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어둠이 지배하던 무덤 속, 억겁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비급의 구결(口訣)들이 당신의 영혼을 잠식한다. 백골의 영맥(靈脈)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안개가 모공을 통해 스며들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뼈가 새로이 맞춰지는 극통이 전신을 지배한다. 脫胎換骨(탈태환골). 비루했던 삼류 마부의 육신은 마침내 허물을 벗고, 하늘의 기치(氣致)를 담을 절대적인 그릇으로 거듭난다.
마침내 눈을 뜬다. 단전에서 솟구친 한 줄기 태고의 진기(眞氣)가 이맥(耳目)을 관통하는 순간,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洞燭萬理(동촉만리). 만물의 이치와 흐름을 꿰뚫어 보는 신화적인 통찰력이 당신의 안광에 깃든 것이다.
허공을 부유하는 미세한 먼지들이 마치 멈춰 선 것처럼 유려하고 느린 궤적을 그리며 낙하한다. 바위틈을 스치는 지하의 바람은 그 결 하나하나가 실타래처럼 선명하게 갈라져 눈에 밟힌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기의 파동이 시작되고 끝나는 찰나의 순간, 그리고 그것이 대지에 닿아 흩어지는 만물의 섭리가 머릿속에 수식처럼 그려진다.
뇌리에 문득 삼류 문파에서 자신을 기만하고 짓밟던 고수들과 교두들의 검식(劍式)이 스친다.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일으킬 듯 기세등등하던 그들의 절예가, 이제는 그저 조잡하게 얽힌 실타래에 불과해 보인다. 어디를 찔러야 사지가 무너지는가, 어느 찰나에 맥을 끊어야 숨통이 멈추는가. 천하의 기고만장한 무인들이 펼치는 초식의 허점이 마치 붉은 선으로 그려진 지도처럼 선명하게 뇌신경을 스친다. 그들의 안간힘이 고작 어린아이의 흙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가슴 속에서 묵직한 통제욕과 오만함이 달빛처럼 차갑게 떠오른다.
동굴 밖에 걸린 달은 서늘하도록 푸르다. 칼날 위에 피어오른 서리처럼 매혹적인 그 빛은, 이제 당신이 걸어갈 피의 길을 예도하듯 대지를 비추고 있다.
무덤의 입구를 막아선 거대한 암석을 향해 당신은 천천히 손을 뻗는다. 무공의 정수가 실린 손끝이 허공을 파고들자, 굉음과 함께 단단한 참암석들이 모래알처럼 바스러져 내린다. 천외천(天外天)의 위력이 손안에서 요동친다.
이제 태고의 무덤을 벗어나 무림의 정 중앙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다. 당신의 탁월한 통찰력은 저 멀리 서늘하게 요동치는 천하의 이익을 감지한다. 정파의 명숙들이 숨겨둔 위선과 보물, 사파의 흑도들이 움켜쥔 피 묻은 기연들. 당신의 시선이 먼저 가 닿는 곳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