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자욱한 먼지 구덩이, 사방을 가로막은 철창 너머로 탐욕과 광증에 물든 함성이 고막을 찢는다. 사막의 칼바람보다 매서운 피비린내가 진흙처럼 허공에 겉돈다. 이곳은 사파의 어둠이 가장 짙게 고인 곳, 흑혈 투기장(黑血鬪技場)이다. 가죽 끈으로 대충 동여맨 손목에서 미약한 진동이 울린다. 등 뒤에 감춘 철검이 낮게 울고 있다. 그 진동은 두려움이 아니요, 피를 갈구하는 태고의 굶주림이다. 투기장을 비추는 달빛조차 이곳에서는 차마 빛나지 못하고 검붉게 물들어 내린다.

철창 중앙의 제단 위에 봉인된 외진 유리병 하나. 그 안에서 용틀임하듯 일렁이는 진홍빛 액체가 바로 네가 찾는 '혈룡의 비약(血龍之秘藥)'이다. 태고의 무덤에서 보았던 전설의 기연이 이곳에서 실체를 얻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너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할 신화의 파편. 하지만 그 신성한 영약을 차지하기 위해, 수백 명의 광인들이 침을 흘리며 네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비정한 계율만이 지배하는 황무지에서, 네 목숨은 가장 가벼운 판돈에 불과하다.

"저놈이다! 비루한 마부 놈의 목을 치고 영약을 차지하자!"

귀를 찢는 광소와 함께 사파의 고수들이 살기등등(殺氣騰騰)하게 도검을 치켜든다. 맹렬히 조여오는 사방의 살기 속에서도 너의 눈동자는 한없이 침잠해 있다. 이미 너의 시야는 상식의 투로(套路)를 초월해 있다. 무구한 통찰(無垢之洞察)이 개안된 너의 눈에, 적들의 조밀한 호흡과 조잡한 보법(步法)이 실타래처럼 훤히 풀려 나간다. 발걸음의 무게, 손가락 끝의 떨림, 내력의 조악한 흐름까지도 너무나 느리고 선명하게 보인다. 군맹평상(群盲評象)이라 했던가. 네 깊이를 짐작도 못 하는 소인배들이 눈앞에서 제 무덤을 파고 있을 뿐이다.

적들의 칼끝이 허공을 가르며 네 목덜미를 향해 쇄도한다. 은빛 섬광이 쏟아지는 찰나의 순간, 바람조차 비명을 지르며 갈라진다. 이들의 초식은 비록 무지하나 잔인하여 혈맥의 사각을 잔혹하게 파고든다.

네 손가락이 천천히 철검의 자루를 거머쥔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묵직한 내력이 온몸의 기혈을 단숨에 관통한다. 이제 폭풍 속으로 뛰어들 시간이다. 수많은 적을 단숨에 도륙하고 너의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혹은 이 판의 배후를 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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