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마차의 차륜이 자갈밭을 짓이기며 내는 끄덕임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붉은 해골과 천칭. 황실 특별수사대의 그 불길한 인장이 석양을 받아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기도 전에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정문 인근의 공기 자체가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루카스는 품에 안은 마카롱 상자의 모서리를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봉투의 감촉만이 그가 처한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저 인간이 왜 벌써 여기에 나타나느냔 말이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불길하게 흘러내렸다. 국가 연금을 꼬박꼬박 뜯어내며 조용히 침대 위에서 뒹굴려던 그의 원대한 은퇴 계획 위로 거대한 먹구름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루카스는 한 걸음,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뒤로 빼며 베이커리의 그늘 깊숙한 곳으로 몸을 쑤셔 넣었다.
마차의 발판을 딛고 내려선 다미엔 카엘 사령관의 군화가 아카데미의 대리석 바닥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탁.
정적을 깨는 단 한 번의 파공음.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은색 칼집이 가볍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회색 눈동자가 아카데미의 본관 건물을 쓸어내리듯 훑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한 장의 붉은 수배령이 쥐어져 있었다. 은백색 마력을 흩뿌리며 황실의 속을 뒤집어 놓은 전설의 대마법사, 레메게톤의 추적장이다.
"황실의 소중한 세금이 어디로 새나 했더니, 이런 온실 같은 곳이었군."
다미엔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가 장갑을 낀 손으로 가슴팍의 마법 브로치를 톡톡 두드렸다.
"특별 연금 낭비를 막고 국가의 안위를 수호하는 것은 제국 특별수사대의 불변하는 사명이다. 레메게톤. 그 노망난 영웅이 이 학원 구석에 쥐새끼처럼 숨어들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그가 품 안에서 꺼내 든 것은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결정석이었다. 사면이 정교하게 깎인 그 보석은 흐릿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지만, 다미엔이 마력을 주입하자마자 내부에서부터 기괴한 안개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극성 공명 결정석.’
루카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마법 학계의 이단아들이 개발해 낸 최악의 탐지 장비였다. 마나 효율 100%에 달하는 초고농도 잔상, 즉 오직 레메게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완벽한 순도의 마나 흔적에만 극도로 민감하게 동조하여 빛을 발하는 물건이다.
"아카데미의 결계 관리자들에게 전해라."
다미엔이 차갑게 명령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카데미 전역에 최고 밀도의 은백색 마나 탐지 결계를 가동한다. 쥐새끼 한 마리, 먼지 한 톨도 이 탐지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웅-!
결정석이 황홀할 정도로 밝은 보랏빛 파동을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막이 아카데미 상공을 뒤덮으며 아래로 빠르게 내려앉았다. 그 파동이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대기 중의 마나가 미세하게 공명하며 징징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 윽…… 뭐야, 이 머리 아픈 느낌은?"
베이커리 안쪽에서 작업대를 정리하던 엘리스가 갑자기 관자놀이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일반인은 감당하기 힘든 고농도의 탐색 마나 파동이 뇌신경을 직접 자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엘리스, 괜찮아?"
루카스가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머리가…… 지끈거려. 갑자기 공기가 엄청 무거워진 것 같아. 숨쉬기가 힘들어……."
엘리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으로 쓰러지려 했다. 그녀는 마력 감응력이 미세하게 존재하는 체질이었기에, 황실의 강압적인 탐지 결계 파동에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뇌에 영구적인 마력 과부하가 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엘리스는 루카스의 소중한 디저트 공급처이자, 이 지루한 아카데미 생활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였다.
‘제길, 이 망할 공무원 새끼들이 민간인 피해는 생각지도 않고 들이미는군.’
루카스의 눈매가 사납게 좁아졌다. 본능적으로 마나 동화 차단막을 형성해 엘리스를 감싸 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범하게 차단막을 펼쳤다간 바깥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다미엔의 극성 공명 결정석에 '나 여기 있소' 하고 광고하는 꼴이 된다. 1서클 마법이라도 루카스가 손을 대는 순간 마나 효율이 100%를 초과해 은백색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해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 탐지망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그때, 루카스의 시선이 베이커리 구석에 방치된 커다란 나무 상자에 닿았다. 상자 표면에는 황실의 인장과 함께 '최고급 정제 감미료 - 궁정 전용'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엘리스, 저 상자……."
"아, 저거? 헉, 헉…… 응. 황실 전용 최고급 설탕 상자야. 학생회가 이번에 수입 제한 규정 들먹이면서 전량 압수하겠다고 난리 치던 거 있잖아. 내가 뒷골목 루트로 겨우 빼돌려서 숨겨놓은 건데……."
엘리스가 신음하며 대답했다.
