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두꺼운 강철 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비웃음기 섞인 환대를 보이는 도철민과 머리를 조아리는 서은채가 등장한다.

시야를 어지럽히던 붉은 증기와 기괴한 열차의 환영이 걷히자,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비릿한 쇠붙이의 산화취가 코끝을 찔렀다. 젖은 가죽처럼 질척이는 공기가 피부에 들러붙었다. 방금 전까지 영혼을 옥죄던 장부의 잔인한 경고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갑게 가라앉았으나, 머릿속을 헤집는 이명은 그치지 않았다.

“어이, 한윤우 씨.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정말 기쁩니다.”

도철민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누런 치열 사이로 갈라진 혓바닥이 기괴하게 씰룩였다. 환대라는 단어 뒤에 숨은 살의가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 옆에 선 서은채는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감싸 쥔 채, 윤우의 눈길이 닿자마자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윤우 씨마저 잘못되는 줄 알고, 저는, 저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몰라요.”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지만, 바닥을 향한 그녀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식으로 빚어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시늉을 했으나, 그것이 타인을 방패막이로 삼아 연명해 온 소시오패스의 유일한 생존 방식임을 윤우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방을 안내해 드리지요. 귀한 손님이시니 특별히 아늑한 곳으로 준비했습니다.”

도철민이 억센 손으로 윤우의 어깨를 짚었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고압적인 아귀힘이 뼈를 으스러뜨릴 듯 강해졌지만, 윤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오른쪽 어깨의 온기 감각을 잃어버린 그에게 도철민의 악력은 그저 둔탁한 압박감에 불과했다. 타인의 악의에 동조하지 않는 무감각한 눈빛이 도철민의 일그러진 미소와 부딪쳤다.

안내된 숙실은 사방이 거친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인 밀실이었다. 천장 구석에서는 정체불명의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에 고인 웅덩이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스르릉.

철문이 닫히기 무섭게 도철민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의 발길질 한 번에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낡은 탁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연극은 여기까지 하지.”

도철민이 침을 밷으며 윤우의 가죽 가방을 거칠게 빼앗아 들었다.

“그 책, 어디에 숨겼나?”

가방의 지퍼가 뜯겨 나가고 내용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말라비틀어진 비상식량과 몇 가지 잡동사니가 흙먼지 속을 굴렀다. 도철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눈 뒤편에 자리 잡은 탐욕이 핏발을 세우며 팽창했다.

“분명히 가지고 있는 걸 안다. 밤마다 기이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비결이 그 장부에 있다는 걸 모를 줄 알았나? 내놓아라, 내놓으면 이 기지에서 평생 상전 대접을 해 주지!”

그는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뒤엎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미약한 증기를 뿜어내던 조잡한 플라스틱 가습기가 그의 군화발에 밟혀 처참하게 박살 났다. 깨진 플라스틱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 윤우의 구두 앞코를 적셨다.

“철민 씨, 제발 진정해요. 윤우 씨가 놀라잖아요. 좋게 말로 해요, 네?”

서은채가 뒤에서 소매를 붙잡으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 역시 윤우의 품과 소맷자락을 집요하게 훑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 숨겨진 '장부'를 찾아내어 가로채겠다는 음험한 갈망이 두 사람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콰직! 쾅!

도철민은 벽장문을 뜯어내고 침대 매트리스를 칼로 찢어발겼다. 솜깃이 눈송이처럼 허공에 흩날렸다. 살인적인 기세로 뒤지며 윤우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는 도철민의 행동은 그야말로 광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기이 연명 장부'는 바로 도철민의 코앞, 공중에 떠 있었다.

허공에 무형의 형태로 부유하는 장부는 오직 계약자인 윤우의 심상 속에서만 붉은 인을 그리며 존재했다. 도철민의 거친 손가락이 장부가 떠 있는 공간을 몇 번이고 가르고 지나갔지만, 허무한 허공만을 움켜쥘 뿐이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공간을 향해 헛손질을 반복하는 도철민의 모습은 기괴한 꼭두각시 인형의 몸짓과 다름없었다.

윤우는 그 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비웃음조차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마른 침을 삼킬 뿐이었다.

“없군.”

수색을 마친 도철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눈에 서린 낭패감과 분노가 이글거렸다.

“숨겨둔 장소가 따로 있는 모양이군. 은채, 가자. 이 새끼가 입을 열 때까지 굶겨 두면 제 발로 불겠지.”

서은채는 윤우를 향해 가련한 눈빛을 한 번 던지고는, 도철민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철컥, 쾅.

두꺼운 강철 문이 굳게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홀로 남겨진 어둠 속에서 윤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방 안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감각이 마비된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자, 허공에 떠돌던 무형의 장부가 스르륵 실체화되며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검붉은 가죽 표지 위로 피로 쓴 듯한 글씨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우는 장부를 펼치기 전, 방 안의 이질적인 기척을 먼저 감지했다. 벽면의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 천장의 낡은 배선함 내부.

