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파아아아앙-!*

아카데미 서쪽 하늘을 집어삼킨 은백색과 붉은색의 마력 폭풍. 기만에는 성공했으나, 예측 범위를 아득히 초과해 동조되는 부작용으로 인해 공기 중의 모든 잉여 마나가 대량 폭발하며 아카데미 서쪽 방어 결계 전체가 완전히 단락되어 버렸다.

*애앵-! 애앵-! 애앵-!*

귀를 찢는 비상경보음이 온 사방에 메아리쳤다.

"전원 대피하라! 서쪽 결계 전원부 단락이다!" "황실 수색대원들은 즉시 현장 결계를 재구축해라!"

수색대와 학생회가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루카스는 쥐새끼처럼 날쌔게 몸을 날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피로와, 뱃속에서 요동치는 미친 듯한 공복감 때문이었다.

"허억, 헉…… 살려줘. 단 거, 초고농도의 당분이 필요해……."

간신히 남성 기숙사 b동 302호, 자신의 방 안으로 굴러 들어온 루카스는 문을 걸어 잠그고 엘리스에게 얻어온 마카롱 상자를 뜯어 입안에 사정없이 처넣었다.

*아작, 바스락.*

쫀득한 꼬끄와 달콤한 바닐라 필링이 혀끝에서 녹아내리자, 타들어 가던 뇌세포들이 마침내 산소와 당분을 공급받으며 비명을 멈췄다. 흐릿하던 시야가 겨우 돌아왔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은 없었다. 방 안 가득 흘러넘치는 은백색 마나의 잔재를 지워야 했다. 다미엔이 소지한 '극성 공명 결정석'이 이 방을 가리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망할 마력 흔적을 어떻게든 덮어야 하는데……."

루카스는 침대 밑에서 굴러다니던 낡은 구리 난로를 꺼냈다. 평민 장학생들에게 지급되는, 낡아서 덜덜거리는 싸구려 마력 난로였다. 그는 이 조잡한 난로에 대고 전설적인 고대 극성 장막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은백색 마력 흔적을 열에너지로 치환해 강제로 흩뿌리는, 초고난도 마법식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마나는, 본능적인 '마법 꼰대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난로 내부의 비효율적인 마법 회로를 즉석에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아니, 어떤 멍청이가 열 변환 효율 수식을 이따위로 짜놓은 거야? 마나가 사방으로 다 새잖아! 에이, 참을 수 없지. 여기랑 여기를 묶어서 공명 주기를 극대화하고……."

*위이이이잉-!*

구리 난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은백색 마나가 난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쾅-!*

"학생회 안전 점검이다! 문 열어라, 루카스 에반스!"

문고리가 부서질 듯한 기세로 열리며, 학생회장 알베르트와 무장한 학생회 수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등 뒤로는 회색 눈동자를 번뜩이는 황실 수사대장 다미엔까지 서 있었다.

방 안은 온통 후끈한 열기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알베르트는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방 한가운데에서 구리 난로를 껴안고 있는 루카스를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루카스 에반스. 결계 폭발 사고 직후 용의 선상에 오른 자들을 추적하던 중이었다. 다미엔 사령관의 결정석이 이 방의 마나 반응을 지목했는데……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다미엔이 들고 있는 '극성 공명 결정석'이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열기 때문에 결정석의 탐지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루카스는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이내 비굴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고, 회장님! 깜짝 놀랐잖습니까! 보시다시피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개인용 난로 좀 틀고 있었습니다. 평민 기숙사는 보일러가 시원치 않아서 말이죠!"

"난로라고?"

알베르트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눈이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열기와 연기를 훑었다.

"이 열기는 단순한 1서클 온열 마법의 수준이 아니다. 마치 고위 화염 마법사가 머문 듯한 극성 에너지가 감지되고 있어. 게다가 이 기묘한 연기식은 뭐지? 황실 추적대의 탐지 마법을 교란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교란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십니다!"

루카스는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쳤다.

"이건 그냥 연비를 대폭 개량한 '개인용 절전식 간이 난로'일 뿐입니다! 마나를 쓰는 게 아니라, 땔감의 효율을 극대화한 가내수공업의 지혜라고요!"

"가내수공업?"

알베르트의 미간이 좁아졌다.

