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았다.
열차 문을 열고 나온 선로 위는 축축한 안개로 가득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지만, 한윤우는 그 시원함 대신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질적인 열기를 먼저 느꼈다. 끈적하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열기. 손끝의 감각이 무뎌진 탓에 겉옷 뒷자락을 만지는 느낌은 모래를 만지는 것처럼 서글펐으나, 코끝을 찌르는 악취만큼은 영혼을 긁어내듯 선명했다.
지독하게 농축된 짐승의 피비린내.
방금 전까지 흐느끼며 제 몸을 밀치고 기어 나오던 서은채의 가녀린 손길이 남긴 흔적이었다.
저만치 앞서 걷던 서은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안개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가늘게 찢어진 눈매와 기괴하게 허공을 향해 비틀려 올라간 입꼬리만큼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녀는 사냥감이 덫에 걸린 것을 확인한 포식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붉은 밤, 사방의 어둠 속에 도사린 굶주린 괴이들을 미친 듯이 끌어들일 유인 향수. 그것이 지금 윤우의 등 뒤에서 붉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윤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는 일 따위는 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연민이 거세된 그의 차가운 이성은 오직 수지타산을 따질 뿐이었다.
그는 품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가슴팍에 닿는 단단하고 서늘한 가죽의 감촉. ‘기이 연명 장부’가 그의 체온을 빨아들이듯 낮게 공명하고 있었다.
윤우는 겉옷 안쪽에서 장부를 꺼내 들었다. 서은채와 강태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각도로, 어둠의 장막을 방패 삼아 책장을 넘겼다. 잉크가 아닌, 그의 손끝에서 배어 나온 핏방울이 지저분하게 번진 백지 위에 스며들었다.
‘옷에 묻은 괴이 추적 물질의 향취를 완전히 지워낸다.’
장부의 책장이 거칠게 펄럭였다. 머릿속을 긁는 듯한 건조하고 서늘한 이명의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거래를 제안합니다.] [제시된 조건: 유인 향수의 영적 파동 및 물질적 향취 100% 소멸.] [요구되는 대가: 사용자의 ‘후각적 쾌락’ 일부. 이제 당신은 꽃향기, 음식의 단내, 그리고 온기 어린 인간의 살 냄새를 영구히 인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썩어가는 악취와 피비린내만을 맡을 수 있게 됩니다. 거래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윤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꽃향기며 단내 따위가 이 지옥 같은 이계에서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오히려 썩은 냄새와 피비린내만을 선별적으로 맡을 수 있다면, 그것은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훌륭한 감지기가 될 터였다. 수지타산은 완벽했다.
윤우는 주저 없이 제 손가락 끝을 깨물어 장부 위에 핏빛 서명을 그었다.
[거래가 성립되었습니다.] [대가가 지불됩니다. 사용자의 후각 신경이 영구적으로 재구성됩니다.]
순간 코끝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일었다. 비명이 터져 나올 법한 통증이었지만, 윤우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턱끝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결벽증적인 집착은 육체의 고통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오직 차갑고 무감각한 공기만이 남았다. 그리고 등 뒤를 적시고 있던 지독한 피비린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 향취의 물리적, 영적 성분이 공기 중으로 완전히 분해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윤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부의 여백에 피 묻은 손가락으로 한 줄을 더 빠르게 휘갈겨 썼다.
‘흩어진 향취의 파동을 재조립하여, 나를 표적으로 삼으려 했던 자의 흔적에 고착시킨다.’
[추가 거래가 성립되었습니다. 대가는 이미 지불된 감각의 범위 내에서 상쇄됩니다. 향취의 영적 궤적이 재설정됩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람이 윤우의 등 뒤에서 불어 나가, 안개 속을 헤치고 저 앞의 서은채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녀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모직 코트의 깃 속으로, 보이지 않는 끈적한 저주의 냄새가 깊숙이 스며들었다. 정작 서은채 본인은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으로 윤우를 훔쳐보고 있었다.
윤우는 천천히 서은채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기이할 정도로 일정했고, 구두굽이 선로의 자갈바닥에 닿는 소리는 규칙적인 메트로놈처럼 고요했다.
