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내일 오전 9시, 대강당이다."

다미엔이 남기고 간 선언은 기숙사 앞마당의 서늘한 밤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숙사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간 루카스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정체 폭로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분노였다.

'내일 오전 9시라니. 은퇴한 백수에게 오전 9시 기상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가? 이건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사법 폭력이다!'

루카스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바르르 떨었다.

지독한 저혈당이 뇌를 갉아먹는 느낌에 그는 베개 밑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은 엘리스가 낮에 몰래 찔러 넣어 준 특제 프랑스식 레몬 타르트였다. 버터의 풍미와 레몬 시럽의 시큼하면서도 강렬한 단맛이 혀끝을 자극하자, 정수리까지 쨍하게 울리던 마나 동화 부작용의 두통이 간신히 가라앉았다.

와작, 와작. 어둠 속에서 타르트를 씹어 삼키며 루카스는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양장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낮 동안 도서관 지하 깊숙한 서고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복사해 둔 아카데미 설립 헌장의 사본이었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200년 전 초대 교장과 황제가 서명한 낡은 금박 인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냥개 놈이 아주 기가 살아서 날뛰는군."

루카스는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핥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은은한 은백색으로 안광을 발했다.

"공무원 놈들이 법을 무기로 삼는다면, 나는 그 법전으로 대가리를 깨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 * *

다음 날 오전 8시 50분, 라클레어 아카데미 중앙 대강당.

대강당의 무거운 청동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친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평소라면 학생들의 잡담으로 시끌벅적했을 넓은 공간에는 오직 황실 특별수사대의 제복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강당 중앙에는 거대한 마력 측정기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붉은색 마정석이 촘촘히 박힌 그 기계는 시전자의 미세한 마나 파동까지 분석해 신원을 대조할 수 있는 황실의 최첨단 탐지 장비였다.

"시간이 되었군."

대강당 단상 위에 우뚝 선 다미엔 카엘이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문가로 향했다.

정확히 오전 9시.

가죽 가방을 대충 어깨에 걸치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오는 청년이 보였다. 루카스 에반스였다. 그의 멍청해 보이는 표정과 구겨진 교복 셔츠는 영락없이 징계 위기에 처한 무능한 평민 장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셨습니까, 사령관님. 아침부터 아주 정력적이시네요. 공무원의 표상이라 부를 만합니다."

루카스가 하품을 참지 못해 눈물 한 방울을 훔치며 빈정거렸다.

"입 조심해라, 루카스 군. 오늘의 심문은 단순한 학내 징계 위안이 아니다."

다미엔이 차갑게 읊조리며 탁자 위에 황금 인장이 찍힌 공문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것은 황실 마법관리국이 발급한 '강제 마법 감정 및 추방 특별 심문령'이다. 네놈이 숨기고 있는 그 비정상적인 마나 흔적과 위조된 신분을 이 자리에서 낱낱이 밝혀내겠다."

그 옆에 서 있던 학생회장 알베르트 반스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의 잘 닦인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사령관님, 제국의 법률을 존중합니다만, 이곳은 황실 수사대의 취조실이 아닙니다. 학내 자치 규정에 따라 학생회장의 참관 하에 절차가 진행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이지, 반스 군. 하지만 황실의 직속 명령은 아카데미의 자질구레한 교칙보다 우선한다. 자, 루카스 에반스. 당장 마력 측정기에 손을 올려라."

다미엔이 턱짓으로 붉은 마정석 측정기를 가리켰다. 측정기 주위로 붉은색 마력 장막이 윙윙거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저곳에 손을 대는 순간, 루카스의 마나 주파수가 측정되어 황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대마법사 '레메게톤'의 고유 마나 파동과 100% 일치한다는 경보가 울릴 터였다.

주변에 모여든 장교들이 루카스를 포위하듯 좁혀왔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러나 루카스는 긴장하는 기색조차 없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아주 두껍고 낡아 빠진 가죽 장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툭.

