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내려앉는 소리는 거대한 단두대의 칼날이 바닥을 치는 파열음과 닮아 있었다.
쿵.
그 무거운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전해졌다. 사방을 채운 유백색 안개는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처럼 끈적거렸다. 도철민이 억지로 채워 넣은 손목의 놋쇠 방울은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 제 혼자 잘게 떨며 맑고 불쾌한 음색을 흘려보냈다.
딸랑. 딸랑.
그 소리는 뇌막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명을 남겼다. 도철민과 서은채는 이 사냥터에 나를 밀어 넣으며 살아서 돌아오라 속삭였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죽은 고기를 바라보는 방관자의 초연함만이 담겨 있었다. 수색 실패의 책임을 내게 묻고, 동시에 나를 살아 있는 미끼로 던져 안개 속 기이들의 거처를 확인하려는 간계.
안개 저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쇠가 긁히는 기괴한 마찰음이 고막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짓이기고 진흙을 헤집으며 다가오는 둔중한 무게감. 그것은 수천 명의 인간이 목구멍을 찢으며 토해내는 흐느낌을 품고 있었다.
“……온다.”
오른팔의 온기를 잃어버린 몸뚱이는 이 지독한 한기를 온전히 인지하지 못했다. 상실은 때로 기묘한 감각의 왜곡을 낳는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피부 위로, 축축한 안개의 수분이 얼음송곳처럼 달라붙는 환각만이 맴돌았다.
나는 품 안에서 가죽 표지가 다 헤진 ‘기이 연명 장부’를 꺼내 들었다. 스스로의 손가락 끝을 이빨로 물어뜯어 피를 흘렸다. 비릿한 쇠 맛이 입안을 채웠어야 했지만, 이미 미각을 잃어버린 혀끝에는 거친 모래알을 씹는 듯한 건조한 질감만이 남았을 뿐이다. 적셔진 손가락으로 장부의 여백에 피의 궤적을 그렸다.
[거래 조건: 기상 자원 조율.] [대가: 왼쪽 손목 이하의 미세 촉각 및 통증 감각 영구 소실.]
장부의 책장이 피를 빨아들이며 스르륵 넘어갔다. 순간, 왼쪽 손목 아랫부분이 얼음물에 담긴 것처럼 급격히 얼어붙더니, 이내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 고기덩어리처럼 변해 버렸다. 방울이 살을 파고드는 가죽 끈의 조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잔혹한 대가의 결과로,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유백색 안개의 흐름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대칭을 이루며 일정하게 흐르던 안개가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역방향으로 꺾였다. 장부의 권능으로 고정된 바람의 궤적은 내 동선과 흔적을 안개 너머로 지워버리는 기막힌 장벽이 되었다. 이제 방울이 울려 퍼져도, 소리의 근원지는 안개의 굴절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닿을 터였다.
그때, 안개 속의 어둠이 갈라지며 거대한 강철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2화에서 뒤틀린 지형 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비정상적인 영적 열기로 충전되어 있던 그 유령 열차였다. 붉은 녹이 슬어 터진 열차의 전면부는 마치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괴수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열차의 차창 너머로 시퍼런 안광을 흘리는 원혼들의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도철민이 보낸 사냥터의 자객들이 아니라, 이 격리 이계가 품은 절대적인 재앙 중 하나였다.
빠아아앙!
귀를 찢는 경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궤도도 없는 진흙바닥을 미끄러지듯 돌진해 왔다. 열차가 내뿜는 열기는 대기를 태워버릴 듯 뜨거웠지만, 내 장부는 이미 그 열기의 본질을 읽어내고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의 전두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장부의 다음 장이 펄럭였다.
[거래: 영적 열기의 한기 상쇄.] [대가: 가슴팍의 온기 감각 영구 소실.]
심장 부근이 서늘하게 내려앉으며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오한이 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내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절대적인 영하의 냉기였다.
파자작!
열차의 붉은 엔진룸과 영적 열기로 가득 차 있던 중심 핵이 순식간에 하얗게 서리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던 원혼들의 안광이 얼어붙고, 거대한 쇳덩어리가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빙결된 열차의 잔해는 안개 속에서 거대한 얼음 장벽이 되어 나를 추격하는 자들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했다. 2화에서 발견했던 그 기이한 열차의 열기를, 나는 장부의 등가교환을 통해 적들의 진입을 막는 가장 단단한 방벽으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누구냐.”
얼어붙은 열차의 그늘 속에서,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그림자는 강태현이었다. 그는 도철민의 감시 대원들과 함께 나를 쫓아왔어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기지 지급용 무기가 아닌, 정체불명의 황동 실린더가 들려 있었다. 실린더 표면에는 기이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고대 주술의 문양이 빽빽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강태현은 내 손목에 묶인 방울과, 그 뒤로 꽁꽁 얼어붙은 채 멈춰 선 거대 열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한윤우.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 열차의 열기는 기지의 화염 방사기로도 끌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을 텐데.”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쫓아온 건 아닐 텐데, 강태현 씨.”
