코치를 말 한마디로 개망신을 주어 쫓아버린 감독의 등 뒤에서, 그들은 기괴한 압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태성이 멈춰 섰다.
흙먼지가 내려앉은 마당 한가운데서, 태성이 천천히 몸을 돌려 선수들을 마주 보았다.
* * *
"전원 집합."
태성의 목소리에 선수들이 주춤거리며 대열을 맞췄다. 여전히 패배주의와 피로에 찌든 얼굴들. 태성은 가슴 안쪽에서 끓어오르는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시야에 푸르스름한 반투명 장부가 펼쳐졌다.
[Tactical Ledger(전술 장부) 동기화 완료.] [대상: FC 로드 선수단] [경고: 고강도 데이터 정밀 분석 사용 시 스트레스 지수 폭등 위험.]
심장이 한 차례 크게 요동쳤다. 흉골 안쪽을 꽉 움켜쥐는 듯한 압박감. 태성은 왼손을 외투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으로 심장의 통증을 눌러 내렸다. 식은땀 한 방울이 턱 끝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너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태성의 시선이 가장 왼쪽에 선 풀백 김성찬에게 닿았다. 장부의 텍스트가 김성찬의 몸 위로 붉은 레이저처럼 투사되었다.
[김성찬: 오른쪽 발목 외측 인대 2도 파열(방치됨). 디딤발 지지력 35% 감소. 불안감 수치 극상.]
"김성찬."
"예, 예?"
"오른쪽 발목 인대 찢어진 거, 구단에 걸리면 방출당할까 봐 입 닥치고 진통제 처먹으면서 뛰고 있지?"
김성찬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디딤발이 무너지니 크로스 정확도가 40% 이하로 떨어지는 거다. 네 몸뚱이는 지금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야. 그런데도 돈 몇 푼 때문에 숨기고 뛰어?"
"그, 그걸 어떻게……."
태성의 채찍 같은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옆에 선 미드필더 이민우를 향했다.
[이민우: 좌측 골반 3도 회전 불균형. 킥 각도 제한. 피로 누적도 88%.]
"이민우. 네 오른발 킥이 최근 한 달간 자꾸 뜨는 이유가 뭔지 아나? 네가 못 차서가 아니라 골반이 왼쪽으로 뒤틀려 있어서 그래. 마사지 체계 하나 없는 이 썩어빠진 구단에서 뼈가 어긋난 줄도 모르고 훈련만 하니 몸이 망가지지."
이민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골반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태성의 차가운 눈동자가 백지훈에게 고정되었다.
[백지훈: 좌측 햄스트링 만성 긴장 상태. 극심한 심리적 압박(사채 채무 스트레스). 포텐셜 개화율 12%.]
"백지훈."
지훈이 독기 어린 눈으로 태성을 쏘아보았다. "제 뼈다귀도 어디 부러졌습니까?"
"아니, 네 뼈는 멀쩡해. 썩은 건 네 머릿속이지."
태성이 지훈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지훈의 몸에서 땀 냄새와 함께 미세한 초조함이 뿜어져 나왔다.
"밤마다 사채업자 놈들이 들이닥칠까 봐 잠 한 숨 못 자고, 허벅지 뒤쪽 햄스트링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지. 10미터만 전력 질주해도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억지로 참고 뛰는 주제에, 무슨 에이스 대접을 바라나?"
지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가장 깊은 치부와 신체적 비밀을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해체당한 자들의 공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여기는 패배자들을 위한 요양원이 아니다."
태성의 서늘한 경고가 선수들의 고막을 찔렀다.
"내 분석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치료를 받고 싶다면, 그리고 다시 축구선수로 사람답게 필드 위에 서고 싶다면, 내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라. 억울하고 싫은 놈은 지금 당장 저 서해 뻘밭으로 꺼져도 좋다. 붙잡지 않는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기가 완전히 꺾인 오합지졸들의 눈빛에, 공포와 함께 기묘한 구원의 갈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 * *
태성은 선수들을 이끌고 훈련원 내부의 대형 창고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진 낡은 농가 창고 같았지만,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웅장한 전자음과 함께 천장에 설치된 수십 개의 초고속 모션 캡처 카메라가 붉은빛을 뿜어냈다. 바닥에는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최첨단 하이브리드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고, 사방의 벽면은 거대한 LED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경영 장부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태성이 비밀리에 구축한 '특수 전술 시뮬레이터'였다.
