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광무(光武) 9년 10월 27일,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한성의 기온은 섭씨 영하 2.4도까지 급강하했다.

재정 파탄을 메우기 위해 내장원(內藏院)과 한성 내 민간 민고(民庫)의 자산을 무리하게 강제 몰수하려던 당신의 독단은 최악의 악수가 되었다. 게다가 일제의 궁궐 습격에 놀라 황급히 프랑스 공사관으로 조정을 옮기려 시도한 파천(播遷)은, 열강들에게 법적·외교적 개입의 빌미를 완벽하게 제공하고 말았다.

영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이를 '대한제국 황실에 의한 사유재산 무단 약탈 및 국제 통상 질서 교란'으로 규정했다. 만국공법(萬國公法) 제23조와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에 명시된 '거중조정'의 의무는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어, 도성의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삼은 영·일·미 삼국 연합군의 격문으로 둔갑했다.

10월 29일 묘시(卯時), 삼국 연합군 3개 여단, 총 1만 4천 200명의 병력이 인천항과 용산 기지를 통과해 사대문 안으로 진입했다. 삼각대에 거치된 8mm 맥심 중기관총의 총신이 차갑게 번뜩였고, 아리사카 30년식 소총을 견착한 일제 보병들이 돈의문과 숭례문을 넘어 도심으로 들이닥쳤다. 당신이 서구의 기술을 역설계해 육성하려 했던 신식 군대는 급료 체불에 따른 사기 저하와 지휘 체계의 마비로 인해 백병전 한번 치르지 못한 채 무장 해제를 당했다.

조정의 문관들은 통곡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臺諫)들은 "종묘사직의 신주가 길가에 구르고 사직의 존망이 호흡지간에 달렸나이다"라며 피끓는 상소를 올렸으나, 서구의 열강들과 일제의 강철 기포(騎砲) 앞에서는 유교적 격식도 품위 있는 수사(修辭)도 무력한 낙엽에 불과했다.

11월 3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삼국 전권대사들이 날인한 '한성 분할 관리 협정'에 의해 제국의 영토는 갈가리 찢겼다. 대동강 이북은 러시아제국의 특별보호령으로, 경기·충청·전라의 곡창지대는 일본 제국의 병합 예정지로, 경상·강원·함경은 영미 연합군의 소령(所領)으로 획정되었다. 반만년을 이어온 주권 국가는 그렇게 삼국 분할 통치라는 식민지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모든 파국의 배후이자 '공공질서 교란 및 불법 몰수 주동자'로 지목된 당신은 덕수궁 서편 뜰에 급조된 연합군 군사재판정으로 끌려갔다. 차가운 쇠사슬에 묶인 당신의 두 손에는 황국의 기술 혁명을 도모하느라 묻은 화약 냄새 대신 흙먼지만이 가득했다. 미래의 군사 지식으로 열강을 굴복시키려던 원대한 계획은 미합중국 해병대 소령이 낭독하는 판결문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피고 이진(李振, 한진우). 국제 무역 거부 및 사유재산 불법 약탈죄, 전도(戰途) 선동 혐의로 군법에 의거해 사형을 처함."

광무 9년 11월 12일 오전 10시. 서소문 형장 위로 차가운 밧줄이 당신의 목을 조여온다. 발밑의 나무판이 내려앉는 순간, 당신이 꿈꾸었던 철철의 대한제국 강국몽(强國夢)은 식민지의 서막을 알리는 조종 소리와 함께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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