"내 눈을 속일 셈이냐? 아카데미 행정 규정 제45조에 의거, 기숙사 내 비인가 전열기구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게다가 이 정도의 열효율은 현대 마법 공학으로도 불가능해. 정체를 밝혀라."

독사 같은 추궁이었다. 다미엔 역시 검자루에 손을 올린 채 루카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퇴학은 물론이요, 제국 특별 행정 연금실의 노예로 복직되어 평생을 굴러야 했다. 루카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침대 옆에 놓여 있던 갈색 종이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억울합니다! 제가 사기꾼도 아니고, 무슨 무서운 마법을 쓰겠습니까? 이 난로의 비밀은 바로 이겁니다!"

루카스가 상자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하얗다 못해 은빛으로 반짝이는 고운 설탕 결정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설탕?"

알베르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예! 그냥 설탕이 아닙니다. 엘리스의 베이커리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황실 전용 최고급 설탕'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최근 황실 수입 통제 규정 때문에 이 설탕들이 갈 곳을 잃고 썩어가고 있었거든요. 저는 단지 가난한 장학생으로서, 이 버려지는 설탕의 '탄화수소 결합'과 '열량 보존 법칙'을 이용해 난로의 연비를 올린 것뿐입니다!"

루카스는 뻔뻔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설탕 결정에 미세한 1서클 온열 수식을 동조시켜서 장작과 함께 태우면, 설탕이 캐러멜라이징되면서 발생하는 열기 배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설탕 동조식 초고효율 발열법'이죠! 못 믿기시겠다면 제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고대 극성 장막술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 은백색 마나와 시각적으로 유사한 설탕 가루를 땔감으로 쓰는 척 쇼를 하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얼른 설탕 한 움큼을 쥐고 구리 난로의 투입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속으로 미세하게 마나를 조율해, 최하위 1서클 '점화(Ignite)' 마법을 발동시켰다.

*쉬이이이익-!*

그의 무의식적인 마나 동화 능력이 작동했다. 1서클 마법의 마나 공명 주기가 100%를 초과하여 강제로 정밀 조율되는 순간, 난로 내부의 조잡한 불꽃이 백은색 광휘를 뿜어내며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방 안의 온도가 온천탕 수준으로 치솟았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달콤한 탄내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어, 어떤가요? 가성비가 아주 끝내주죠? 이 정도면 겨울철 난방비 걱정은 끝입니다!"

루카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알베르트는 그 광경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거리냐?'

알베르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국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자, 마법 수식의 대가였다. 그의 눈에 비친 루카스의 난로 마법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극치'였다.

열 변환 공식은 초등적인 수준이었고, 마나의 흐름은 뚝뚝 끊어졌으며, 장작과 설탕을 섞어 태운다는 발상 자체는 마법 공학적 모독에 가까웠다.

그런데 결과물이 이상했다.

'말이 안 된다. 이토록 초비효율적인 마법 구조에서 어떻게 이런 천재지변에 가까운 고출력 열효율이 나오는 거지? 이 정도 열량이면 4서클 화염 마법인 '인페르노'의 국소 압축 단계에 비견될 수준이다. 겨우 1서클 점화 마법과 설탕 가루 따위로 이런 출력을 낸다고?!'

알베르트의 완벽주의적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안경 너머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설탕의 탄화수소 결합이…… 마나의 공명 주기를 강제로 왜곡해서…… 아니, 하지만 기하학적 수식의 대칭성이 전혀 맞지 않는데? 어떻게 열 변환 효율이 400%를 초과하는 거지? 이 공식은 수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에이, 회장님. 이론이 뭐가 중요합니까? 따뜻하면 장땡이죠. 원래 평민들의 지혜라는 게 다 이렇습니다. 이론은 야매지만 실전에는 강한 법이거든요."

루카스가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옆에 서 있던 수색대장 다미엔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결정석을 바라보았다. 결정석은 여전히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고위 마법의 흔적이 아니라 난로 속에서 타오르는 '초고열의 설탕 마나 반응'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건 마법사의 은백색 마나 흔적이 아니라, 그냥 설탕이 고열에 타면서 발생하는 특이 마나 반응 같습니다." 부관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다미엔은 이마를 짚었다.

"……설탕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군. 은백색 마나의 자취를 쫓아왔거늘, 겨우 기숙사에서 불법 전열기구를 개조해 쓰던 평민 장학생의 꼼수였다니."

