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가르는 삭풍(朔風)이 당신의 도포 자락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다. 먹구름이 검붉게 하늘을 삼켜 한낮임에도 천지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아니, 전 무림이 손을 잡고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니 가히 천하만적(天下萬敵)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삼류 문파의 말단 마부로서 거친 채찍을 쥐던 투박한 손. 그러나 지금 그 손끝에 감도는 것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는 태고(太古)의 신화적 진기다. 화산파의 비고에서 취했던 영약의 정수가 심맥을 타고 흐르며 기경팔맥을 광포하게 뒤흔든다. 채워진 내력은 거대한 바다와 같아, 단전 깊은 곳에서 태고의 기운이 끊임없이 화산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다.
달조차 숨어버린 어스름 속에서, 당신이 비껴 쥔 검이 나직하게 울어댄다. 웅- 웅-.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다. 천하를 홀로 감당하겠다는 검신(劍身)의 투진(鬪振)이며, 피를 갈망하는 절대검의 처절한 아우성이다.
"기연을 독식한 사악한 도적 놈! 오늘 무림맹의 정예가 연합하여 낙양의 하늘 아래 네놈의 뼈를 묻으리라!"
정파의 고고한 명숙들과 사파의 은밀한 흉수들이 오직 당신 하나를 처단하기 위해 전례 없는 동맹을 맺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정예 무사들이 내뿜는 살기(殺氣)는 가히 삭풍을 가르고 대지를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다. 사방을 에워싼 채 검날을 치켜세운 군웅들의 눈에는 지독한 탐욕과 공포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당신의 심장은 한없이 고요하다. 오만무도하게 길을 가로막은 자들의 외침은 스쳐 지나가는 낙엽의 바스락거림보다 가볍다.
스릉.
당신이 발을 반 보 앞으로 디디자, 검압(劍壓)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그 압도적인 패기에 짓눌린 적들의 도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전율하기 시작한다. 일촉즉발(一觸即發). 천하를 흔들 검격의 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피바람을 몰고 와 저들의 기세를 일순간에 꺾어 무릎 꿇릴 것인가, 아니면 천하를 비웃듯 발끝에 신풍(神风)을 싣고 허공으로 사라질 것인가.
숨소리조차 삼켜진 침묵 속에서, 당신의 깊은 안광이 적들을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