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왜 이제 왔어?
귀고막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척수액을 타고 올라와 뇌하수체를 직접 짓이겼다. 귓가에서 아른거리는 동생의 음색은 다정함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진 수렁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에 가까웠다.
붉게 충혈된 거울 돌기둥의 주술 문양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아니라 영혼의 밑바닥을 긁어내는 철수세미 같은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한윤우! 뒤로 물러서! 영혼이 빨려 들어간다고!"
강태현이 내 어깨를 억세게 잡아당겼다. 그의 손아귀에 실린 귀기 서린 힘이 느껴졌지만, 내 발가락은 이미 거울 속으로 가라앉는 진흙처럼 바닥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 표면에서 뻗어 나온 무형의 붉은 실들이 내 눈동자와 콧구멍, 입안으로 사정없이 말려들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비현실적인 갈증이 몰려왔다.
거울령의 지독한 혼 치료 영역. 영혼을 가래떡처럼 늘여 빼앗아 가는 주술의 올가미였다.
이대로 3초만 지체하면 내 자아는 껍데기만 남은 채 거울 기둥의 새로운 장식품이 되리라. 머릿속의 이성 회로가 극도로 냉정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떨리는 왼손을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슴팍의 살갗을 뚫고 나오는 듯한 기괴한 감촉과 함께, 끈적하고 차가운 가죽 표지의 '기이 연명 장부'가 손바닥에 닿았다.
장부를 펼쳤다. 종이가 스르륵 넘어가며 내 피를 요구하듯 붉은 광채를 내뿜었다.
오른팔의 온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불했다. 이제 남은 것은 생을 지탱하는 전신의 온기다. 따스함이라는 사치스러운 감각을 통째로 이 장부의 아가리에 처넣을 시간이었다.
오른손 검지손톱으로 왼쪽 손목을 깊게 그어내렸다.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장부의 세 번째 페이지를 적셨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마저 이미 반쯤 거세된 상태였기에, 내 안박을 채우는 것은 오직 서늘한 계산뿐이었다.
[거래 신청: 전신의 온기 감각 영구 파기.] [매입 권능: 절대적 극한(極寒)의 지배권.]
장부의 종이 위로 내 피가 글씨를 그리며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가슴 한가운데에서부터 끔찍한 결빙이 시작되었다.
파지직, 소리를 내며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얼음 결정으로 변해가는 감각이 전신으로 퍼졌다. 심장이 수축할 때마다 뜨거운 피 대신 서리 낀 냉수가 온몸으로 운반되었다. 머리칼 끝이 하얗게 세어 가고, 내쉬는 숨결이 그대로 고체화되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너, 너 미쳤어? 몸이 왜 이래!"
강태현이 비명을 지르며 내 어깨를 잡았던 손을 급히 떼어냈다. 그의 손바닥이 닿았던 내 옷자락에는 시퍼런 성에가 끼어 있었다. 강태현은 자신의 손바닥이 동상에 걸린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괴물이라도 본 듯 뒷걸음질 쳤다.
온기라는 개념이 내 뇌 신경망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이제 나는 봄날의 햇살이 무엇인지, 따뜻한 찻잔을 쥐었을 때의 안도감이 어떤 정서인지 영원히 인지할 수 없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얼어붙은 철판 같은 냉랭한 감각뿐이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차오르는 지독한 냉대 속에서, 이성이 얼어붙어 산산조각 나기 직전이었다. 영혼의 자아가 한 가닥 실판처럼 가늘어지는 순간, 나는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단 하나의 형상을 강박적으로 끌어올렸다.
동생, 윤아의 얼굴.
그 아이의 동그란 눈망울과 나를 향해 짓던 마지막 미소. 그것만이 내 차가운 정신의 지형에 지장(地障)처럼 단단히 박혀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닻이었다. 영혼을 잠식하려던 거울령의 붉은 주술 실들이 내 머릿속에서 윤아의 형상과 부딪치자 갈 길을 잃고 어지럽게 뒤틀렸다.
"윤아야."
목구멍을 찢고 나온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쇠붙이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파찰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 돌기둥을 똑바로 응시했다. 거울 속에서 수많은 원혼이 나를 향해 저주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기괴한 움직임이 내 눈에는 아주 느리게, 파동의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신의 온기를 바쳐 얻어낸 극한의 한기가 내 발끝에서부터 지면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계의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바닥의 진흙과 썩은 안개가 순식간에 은빛 얼음판으로 변해갔다. 기온이 영하 수십 도로 급강하하며, 허공을 떠돌던 기이들의 미세한 영적 잔재들마저 공중에서 얼어붙어 유리 가루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이 정도의 냉기를 부린다고?"
강태현이 입을 벌린 채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그의 온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의 체온마저도 하나의 붉은 열원(熱源)으로 명확히 관측될 뿐이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이 격리 이계의 전체 지도를 그렸다.
2화에서 보았던, 뒤틀린 지형 속 공중에 매달려 있던 붉은 기차의 실루엣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그 기차는 기괴할 정도의 영적 열기로 충전되어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화로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계의 지맥을 따라 흐르는 그 기차의 마력은 거울령의 은신처인 이곳까지 미세한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열기를 역이용한다.'
나는 손바닥을 얼어붙은 지면에 가져다 댔다.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절대적인 한기가 지맥을 거슬러 올라가며, 저 멀리 허공에 매달린 기차의 붉은 열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구구구—!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대포가 발사되는 듯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기차가 품고 있던 영적 열기가 갑작스러운 극한의 침입에 폭발적으로 요동쳤다. 열과 한기가 통로에서 마주치자,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지맥이 거꾸로 솟구치며 거울령의 영토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얼음의 미늘과 뜨거운 증기의 송곳이 동시에 거울 돌기둥의 밑동을 강타했다.