서은채는 윤우가 다가오자 얼른 기괴한 미소를 거두고, 다시금 가련하고 겁먹은 양의 탈을 썼다. 그녀는 눈가를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우 씨…… 괜찮아요? 아까 열차 안에서 온몸에 피를 흘리시던데……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 저 때문에 다치신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눈물겨운 연기였다. 만약 그녀의 코트 깃에서 방금 윤우가 옮겨 심은 지독한 피비린내가 피어오르고 있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윤우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분노도 담기지 않은 서늘한 무표정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연민을 잃어버린 심연의 거울과도 같았다. 분노하여 날뛰는 사냥감보다, 자신을 꿰뚫어 보면서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관찰자의 눈빛이 훨씬 더 공포스러운 법이다.
서은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왜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제가 뭐 잘못하기라도……”
“아니.”
윤우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다. 마치 얼어붙은 강바닥을 긁는 듯한 건조한 음성이었다.
“잘했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어, 은채 씨.”
“네……? 그게 무슨……”
“곧 알게 되겠지. 네가 한 행동의 가치를.”
윤우는 그녀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무심하고도 압도적인 태도에 서은채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뼈저린 치욕감과 원인 모를 한기를 느껴야 했다. 자신이 완벽하게 설계한 판이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타고 소름으로 돋아났다.
뒤따라오던 강태현이 윤우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태현의 예리한 눈동자가 윤우의 무표정한 얼굴과 서은채의 일그러진 낯빛을 번갈아 살폈다.
“한윤우 씨, 방금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한 겁니까? 분위기가 묘하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길잡이를 확실히 해둔 것뿐이죠.”
윤우는 대답을 아끼며 선로 안쪽의 터널로 발을 들였다.
그 터널은 이 뒤틀린 열차 노선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입구였다. 벽면은 정체불명의 검은 이끼와 축축한 물기로 가득했고, 공기 중에는 쇠가 타들어 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맴돌았다.
선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갔을 때, 윤우의 시야에 터널 벽면의 균열이 들어왔다. 그 균열 사이로 붉고 어두운 액체가 흘러내려 굳어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오물이 아니었다.
글자였다.
윤우는 걸음을 멈추고 벽면에 가까이 다가갔다. 누군가 손톱이 다 닳아 뼈가 드러날 때까지 긁어댄 듯 처절한 흔적이 벽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장부는 너의 전부를 먹어치운다. 처음에는 감각을, 그다음에는 온기를, 마지막에는 네가 누구였는지조차 잊게 만들 것이다. 거래를 멈춰라. 그것은 연명이 아니라, 가장 느린 자살이다.]
글씨의 끄트머리에는 굳어버린 핏자국과 함께 기이 연명 장부의 표지에 새겨진 것과 동일한 기하학적 문양이 음각으로 파여 있었다.
이 장부의 이전 소유자.
그 역시 윤우처럼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감각과 영혼을 등가교환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이곳에서 미쳐 죽어간 것이 분명했다.
강태현이 그 낙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누군가의 광증이 빚어낸 흔적이군. 이곳에 갇힌 자들은 결국 다 저렇게 미쳐버리는 법이지.”
하지만 윤우는 그 경고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손가락 끝에는 아무런 촉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졌다.
‘가장 느린 자살이라.’
윤우에게는 그런 경고 따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동생 윤아를 구출하고 이 지옥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이 껍데기만 남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파괴해 가며 답을 찾기로 결심한 결벽증적인 집착의 화신이었다.
“가시죠. 곧 손님들이 올 시간입니다.”
윤우가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터널의 출구 쪽에는 이미 정적을 깨는 불빛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합리적 방관 협의회’의 간부들과 그들의 수장인 도철민이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도철민은 거구의 체구에 거친 흉터를 지닌 사내로, 이계의 법칙 속에서 약자들을 짓밟고 살아남은 포식자였다. 그의 곁에는 협의회의 정예 생존자 몇 명이 무기를 든 채 윤우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철민이 이빨을 드러내며 비열하게 웃었다.
