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봉인은 완전히 깨어졌고, 마도 황제가 남겨둔 극독의 마기(魔氣)는 끝내 네 온몸의 혈맥을 뒤틀어 놓았다. 천외천(天外天)의 무신이라 불릴 만한 태고의 기연이었건만, 필부의 육신은 그 방대한 신화적 위력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지독한 금속음이 울려 퍼진다. 이성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타서 사라지고, 오직 살육과 파괴만을 갈구하는 붉은 안개가 뇌해(腦海)를 가득 메운다. 하늘에 걸린 차가운 그믐달마저 어둠 속에서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밤이다.
너는 이제 삼류 문파의 마부가 아니다. 천하를 오시하려 했던 무신도 아니다. 그저 이성을 잃고 양민과 무인을 가리지 않고 도륙하는 흉신(凶神), 주화입마(走火入魔)에 포효하는 일괴(一怪)일 뿐이다.
"저 괴물을 처단하라! 무림의 대업을 위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절벽 끝에서 네가 마주한 것은 정(正)과 사(邪)의 깃발이 뒤섞인 무림맹과 사도련의 연합군이다. 너라는 거대한 재앙을 지우기 위해, 영원히 검을 맞댈 것 같지 않던 군웅들이 하나로 뭉쳤다. 천하공적(天下公敵). 그것이 폭주하는 네게 부여된 마지막 이름이었다.
휘이이잉—!
한풍이 절벽을 때리며 검안(劍眼)이 울부짖는다. 주인의 타락을 눈물 흘려 슬퍼하는 비명인가, 아니면 피를 마시고 싶어 환호하는 광성(狂性)의 화답인가.
"쳐라!"
콰르릉! 수십 개의 검강(劍罡)이 허공을 찢으며 벽력같이 쏟아진다.
슈아아악! 네 육신이 번개처럼 고공으로 쏘아진다. 머릿속에는 이미 투로도, 초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지를 찢고 뼈를 으스러뜨리는 원초적 본능만이 검끝에 실릴 뿐이다.
쩌적! 콰드득!퍼억!
"끄아악!" "이놈은 사람이 아니다! 악귀다!"
누군가의 비명과 비장한 절규가 깊은 협곡을 메운다. 너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무감각해진 동공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오직 죽음의 향취뿐이다.
그러나 무한할 것 같던 힘의 폭주는 정작 네 신체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단전이 말라붙은 우물처럼 가라앉는다. 정파 명숙의 일격이 어깨를 관통하고, 사파 초인의 도광이 전신을 난도질한다.
스스로 불러온 파멸의 한가운데서, 너는 대지에 검을 박아 넣으며 무릎을 꿇는다.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도 결코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적들을 노려본다. 무림맹주와 군웅들의 눈에 서린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닌, 오직 지독한 공포와 전율이었다.
검을 쥔 손이 단단히 굳어간다. 천하를 굽어보려 했던 기연의 독식자는, 그렇게 피로 물든 어둠 속에서 쓸쓸히 종막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