쩌적! 쩌저적!
거울 돌기둥의 표면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붉게 빛나던 주술 문양들이 급격한 온도 변화와 압력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고 뒤틀렸다. 거울 속에서 흘러나오던 원혼들의 비명이 날카로운 고음에서 점차 둔탁한 파열음으로 변해갔다.
"지금이다."
나는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왜곡된 거울 반사체의 허상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거울들이 깨지며 생기는 미세한 빛의 굴절, 그 틈새로 이 이계의 가장 깊은 심연인 '제0구역'의 파형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감각기관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그 파동을 감지했다.
삐이이—
뇌리를 스치는 전자음 같은 파형. 그것은 동생 윤아가 갇혀 있는 최종 감옥의 정확한 좌표였다. 거울령의 환영 주술이 붕괴하면서, 놈이 숨기고 있던 이계의 비밀 통로 위치가 내 머릿속에 선명한 붉은 점으로 각인되었다.
찾았다. 제0구역, 지하 3백 미터의 붕괴 지점.
"크으으윽!"
거울 돌기둥의 중심부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뿜어져 나왔다. 거울령의 본체였다. 놈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주술 무기이자 은신처인 돌기둥이 파괴되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검은 안개의 손아귀를 뻗었다.
하지만 이미 놈의 힘은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말라 비틀어져라."
내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지면에서 솟구친 거대한 얼음 가시들이 거울령의 검은 손아귀를 꿰뚫었다. 파지직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그대로 얼어붙어 공중에서 산산조각 났다.
동시에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던 거울 돌기둥이 완전히 한계에 다다랐다.
쿠아아앙—!
거대한 은빛 유리 탑이 무너지듯, 돌기둥이 사방으로 폭발하며 깨져나갔다.
수만, 수십만 개의 은빛 거울 파편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며 눈부시게 흘러내렸다. 그 파편 하나하나에 비친 내 모습은 더는 인간의 온기를 지니지 않은, 차갑고 푸르스름한 유령의 형상이었다.
이계의 판도가 대대적으로 전복되는 순간이었다. 거울령의 지배 영역이었던 안개 사냥터는 이제 내 한기가 지배하는 얼어붙은 영토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강태현은 넋을 잃은 채 사방으로 흩날리는 은빛 눈꽃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 경외와 극도의 공포가 서려 있는 것을 나는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를 두려워하든 혐오하든 상관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 장부에 내 영혼마저도 잘게 썰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때였다.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날아가는 은빛 거울 파편들의 중심부, 거울령이 소멸한 바로 그 자리에 기묘한 빛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휘이잉—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허공에서 무언가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투명한 유리병이었다. 병 안에는 정체불명의 푸르스름한 액체가 은은한 광휘를 뿜어내며 출렁이고 있었다.
그 약병이 공중에 그리는 기이한 궤적을 보는 순간,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갈증이 일렁였다. 저것은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었다. 장부조차도 반응하여 내 품 안에서 미세하게 떨림을 전해왔다.
나는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그 약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무너진 거울 더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스산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우리의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휘파람 소리는 고요한 동토를 가르며 뱀처럼 기어왔다.
손을 뻗어 허공에서 낙하하는 유리병을 낚아챘다. 손바닥에 닿는 유리 표면은 기묘하게도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얼어붙은 내 전신과 대조적으로, 마치 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짐승의 살결을 만지는 듯한 불쾌한 미온(微溫)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거울령의 정수: 영적 복구 약물.]
장부의 이면에서 스르륵 흘러나온 붉은 낙인이 머릿속을 스쳤다. 상실한 감각을 영구히 고정해 주는 영약. 지금 당장은 쓸 수 없지만, 언젠가 파멸의 문턱에서 나를 구원할 최후의 보루가 될 터였다. 나는 지체 없이 그것을 품 깊숙이 밀어 넣었다.
"누구냐!"
강태현이 황동 실린더를 치켜들며 날카롭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지만, 턱끝은 공포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안개 너머에서 걸어 나오는 형체는 하나가 아니었다. 질척이는 걸음걸이. 가죽 옷이 쓸리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들려오는, 억지로 가래를 끓이며 우는 듯한 가녀린 흐느낌.
"아으, 아아…… 윤우 씨. 거기 계셨군요."
서은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안개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것은 턱뼈가 완전히 탈골되어 가슴팍까지 늘어진, 이미 반쯤 부패한 사내의 시체였다. 도철민의 수하 중 하나였던 사냥개의 가슴팍에 은빛 실들이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실들은 시체의 사지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우리를 향해 삐걱거리며 걸어오게 만들었다. 시체의 혀가 잘려 나간 입술 사이로, 서은채의 상냥하고도 눈물겨운 음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요?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만 살아남으려 하다니……."
시체의 썩어가는 눈동자가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 눈빛에는 죽은 자의 원망이 아니라, 살아있는 서은채의 조소와 탐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도 형님이 무척 화가 나셨어요. 윤우 씨가 가진 그 '장부'…… 우리 협의회를 위해 기부해 주셔야겠어요."
시체의 손가락이 기괴하게 꺾이며 품 안에서 검은 수류탄 모양의 기이 유물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폭약이 아니었다. 주위의 영성을 강제로 폭발시켜 공간 자체를 무너뜨리는 '공간 붕괴석'이었다.
"여기서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어차피 윤우 씨가 얻은 그 좌표는……."
시체의 입꼬리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진짜 윤아의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붉은 좌표가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가짜? 아니, 장부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좌표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쿠르릉—
시체의 발밑에서부터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우리가 서 있는 은빛 빙판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듯 갈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