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력 기둥이 먼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자, 얼어붙은 대지가 낮게 신음하며 진동했다. 통신석 너머로 들려오던 엘릭 단장의 오만한 음성은 끊겼지만, 그가 예고한 가동식 혹한병의 차가운 쇠 냄새는 이미 바람을 타고 온실 문턱까지 밀려들고 있었다. 이온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의 영식 도감을 꼭 쥐었다. 기사단의 위협보다도, 그들의 손에 붙잡혀 추위와 마독에 신음하고 있을 또 다른 어린 수인들의 얼굴이 소년의 여린 심장을 세차게 두드려 댔다.
“구해야 해…… 모두를 지켜야 해요.”
이온의 나직한 중얼거림 끝에 짙은 백색 김이 서렸다.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온실 밖, 아직 정화되지 못한 가시나무 울타리 너머의 황무지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세계수의 맥박이 쿵, 쿵, 무거운 울림을 내며 고동치기 시작했다. 대지에 깃든 차가운 청색 마독을 온기로 밀어내고, 얼어붙은 흙을 보드라운 흙빛으로 되돌리는 정화의 파동이 이온의 손끝에서 뻗어 나갔다.
그러나 기적을 부르는 온기는 언제나 그에 걸맞은 무거운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었다. 넓은 구역의 대지를 한꺼번에 정화하자마자, 이온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짓누르는 극심한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무릎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이온 오빠!” “형아!”
바르크가 단단한 팔로 쓰러지는 이온의 허리를 받쳐 안았고, 루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차가워진 뺨을 감싸 쥐었다. 영식 도감의 권능을 무리하게 끌어다 쓴 소년의 몸에 깊은 기면증의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온은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제 뺨을 만지는 루미의 고사리 같은 손을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루미…… 바르크…… 미안해, 잠깐만, 아주 잠깐만 잘게……. 시릴 씨가 가르쳐 준 대로…… 울타리를…….”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이온의 고개가 푹 꺾였다. 깊은 잠의 늪 속으로 완전히 빠져든 소년의 숨소리가 이내 고르게 번져 나갔다.
루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이온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 넘겼다. 그의 뺨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기면증 특유의 깊은 침묵이 소년을 지배하고 있었다.
“걱정 마, 형아. 우리가 여기를 꼭 지키고 있을게.”
바르크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이온을 온실 안쪽의 아늑한 풀 침대로 조심스럽게 옮겨 눕혔다. 소년이 잠든 사이, 바깥의 칼바람은 더욱 매서워졌고 숲의 경계선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엘릭 단장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 온실의 방어 태세를 깨뜨리려 은밀하게 파견된 기사단의 특수 기습 기사들이 장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시릴 아저씨, 준비됐어?”
루미가 뒤를 돌아보며 기운차게 물었다. 온실 한구석에서 톱과 드라이버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시릴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톱니바퀴가 촘촘히 맞물린 작은 기계 장치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과거 루미가 소중히 간직하다가 깨뜨렸던 녹슨 장난감 태엽 장치였다. 시릴의 천재적인 마도 공학 기술을 거쳐, 이제는 온실의 방어망을 가동할 강력한 태엽 동력기로 다시 태어난 물건이었다.
“물론이지, 꼬마 대장님! 이 시릴 님의 손을 거친 태엽 장치는 아주 정교하게 돌아간다고. 이온이 잠든 동안 녀석들이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시릴은 목소리를 낮추며 장난감 태엽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끼리릭, 끼리릭 하며 경쾌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태엽 장치가 온실 바깥의 가시덤불 장벽과 연결된 구동축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루미와 바르크는 이온이 미리 가르쳐 준 대로, 그리고 시릴의 지시에 따라 가동 트랩의 제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바르크, 저기 나무 위를 봐. 나쁜 녀석들이 밧줄을 걸고 있어.”
루미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장벽 위쪽을 가리켰다. 은빛 강철 기사단의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특수 기습대원 세 명이 가시덤불 장벽의 틈새를 타며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차가운 쇠사슬과 덫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수인 아기들을 사냥하던 잔인한 도구들이었다.
“내 집…… 우리 과수원…… 절대 못 들어와!”
바르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온이 정성껏 끓여 준 단호박 수프와 치유의 초콜릿 열매를 먹고 청색 마독을 씻어낸 아이의 사지에는, 이제 제국 기사들 못지않은 건강한 활력과 야생의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바르크는 가볍게 몸을 날려 장벽 안쪽의 발판으로 뛰어올랐다.
“지금이야, 바르크! 쏘아 올려!”
루미의 외침과 동시에, 바르크가 태엽 장치와 연결된 발판을 힘껏 밟았다.
끼리리릭! 탁!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장벽 틈새에 묻혀 있던 특수 씨앗 살포기가 불을 뿜었다. 살포기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이온이 1화에서 소중히 심고 가꾸어 두었던 ‘고무 탄성 가시덤불’의 개량 씨앗들이었다. 공중으로 흩뿌려진 씨앗들은 시릴의 마도 장치에서 뿜어져 나온 고농축 영양액을 흡수하자마자, 마치 살아 숨 쉬는 촉수처럼 순식간에 사방으로 줄기를 뻗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풀때기가 이렇게 빨리……?!”