다미엔의 얼굴에 짙은 허탈감이 감돌았다. 그는 들고 있던 결정석을 거두며 차갑게 읊조렸다.

"시간을 낭비했군. 서쪽 결계의 단락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다. 알베르트 회장, 우리는 지하 도서관 방면을 더 수색하겠네."

"아, 예. 그러십시오, 사령관님."

알베르트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루카스의 구리 난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야. 이건 단순한 야매가 아니다. 이 수식의 이면에는 무언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차원적인 마나 제어법이 숨겨져 있어. 평민 장학생 따위가 어떻게 이런 효율을?'

알베르트의 질서 결벽증과 지적 호기심이 미친 듯이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기숙사 규정 위반으로 루카스를 처벌하기에는 명분이 애매했다. 그가 쓴 것은 금지된 위험 마법이 아니라, 단지 '설탕을 넣은 개량 난로'였기 때문이었다.

"루카스 에반스."

알베르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규정의 회색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해 넘어가는군. 하지만 기숙사 내 불법 전열기구 소지죄로 벌점 3점을 부과하겠다. 그리고 이 난로는…… 당장 철거해라."

"에이, 회장님! 이 추운 겨울에 난로도 없이 살라니요! 너무하십니다!"

루카스가 짐짓 울상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좋아, 통했다! 일단 은백색 흔적은 완벽하게 덮었고, 퇴학 위기도 넘겼다!'

알베르트는 깊은 의구심과 착란을 품은 채, 수색대원들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그는 루카스가 바닥에 떨어뜨린 개량 마법식 메모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철컥.*

마침내 방 안의 모든 불청객이 사라졌다.

"후아어어어……."

루카스는 그대로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긴장이 풀리자 다시금 뇌 피로가 몰려왔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 질서 결벽증 녀석, 눈빛으로 사람을 썰어버릴 기세야. 그래도 이만하면 완벽한 방어였다."

그는 남은 마카롱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달콤한 은퇴 생활의 연장선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스스슥.*

암전 마법이 걸려 있던 기숙사 옷장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과연. '설탕 동조식 초고효율 발열법'이라니."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하지만 루카스에게는 저승사자의 속삭임과도 같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루카스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옷장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땋아 내린 여학생, 실비아 드 발루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루카스가 알베르트를 속이기 위해 대충 서랍 속에 쑤셔 박아두었던 '진짜 고대 극성 장막술 개량 수식'이 적힌 양장 노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실, 실비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루카스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실비아는 진지하다 못해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너는 알베르트 회장을 속이기 위해 야매 가내수공업이라 우겼지만, 내 눈은 속이지 못해, 루카스 에반스. 이 노트에 적힌 개량 수식…… 이건 단순한 난로용 공식이 아니야."

그녀가 노트를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루카스가 꼰대질을 참지 못하고 극성 장막술의 마나 흐름을 100% 효율로 뜯어고쳐 놓은,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마법 공식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마나의 공명 주기를 극대화하여 화염의 순수 극성을 추출하는 방식. 이건 6서클 이상의 고위 화염 연성진에 적용할 수 있는 기적의 공식이야. 너는 이 위대한 공식을 겨우 기숙사 난로 따위에 쓰고 있었던 거군."

"아니, 그건 그냥 낙서야! 낙서라고! 얼른 이리 내놔!"

루카스가 손을 뻗었지만, 실비아는 가볍게 몸을 피하며 노트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뺨이 흥분으로 붉게 상상되어 있었다.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알겠어. 나에게 이 공식을 전수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연극을 꾸미신 거였군요. 나의 한계를 깨뜨릴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었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미친 여자야! 난 스승님이 아니라고!"

루카스의 절규는 실비아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정했어. 오늘 밤 아카데미 중앙 연습장에서, 이 개량 수식을 그대로 적용해 내 '플레임 버스트'를 전개해 보겠어.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완벽한 6서클 화염 연성진이 탄생할 거야."

실비아의 눈동자 속에서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수식은 1서클 난로에 썼기에 망정이지, 진짜 6서클 화염 마법에 그대로 대입했다간 아카데미 중앙 연습장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터였다.

"잠깐, 야! 하지 마! 그거 그대로 쓰면 진짜 다 날아간다고-!"

실비아는 이미 창문을 열고 바람처럼 사라진 뒤였다.

달빛이 비치는 아카데미의 밤하늘 아래, 거대한 파멸의 불꽃이 피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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