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색 봉투가 밤바람을 맞아 펄럭였다. 그 표면에 찍힌 학생회의 인장은 마치 루카스의 안락한 은퇴 생활에 조종을 울리는 낙인처럼 선명했다.

"루카스 에반스. 당신의 그 화려한 설탕 쇼는 잘 봤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행정의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안경테를 치켜올리는 알베르트의 손가락끝이 칼날처럼 예리했다. 그의 눈동자 뒤편에서 번뜩이는 것은 단순한 적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내의 모든 무질서를 규격화된 서랍 속에 처넣고 야 말겠다는, 질서 결벽증 환자 특유의 집요한 광증이었다.

"방금 당신의 가내 장학생 등록 서류를 정밀 대조해 본 결과, 황실 마법관리국의 승인 도장에서 중대한 '위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학칙 제21조, '신분 및 서류 위조죄'에 해당하더군요."

루카스는 입술 안쪽을 가볍게 깨물었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골치 아픈 아카데미 행정 절차들이 어지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적. 이 두 글자가 현실이 되는 순간, 국가 연금실에서 꼬박꼬박 날아오던 은퇴 자금의 세탁 경로가 완전히 끊긴다. 그것은 곧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신선 같은 삶의 종말이자, 황실 추적대장 다미엔의 손아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의미했다.

"위조라니요, 회장님."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최대한 비굴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 남은 설탕 가루가 든 종이봉투를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평민 출신 장학생이 행정 절차를 좀 몰라서 도장방 삼류 기술자에게 일을 맡겼을 뿐입니다. 그걸 위조라고 하시면 이 가난한 고학생은 억울해서 잠도 못 잡니다."

"핑계는 징계위원회에서나 하십시오. 행정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알베르트가 단호하게 수첩을 펴며 깃펜을 꺼내 들었다. 붉은 봉투를 루카스의 가슴팍에 내밀며, 그는 승리를 확신한 관료의 미소를 지었다.

"이 서명란에 지장을 찍으시지요. 자퇴 형식으로 처리해 주는 것이 제 마지막 배려입니다."

"잠깐."

루카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턱을 치켜올렸다. 귀찮은 기색이 가득하던 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기묘한 이채가 서렸다. 마법 공식을 뜯어고칠 때 나오던 그 특유의 '꼰대 본능'이, 이번에는 아카데미의 낡은 학칙을 향해 발동한 순간이었다.

"회장님께서는 학칙을 참 좋아하시고, 또 그 완벽한 질서에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정작 교칙의 세부 조항은 대충 훑어보신 모양입니다?"

알베르트의 깃펜이 멈췄다. 그의 짙은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 꿈틀거렸다.

"뭐라고 했습니까?"

"라클레어 아카데미 학생 정무 교칙 제12조, '공헌 장학 등록에 관한 유예 기간 신청' 제도를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루카스가 품에서 때 묻은 장학생 수첩을 꺼내 들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본교의 장학생 중, 신원 증빙에 행정적 결함이 발견된 자라 할지라도, '학술적 혹은 실무적 공헌'을 증명할 수 있는 잠재적 기여도가 인정될 경우…… 수사 및 징계 집행을 최대 14일간 유예하고 소명 자료를 보완할 기회를 부여한다. 맞습니까?"

알베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경알 너머로 당혹감이 스쳤다.

"그 조항은…… 실제로 적용된 선례가 거의 없는 사문화된 규정입니다. 게다가 당신 같은 평민 장학생이 무슨 학술적 공헌을 증명하겠다는 겁니까?"

"방금 보셨잖습니까."

루카스가 옆에 서서 여전히 넋을 잃고 있던 실비아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발루아 가문의 천재께서도 해결하지 못해 폭주하던 6서클 화염 마법의 마나 경로를, 제가 아주 '친절하고 완벽하게' 제어해 드렸는데요. 이것보다 더 확실한 실무적 공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그건……!"

실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려다, 루카스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치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루카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꼬맹아. 입 다물고 있어라. 그래야 우리 둘 다 산다.'

알베르트는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루카스를 쏘아보았다. 완벽하게 짜 맞춘 행정의 그물망에, 생각지도 못한 고대 교칙의 틈새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던 평민 장학생의 주둥이를 통해서.

"겨우 2주입니다, 루카스 군."

알베르트가 붉은 봉투를 거칠게 거두어들이며 차갑게 읊조렸다.

"2주 동안 당신이 그 '공헌'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즉시 제적은 물론이고 황실 구금령까지 집행되도록 제가 직접 손을 쓰겠습니다."

"2주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죠. 침대에서 뒹굴기 딱 좋은 기간이네요."

루카스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알베르트는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치켜세우고는, 망토를 휘날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스승님! 방금 그건 정말 대단했어요!"