황실 전용 설탕. 그리고 설탕 수입 통제 규정.
루카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뇌리에 번뜩이는 마법식의 유기적 결합이 완성되었다.
‘황실 전용 설탕은 일반 설탕과 달라. 정제 과정에서 마나 친화성이 극도로 높은 '실버 리프' 성분이 미량 첨가되지. 그래서 단맛이 깊고 마나 회복에 좋은 거다. 그리고 그 성분은…….’
특정 주파수의 바람 마법과 만나면 아주 독특한 물리적 진동을 일으킨다.
"엘리스, 잠깐만 눈 감고 있어 봐."
루카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가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마나를 직접적으로 방출하는 대신, 베이커리 내부의 대기 흐름을 미세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다.
사용할 마법은 고작 1서클의 기본 바람 마법인 '브리즈(Breeze)'. 학원 청소부들이 먼지를 털 때나 쓰는 지극히 하찮은 마법식이었다.
하지만 루카스의 손끝을 거치는 순간, 그 하찮은 수식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적으로 개변되었다.
‘마나의 공명 주기를 강제로 조율한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다미엔의 탐색 파동 주파수가…… 430헤르츠 대역인가? 낡아빠진 관료주의적 세팅이군.’
루카스는 브리즈의 공명 진동수를 베이커리 바닥에 쌓인 미세한 밀가루 먼지, 그리고 황실 설탕 상자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설탕 입자들의 물리적 음향 주파수와 100% 일치하도록 비틀어버렸다.
스으으으……!
베이커리 내부에서 아주 미세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와 설탕 가루들이 허공으로 부드럽게 떠올랐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보기엔 그저 바람에 먼지가 날리는 자연 현상에 불과했다. 마력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
하지만 이 먼지 입자들은 루카스의 마나 동화 능력을 통해 다미엔의 탐지 파동을 흡수하고 굴절시키는 완벽한 '음향적 차단막'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파앗!
베이커리를 덮치던 보랏빛 탐지 파동이 뿌연 먼지 장막에 부딪히는 순간, 빗방울이 유리창에 튕겨 나가듯 사방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엘리스를 짓누르던 중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 머리가 안 아파."
엘리스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방금 바람이 분 것뿐인데……."
"환기가 안 돼서 그랬나 보지. 먼지가 좀 날리니까 머리가 맑아지잖아."
루카스가 시침을 뚝 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편, 아카데미 정문에 서 있던 다미엔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의 손에 들린 극성 공명 결정석이 갑자기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보랏빛 안개가 소용돌이치던 결정석 내부가 뿌연 회색으로 흐려지더니, 이내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침묵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부관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사령관님! 탐지 결계의 신호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아카데미 서쪽 구역에서 강력한 간섭 현상이 발생해 레이더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다미엔의 눈썹이 꿈틀했다.
"오작동일 리가 없다. 마나 효율 100%의 흔적이 감지되자마자 결계가 강제로 침묵당했어. 녀석이 근처에 있다. 그것도 아주 하찮은 수단으로 황실의 극비 장치를 기만했군."
그가 결정석을 꽉 쥐며 베이커리가 위치한 서쪽 구역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서쪽 구역을 봉쇄해라! 먼지 한 톨까지 샅샅이 뒤져서라도 마나의 근원을 찾아내!"
"예, 옛!"
황실 수사대원들이 철제 갑옷을 철럭이며 서쪽 상가 구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베이커리 창밖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가셨다.
‘기만하는 것까지는 완벽했는데…….’
루카스는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1서클 마법의 공명 진동수를 먼지의 음향 주파수와 동조시키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아카데미라는 거대한 공간이 머금고 있는 마나의 총량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방대했던 것이다.
그가 일으킨 미세한 공명이 대기 중의 잉여 마나를 자극했고, 그것이 마치 도미노처럼 아카데미 전체의 마력 흐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땅줄기가 미세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루, 루카스? 바닥이 왜 이래? 지진이야?"
엘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테이블을 붙잡았다.
"아니, 지진은 아닌데……."
루카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마나의 동조 주파수가 아카데미 서쪽 방어 결계의 핵심 코어랑 맞물려 버린 것 같네."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아아앙-!
아카데미 서쪽 하늘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방어 결계의 장막이 푸른색 불꽃을 뿜으며 거대하게 폭발했다. 공기 중의 모든 잉여 마나가 한꺼번에 과부하를 일으키며 단락되어 버린 것이다.
쿠앙! 퍼어억!
서쪽 탑의 결계석들이 차례로 터져 나가며 엄청난 굉음이 아카데미 전역을 흔들었다.
삐이이이이이-!
동시에 아카데미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서쪽 방어 결계 붕괴를 알리는 적색 경보음이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황실 수사대원들도, 사냥개 같은 다미엔도, 그리고 베이커리 안의 루카스도 모두 굳어버렸다.
