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광무(光武) 9년인 1905년 5월 14일, 한양 도성의 아침은 초여름의 녹음 대신 매캐한 화약 냄새와 무거운 전운으로 시작된다. 미국 주한 공사 호레이스 알렌과의 밀약을 통해 콜트(Colt) 사로부터 비밀리에 인도받은 ‘1895년형 마크 1 자동기관총(Colt-Browning M1895)’ 24정과 이에 장전될 30구경(.30-40 Krag) 무연화약 탄약 15만 발이 경운궁(慶運宮) 내고(內庫)에 안착한 지 불과 보름 만의 일이다.

총열 하부의 왕복식 피스톤이 분당 450발의 가공할 발사 속도로 화약 가스를 내뿜으며 작동하는 이 신식 변혁의 병기는, 황실 직속의 제1시위연대 대원들의 손에서 서구식 군사 교범에 따라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화약의 그을음과 가죽 장구의 낯선 냄새가 삼각지 연병장을 채울 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대한제국의 자주 국방이 마침내 첫 단추를 꿰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유교의 정통성을 고수하려는 사대부들의 저항은 당신의 계산보다 훨씬 완고하고 격렬했다. 경기도 참판을 지낸 위정척사의 거두 이항로의 학맥을 이은 보수파 유림 영수들이 격문을 띄운 것은 지난 5월 8일이었다. 그들은 삼남 지방의 불만 섞인 민초들과 해산 군인들을 선동하여, 이른바 ‘척왜척양보국안민(斥倭斥洋保國安民)’의 기치를 내걸고 1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무장 민란을 일으켰다.

"서양 오랑캐의 사악한 기예(奇藝)로 군대를 무장시키고 나라의 제도를 더럽히니, 이는 사직을 원수에게 바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의 상소문은 유교적 격식과 주자학적 도덕론으로 포장되어 있었으나, 실상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반 지배층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삼남에서 합류한 민란군은 구식 화승총인 조총(鳥銃)과 농기구, 그리고 일부 탈영병들이 휴대하고 나온 레밍턴 단발총으로 무장한 채, 이미 수원 유수부를 함락하고 북상 중이었다. 그 거리는 한양 도성으로부터 불과 80리(약 32킬로미터) 남짓한 곳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패닉에 빠졌다. 법부대신과 탁지부대신은 황실 근위대의 신무기를 서둘러 회수하고 유림의 지도부와 타협해야 한다며 고종 황제 앞에서 읍소했다. 황실이 독자적인 무력을 가질 때마다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친러파와 친일파 대신들의 비겁한 합작이기도 했다.

당신은 경운궁 중명전(重明殿)의 서늘한 대리석 복도를 걸으며, 품 안의 권총 자루를 꽉 쥔다. 눈앞의 연병장에는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신식 황실 근위대 1개 대대 800여 명이 당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등 뒤에는 마차에 거치된 6정의 마크 1 기관총이 황동빛 탄띠를 길게 늘어뜨린 채 엄중한 위용을 자랑한다.

민란군의 선봉은 이미 도성 남쪽의 요충지인 남태령 고개 밑에 당도했다는 전갈이 도달한다. 서양의 오랑캐 기술이라며 대포와 기관총을 거부하는 저 구시대의 망령들을 무참히 분쇄하여 황실의 절대적인 권위를 천하에 각인시킬 것인가, 아니면 저들을 설득하고 회유하여 기술의 효용을 직접 눈으로 보게 만든 뒤 제국의 백성으로 품을 것인가.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제1시위연대장이 당신을 향해 칼을 뽑아 들며 엄숙히 군례를 올린다. 군대의 총구는 이미 남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당신은 마침내 입을 열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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