알베르트가 사라지기 무섭게 실비아가 루카스의 소매를 붙잡고 붕붕 흔들어댔다. 그녀의 눈은 거의 광신도에 가까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학칙의 맹점을 찔러 그 깐깐한 학생회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다니! 역시 당신은 정체를 숨긴 은둔 고수가 분명해요! 제 마법식을 한눈에 간파한 것도 그렇고……!"

"아, 시끄러워. 귀청 떨어지겠네. 그리고 스승님은 무슨 얼어 죽을 스승님이야."

루카스는 귀찮다는 듯 실비아의 손을 뿌리쳤다. 마나 동화의 여파로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아파왔다. 당분이 극도로 부족했다. 엘리스가 구워준 마카롱의 달콤한 맛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타닥, 타닥.

그때, 연습장 초입의 숲길 너머에서 무겁고 정돈된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기운이 사방의 공기를 짓눌렀다.

루카스의 척추를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이 끈적하고 집요한 감각. 황실 마법관리국 특별수사대장, 다미엔 카엘이었다.

"마력 반응이 이 부근에서 소멸했다. 샅샅이 수색해라."

다미엔의 냉혹한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그의 부하들이 횃불을 밝히며 연습장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붉은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주먹만 한 보석이 들려 있었다. 극성 공명 결정석. 은백색 마나의 미세한 흔적조차 감지해 내는, 대마법사 레메게톤 전용 추적 도구였다.

"이런, 사냥개가 벌써 냄새를 맡았군."

루카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실비아가 펼쳤던 마법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온 은백색 마나의 잔재가 아직 허공에 떠돌고 있었다. 결정석이 그 흔적을 감지하는 순간, 그의 은퇴 생활은 완전히 끝장난다.

"실비아, 너 지금 주머니에 뭐 있냐?"

"네? 어…… 아까 간식으로 먹으려던 백설탕 봉지가 있긴 한데……."

"내놔."

루카스는 실비아가 꺼낸 종이봉투를 낚아챘다.

다미엔이 숲을 헤치고 연습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길이 허공을 떠돌던 은백색의 미세한 입자들에 닿았다. 결정석이 미친 듯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 마력 흔적은……!"

다미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루카스와 실비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훅-!

루카스가 가벼운 바람 마법을 손끝으로 튕겼다. 아주 정밀하게 조율된 1서클의 풍압이 실비아의 설탕 봉투를 관통했다.

파아앗!

하얗고 고운 백설탕 가루가 공중으로 화려하게 비산했다. 흩날리는 설탕 입자들이 달빛을 받아 은백색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

"아이고! 내 소중한 수입 설탕이!"

루카스가 과장된 몸짓으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이게 얼마나 비싸고 귀한 설탕인데! 바람이 불어서 다 날아가 버렸잖아! 아카데미는 왜 이리 바람이 세게 부는 거야!"

동시에 루카스는 미세하게 마나의 공명 주기를 조율했다. 흩날리는 설탕 가루의 결정체마다 아주 미미한 1서클 마나를 동화시켜 강제로 공명시켰다.

징-! 징-! 징-!

다미엔이 들고 있던 극성 공명 결정석이 사방으로 튀는 설탕 가루의 마나 반응에 격렬하게 반응하더니, 이내 과부하가 걸린 듯 퍽 소리를 내며 빛을 잃고 탁하게 변해버렸다.

"뭐, 무슨……?"

다미엔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검게 죽어버린 결정석을 내려다보았다.

"평민들이 쓰는 야매 마나 정화법입니다, 나으리."

루카스가 흩어진 설탕 가루를 빗자루로 쓸어 담는 시늉을 하며 투덜거렸다.

"설탕에 마나를 살짝 섞어서 뿌리면 주변의 지저분한 마력 찌꺼기가 싹 가라앉거든요. 귀족 나으리들은 이런 가내 수공업 비법을 모르시나 봅니다?"

다미엔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루카스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결정석은 이미 먹통이 되었고, 공기 중에는 달콤한 설탕 냄새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대마법사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다미엔이 혀를 차며 돌아섰다.

"철수한다. 다른 구역을 수색한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루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와……."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던 실비아의 눈에 경외감이 깊어졌다.

"설탕 가루를 이용해 황실 수사대의 극성 공명 결정석을 역으로 교란하다니…… 스승님, 당신의 행정적 지략과 마법적 응용력은 정말 우주를 뚫을 기세예요!"

"칭찬 고맙고, 이제 제발 집에 가라. 난 졸리다."

"안 돼요! 알베르트가 2주 뒤에 무조건 꼬투리를 잡아서 스승님을 쫓아내려 할 거예요. 그 인간은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독종이거든요."