"……망했군."
루카스가 품 안의 마카롱 상자를 안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완벽한 은퇴 생활이, 서쪽 결계의 폭발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니, 마른하늘에 마력 폭탄이 떨어진 꼴이었다.
"꺄아악! 습격이다! 마수 침공인가?!" "대피해! 서쪽 탑이 무너진다!"
아카데미 전역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숙사 창문마다 놀란 학생들이 대가리를 내밀었고, 경비 마법사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루카스는 터져 나가는 서쪽 장막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라떼는 말이야, 결계 하나를 쳐도 공명 주파수 간섭 감쇄 장치를 삼중으로 덧대서 이런 사소한 진동에는 끄떡도 안 하게 만들었는데 말이지. 요즘 학계 놈들은 겉멋만 들어서 외관만 번지르르하게 짓고 기초 공사는 나 몰라라 하니까 이 모양 이 꼴이 나는 거라고!'
속에서 마법 꼰대의 피가 끓어올랐지만, 지금은 남의 부실 공사를 비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철제 갑옷을 입은 수사대원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흡사 폭주하는 멧돼지 떼 같은 기세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아카데미 본관 방향에서부터 푸른빛 서리 같은 마력이 일렁이더니 익숙하고도 피하고 싶은 실루엣이 허공을 가르며 나타났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은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칼같이 다려진 제복. 학생회장 알베르트 반스였다.
그는 마법 윈드 보드를 타고 우아하게 하강하더니, 폭발의 진원지인 베이커리 앞마당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결계탑과,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루카스를 차례로 훑었다.
"상황 보고."
알베르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의 등 뒤로 학생회 규율부원들이 순식간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서쪽 제4결계 코어 완파. 잔류 마나 분석 결과, 원인 불명의 고주파 진동으로 인한 과부하 폭발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부부장이 슬그머니 루카스를 가리켰다.
"사고 발생 직전, 장학생 루카스 에반스가 현장 인근에 체류 중이었습니다."
알베르트의 시선이 루카스의 품에 안긴 마카롱 상자에 꽂혔다.
"루카스 에반스. 또 너로군. 이번엔 결계 브레이커 노릇이라도 하러 온 건가?"
"회장님,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단것이 당겨서 얌전하게 마카롱을 사 가던 가난한 평민 장학생일 뿐입니다만."
루카스가 억울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알베르트의 안광은 매서웠다.
"평민 장학생이 기숙사 통금 시간 직전에 서쪽 결계탑 바로 밑 베이커리에서 서성인다? 그것도 결계가 정확히 공명 폭발을 일으킨 이 타이밍에?"
"이건 우연입니다! 오비이락 아십니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요!"
"내 사전엔 우연이란 단어는 없다. 오직 철저한 인과관계와 교칙 위반만 존재할 뿐."
알베르트가 품 안에서 징계 고발 서류를 꺼내 들려던 찰나였다.
*쿵! 쿵! 쿵!*
대지를 울리는 무거운 군화 소리와 함께, 특별수사대장 다미엔 카엘이 수사대원들을 거느리고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극성 공명 결정석'은 여전히 맹렬하게 웅웅거리며 회색빛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비켜라, 학생회장."
다미엔이 차갑게 으르렁거렸다.
"이 폭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100% 효율의 초고농도 마나가 순간적으로 대기를 휩쓸었어. 레메게톤…… 그 늙은 여우가 이 근처에서 마법을 부린 게 틀림없다."
다미엔의 눈동자가 사냥개처럼 빛나며 루카스와 엘리스가 서 있는 베이커리 입구를 향했다.
루카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대기 중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은백색 마나의 잔향이 미세하게 감돌고 있었다. 다미엔의 결정석이 아주 조금만 더 정밀하게 작동한다면, 그 잔향이 루카스의 손끝에서 뻗어 나갔다는 사실을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 냄새를 덮을 만한 완벽한 핑계가 필요해.'
루카스의 눈동자가 굴러가다 베이커리 내부의 찌그러진 나무 상자에 멈췄다.
'황실 전용 최고급 설탕 상자.'
그리고 그 상자 틈새로 흘러나와 허공에 흩날리고 있는 미세한 은빛 설탕 가루들.
머릿속에서 기발하다 못해 뻔뻔하기 짝이 없는 기행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아앗! 사령관님! 회장님! 조심하십시오! 아직 공기 중에 '그 물질'이 남아 있습니다!"
루카스가 갑자기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의 오버액션에 다미엔과 알베르트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무슨 소리지?"
