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한서진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클릭 한 번은 불과 세 시간 만에 활자화된 역병이 되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단독] 충무로의 천재 괴물 신예 S군, 상습 프로포폴 투약 혐의 내사 중? [충격] 극단 소극장 ‘무단’ 출신 천재 배우, 과거 우울증 치료 기록 입수… “자살 충동 수차례 언급”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이미 더럽혀진 이름들로 빼곡했다. 모니터 너머로 쏟아지는 자극적인 활자들은 벌써부터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무서운 속도로 조회수를 갈아치우고 있었다.

오디션의 흥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날 새벽, 온하준은 소극장 무단의 낡은 분장실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액정의 푸른 빛이 그의 창백하게 가라앉은 얼굴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띠링!

눈앞에 붉은색 경고등이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경고: 인과율의 이탈 및 대중의 위화감 감지.] [대중의 '리스크 투표' 게이지: 75% 돌파!] [경고: 임계점(90%) 도달 시 사용자 ‘온하준’의 생명력 및 연기 재능 수치가 영구 소멸 단계에 진입합니다.] [부채 이관 부작용 실행: 이인증(Depersonalization) 및 심인성 흉통 가중.]

"윽……!"

하준이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가슴뼈 안쪽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이 심장을 통째로 움켜쥐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몰아쳤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감각이 온몸의 신경망을 타고 뇌척수액까지 흘러들었다. 시야가 흐려지며 주변의 사물들이 수천 조각의 유리 파편처럼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이 공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지독한 이격감. 회귀 전, 신우현의 차가운 유해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깊은 나락의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하, 하하……."

그러나 하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비명이 아닌, 건조하고 날카로운 웃음소리였다. 그는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귀밑까지 끌어 올렸다.

고압 희색(高壓 喜色). 극한의 패닉이 찾아올수록,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수록 그는 더 찬란하고 오만하게 웃는 버릇이 있었다. 가면을 쓰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완벽주의자의 마지막 방어기제였다.

"고작 이 정도 찌라시로 법석을 떠는 건가, 한서진 대표님은? 창의성이 아주 멸종 수준이군."

하준은 비틀거리며 거울 앞으로 걸어가 제 얼굴을 응시했다. 거울 속의 남자는 끔찍하리만치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가웠다.

그때, 분장실 구석의 낡은 나무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던 백설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디션장에서 하준의 도발적인 리드에 이끌려 평생 자신을 죔쇠처럼 묶고 있던 기교 연기의 껍질을 깨트린 그녀였다. 하준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대차대조표의 명세를 슬쩍 보았다.

[소속 배우: 백설희 (자산 및 부채 명세)] - 자산: 정밀한 감정 제어력 (A+), 주체적 자아 표현력 (B+ -> A로 격상) - 부채: '가면의 조종사' (이든 엔터의 가스라이팅 족쇄) -> [정산 완결: 제거됨] - 현재 몰입도: 88% (독립적 주차 의지 활성화)

오디션장에서의 그 처절했던 교차 연기 끝에, 마침내 백설희의 영혼을 갉아먹던 이든 엔터의 낙인이 완전히 지워진 상태였다. 그녀는 더 이상 한서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목각 인형이 아니었다.

"온하준 씨."

백설희의 목소리는 이전의 기계적인 톤과 달리,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었다.

"방금 이든 엔터 법무팀과 통화를 끝냈어요. 계약 해지 통보서, 내용증명으로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한 대표가 가진 신우현 씨의 가짜 병원 기록, 그거 제가 예전에 기획실에서 훔쳐본 적 있는 조작본이에요. 필요하다면 법정에서 제가 직접 증언하겠어요."

"증언이라니요, 설희 씨."

하준이 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법정까지 가려면 몇 달은 걸립니다. 그동안 우리 영화는 크랭크인도 못 하고 언론의 난도질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겠죠. 한 대표가 노리는 게 바로 그 지루한 진흙탕 싸움입니다."

"그럼 그냥 이대로 맞고만 있겠다는 건가요? 우현 씨는 지금 대기실에서 자기가 마약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넋이 나가 있어요! 저 상태로 두면 정말로……."

"우현이는 안 무너집니다. 내가 그렇게 안 둡니다."

하준의 단호한 어조에 설희가 숨을 삼켰다. 하준은 주머니에서 3화 때 무단 극장 습격 사건 당시 임 실장(한서진의 비서)이 흘리고 갔던 검은색 가죽 수첩과 외장 하드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한서진이 기획한 '비운의 요절 마케팅 포트폴리오'의 세부 실행 계획이 담겨 있었다. 신우현을 천재적인 이미지로 소비한 뒤,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가 사후 저작권과 추모 앨범,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려는 추악한 자본의 설계도였다.