장벽을 기어오르던 기사단의 선두 조장이 경악 어린 비명을 질렀다.
장벽 표면을 덮은 초록색 줄기들은 평범한 덩굴이 아니었다. 극도의 탄성을 지닌 고무처럼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가시덤불이었다. 기사가 무거운 철갑 장갑을 낀 손으로 장벽을 짚는 순간, 덩굴이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났다가 엄청난 힘으로 되튕겼다.
용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가시덤불이 기사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때렸다.
“으아아악!”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의 몸은 포탄처럼 날아가 온실 마당 구석에 서 있는 거대한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에 정확히 끼어 버렸다.
“어라? 하나 올라갔다!”
루미가 손뼉을 치며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뒤따라오던 다른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가시덤불을 베어 내려 했다. 하지만 질긴 고무 탄성 덩굴은 예리한 검날이 닿을 때 마다 팅, 팅, 경쾌한 마찰음을 내며 검을 튕겨 낼 뿐이었다. 오히려 검을 휘두른 반동이 기사들의 손목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어 그들의 무기를 멀리 날려 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식물이 어디 있어! 으악, 살려 줘!”
바르크가 장벽 뒤에서 장난치듯 또 다른 발판을 꾹꾹 밟을 때마다, 가시덤불 장벽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매트리스처럼 침입자들을 사정없이 튕겨 올렸다. 어떤 기사는 끈끈한 과즙 폭탄을 밟아 엉덩이가 바닥에 찰떡처럼 붙어 버렸고, 또 다른 기사는 장벽을 넘으려다 탄성 덩굴에 엉덩이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소나무 가지 위에는 어느새 세 명의 특수 기습 기사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갑옷의 무게 때문에 제 힘으로는 내려오지도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다.
“형아가 만든 가시덤불은 정말 대단해!”
바르크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온이 평화공존의 마음을 담아 가꾼 정원은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직 물리적인 법칙과 기발한 역학적 덫만으로 기사단의 침입을 완벽하게 저지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장벽 바깥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진동이 심상치 않았다.
고대의 푸른 마력 기둥이 솟구치던 자리에서부터,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엘릭 단장의 본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대열 중심에는 온몸이 푸른 얼음과 고대 청동으로 뒤덮인 거대한 혹한의 골렘들이 서 있었다. 대지를 얼려 버리는 마력을 뿜어내는 기괴한 유물들이었다.
“루미야, 바르크! 안심하기엔 일러. 진짜는 이제부터라고!”
시릴이 긴장한 표정으로 외치며 온실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가리켰다.
그 순간, 온실 바닥 아래에서 웅장한 가릉거림이 울려 퍼졌다. 이온이 잠들기 직전 가꾸었던 정화의 파동이 마침내 동토 깊숙한 곳에 흐르던 차가운 지하 수맥에 닿은 것이었다. 얼어붙어 있던 지하의 물줄기가 깨끗한 온기로 정화되면서, 지하 수조에 저장되어 있던 온천수가 급격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릴이 설치해 둔 간이 온천 스팀 제어 장치의 붉은 계기판 바늘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어, 어라? 지하 수맥이 완전히 정화되면서 수압이 너무 세졌는데?! 스팀 압력이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어!”
시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갈라졌다.
따뜻한 정화의 온천 스팀이 지하 수조에 가득 차며 관들이 터질 듯 팽창하고 있었다. 가동 트랩을 움직이던 장난감 태엽 장치마저 과부하로 인해 덜덜 떨리며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이온이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였다. 소년의 귓가에 웅장한 온천수의 끓는 소리와 아이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으음…….”
이온이 겨우 상체를 일으키며 온실 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붉은빛을 발하며 한계에 달한 스팀 제어 장치가 부르르 떨고 있었고, 그 너머로 가시덤불 지대를 강타하기 직전인 거대한 온천 스팀의 압력이 하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저 멀리 황무지 끝자락, 푸른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는 거대한 혹한병들의 그림자가 이온의 확장된 눈동자에 가득 들어찼다.
이온은 떨리는 숨을 삼키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머리가 무겁고 사지가 납처럼 굳어 있었지만, 온실을 가로지르는 차가운 바람이 소년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했다. 시릴의 장난감 태엽 장치—루미가 소중히 아끼던 그 태엽은 이제 과부하로 인해 붉은 스파크를 튀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온! 일어났구나!”
시릴이 스팀 밸브를 온몸으로 누르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뜨거운 파이프에 닿아 치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이대로 두면 지하 수조가 폭발해 버릴 거야! 하지만 밸브를 열면 저기 다가오는 기사단 녀석들에게 온천수가 쏟아지겠지만, 동시에 우리 온실의 열기 장벽도 순식간에 식어 버려!”
