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베르가모트 잔향이 감도는 라우렌 후작 부인의 살롱. 은빛 티스푼이 프랑스제 자작나무 찻잔에 부딪히며 내는 정교한 금속음 사이로, 제국 사교계의 가장 은밀하고도 탐욕스러운 속삭임들이 오간다.
당신은 등받이가 높은 빅토리아풍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다. 오늘 당신이 선택한 드레스는 깊은 밤의 심연을 닮은 미드나이트 블루빛 드레이프 실크 드레스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가녀린 쇄골을 타고 유려하게 흘러내리는 주름 장식은, 움직일 때마다 정교하게 세공된 마노 가루와 진주가 밤안개처럼 부서지며 차가운 광택을 발한다. 목덜미를 팽팽하게 감싼 살구빛 초커는 당신의 오만한 턱선과 대비되어 고고한 우아함을 자아낸다.
“그 ‘라피스 상단’의 마법 스크롤을 구하는 일은 이제 황실 작위를 얻는 것보다 어렵다더군요. 마력 소모도 없이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다니, 배후에 있는 마법사가 누구인지 사교계 전체가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제 말이요. 그 상단의 바지사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배자는 귀족들의 목줄을 쥘 만큼 거대한 자금력을 모았다지요?”
영애들이 부채 뒤로 입을 가리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술 끝을 미미하게 끌어올린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스크롤의 이중 마력 수식을 설계하고, 거대 상업 연맹의 실소유주로서 이 방 안의 모든 흐름을 조율하는 진짜 주인이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들을 할까. 회귀 전, 감옥 같은 대공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해독해 냈던 고대 마학 지식은 이제 제국의 사교계를 쥐고 흔드는 당신만의 비밀 병기가 되었다.
그때, 살롱의 무거운 벨벳 커튼이 열리며 공기가 얼어붙는다. 차가운 군부의 향취를 풍기며 들어선 사내, 에드윈 엘가 대공의 시선이 곧장 당신에게 꽂힌다. 늘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발과 완벽하게 재단된 제복 마감마저 그 오만함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당혹감과 초조함이 서려 있다. 늘 그의 눈총 한 번에 가슴 졸이던 유약한 아내는 없다. 대신 사교계의 정점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차가운 지배자만이 남아 있을 뿐.
“아이리스,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으나 숨길 수 없는 통제욕과 당혹감이 묻어나는 속삭임. 당신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오직 침묵으로써 그의 거만한 태도를 조소한다. 부부라는 얄팍한 굴레 뒤에 숨어 당신의 가치를 짓밟던 사내가, 이제는 눈앞의 아내를 온전히 경외하기 시작하는 그 처절한 변화를 감상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유희다.
에드윈이 손을 뻗어 당신의 드레스 자락에 닿기 직전, 당신의 소맷부리 안쪽에 숨겨둔 마력 통신석이 묵직하게 진동한다. 상단에서 보내온 긴급한 기밀 보고서가 마력의 파동을 타고 당신의 손끝에 닿는다. 마침내 당신이 구축한 제국 최고 마법 상단의 은밀한 권력이 무대 위로 통제권을 넓힐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