"방어전은 체질에 안 맞아서 말이죠."

하준이 가볍게 윙크를 해 보였다.

"원래 연기라는 건 말입니다, 상대의 대사를 듣고 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대사를 치지 않을 수 없도록 공간의 공기 자체를 먼저 지배하는 예술이거든요."

* * *

그날 오전 10시.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 무단의 로비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든 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언론 통제력 덕분에, 당초 '신우현 마약 파문 해명 기자회견'으로 알려진 자취였다. 기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노트북을 두드리며 날 선 질문들을 고르고 있었다.

"신우현은 어디 가고 온하준이 나오는 거야?"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오늘 여기서 한 번에 털려는 건가?"

수군거림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운 순간, 무대 위 조명이 탁 하고 켜졌다.

단상 뒤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은 오직 온하준 한 명뿐이었다. 신우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벼운 셔츠 차림에 깃을 살짝 세운 하준은, 마치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듯 여유롭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마이크 앞에 섰다.

찰칵! 찰칵! 콰콰콰콰쾅!

미친 듯한 플래시 세례가 그의 시야를 하얗게 차단했다. 이인증의 여파로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다시금 도졌지만, 하준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언론인 여러분. 오늘 날씨가 참 좋은데, 이런 퀴퀴한 지하 극장까지 걸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하준 씨! 신우현 씨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동료 배우로서 알고 계셨습니까?" "과거 소극장 시절부터 우울증이 심각했다는데, 영화 <심연의 가면> 캐스팅을 위해 이를 묵인한 것 아닙니까?"

기자 한 명이 사납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포문을 열었다. 하준은 그 기자의 명찰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든 엔터의 장학생으로 유명한 '대한연예일보'의 방 기자였다.

하준은 단상 위에 서류 봉투 하나를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방 기자님. 질문의 순서가 틀렸습니다. 신우현 배우의 건강 상태를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우선 이 자료부터 보시는 게 언론인의 품격에 맞지 않을까 싶군요."

"그게 뭡니까? 물타기용 해명 자료입니까?"

방 기자가 비아냥거렸다. 하준은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그리고 아주 또렷한 발음으로 딕션을 고트(GOAT)* 수준으로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주석: GOAT - 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최고라는 뜻의 은어로, 여기서는 온하준의 발성이 극장의 낡은 음향 설비를 뚫고 청중의 고막에 꽂히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것은 이든 엔터테인먼트의 한서진 대표께서 직접 기획하고 결재하신 '스타 요절 프로모션 포트폴리오'의 원본 파일입니다."

순간, 극장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들이 일제히 멈췄다.

"요절…… 프로모션이요?"

한 기자가 멍하니 되물었다. 하준은 단상 뒤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 위로 빔프로젝터가 가죽 수첩의 스캔본과 외장 하드에서 추출한 이메일 내역을 띄웠다.

[신우현 사후 마케팅 기획서: 3개년 예상 수익 분석] - 추모 음원 및 미공개 낭독회 음반 발매 시 기대 매출: 45억 원. - 소장용 평전 및 포토북 출판 계약 건 (A출판사 사전 조율 완료). - 우울증 병원 진료 기록 가공을 통한 '비운의 천재' 서사 극대화 시점: 데뷔 영화 크랭크업 직후 언론 살포 예정.

자료가 화면을 가득 채우자, 기자들 사이에서 야유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가십이 아닌, 한 인간의 영혼과 생명을 정교하게 계량하여 상품으로 만들려 한 거대 기획사의 잔혹한 설계도였다.

"이게…… 진짜 이든 엔터의 문서가 맞습니까?"

방 기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하준은 그 모습을 보며 비죽 웃었다.

"아, 참고로 방 기자님이 오늘 아침 7시에 올리신 단독 기사의 초안과 보도 자료 송부 메일 IP 주소가, 이 문서에 적힌 이든 엔터 기획실의 IP와 정확히 일치하더군요. 메일 제목은 '신우현 매장용 소스 송부의 건'이었습니다. 프린트해서 거기 놔두었으니 같이 나눠 가지시면 되겠습니다."

"이, 이건 음해입니다! 조작된 자료예요!"

방 기자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주변 다른 매체의 기자들은 이미 하준이 배포한 자료를 스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같은 시각, 대기실 안쪽에서 모니터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우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뜨거운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준아…….'