이온의 시선이 흔들렸다. 온실의 열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청색 마독에 걸린 루미와 바르크가 다시 차가운 천형의 고통에 노출된다는 뜻이었다. 소년은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와 흙바닥을 짚었다. 차가운 흙의 감촉 사이로, 대지 깊은 곳에서 정화된 수맥이 보내오는 따스하고 맥찬 고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야, 대지는 파괴를 원하지 않아.’
이온은 가만히 숨을 고르고 품 안에서 영식 도감을 펼쳤다. 책장 사이로 은은한 달빛 은총초의 향기가 퍼져 나갔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풀 내음이 소년의 코끝을 스치며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냈다.
“시릴 씨, 밸브를 열어 주세요. 하지만 정면이 아니라, 가시덤불 장벽 아래의 배수로 쪽으로요.”
“배수로? 그리로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면 무슨 소용이 있어?”
시간이 없었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혹한병들의 발걸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쿵, 쿵, 소리가 날 때마다 온실 천장의 유리창이 잘게 떨렸다. 혹한병들의 가슴팍에 박힌 마력 결정이 푸른빛을 발하며 주변의 공기를 급속도로 얼려 가고 있었다.
이온은 루미와 바르크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아이의 작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소년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루미, 바르크. 나를 믿어줘.”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크는 꼬리를 팽팽하게 세우며 이온의 앞을 막아섰고, 루미는 이온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시릴이 이온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며 제어 레버를 힘껏 당겼다.
쿠우우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온실 지하에 갇혀 있던 뜨거운 정화의 온천수가 가시덤불 장벽 아래로 세차게 흘러나갔다. 펄펄 끓는 물은 이온이 미리 가꾸어 둔 고무 탄성 가시덤불의 뿌리를 가득 적셨다.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정화된 온천수의 온기를 머금은 가시덤불들이 붉은빛을 띠며 폭발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덩굴마다 몽글몽글한 분홍빛 꽃망울이 맺히더니, 이내 팝콘처럼 터지며 달콤한 정화의 향기를 머금은 짙은 온천 스팀을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안개가 황무지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매서운 칼바람도, 만물을 얼려 버릴 듯한 청색 마독의 냉기도 이 포근한 증기 장막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기사단의 본대를 이끌고 다가오던 엘릭 단장의 목소리가 마력 통신석 너머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여유로움 대신 기괴한 신경질과 가쁜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엘릭은 최근 마독을 억누르기 위해 고농축 정화 결정석을 과다 복용하고 있었고, 그 부작용으로 체내에 독소가 쌓여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타오르는 눈동자 주변으로 푸른 핏줄이 기괴하게 돋아나 있었다.
“밀어붙여라! 저 풀때기 안개를 다 짓밟아 버려라!”
엘릭의 광기 어린 명령에 혹한병들이 육중한 팔을 휘두르며 따뜻한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내딛는 순간, 혹한의 골렘들을 지탱하던 차가운 얼음 관절들이 온천 스팀의 열기에 닿아 스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대의 청동 골렘들은 쇠가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얼어붙어 있던 대지가 따뜻한 물을 머금고 보드라운 진흙탕으로 변하자, 무거운 골렘들의 발이 깊숙이 빠져 버린 것이다.
“동작 정지라니? 말도 안 돼! 고대의 유물이 고작 따뜻한 물 따위에……!”
통신석 너머로 엘릭의 거친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밭은숨을 몰아쉬었다. 결정석의 부작용이 그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온실 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루미와 바르크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를 껴안았다.
하지만 이온의 표정은 어두웠다. 소년의 시선은 멈춰 선 혹한병들의 가슴팍에 고정되어 있었다.
혹한병들의 가슴 중심부, 푸르게 빛나는 마력 핵 안에서 작고 여린 생명의 박동이 느껴졌다. 세계수의 맥박을 가진 이온의 감각에 포착된 것은, 마력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무언가의 슬픈 울음소리였다.
“저 안에…… 아이들이 있어요.”
이온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온?”
시릴이 놀라 물었다.
“혹한병을 움직이는 저 마력 핵 안에…… 납치된 아기 수인들의 생명력이 강제로 주입되어 있어요. 저 장치들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정지하면, 안에 갇힌 아이들의 마력도 함께 소멸해 버릴 거예요!”
그 순간, 안개 속에서 멈춰 서 있던 혹한병들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엘릭이 통신석 너머로 맛이 간 웃음소리를 흘렸다.
“크하하…… 눈치챘나 보군, 정원의 쥐새끼 놈. 그래, 그 골렘들은 온기를 받으면 내부의 마력 핵이 폭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억지로 멈추려 한다면, 안에 든 가축들과 함께 화려하게 터져 버릴 것이다!”
홍백색으로 깜빡이는 폭주의 빛이 혹한병들의 몸체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째깍거리는 시한폭탄 같은 죽음의 소리가 온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년의 눈앞에 잔혹한 선택의 기로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