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9년(1905년) 10월 12일 야반(夜半). 경운궁(慶運宮)의 공기는 비정상적으로 눅눅했고, 이내 타오르는 기름 냄새로 숨이 막혀왔다.
사단은 결국 유림의 거두들이 올린 피비린내 나는 상소문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의 해괴한 화약 무기로 황궁을 지키는 것은 사직의 도리에 어긋나며, 조상의 영령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보수파의 격렬한 반발에 조정은 갈팡질팡했다. 당신이 타협안으로 황실 근위대의 순찰 노선을 축소하고, 신식 맥심 기관총 탄약고의 열쇠를 군부 대신의 집무실로 이관한 지 정확히 사흘 만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적습이다! 동쪽 대안문(大安門)이 뚫렸다!"
어둠을 뚫고 터져 나온 절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을비 속에 파묻혔다. 서구식 훈련을 채 마치지 못한 채 보수파들의 압박으로 구식 환도와 화승총만을 쥐고 있던 시위대 초병들은 습격자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담장을 넘어온 자들은 일본 육군 참모본부 제2부 소속의 정예 공작원들과 우치다 료헤이가 이끄는 흑룡회(黑龍會)의 낭인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벨기에제 FN M1900 반자동 권총과 메이지 30년식 보병총이 들려 있었다. 6.5mm 아리사카 탄환이 어둠을 가를 때마다 백색의 총구 섬광이 빗줄기를 붉게 물들였다.
타협의 대가는 혹독했다. 즉각적인 화력 대응을 책임져야 할 근위대 제1대대는 서대문 밖 영은문 터의 병영에 유기되어 있었고, 당신의 곁에 남은 호위 병력은 단 수십 명에 불과했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적들이 이미 중화전(中和殿) 회랑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시위대 부위(副尉)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그의 어깨는 이미 적들의 총탄에 관통당해 선혈이 낭자했다. 궁궐 내부의 전각들은 현양사 첩자들이 미리 뿌려둔 석유와 송진으로 인해 거센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붉은 불길이 먹구름 가득한 한성의 밤하늘을 밝히며, 기와가 깨지고 들보가 무너져 내리는 파열음이 대궐을 지옥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당신은 허리춤에 찬 7.65mm 브라우닝 권총의 그립을 꽉 쥐었다. 탄창에 든 총알은 단 7발. 예법과 타협을 주장하며 양보를 채근하던 온건파 대신들의 가식적인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저들의 유약함과 조정을 장악하려던 보수파의 탐욕이 일제에게 궁궐의 심장부를 열어주는 안방쇠 역할을 한 셈이었다.
저 멀리 함녕전(咸寧殿) 어좌 안쪽에서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떠는 고종 황제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문창살 너머로 비치는 불길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습격자들의 실루엣이 칼을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가 비밀리에 서쪽 정동 방향의 밀도(密道)에 배치해 둔 공사관 호위대와 마차가 떠올랐다. 여기서 몸을 피한다면, 러시아의 힘을 빌려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불타는 회랑 너머 적들의 임시 지휘소 역할을 하는 덕홍전(德弘殿) 앞뜰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번 습격을 진두지휘하는 일본 공사관의 육군 무관과 낭인 수괴들이 지도와 문서를 쥐고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의 손에 들린 권총과, 신식 무기 체계에 대한 지식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타오르는 불길이 당신의 뺨을 뜨겁게 달군다. 피와 화약 냄새가 섞인 바람이 당신의 소매를 세차게 흔드는 순간,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