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렌티아 상단의 자택, 깊어 가는 밤의 냉기가 스민 응접실은 침묵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당신은 공작부인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오직 제국의 밤을 지배하는 실렌티아의 주인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당신이 몸을 기댄 청갈색 브로케이드 소파 위로, 밤하늘을 닮은 미드나이트 블루 빛깔의 드레이프 실크 드레스가 우아하게 흘러내립니다. 은사로 정교하게 수놓아진 별자리 자수가 촛불을 받아 은은하게 일렁이고, 그 옆 마호가니 탁자 위에는 자두 향과 오크 통의 깊은 잔향이 감도는 루비빛 포트와인이 크리스탈 잔 안에서 붉은 눈물처럼 흔들립니다.
그리고 당신의 발치에는, 한때 황제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제국의 수호자, 에드윈 공작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늘 칼날처럼 빳빳하게 서 있던 그의 백은색 제복은 볼품없이 흐트러져 있고, 그 화려했던 기품은 흔적도 없이 조각나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갈망과 뒤늦은 후회로 붉게 충혈된 눈이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그의 떨리는 손끝이 당신의 드레스 자락에 닿지도 못한 채 공중에서 꼴사납게 헤맵니다.
"아이리스…… 제발, 제발 나를 돌아봐 줘. 내가 미쳤었어. 내가 눈이 멀어 너를…… 내 모든 것을 줄 테니, 제발 나를 버리지 마라."
피를 토해내듯 절규하는 그의 목소리는 애처롭기 짝이 없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뚝뚝 떨어지는 그의 눈물이 사치스러운 페르시아 양탄자를 적십니다. 당신은 손에 든 깃털 부채를 우아하게 접으며, 긴 속눈썹 아래로 그 처참한 꼴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입가에 차가운 조소를 머금고 속삭입니다.
"이런, 에드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시던 공작전하께서 어쩌다 이토록 초라한 하수인처럼 굴고 계시는지요."
당신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도, 원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지독할 정도로 투명한 유희와 모욕만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그의 처절한 굴복을 바라보는 순간, 당신의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과거의 망령이 허무하게 흩어집니다. 전생의 당신이 그가 흘리던 차가운 가스라이팅과 무관심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갈 때, 그는 얼마나 거대하고 극복할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 엎드린 사내는, 당신이 거부라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바스러질 것처럼 나약한 모래성에 불과했습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고통과 공포가 이토록 하잘것없고 시시한 것이었다니,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네가 원한다면 공작가의 모든 재산도, 내 심장도 바치겠어. 그러니 제발 내 곁에……."
지독한 집착과 후회로 얼룩진 그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애걸복걸 울려 퍼집니다. 제국을 호령하던 사내가 오직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 가여운 패배자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단 한 조각의 자비도 남겨두지 않은 채, 당신은 그를 내려다보며 우아하게 미소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