"전원 피치 위로."
태성이 제어 콘솔에 손을 얹었다.
[Tactical Ledger - 시뮬레이터 연동 모드 작동.] [전체 강제 훈련 부하 설정: LEVEL 4 (지옥)]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62%로 급상승합니다. 심장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쿵!
태성의 가슴속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린 피 맛이 올라왔다. 태성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번쩍였지만, 콘솔을 쥔 그의 손가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스르릉!
사방의 스크린에 붉은색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가상의 수비수들이 나타났다. 드래곤즈 1군의 전술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전술 AI였다.
"지금부터 11대 11 하프 스페이스 돌파 훈련을 시작한다. 김성찬, 이민우, 백지훈. 너희 셋이 삼각 패스로 저 붉은 라인을 뚫어라."
"예? 저 가상 레이저 사이를 뛰라고요?"
"뛰어."
태성의 단호한 명령에 김성찬이 먼저 움직였다.
"틀렸어! 스타트 끊을 때 디딤발 각도를 외측으로 15도 넓혀라! 발목에 무리 안 가게 골반 탄력으로 치고 나가!"
태성의 날카로운 지적이 스피커를 통해 고막을 때렸다. 김성찬이 반신반의하며 지시대로 몸을 틀었다.
어?
늘 시큰거리던 오른쪽 발목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전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민우! 패스 템포 0.5초 늦춰! 백지훈이 수비 뒷공간으로 꺾어 들어가는 타이밍에 맞춰라!"
지훈은 달렸다. 폐가 터질 것 같고, 허벅지 뒤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태성이 지시한 궤적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거짓말처럼 수비 홀로그램 사이로 광활한 공간이 열렸다.
탁!
정확하게 발끝에 배달되는 가상의 볼.
지훈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남자가 지시하는 곳으로 뛰기만 하면, 수비수가 아무리 빽빽해도 반드시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한 전술이 아니었다. 인간의 인지 한계를 미리 계산하고 움직임을 강제하는 '신의 설계'였다.
"더 뛰어! 멈추지 마라! 너희가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내 장부에 기록된다!"
태성의 호령이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선수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땀 냄새가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거친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누구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최적의 궤적을 그리며 완벽하게 움직이는 쾌감을 알아버린 탓이었다.
태성은 콘솔 옆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장부의 숫자들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김성찬: 포텐셜 개화율 22% -> 28% (발목 부담 완화)] [이민우: 골반 정렬 개선도 15% 상승] [백지훈: 전술 이해도 급상승 중]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태성의 가슴 통증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갈비뼈 아래가 칼로 난도질당하는 듯한 격통. 숨을 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아직이다.'
태성은 주머니 속에서 설민우가 준 안정제 알약을 더듬었다. 하지만 지금 먹을 수는 없었다. 이 오합지졸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뜨리는 순간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마지막 세트다! 백지훈, 슈팅 타이밍 반 박자 빠르게 가져가!"
지훈이 이 악물고 도약했다. 묵직한 가상의 볼이 그의 발등에 얹히는 순간,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허억…… 허억……!"
선수들이 잔디 위에 차례로 쓰러졌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번들거렸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생전 처음 느끼는 성취감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삼류라 불리던 오합지졸들이, 비로소 하나의 전술 무기로 벼려지는 순간이었다.
태성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콘솔의 전원을 내렸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창고의 육중한 고철 정문이 둔탁하게 울렸다. 거친 바닷바람을 뚫고, 누군가 정문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선수들이 젖은 몸을 일으키며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쇠사슬이 풀리고, 무거운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틈새로 회색빛 서해의 낙조가 길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붉은 노을빛을 등지고 선 한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진흙투성이가 된 명품 이탈리아 구두.
잘 재단된 네이비색 수트 슈트 깃을 털며, 남자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송관우 에이전트였다.
그의 손에는 하얀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백지훈의 가정을 파탄 내고 그의 목줄을 쥐고 흔들던, 사채 채무 문서였다.
"아이고, 날씨가 참 지랄 맞네. 우리 지훈이가 이런 썩창 같은 갯벌 구석에서 굴러먹고 있는 줄은 몰랐잖아?"
송관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태성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강태성 감독님. 계약서 잔금 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오늘부로 이 천재 유망주를 나한테 완전히 넘기시겠습니까?"
지훈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선수단의 공기가 다시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