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화산(華山)의 매서운 칼바람이 기암괴석을 깎아내는 밤이다. 구름 뒤로 숨은 달빛조차 냉혹한 살기를 머금은 듯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아 있다.

당신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화산파 원로 장로의 밀실, 그 어두운 천장 대들보 위에 몸을 눕히고 있다. 범속한 이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태고의 기운이 은형술(隱形術)의 묘리를 극대화하여 당신의 존재를 허공으로 조용히 지워버린다. 오직 당신의 시선만이 한 줄기 빛보다 날카롭게 아래를 향할 뿐이다.

밀실 한가운데, 화산의 푸른 도포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강호에서 도골선풍(道骨仙風)이라 칭송받던 장로의 안색은 지금 시커먼 마기(魔氣)로 뒤덮여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의 극치. 정종(正宗)의 명예 뒤에 숨어 더러운 마공을 연마하는 영감의 손끝에서 검붉은 진기가 뱀처럼 흐물거리며 뿜어져 나온다. 급격한 역류를 이기지 못한 장로의 혈맥이 뒤틀릴 때마다 역겨운 피고름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전조다.

당신의 절대적인 통찰력은 장로의 기혈이 어디서 어떻게 막혀 있는지, 그의 초식이 얼마나 위태롭고 허술한지 단박에 꿰뚫어 본다. 고수들의 움직임조차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리게 보이는 통찰의 눈 안에서, 장로가 펼치는 마공의 한계는 이미 자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 순간, 당신의 단전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태고의 진기가 광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기감응(同氣感應). 장로가 제단 깊숙한 곳에 비장(秘藏)해 둔 목함 속에서 태고의 영기(靈氣)가 흘러나와 당신의 내력과 격렬하게 공명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화끈거리는 열기가 척추를 타고 치솟는다. 목함 속에 봉인된 원시 영약의 정수가 마치 주인을 알아보듯 향기로운 약향(藥香)을 미세하게 풍겨내기 시작한다. 기연을 알아보는 당신의 피가 들끓으며, 단전 속의 진기가 당장이라도 그 영약을 집어삼키라며 아우성을 친다.

웅웅—.

허리에 찬 검이 주인의 고조된 기세에 호응하여 미세하게 전율한다. 밀실 안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일촉즉발(一觸即發)의 긴장감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장로는 마공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가 가로챈 천하의 영약은 오직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며 숨을 쉬고 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차가운 달빛이 창호지를 투과해 밀실 바닥을 비춘다. 당신의 손이 천천히 검자루를 향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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