나는 감각이 사라진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그를 차갑게 응시했다.
“그 손에 든 황동 실린더. 도철민의 눈을 피해 몰래 챙겨둔 탈출용 특수 무기군. 기이의 인지를 왜곡시키는 은닉형 영적 폭탄인가?”
강태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가 실린더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이 안개 속의 미세한 수증기로 보였다. 그는 내가 자신의 비밀을 간파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했다.
“서로 패를 까놓고 얘기하지.”
나는 한 걸음 다가섰다. 내 발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감각을 잃어버린 발바닥은 땅의 감촉을 전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죽은 자처럼 고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철민은 날 죽이려고 보냈고, 당신은 그 틈을 타서 이 사냥터 너머의 경계를 돌파해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겠지.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야. 이 안개는 걷히지 않고, 방울 소리는 계속해서 괴물들을 불러 모을 테니까.”
“……원하는 게 뭐지?”
강태현이 이빨을 사리물며 물었다.
“간단해. 침묵의 동맹. 내가 안개의 흐름을 왜곡해 당신의 이동 경로를 숨겨주지. 대신 당신은 도철민의 부하들이 나를 추적할 때, 그 눈을 돌릴 미끼가 되어야 해. 아, 물론 진짜 죽으라는 소리는 아니야. 당신의 그 훌륭한 탈출 무기를 쓸 기회를 뒤로 미루라는 뜻이지.”
강태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얼어붙은 열차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내 뒤통수를 칠 생각은 마라. 난 언제든 이 실린더를 터뜨리고 혼자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동감이야. 서로 신뢰가 없으니 거래가 깔끔하지.”
나는 가볍게 웃었다. 감정이 거세된 내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강태현의 눈에 인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도철민의 충직한 사냥개들이라 불리는 감시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방울 소리가 이쪽에서 들렸어!” “분명히 얼어붙은 열차 뒤편이다! 서둘러!”
그들은 내가 설계한 안개 역류 현상의 덫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장부로 비틀어 놓은 안개의 대칭 흐름은, 방울 소리의 진동을 엉뚱한 절벽 가장자리로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 아래에는, 안개의 기척을 느끼고 깨어난 굶주린 기이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어? 뭐야, 안개가 왜 갑자기 뒤로 흐르지……?” “으악! 발밑에 뭐가 있어! 잡아, 잡으라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살점이 뜯겨 나가는 기괴한 파열음이 안개 속을 채웠다. 서걱, 서걱 하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인간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감시 대원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물려 뜯기는지도 모른 채 안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얼음 장벽 뒤에 몸을 숨긴 채, 그 비참한 단말마를 조용히 감상했다.
동정심이나 연민 따위는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히려 계산대로 움직여 준 기이들의 법칙에 가벼운 만족감마저 들었다. 옆에 서 있던 강태현은 내 차가운 눈빛과 미동조차 없는 태도를 보며 혐오감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미친놈.”
강태현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정의인 이 이계에서 인간적인 선의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도철민과 서은채가 나를 버렸듯, 나 역시 그들의 사냥개들을 아낌없이 소모품으로 던져버린 것뿐이다.
그때, 안개의 굴절이 멈추고 사방이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였다.
사냥개들의 비명도, 기이들의 울부짖음도 한순간에 뚝 끊겼다. 대기 전체가 거대한 얼음판처럼 굳어버린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온기 감각을 잃어버린 내 가슴팍마저도 이 지독한 영적 압박에는 반응하여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 안개 사냥터를 지배하는 최상급 은신 포식자.
‘거울령(鏡靈).’
그놈이 도사리는 절대적인 경계 한계선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강태현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강태현 역시 본능적인 생존 감각으로 황동 실린더를 품에 안은 채 숨을 죽였다.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영혼을 잠식당하는 영역.
나는 바닥의 미세한 흙먼지가 허공으로 거꾸로 솟구치는 기이현상을 관찰하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거울령의 인지 범위는 반경 10미터. 그 경계를 우회하기 위해서는 안개의 흐름을 한 번 더 비틀어야 했다.
조심스럽게 안개 속을 헤치며 나아가던 순간, 전방의 유백색 장막이 걷히며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돌기둥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돌이 아니었다. 표면이 마치 극한으로 갈아낸 유리나 거울처럼 매끄럽게 빛나는,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거울 모양의 돌기둥이었다.
기둥의 표면에는 안개의 흐름이 비치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지금껏 이 사냥터에서 죽어간 수많은 인간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그들의 영혼이 뿜어내는 검붉은 빛의 주술 문양이 지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위잉—
기둥을 마주 보았을 때, 내 손목의 방울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울 표면에 새겨진 주술이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내 영혼을 통째로 빨아들이려는 듯한 강렬한 흡입력이 전신을 덮쳐왔다. 거울 속에서 내 모습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동생 윤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때렸다.
—오빠, 왜 이제 왔어?
주술이 가동되고 있었다. 거울령의 진짜 사냥터가 우리 눈앞에서 아가리를 벌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