“오, 살아 돌아왔군? 쓰레기 같은 열차 칸에서 시체로 뒹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의 시선이 윤우의 상처 입은 어깨를 스치고, 이내 은밀하게 서은채와 마주쳤다. 은채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계획한 ‘미끼 공작’이 성공했음을 신호로 보냈다.
도철민의 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서렸다. 그는 윤우가 곧 유인 향수의 냄새를 맡고 몰려올 괴이들의 미끼가 되어 처참하게 찢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협의회의 철칙은 하나였다. 타인의 희생을 방관하고, 그로 인해 확보된 안전한 틈을 타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
“한윤우. 네가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계의 밤은 이제 시작이지. 밤의 솎아내기 게임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제물이 되어야 해. 그게 이곳의 ‘합리적’인 규칙이거든.”
도철민이 거들먹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간부들 역시 비웃음을 흘리며 윤우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윤우를 철저히 고립시켜 괴이들의 이빨 앞에 던져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믿었던 서은채의 몸에서, 우주의 심연마저 자극할 법한 지독한 피비린내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쿠구구구궁—!
터널 깊은 곳에서부터 대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수많은 발자국 소리,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기괴한 울음소리들이 터널 내부를 가득 메웠다.
“어……? 이 소리는 뭐지?”
간부 중 한 명이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붉고 축축한 눈동자들이 무수히 피어났다. 벽면을 기어 다니는 형체들, 뼈가 부러진 채 기괴한 각도로 꺾여 달리는 괴이들이 터널 안개를 뚫고 광포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타겟은 명확했다.
괴이들은 윤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멀어버린 눈과 예민한 후각은 오직 한 군데, 서은채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옷깃에 묻은, 윤우가 장부의 거래로 역류시켜 고착해 둔 유인 향수의 지독한 냄새를 쫓고 있었다.
“어? 왜,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서은채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은채 씨! 네 몸에서 대체 무슨 냄새가 나는 거야!”
도철민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밀쳐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괴이들의 해골 같은 손아귀가 서은채의 머리칼을 낚아챘고, 그녀를 방패 삼아 뒤에 서 있던 협의회 간부들의 어깨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아아악! 살려줘! 철민 씨! 도와줘요!”
서은채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도철민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도철민은 그녀의 얼굴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뒤로 도망쳤다.
“이 미친 년이 우리를 미끼로 던지려고 작정을 했구나! 저리 꺼져!”
협의회가 자랑하던 ‘침묵의 등가교환’과 이기적인 동맹은 위기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간부들은 서로를 괴이의 아가리 속으로 밀쳐내며 비명을 질렀고, 터널 안은 순식간에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생지옥으로 변모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윤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의 아수라장을 우회했다.
강태현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 윤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괴이들이 윤우의 바로 옆을 지나치면서도 그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는 기이한 현상. 그리고 서은채의 음모를 고스란히 그녀 자신과 협의회에게 되돌려준 이 완벽한 역습.
이 사내, 한윤우는 단순히 생존을 구걸하는 자가 아니었다. 이 지옥의 규칙마저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노는 지배자였다.
“한윤우 씨……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태현의 떨리는 질문에 윤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뒤돌아보며, 괴이들에게 찢기며 절규하는 서은채와 도철민을 향해 차가운 시선만을 던졌을 뿐이다.
자신을 미끼로 삼으려 했던 대가는 뼈아플 것이다. 그것이 이 이계에서 한윤우라는 존재가 내리는 가장 합리적인 판결이었다.
그때였다.
아수라장이 된 터널의 출구, 그 너머의 탈출구 벽면 전체가 갑자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붕괴가 아니었다. 갈라진 틈새 사이로 숨이 막힐 듯한 붉은 유황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터널 내부의 공기를 잠식해 들어갔다. 가스가 닿는 곳마다 바닥의 자갈이 녹아내리고, 날뛰던 소형 괴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어 스러졌다.
치이이익—!
가스가 응축되며 거대한 화염의 형상을 한 괴이가 벽면 전체를 뒤덮으며 그 기괴한 실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불꽃의 얼굴이 윤우를 내려다보며 일렁였다.
터널 내부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들어 갈 것 같은 극심한 열기가 그들을 덮쳐왔다.
윤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장부가 그의 품속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