스스스스……

청각을 극도로 곤두세우자,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무언가 젖은 점막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철민이 심어둔 엿보기 도구들이었다.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었다. 기이의 시신경을 기계 부품과 조잡하게 접합해 만든, 관음의 주술적 도구. 벽 틈새에서 조그만 눈알 모양의 유기체가 윤우를 향해 충혈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윤우는 장부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손가락 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은 가죽보다 질기고 차가웠다.

[기이 연명 장부의 하위 계약을 갱신합니다.] [수지타산 조율: 숙실 내부의 모든 관측 및 전송 매체를 고립 영역으로 격리합니다. 대상들에게는 허위의 정지 영상을 송출합니다.] [대가 청구: 사용자의 기억 중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에 대한 기억을 영구히 지불하십시오.]

머릿속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격렬한 두통에 휩싸였다.

“윽……”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윤우는 잇새를 악물며 참아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뇌의 일부분이 미지의 힘에 의해 난폭하게 긁혀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두운 시골길, 동생의 작은 손을 잡고 올려다보았던 쏟아질 것 같던 밤하늘. 그 찬란했던 푸른빛과 동생이 흘렸던 감탄사, 자신이 느꼈던 따스한 안도감의 기억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지워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얼음장 같은 냉소와 공허뿐이었다.

그러나 윤우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동생을 구하겠다는 결벽증적인 집착만이 지워진 기억의 빈자리를 더 단단하게 메우고 있었다. 감정이 마모될수록 그의 이성은 더욱 투명하고 예리해졌다.

쉭.

장부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붉은 실들이 벽 틈새와 천장으로 뻗어 나갔다. 눈알 모양의 괴이한 감시 도구들이 붉은 실에 휘감기자, 일제히 흐릿하게 변하며 무력화되었다. 도철민의 감시 모니터에는 이제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윤우의 껍데기 영상만이 반복해서 흐를 것이다.

완벽한 고립이 완성되자, 윤우는 장부의 구석진 이면을 응시했다.

그의 손끝이 장부의 낡은 종이 모퉁이를 쓸어내렸다. 2화에서 마주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뒤틀린 지형 속에서 발견했던 그 기괴한 열차. 수만 개의 얼굴이 박혀 울부짖던 그 망령의 환승 열차가 뿜어내던 비정상적인 영적 열기.

당시에는 그저 공간의 왜곡으로 인한 현상인 줄 알았으나, 장부의 하단에 스며든 붉은 핏자국이 새로운 궤적을 그리며 정보를 갱신하고 있었다.

[분석 완료: ‘망령의 환승 열차’가 발산하는 영적 열기는 제7 격리 이계 내부의 특정 동력원과 동기화되어 있음.] [경로 추적: 열기의 근원지는 현재 위치한 지하 가옥의 외곽, 지하 150미터 지점으로 연결됨.]

윤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철민이 지배하는 이 기지의 하부에 무언가가 존재한다. 기이들의 신체에서 추출한 장기나 결정을 인위적으로 배양하여 이계를 오염시키고,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한 비밀 연구실의 존재가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기이들의 신장 결정을 배양하는 그 음험한 공간이야말로 이 지옥 같은 카르텔의 핵심 기지이자 동력원일 터였다.

윤우는 장부에서 흘러나오는 피 같은 잉크를 손가락에 묻혀, 장부 이면의 공백에 차갑게 써 내려갔다.

‘가옥 외곽 지하 깊은 곳. 기이 배양 및 오염 연구실 존재 유력. 동력원은 기차의 영적 열기.’

단서를 하나하나 기입하는 그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동생 윤아가 갇힌 제0구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후에 도사린 이 도철민 일당의 근거지를 뿌리째 흔들어야만 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방 밖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채 잠금장치가 다 풀리기도 전에 강철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도철민이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서 있었다. 감시 모니터에 아무런 이상 반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색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화풀이를 하려는 듯 그의 손에는 굵은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한윤우.”

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아무리 뒤져도 네놈의 그 잘난 책은 보이지 않는군. 하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이 기지에서 밥값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미끼가 되는 게 이곳의 '합리적'인 규칙이니까.”

뒤이어 나타난 서은채가 안타깝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가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윤우 씨, 어쩔 수 없어요. 기지의 비축 식량이 부족해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셔야 해요.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 주세요.”

도철민이 쇠파이프를 윤우의 턱밑까지 들이밀며 잔인하게 읊조렸다.

“오늘 밤, 기지 외곽의 안개 구역으로 간다. 네놈이 앞장서라. 안개 속에 숨은 놈들의 위치를 밝혀내는 척후병 역할을 맡아줘야겠어. 살아 돌아온다면 네 쓸모를 인정해 주지. 물론, 사망률은 99%지만 말이야.”

죽음의 사지로 가라는 일방적인 통보.

윤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철민의 일그러진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두려움도, 분노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침묵만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쇠파이프 끝자락에서 풍겨 나오는 녹슨 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도철민의 거친 숨결이 얼굴에 닿았지만, 윤우는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무감각한 시선은 도철민의 어깨너머, 어둠 속에 몸을 반쯤 숨긴 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서은채에게 향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을 때 느껴지는, 가학적인 흥분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척후병이라.”

