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광무(光武) 9년인 1905년 6월 12일,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습니다. 탁지부 대신이 올린 세입세출 보고서는 대한제국 황실이 직면한 파국적인 재정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연간 총세입은 약 1,500만 원(圓) 안팎이었으나, 당신이 주도한 군사 개혁에 투입된 예산은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용동궁(龍洞宮) 기기창에서 무연화약(Nitrocellulose)의 국산화를 위해 면화의 질산화 처리에 필요한 에테르와 삼산화황 등 정밀 화학 약품을 해외에서 긴급 공수하는 데만 120만 원이 소요되었습니다. 여기에 크루프사 제식 야포의 강선 가공용 정밀 선반 도입과 한강 방어선 요새화를 위한 포틀랜드 시멘트 수입 비용까지 더해지자, 내장원(內藏院)의 황실 비자금마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신식 금위대와 시위대 병사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3개월 치의 군향(軍餉)이 체불되었습니다.

"전하, 군병들이 영의(營衣)를 전당포에 잡히고 남대문 시전에서 놋그릇을 두드리며 통곡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임오년(1882년)의 사태보다 더한 변란의 전조이옵니다."

조정의 원로인 심상훈이 상소문을 올리며 백관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자, 보수파 대신들의 공세가 일제히 당신을 향했습니다. 그들은 서양 오랑캐의 사악한 기계를 들여오느라 국고를 탕진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며, 당장 신식 군대 조직을 해체하고 기기창을 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도성 밖의 민심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급 관리들과 군인들의 가솔들이 궐문 밖에서 급료 지급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외교가에서는 대한제국 정부가 파산 선고를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은행가들은 이 틈을 타 광산 채굴권과 경원선 철도 부설권을 담보로 한 연 8%의 고리대 차관 계약서를 들이밀며 조정을 압박해 왔습니다.

무기 개발의 고삐를 늦추는 순간, 지금까지 구축해 온 군사적 억지력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며, 열강의 군홧발이 다시 이 땅을 짓밟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아침 군인들의 폭동을 막지 못한다면 대한제국의 심장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터였습니다.

어전회의 탁자 위에는 탁지부 금고에 남아 있는 태환 불가능한 백동화 더미와, 열강들이 요구하는 이권 침탈용 차관 계약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고종 황제는 초조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았고, 대신들은 이 거대한 재정적 파국을 해결할 책임을 당신에게 물으며 숨을 죽였습니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식으로 황실의 재정을 복구하고 개혁의 불씨를 살려야 합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 두 가지의 극단적이면서도 정교한 생존 책략이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