책이 탁자 위에 떨어지며 묵직한 먼지구름을 피워올렸다.

"측정기에 손을 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루카스가 비죽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책장을 스르륵 넘겼다.

"그 전에 법적인 절차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미엔 사령관님."

"무슨 수작이냐."

다미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작이라뇨. 법률과 절차를 숭상하시는 황실의 사냥개께서 설마 '라클레어 아카데미 설립 헌장'을 무시하시진 않겠죠?"

루카스의 손가락이 누렇게 바랜 고서의 한 페이지를 콕 짚었다. 그곳에는 기하학적인 마법 문양과 함께 고대 제국어로 쓰인 조항이 적혀 있었다.

"아카데미 설립 헌장 제9조. '황실과 그 산하 모든 사법 집행 기관은 아카데미 영내에 수용된 인원에 대해, 학내 자치 법원의 최종 판결이나 교장의 친필 서명 동의서가 없는 한, 어떠한 강제 수색 및 사법 관할 직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시, 해당 집행관의 사법 권한 사본 전체는 학내 법제 위안 무효로 기각되며, 황실은 아카데미에 영구적인 사죄금을 지불해야 한다.'"

대강당 안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다미엔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옆에 서 있던 알베르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이것은……."

알베르트가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와 고서의 내용을 훑어내렸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완벽주의 관료주의자인 그에게 이 고대 법률 조항은 그 어떤 마법 공식보다 아름답고 완벽한 '법적 기적'으로 다가왔다.

"200년 전, 라클레어 아카데미가 제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로 초대 황제에게 직접 부여받은 영구 면책 특례 조항……! 이 조항은 제국 헌법 제3조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특별법이다!"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흥분이 감돌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학내 자치와 규율을 수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웅장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다미엔 사령관님이 가져오신 저 뻔지르르한 '특별 심문령'은 황실 마법관리국의 직인만 찍혀 있을 뿐, 우리 아카데미 교장 선생님의 친필 서명도, 학내 자치 법원의 판결문도 첨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이 서류는 이 영내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냥 질 나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뜻이죠."

"이 건방진 쥐새끼가……!"

다미엔이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돋아났다.

"이곳은 제국의 영토다! 황실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수 있다!"

"아, 반역죄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루카스가 품에서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꺼내 알베르트에게 건넸다.

"하지만 회장님, 설립 헌장 제9조를 위반하고 사법권을 남용하려 한 황실 집행관에 대해서는, 학생회가 즉각적으로 '학내 영토 무단 침범 및 불법 감금 미수 혐의'로 제국 최고 행정 법원에 고발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알베르트가 서류를 받아들고 안경테를 치켜올렸다. 그의 입꼬리가 제어할 수 없이 위로 호선을 그렸다.

"정확합니다, 루카스 에반스 군. 교칙과 법률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줄이야. 자네는 진정한 라클레어의 모범 장학생이군."

알베르트가 다미엔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태도는 이전의 소극적인 방어에서 완벽한 공격 태세로 전환되어 있었다.

"다미엔 사령관님. 아카데미 설립 헌장 제9조에 의거하여, 귀하가 제시하신 특별 심문령의 학내 효력을 즉각 무효화합니다. 또한, 영내에서 학생을 강제로 억류하고 마력 측정을 강요하려 한 행위에 대해, 학생회장 직권으로 즉시 퇴거 명령을 발동하겠습니다."

"반스 학생회장! 지금 황실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냐!"

다미엔이 사납게 외쳤다. 그의 전신에서 붉은색 마력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대강당의 유리창을 잘게 흔들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품에서 학생회 전용 인장을 꺼내 루카스가 작성해 온 고발장에 선명한 붉은 인을 찍어 눌렀다.

"황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오직 법과 질서를 수호할 뿐입니다. 사령관님께서 법을 어기신다면, 저희는 제국의 법전으로 사령관님을 탄핵할 수밖에 없습니다."

쿵!