실비아가 루카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제가 스승님의 위대한 정체를 지켜드리겠어요. 장학생 신분 구제 프로젝트예요! 학생회장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봉쇄해 둔 '마법 기록 통제 도서관'의 뒷길을 제가 알고 있어요."

"도서관? 내가 거길 왜 가냐. 난 침대가 제일 좋은데."

"거기에 아카데미 설립 초기의 미공개 원본 서적들이 보관되어 있어요. 발루아 가문이 초대 설립자 중 한 명이라, 저만 아는 비밀 통로가 있거든요. 알베르트조차 손대지 못하는 법률적 예외 조항이나 면책권에 대한 단서가 분명 그곳에 있을 거예요!"

루카스의 귀가 쫑긋했다.

면책권.

그 단어가 그의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만약 아카데미 내부에서 황실의 사법권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면책 조항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다미엔의 눈치를 보며 설탕가루를 날릴 필요도 없고, 알베르트의 쪼잔한 벌점 세례에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고 영구적인 무위도식 은퇴 생활의 마스터키가 그곳에 있을지도 몰랐다.

"……뒷길이 어디라고?"

루카스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 * *

깊은 밤, 아카데미 중앙 도서관의 그림자가 거대한 괴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알베르트의 명령으로 도서관 주변은 삼엄한 마법 결계와 학생회 규찰대원들로 봉쇄되어 있었지만, 실비아가 안내한 곳은 도서관 지하 보일러실과 연결된 낡은 하수구 통로였다.

"여기예요. 저희 가문의 선조께서 몰래 금서들을 빼돌려 읽을 때 쓰던 유서 깊은 통로죠."

실비아가 먼지 쌓인 철문을 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여기서 망을 볼 테니, 스승님은 얼른 들어가서 필요한 단서를 찾으세요. 행운을 빌어요!"

"그래, 고맙다. 나가면 맛있는 거 사주마."

물론 제돈으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루카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도서관 내부의 공기는 서늘하고 퀴퀴한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루카스는 발소리를 죽인 채, 일반 학생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깊숙한 비밀 서가로 기어들어 갔다.

거미줄이 가득한 책장들 사이를 뒤적이던 중, 그의 눈에 유독 낡고 두꺼운 양장본 가죽 책 한 권이 들어왔다. 먼지를 털어내자, 표면에 금박으로 새겨진 문양이 보였다.

[라클레어 아카데미 설립 헌장 및 자치 세칙 - 원본]

루카스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현대의 조잡하고 비효율적인 법률식들과 달리, 200년 전의 문장들은 아주 정교하고 빈틈없는 논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루카스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딱 멈췄다.

[제9조. 아카데미의 절대적 치외법권 및 면책권에 관한 헌장]

"찾았다……."

루카스의 눈동자가 빠르게 텍스트를 훑어내렸다.

내용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아카데미 설립 당시, 황실과의 특별 계약을 통해 체결된 이 조항은 '아카데미 영토 내에서는 황실 수색대 및 사법 기관의 체포 권한이 원천 무효화되며, 오직 아카데미 총장과 설립자 위원회의 동의하에서만 사법 집행이 가능하다'는 절대적인 면책권을 명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황황한 금박 인장까지 완벽하게 찍혀 있는 원본의 수필 사본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다미엔이 아무리 사냥개처럼 짖어대도 아카데미 정문 안으로는 발 한 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알베르트가 흔들어대던 징계 예고장 따위는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방패였다.

루카스는 그 세부 조항과 마법적 서명 주기를 머릿속에 통째로 각인하기 시작했다. 그의 절대적인 기억력이 200년 전의 헌장을 한 자도 빠짐없이 뇌리에 새겨 넣었다.

"흐흐흐…… 끝났다. 나의 완벽한 침대 생활이 드디어 완공되는구나……."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철컥-!

어둠 정적을 깨고 기분 나쁜 기계음이 도서관 사방을 울렸다.

"응?"

루카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의 경보음이 도서관 내부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육중한 철제 룬 문자 각인 철창들이, 예고도 없이 거칠게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쾅-!

"어, 어?!"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사방에서 내려앉은 철창들이 루카스가 서 있던 좁은 역사 서가 구역을 사정없이 내리찍으며, 순식간에 그를 완벽한 감옥 속에 가두어버렸다.

스파크가 튀며 철창 표면에 새겨진 마나 억제 룬 문자들이 붉게 타올랐다. 발밑의 바닥에서부터 마력을 차단하는 사슬 모양의 붉은 빛무리들이 솟구쳐 올라 루카스의 발목을 강하게 조여왔다.

"보안 시스템 가동. 침입자 감지. 즉시 학생회 및 황실 수사대에 경보를 전송합니다."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차가운 마법 인형의 음성과 함께, 저 멀리 도서관 입구 쪽에서 수많은 발소리와 횃불의 불빛들이 이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좁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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