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등 뒤에서 완전히 닫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단절되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뺨에 닿기도 전에 몸이 먼저 무너졌다. 바닥으로 처박히는 신체는 통제력을 잃은 인형과 다름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얼굴 가죽을 타고 올라왔으나, 가슴속에서 들끓는 화산 같은 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근.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쇠망치로 때려눕히는 것 같았다.
"아…… 윽!"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비린 혈향이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손가락 끝이 마루 바닥의 틈새를 긁으며 곱아들었다. 눈앞이 온통 붉은빛으로 번쩍였다. 시야의 한구석에서 텍티컬 레저의 경고창이 찢어지는 비명처럼 점멸하고 있었다.
[위험! 심장 박동 급정지 징후 감지!] [시스템 강제 셧다운 프로세스를 가동합니다.] [남은 생명력 게이지: 12%]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혈관이 비틀리는 극통 속에서 태성은 이를 악물었다. 문 저편에 있을 선수들에게 이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스스로를 꺾을지언정, 그들 앞에서는 완벽한 지배자로 서야 했다. 그것이 이 지옥 같은 회귀의 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규칙이었다.
그때, 거친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가깝게 울렸다.
"감독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옥색 의무 가방을 든 설민우가 들이닥쳤다. 쓰러진 태성을 발견한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설민우는 이성적인 데이터 만능주의자였다. 경악은 찰나였고, 그의 손은 이미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털썩 무릎을 꿇은 민우가 태성의 목덜미에 손가락바닥을 대어 맥을 짚었다.
"맥박 분당 180 돌파. 부정맥 심각합니다. 호흡기 확보하세요!"
민우가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둔 주사기를 꺼냈다. 투명한 유리 앰플의 목을 꺾고 약물을 빨아올리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제조한 특제 한방 안정제와 강심 성분이 혼합된 긴급 수액 주사였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정맥 잡습니다."
차가운 바늘이 태성의 왼쪽 팔뚝 안쪽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혈관을 타고 차가운 극약이 침투하는 감각이 신경을 자극했다. 동시에 민우의 묵직한 두 손이 태성의 흉골 중앙을 강하게 압박했다.
압박할 때마다 갈비뼈가 삐걱거리는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후우…… 하아……!"
막혔던 숨통이 터져 나오며 태성이 상체를 크게 젖혔다. 허파로 한꺼번에 밀려든 공기가 칼날처럼 목구멍을 긁었다. 시야를 가득 채웠던 붉은 경고창이 서서히 흐려지며 정상적인 대기실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의 얼굴은 태성만큼이나 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쳤습니까, 감독님? 정말 죽으려고 환장한 겁니까?"
민우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언제나 차분하던 그의 어조가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약, 제가 경고했을 텐데요. 심장에 들어가는 일시적인 봉합 처방일 뿐입니다.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한계를 넘기면 그땐 주사고 뭐고 현장에서 즉사입니다."
"살아…… 있잖아."
태성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벽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냉혹한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한재열 그 인간의 숨통을 끊어놓기 전까지는 못 죽어."
"그 고집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걸 왜 모릅니까!"
민우가 소리치려는 찰나, 대기실 철문이 다시 한번 힘차게 열렸다.
"감독님! 전술 훈련 세부 지침……."
말을 건네며 들어오던 백지훈의 발걸음이 굳었다. 그의 뒤로 김태영, 이민우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줄지어 들어오다 일제히 멈춰 섰다.
방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빈 주사기 앰플, 셔츠 깃에 묻은 태성의 핏자국, 그리고 태성의 팔뚝을 누르고 있는 지혈 솜과 설민우의 굳어버린 얼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훈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독기로 가득했던 그의 눈에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혼란이 스쳤다.
"이게…… 다 뭡니까?"
지훈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태성은 지혈 솜을 거칠게 떼어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셔츠 소매를 내리며 단추를 채웠다.
"아무것도 아니다. 몸이 잠시 피로했을 뿐이야. 훈련장으로 복귀해라."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라커룸의 좁은 공간이 그의 외침으로 팽팽하게 울렸다.