우현은 직감했다. 하준이 지금 자신에게 쏟아질 모든 오물과 리스크를 단신으로 받아내며, 한서진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목을 베기 위해 칼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매번 자신을 밀어내고 혼자 무너지려 했던 우현의 심장에, 하준의 오만한 독주가 말할 수 없는 전율과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대차대조표 실시간 갱신] - 신우현의 감정 몰입도: 94% (예술적 투지 폭발) - 신우현의 부상 위험 및 정신적 부채: 하준의 계정으로 40% 강제 이관 중.

하준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한 번 더 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 기자를 향해 차갑게 미소 지었다.

"조작이라뇨. 한서진 대표님이 제게 보내주신 아주 정성스러운 선물을 제가 조금 일찍 뜯어본 것뿐입니다. 대중을 바보로 아는 기획사가 어떤 식으로 천재를 박제해 돈을 버는지, 이보다 더 명확한 예술적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온하준 씨!"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 자료가 사실이라 해도, 신우현 씨의 정서적 불안과 우울증 치료 기록 자체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 상태의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하는 것 자체가 영화 제작사나 대중에게 큰 리스크 아닙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여론은 언제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불안정한 배우'라는 프레임으로 그들을 다시 묶을 수 있었다.

하준은 장부 시스템의 평판 분석 명세를 빠르게 훑었다.

[미디어 평판 분석 대조표] - 자산(호재): 동정 여론 및 이든 엔터에 대한 분노 (42%) - 부채(악재): 천재의 광기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 및 불안 지수 (58%) - 최적의 액션 도출: 부채를 자산으로 환원하는 '광기의 정당화' 연출 실행.

하준이 마이크를 부드럽게 쥐었다. 그의 목소리에 기묘한 광기와도 같은 희열이 묻어났다.

"리스크라니요. 예술을 너무 상업 장부처럼 보시는군요."

그는 단상 앞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나왔다.

"위대한 화가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은 리스크였습니까, 아니면 불멸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을 탄생시킨 자산이었습니까? 배우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와 어둠은, 카메라 앞에서는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가장 완벽한 자산입니다."

하준이 턱을 치켜들며 오만하게 선언했다.

"한서진 대표는 그 보석을 훔쳐다 자기 금고에 넣으려 했고, 우리는 그것을 스크린 위에 쏟아부어 예술로 증명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강태오 감독님이 우리를 선택한 이유이자, <심연의 가면>이 한국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의심하고, 마음껏 투표하십시오. 그 모든 의혹이 우리의 티켓 파워로 환산되는 순간을 똑똑히 보여드릴 테니까요!"

기자회견장이 터져 나갈 듯한 웅성거림으로 뒤덮였다. 어떤 기자도 더 이상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다. 온하준의 압도적인 당당함과 논리, 그리고 그 이면에 서린 서늘한 연기력에 장악당해 버린 것이다.

"미친 수준이군……."

누군가가 나직하게 뱉은 탄식이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대중의 '리스크 투표' 게이지: 75% -> 85% -> 88% 급상승!] [경고: 대중의 위화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온하준의 여유로운 태도가 인과율의 경계를 극단적으로 자극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붉은 경고창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하준의 뇌를 마비시키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하준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단상 위의 서류들을 여유롭게 정리했다. 기자들의 플래시 불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하얗게 지워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의 미소는 단 1밀리미터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늘 기자회견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극장 문을 나설 때, 한서진 대표님께 안부 전해 주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하준이 우아하게 목례를 하고 무대 뒤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백스테이지로 들어서자마자, 하준의 다리가 스르륵 풀렸다.

"하준아!"

대기실에서 뛰어나온 신우현이 비틀거리는 하준의 어깨를 간신히 붙잡았다. 하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우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하준은 우현의 손을 밀어내지 않은 채, 억지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우현의 얼굴은, 회귀 전 자신을 남겨두고 떠났던 그 비극적인 실루엣이 아니었다.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진짜 천재의 눈빛이었다.

"거봐…… 내가 안 무너진다고…… 했잖아……."

하준이 속삭이듯 웃었다.

바로 그 순간.

[대중의 '리스크 투표' 게이지: 90% 도달!] [임계점 돌파. 인과율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턱!

하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미처 손으로 막을 새도 없이, 짙붉은 선혈이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뚝, 뚝, 소극장 무단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로 붉은 꽃이 피어나듯 선혈이 떨어져 내렸다.

"하준아!!! 온하준!!!"

우현의 절규가 귓가를 때렸지만, 하준의 시야는 급격하게 암전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오직 대차대조표의 붉은 경고등만이 그의 마지막 의식을 잔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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