알베르트가 의사봉을 내리치듯 탁자를 쳤다.

"이 시간부로 황실 수사대의 대강당 점거를 해제합니다. 루카스 에반스 군에 대한 모든 심문 절차는 기각되었습니다. 퇴거해 주십시오."

사이다를 통째로 들이켠 듯한 청량감이 대강당 가득 퍼져나갔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던 학생들과 장교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황실 수사대장이, 고작 평민 장학생이 들고나온 200년 묵은 종이 한 장에 완벽하게 발목이 잡혀 사법적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다미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물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칼자루를 쥐듯 파르르 떨렸다.

"……좋다. 아주 훌륭한 법률 놀음이군."

다미엔이 으드득 이빨을 갈며 루카스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법이 언제까지 네놈의 그 더러운 정체를 숨겨줄 수 있을지 두고 보지."

다미엔은 거칠게 몸을 돌려 대강당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수색대원들의 발걸음은 처참하게 꺾여 있었다.

루카스는 멀어지는 다미엔의 등 뒤에 대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조심히 가십시오, 사령관님! 행정 절차 지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엔 꼭 도장 제대로 찍어 오세요!"

그 비아냥거림에 다미엔의 어깨가 흠칫 떨렸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대강당을 빠져나갔다.

"휴우."

루카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그머니 의자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는 듯한 극심한 허기가 다시 찾아왔다. 뇌세포들이 단것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루카스 군."

그때 알베르트가 다가와 루카스의 어깨를 꽉 짚었다. 그의 눈빛은 흡사 잃어버린 보물을 찾은 고고학자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자네의 그 지적이고 논리적인 법학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네. 평민 신분으로 고대 헌장의 사각지대를 찾아내다니, 자네야말로 진정한 라클레어의 인재야. 앞으로 학생회 행정 보좌관으로 영입하고 싶은데 어떤가?"

"예?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잠이 많아서 아침에 깨우는 게 싫었을 뿐입니다……."

루카스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행정 보좌관이라니! 평화로운 무위도식 은퇴 생활에 일거리를 얹으려고 하다니, 이 무슨 끔찍한 악마 같은 제안인가!'

착각의 늪에 빠진 알베르트는 루카스의 사양을 '겸손함'으로 해석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훌륭한 인품이군. 자네의 그 겸허한 태도, 마음에 들었네. 벌점 3점은 이번 공로를 인정해 특별히 감면해 주지."

"오,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마 벌점이 깎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루카스는 하루빨리 기숙사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 * *

한편, 아카데미 대강당을 빠져나와 중앙 광장 음지로 들어선 다미엔 카엘의 표정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사령관님, 정말 이대로 철수하시는 겁니까?"

부관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물었다.

"철수?"

다미엔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빛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내 사전엔 패배란 없다. 법조문 뒤에 숨어 쥐새끼처럼 웃고 있는 꼴을 더는 눈 뜨고 못 봐주겠군."

그는 품 안에서 붉은색 마력이 휘감긴 소형 유도 아티팩트를 꺼냈다. 시전자의 마력을 강제로 폭주시킬 수 있는 황실 비밀 작전용 '마력 폭주 트리거'였다.

"법이 그놈을 보호한다면, 법이 끼어들 틈도 없는 상황을 만들면 그만이다."

다미엔이 차갑게 명령했다.

"정예 요원들을 대기시켜라. 루카스 에반스가 광장을 지날 때, 기습적으로 물리적 타격을 가한다. 놈이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 마법을 전개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여."

"하지만 사령관님, 학내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자치법 위반……."

"상관없다. 놈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단 1서클의 마법이라도 쓰는 순간, 그 은백색 마나 흔적이 이 광장 전체에 까발려질 것이다. 그 흔적만 확보한다면, 설립 헌장 따위는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짓밟아버릴 수 있다."

다미엔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지금 당장 실행해라. 놈의 진짜 정체를 이 광장 한가운데서 강제로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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