"감독님 매번 경기 끝나고 혼자 대기실에 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얼굴은 시체처럼 하얗게 변해서……! 우리한테 전술 주입해 준답시고 대체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태성은 말없이 지훈을 응시했다. 시선의 무게에 지훈이 턱을 악물었다. 태성은 품 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시끄럽다, 백지훈.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것보다 이거 나 받아라."
지훈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갈색 봉투로 향했다.
"이게…… 뭡니까?"
"장 대표를 통해 법률 자문을 거쳐 처리한 서류다. 열어봐."
지훈이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꺼냈다. 종이 서류의 첫 페이지를 확인하는 순간, 지훈의 호흡이 멈췄다.
그것은 사채업자들이 그의 아버지를 빌미로 흔들어대던 사채 채무 문서의 원본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송관우의 서명이 선명하게 찍힌 채권 양도 합의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송관우가 네 집안을 압박해 계약권을 낚아채려던 덫이지. 그 채권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로 되어 있지?"
태성이 냉랭하게 물었다.
지훈은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채권 인수자 명의에는 '주식회사 FC 로드'와 대표자 '장혜리', 그리고 보증인 '강태성'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송관우가 뒤에서 꾸민 불법 사채 공작의 계약서 원본이다. 장 대표의 자금력과 법무팀을 동원해 저쪽 사채업자들의 채권을 우리가 전액 양도받았다. 이제 그 불법 채무는 법적으로 완전히 소멸했거나, 우리 구단 측으로 귀속되었다는 뜻이지."
태성이 지훈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이제 넌 송관우의 개가 아니다. 네 목줄을 쥐고 있는 건 나다, 백지훈."
"감독님……."
"오해하지 마라. 이건 철저한 비즈니스다. 난 널 아주 비싼 값에 양지에서 팔아넘길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네 몸에 송관우 같은 기생충이 붙어 있는 꼴을 볼 수 없었을 뿐이야."
태성의 독설은 여전히 차가웠고 이기적인 계산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훈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런 거대하고 치밀한 법적 공작을 단기간에 완수하기 위해 감독이 뒤에서 얼마나 많은 압박을 혼자 짊어졌을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육체가 어떻게 망가져 갔을지 눈앞의 핏자국이 증명하고 있었다.
돈으로 시작된 기이한 비즈니스 관계. 그러나 그 기저에는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기 위해 제 목숨을 깎아내린 한 남자의 거대한 의리가 존재했다.
지훈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비즈니스라고요?"
지훈이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치켜들었다.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전보다 더 지독한 독기와 열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비즈니스가 하고 싶으시다면, 저도 제 인생을 걸고 거래를 제안하죠."
지훈이 뒤를 돌아 라커룸에 모여 있는 팀원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훑었다. 김태영, 이민우를 비롯한 선수들의 얼굴에도 뜨거운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감독의 헌신이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지 온몸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다들 똑똑히 들어라."
지훈의 목소리가 라커룸의 쇠벽을 울렸다.
"이번 한재열의 드래곤즈와의 경기, 우리가 지면 난 그 자리에서 축구화 벗는다. 은퇴하겠다고."
선수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미쳤어, 백지훈? 네가 왜 은퇴를 해!"
이민우가 소리쳤지만, 지훈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쓰레기 같은 밑바닥에서 건져 올려준 사람이 저기 서 있다. 제 목숨을 갉아먹어가면서 전술을 주입해 주는데, 그 전술을 들고 필드에 나가서 진다고? 그건 축구 선수가 아니라 기생충이다. 질 거라면 축구할 자격도 없다."
지훈이 다시 태성을 바라보았다.
"감독님. 목숨 걸고 전술 짜 주셨죠? 그럼 우린 목숨 걸고 뛰겠습니다. 그라운드 위에서 뼈가 부러지고 심장이 터지더라도, 한재열 그 인간 전술을 짓밟고 승리를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그 순간, 김태영이 지훈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나섰다.
"지훈이 말이 맞다. 삼류 소리 들으면서 패배주의에 찌들어 살던 우리였다.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흩어졌을 쓰레기들이야. 감독님이 목숨을 걸었다면, 우리도 발목 하나쯤은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
"끝까지 가겠습니다, 감독님."
"드래곤즈 놈들, 안방에서 완전히 찢어놓겠습니다."