윤우의 목구멍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내면은 이 부당한 처사 앞에서도 분노 대신 지독할 정도의 계산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안개 구역. 그곳은 밤마다 기이들이 기어나와 솎아내기 게임을 벌이는 잔혹한 사냥터였다. 하지만 동시에, 2화에서 목격했던 그 ‘망령의 환승 열차’가 내뿜는 비정상적인 영적 열기가 가장 짙게 뿜어져 나오는 발원지이기도 했다. 도철민이 가습기까지 부수며 수색에 혈안이 되었던 진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저들은 이 안개 속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를 동력원으로 삼아, 지하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배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기꺼이 발을 들여놓아 줄 용의가 있었다.

윤우는 등 뒤로 감춘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였다. 그의 심상 속에서 붉게 타오르던 기이 연명 장부가 소리 없이 한 페이지를 넘겼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전신을 엄습했다.

[수지타산 조율: 안개 구역 내부에 흐르는 ‘영적 열기’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열차의 궤적을 왜곡할 수 있는 임시 경로를 확보합니다.] [거래 대가 청구: 사용자의 ‘미각(味覺)’을 영구히 지불하십시오. 앞으로 당신에게 모든 음식은 차가운 모래알과 같을 것입니다.]

입안이 순간적으로 바짝 말라붙었다. 혀끝을 맴돌던 비릿한 쇠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의 맛이 거짓말처럼 소멸했다. 아무런 맛도, 질감도 느껴지지 않는 기괴한 진공 상태가 구강을 지배했다. 혀라는 감각 기관이 통째로 잘려 나간 듯한 아득한 상실감이 머리를 때렸으나, 윤우는 턱끝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동생의 웃음소리를 잃어버린 그에게, 미각 따위는 생존을 위한 하찮은 푼돈에 불과했다.

스스스슥.

윤우의 시야가 기이하게 뒤틀렸다. 도철민의 얼굴 너머로, 방 안의 모든 사물이 흑백으로 탈색되기 시작했다. 그 대신 거친 콘크리트 벽면과 바닥 틈새를 타고 흐르는, 핏줄처럼 붉고 뜨거운 열기의 가닥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그 열기들은 전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지하 심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비밀 연구실의 위치를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좋다. 가지.”

윤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도철민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예상치 못한 무덤덤한 반응에 불쾌감이 치민 듯, 그는 쇠파이프를 거칠게 거두며 쯧 하고 침을 뱉었다.

“독한 새끼. 그 기세가 안개 속에서도 유지되는지 보지.”

도철민이 윤우의 덜미를 움켜쥐고 방 밖으로 이끌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문틈 사이로 숨죽여 바라보는 다른 생존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방관과 묵인으로 연명하는 협의회 인간들의 눈동자에는 동정 대신, 내 내장을 채울 미끼가 또 하나 늘어났다는 안도감만이 들어차 있었다.

이윽고 도철민이 기지 외곽으로 통하는 거대한 압력 격리문 앞에 멈춰 섰다.

철가죽처럼 두꺼운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위로 들어 올려지자, 틈새로 차갑고 끈적한 유백색 안개가 아가리를 벌린 괴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안개에서는 타버린 머리카락 냄새와 썩어가는 가죽 냄새가 섞인 기분 나쁜 악취가 풍겼다.

“가기 전에 선물 하나 주지.”

도철민이 주머니에서 검붉은 가죽 끈으로 연결된 놋쇠 방울 하나를 꺼냈다. 그는 윤우의 반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억센 손귀로 그의 왼쪽 손목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방울을 옭아맸다.

딸랑.

지독하게 맑고 불쾌한 방울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윤우의 시야 속에서, 그 놋쇠 방울이 뿜어내는 영적 열기가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위치 추적용 방울이다.”

도철민이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윤우의 어깨를 밀쳤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열심히 흔들며 걸어라. 소리가 끊기면 바로 탈주병으로 간주하고 기지 사수 조들이 네 머통을 날려버릴 테니까.”

거짓말이었다.

장부를 통해 시각화된 열기의 흐름은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방울은 단순한 추적기가 아니었다. 방울이 흔들릴 때마다 발생하는 진동은, 안개 속에 도사린 굶주린 기이들을 유인하는 ‘영적 미끼’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도철민은 윤우를 단순한 척후병이 아니라, 괴물들을 한곳으로 몰아넣을 살아있는 고기 덩어리로 던져 넣은 것이다.

“자, 가라.”

서은채가 어둠 속에서 상냥하게 속삭였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세요, 윤우 씨.”

등 뒤에서 거대한 철문이 쿵 하고 닫혔다.

완벽한 어둠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홀로 던져진 순간, 윤우의 손목에 묶인 방울이 바람도 불지 않는 허공에서 제 혼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

그 불길한 소리에 응답하듯, 안개 저편 깊은 곳에서 무언가 거대한 철제 덩어리가 선로를 이탈해 진흙밭을 긁으며 다가오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발밑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진동의 중심에서, 수천 명의 인간이 동시에 흐느끼는 듯한 기괴한 울음소리가 공기를 찢고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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