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광무(光武) 8년(1904년) 10월 11일, 경성 용산의 황실 직속 병공창인 '융희공창(隆熙工廠)'의 정밀 주조동은 섭씨 1,400도에 달하는 도가니의 열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갓 성형되어 나온 황동제 수냉식 재킷의 표면 오차를 마이크로미터 캘리퍼스로 직접 측정합니다.

단단하게 벼려진 크롬-망간 합금강 총열을 감싼 이 기관총은 바로 당신의 지휘로 국산화에 성공한 ‘광무 1회기총(光武一回機銃)’입니다. 하이람 맥심의 설계를 바탕으로 하되, 조선의 빈약한 정밀 기계 기반 하에서 양산율을 높이기 위해 부품 수와 격발 기구의 회전 스프링 장력을 대한제국 규격에 맞춰 재설계했습니다. 구경 7.62mm,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황동 탄피의 압착 가공(Deep Drawing) 오차율을 0.02밀리미터 이하로 통제함으로써, 마침내 분당 600발의 연속 사격 시에도 약실 내 격발 불량(Mis-fire)이 발생하지 않는 신뢰성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 옆 작업대에는 대동강 진흙으로 구워낸 고진공 외구에 텅스텐 필라멘트를 장착한 국산 삼극진공관과 2행정 3.5마력 가솔린 엔진을 연동한 ‘이동식 무선전신기’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기화기 내 가솔린과 공기의 혼합비를 수동으로 조절하는 침동식 밸브의 오차를 극복하기 위해 가습 제어 장치를 추가한 설계는 완전히 적중했습니다. 평안도 영변과 경성 사이의 200킬로미터 장거리 구역에서 혼신 없이 1.5메가헤르츠 주파수로 군용 모스 부호를 송수신하는 가시적인 과학적 인과를 입증해 낸 순간입니다.

그러나 국력의 신장은 즉각적인 외세를 불러옵니다. 조정 내 대신 중 하나인 송병준은 상소를 올려 여론을 흐립니다. “황실의 황족이 유교적 성현의 도를 멀리하고, 한낱 서양의 기교(奇巧)와 살상 무기에 국고를 탕진하며 이웃 국가인 대일본제국과의 조화로운 선린(善隣)을 해치고 있으니, 이는 본말이 전도된 망국지화이옵니다.” 당신은 이 상소를 편전에서 찢어발기며 황제를 독대하고, "도적이 담을 넘는데 공맹의 예법을 따르자는 자야말로 역적"이라며 소리 높여 문관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당신의 경고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듯, 불과 열흘 뒤인 10월 21일 자정, 참모본부 무전 대기실의 수신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합니다. 평안북도 삭주(朔州) 일대에 배치된 진위대 수색대로부터 온 긴급 타전입니다. [일본 육군 제2사단 하야시 대대 소속 400여 명, 자정 기해 압록강 도강 후 국경 초소 급습. 아군 사상자 발생 중. 일본군, 의주 방향으로 진격 개시.]

공수해 온 핵심 부품의 설계도를 빼앗기고 한반도에서 기술적 주도권을 완전히 잃을 것을 염려한 일제가 감행한 야비한 국경 무력 도발입니다. 현장의 진위대는 백병전으로 농성 중이나, 이들의 침략 야욕을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대한제국의 자주 국방 노선은 시작도 전에 꺾일 위기입니다.

당신은 병공창 지하 작전실로 내려가 차갑게 식어 있는 지도 위에 손을 얹습니다. 손끝에는 아직 화약 냄새와 뜨거운 가솔린 그을음이 남아 있습니다. 적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병공창의 신형 장비들은 이미 보급을 마쳤고, 당신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일본군의 기습을 어떻게 받아쳐야 이 제국에 가장 이로운 국익을 가질 수 있을지, 당신의 이성은 번뜩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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