선수들의 투지가 하나로 뭉치며 라커룸 내부의 공기압이 치솟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눈빛은 사냥을 앞둔 야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 격정적인 에너지가 공명하는 찰나.
태성의 눈앞에 떠 있던 텍티컬 레저가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황금빛 전류가 장부의 테두리를 감싸며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선수들의 데이터 카드가 일제히 정렬되더니, 그들을 연결하는 선들이 붉은색에서 찬란한 황금빛으로 변모했다.
[알림: 선수단의 정신적 동조율 및 충성도가 임계치를 돌파합니다.] [기적의 시너지 발동: '생사고락(生死苦樂)'] [FC 로드 조직력 시너지 지표: 100% -> 120% (한계 돌파!)]
[전술의 완성도가 극대화됩니다. 선수들의 포지셔닝 유기성이 최고 단계에 도달하여, 감독의 실시간 전술 명령 전달 속도가 0.1초 수준으로 단축됩니다.] [사용자의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하강합니다. 생명력 게이지가 안정화 단계(15%)로 복구됩니다.]
태성은 가슴을 옥죄던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텍티컬 레저상에 나타난 120%라는 숫자는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돈과 계약으로 묶인 오합지졸들이, 비로소 서로를 믿고 사령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완벽한 '하나의 군대'로 거듭난 증거였다.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냉소적인 그의 얼굴에 오랜만에 진정한 승부사의 미소가 걸렸다.
"좋다."
태성이 천천히 걸어 나가며 선수들의 어깨를 하나씩 짚었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힘에 선수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각오, 그라운드 위에서 증명해라. 한재열이 구축한 콧대 높은 전술을 우리가 어떻게 해체하는지, 온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는 거다."
***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하늘은 흐렸고, 진흙바람이 서울월드컵 경기장의 거대한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관중이 내뿜는 열기와 함성이 그라운드를 진동시켰다.
경기장 한편에는 한재열 감독이 이끄는 리그 최강의 드래곤즈 선수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몸을 풀고 있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기자석과 중계석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경기, FC 로드의 약물 의혹 해명 이후 치러지는 첫 공식 매치입니다! 강태성 감독이 도핑 테스트 전수조사 카드로 정면 돌파를 선언한 가운데, 과연 그라운드 위에서의 실력도 진짜일지 증명해야 하는 무대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명장 한재열 감독의 드래곤즈입니다. 특히 한재열 감독의 시그니처인 다이렉트 전술은 완벽한 공수 밸런스를 자랑하죠. 과연 FC 로드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태성은 벤치 앞 기술지역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상대를 응시했다.
그의 뇌리에는 이미 한재열 전술의 치명적인 맹점이 각인되어 있었다. 우측 윙백이 오버래핑하며 전진할 때 발생하는 하프 스페이스의 12m 구조적 공백.
태성은 그 공간을 백지훈의 침투 루트로 낙점했고, 지난 일주일 동안 이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맞춤형 전술을 갈고닦았다.
경기 시작 15분 전.
대형 전광판에 양 팀의 선발 포메이션과 라인업이 등록되었다.
태성은 전광판을 바라보던 중, 눈살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한재열의 드래곤즈 포메이션이 기존의 전형적인 4-3-3이 아니었다.
"……포메이션 변경인가."
태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전광판에 표시된 드래곤즈의 전형은 비대칭 4-2-3-1에 가까웠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진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되, 한 명을 우측 하프 스페이스의 길목에 치우치게 배치한 '비대칭 더블 볼란치' 형태였다.
한재열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태성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침묵의 전술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의 우측 뒷공간이 공략당할 수 있다는 미세한 가능성을 인지하고, FC 로드의 날카로운 전방 압박과 백지훈의 침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선발 포메이션을 전격 수정한 것이다.
"감독님, 저놈들 포메이션이……."
코치진이 당황한 목소리로 태성을 바라보았다.
경기 시작 직전, 상대의 변칙적인 전술 수정은 전술의 판도를 통째로 뒤흔드는 악재였다.
태성의 눈빛이 극도로 가늘어졌다.
한재열은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네가 내 빈틈을 노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라는 무언의 조소를 던지는 듯했다.
전장의 공기가 단숨에 무겁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