알베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시겠습니까?! 저기 저 상자를 보십시오! 저건 황실 전용 최고급 설탕입니다! 이번에 학생회에서 수입 제한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보관할 곳이 없어서 저 좁고 밀폐된 베이커리 구석에 억지로 처박아 둔 거라고요!"
루카스가 엘리스의 베이커리 안쪽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최고급 설탕에는 정제 과정에서 마나 친화성이 극도로 높은 '실버 리프' 성분이 들어갑니다! 아시다시피 실버 리프는 미세한 은빛을 띠며 고농도의 마나를 머금고 있죠. 그런데 이걸 밀폐된 공간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
루카스가 짐짓 전문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공기 중의 설탕 밀도가 한계치에 달한 상태에서, 아카데미의 방어 결계 순찰 파동이 이 베이커리를 스쳐 지나간 겁니다! 그 순간, 실버 리프 입자들과 방어 결계의 마나가 공명하여…… 콰광! 이른바 '마나 설탕 분진 폭발'이 일어난 거라고요!"
"……분진 폭발?"
알베르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렇습니다! 이건 마법적인 습격이 아니라, 지극히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가내수공업적 재해입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저 은빛 가루들을 보십시오! 저게 대마법사의 마나 흔적으로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존나 비싸고 달콤한 탄 설탕 가루일 뿐이라고요!"
루카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 떠도는 은빛 가루를 손으로 훔쳐 입에 쏙 넣었다.
"음! 역시 달콤하군! 탄내 나는 솜사탕 맛입니다! 사령관님도 한 입 드셔 보시겠습니까?"
"……."
다미엔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제국 최고의 특별수사대장인 자신이, 고작 설탕 가루 탐지기에 낚여 온 아카데미를 헤집어 놓았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다미엔이 결정석을 은빛 가루에 대자, 결정석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달콤한 설탕 냄새에 웅웅거릴 뿐이었다. 루카스가 바람 마법으로 마나의 주파수를 교묘하게 비틀어 자연 먼지와 동조시켜 놓았으니, 순수한 마나를 탐지하는 결정석이 반응할 리가 만무했다.
"이런 무능한……."
다미엔이 이빨을 갈았다.
"설탕 가루 따위에 황실의 극비 결계가 무력화되다니. 라클레어 아카데미의 행정 관리는 이 모양이란 말인가?"
그 화살은 고스란히 학생회장인 알베르트에게로 향했다.
알베르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특별수사대장님. 학내의 Contraband(밀수품) 단속은 학생회의 자치 권한입니다. 그리고 이 사고의 원인이 정말로 '불법 무단 적재된 설탕' 때문이라면……."
알베르트가 살벌한 눈빛으로 루카스와 엘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단순한 과실이 아니다. 학내 안전 관리 규정 제32조 위반, 비허가 위험 물질 소지죄, 그리고 국가 중요 시설물 파괴죄에 해당한다."
그가 품 안에서 붉은색 징계장을 꺼내 들었다.
"루카스 에반스. 그리고 엘리스. 너희 둘을 학내 안전 위협 현행범으로 기소하겠다. 내일 아침 학생회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준비를 해라."
"예?! 잠깐만요, 회장님! 저희는 그냥 가난한 자영업자와 배고픈 장학생일 뿐인데요?!"
루카스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결계 복구 비용 및 징계 수위에 따라…… 최대 '즉시 퇴학' 처분까지 내려질 수 있음을 경고하지."
퇴학.
그 두 글자가 루카스의 귓가를 때리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다는 것은, 장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수령하고 있던 국가 연금의 세탁 경로가 완전히 막힌다는 뜻이었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요, 평생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려던 그의 원대한 은퇴 계획이 통째로 공중분해 될 위기였다.
바로 그때였다.
웅-!
다미엔의 손에 들려 있던 극성 공명 결정석이, 이번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기괴한 붉은빛을 뿜어내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이-!*
"사령관님! 결정석의 극성이 반전되었습니다!" 부관이 경악하며 외쳤다.
"이건 설탕 가루가 아닙니다! 서쪽 결계가 깨진 틈새를 타고…… 아카데미 지하 내부에서 진짜 '은백색 마나 흔적'의 근원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다미엔의 고개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아카데미 본관 지하, 깊숙이 봉인된 고대 도서관의 방향을 향해 고정되었다.
"찾았다."
다미엔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루카스는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하 도서관에는 그가 입학 첫날, 실비아의 마법식을 뜯어고치며 남겨두었던 '진짜' 은백색 마나의 잔해들이 봉인되어 있었다.
퇴학 위기에 처한 학생회장의 징계장, 그리고 지하의 진짜 정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황실의 사냥개.
루카스는 품 안의 마카롱 상자를 더욱 꽉 움켜쥐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내 노후 자금…… 진짜로 날아가게 생겼잖아, 이 망할 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