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창공(萬里蒼空)을 뒤덮은 암운 사이로, 단 하나의 성혈(聖血) 같은 붉은 달이 솟아오른다.
밤바람은 칼날보다 매섭고, 대지에는 스산한 살기(殺氣)가 자욱하다. 당신의 손에 쥐인 천룡여의주(天龍如意珠)는 마치 살아 숨 쉬는 야수의 심장처럼 고동치며 혈관을 타고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화산파의 밀실에서 삼킨 영약의 기운과 흑혈 투기장의 피비린내 가득한 혈룡의 비약이 여의주의 신성한 기운과 공명하여 온몸의 기경팔맥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고금독보(古今獨步)의 경지. 그 아득한 신화의 계단이 눈앞에 있다.
우웅. 우우웅.
허공을 가르는 검의 울림이 당신의 손끝에서 진동한다. 검은 주인의 들끓는 내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르르 떨며 청운의 기운을 뿜어낸다. 그것은 천하를 상대로 쟁취해 낸 힘의 증명이자, 다가올 혈겁을 예고하는 묵시록과 같다.
"저기, 저 괴물이 서 있다!" "천하를 어지럽힐 역적이다! 모두 검을 뽑아라!"
어둠 저편에서 횃불이 거대한 불바다를 이루며 밀려온다. 위선으로 가득 찬 정파의 명숙들과 탐욕에 눈이 먼 사파의 효웅들이 손을 잡은 채 당신의 숨통을 조여 온다. 천하인 모두가 오직 당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결집한 전대미문의 포위망.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형국이건만, 당신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오직 태고의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절대자만이 품을 수 있는 오연한 침묵이 주위에 내려앉을 뿐이다.
콰르릉!
단전 깊은 곳에서 영단들이 완전히 부서지며 여의주의 포악한 천룡 진기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 속에서, 붉은 안개가 용의 형상을 그리며 대지를 집어삼킬 듯 포효한다.
천하 무림이 코앞까지 밀려온 일촉즉발의 순간. 격동하는 천룡의 폭력을 그대로 분출해 눈앞의 적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신위로 군림할 것인가, 아니면 이 광포한 힘을 정화하여 더 높은 차원의 태극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달빛이 핏빛으로 물들고, 당신의 검이 마지막 결단을 재촉하듯 날카로운 비명(悲鳴)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