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판이 우그러지는 비명이 어둠 속에서 길게 꼬리를 끌었다.

닫힌 철문 너머로 칙,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리더니 이내 사방의 벽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무쇠의 열기가 좁은 열차 내부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들이쉬는 숨마다 목구멍 안쪽이 타들어 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폐포 깊숙한 곳까지 끈적하고 뜨거운 유독 가스가 스며들었다.

왼쪽 어깨의 감각을 지불한 대가로 왼쪽 팔 전체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른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콧구멍을 찌르는 시큼한 황화수소 냄새는 뇌수를 직접 짓누르듯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커헉! 윤우야, 이거…… 문이 안 열려! 뒤쪽도 꽉 막혔어!"

태현이 벌겋게 달아오른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그의 손바닥 가죽이 허옇게 익어 문드러져 있었다. 태현은 덜덜 떨리는 손을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가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다. 철판이 열을 받아 팽창할 때마다 쩡, 쩡, 하는 기괴한 금속음이 고막을 찔렀다.

이 열차의 잔해는 단순히 버려진 고철이 아니었다. 2화에서 이 기괴하게 뒤틀린 지형 속을 헤집고 다닐 때부터 느꼈던 비정상적인 영적 열기. 그것이 지금 이 밀실을 아궁이처럼 가열하고 있었다. 이대로 3분만 지나면 고열과 질식으로 뇌가 먼저 녹아내릴 터였다.

윤우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품속의 가죽 장부를 꺼냈다.

축축하고 무거운 침묵이 장부의 표지에서 배어 나왔다. 손가락 끝을 깨물어 피를 흘릴 여유조차 없었다. 윤우는 이미 피가 흘러내려 굳어가는 왼쪽 어깨의 상처로 오른손을 가져갔다. 끈적한 핏물을 손가락 끝에 듬뿍 묻혔다. 그리고 거칠게 요동치는 열차 바닥에 장부를 펼쳤다.

[기이 연명 장부의 거래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이명이 머릿속을 긁으며 지나갔다. 윤우는 주저하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붉은 피가 가죽 장부의 누런 내지 위로 번져나갔다.

'밀실의 유독 가스와 고열을 차단할 탈출구. 비상구 열쇠의 은닉 수량을 강제로 증식시킨다.'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등가교환을 위한 대가를 산정합니다.] [제시된 대가: 사용자의 오른쪽 손가락 끝의 정교한 촉각, 그리고 8세 겨울 동생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나누었던 온기 어린 대화의 기억 전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감각이 일었다. 기억의 편린이 머릿속에서 도려내 지듯 날카로운 통증이 대뇌피질을 스쳤다. 동생 윤아의 얼굴은 기억나지만, 그 겨울날 나누었던 목소리, 손끝에 닿았던 눈뭉치의 차가움과 그것을 녹여주던 동생의 작은 손길이 통째로 검게 물들며 증발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 끝의 감각이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하지만 윤우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감정의 동요는 사치였다. 오직 살아서 동생에게 닿겠다는 결벽증적인 집착만이 그의 이성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스스스스…….

장부 위에 적힌 피글씨가 검게 변하며 흡수되는 순간, 열차 천장의 녹슨 환기구 안쪽에서 덜커덩하는 쇳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열쇠 세 개가 바닥으로 툭, 툭, 투둑 떨어져 내렸다. 은빛으로 빛나는 비상구 열쇠들이었다. 원래라면 단 하나만 존재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열쇠가 장부의 왜곡 법칙에 의해 세 개로 늘어나 실체화된 것이다.

"어……? 이게 왜……."

태현이 핏발 선 눈을 크게 뜨며 바닥에 떨어진 열쇠와 윤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숨을 쉬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던 태현의 가슴이 격렬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윤우가 장부에 피로 글을 쓰고 나서 기적이 일어난 과정을 똑똑히 목도했다. 괴이들이 지배하는 이 이계에서, 물리 법칙을 초월해 물건을 창조해 내는 힘. 그것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영역이었다.

태현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심연을 마주한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공포, 그리고 그 힘을 빼앗고 싶다는 탐욕이 뒤섞인 기괴한 경외감이었다. 태현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너, 한윤우……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 책에 뭘 적은 거지? 어떻게 열쇠가……."

"살고 싶으면 짓껄이지 말고 열쇠나 집어."

윤우는 감각이 사라져 감나무 토막처럼 변해버린 오른손으로 열쇠 하나를 쥐었다. 차가운 쇠의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근육의 움직임만을 뇌로 계산해 열쇠를 움켜쥐었을 뿐이다. 윤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태현을 쏘아보았다.

"질문할 시간에 숨 쉴 산소나 아끼는 게 좋을 텐데."

태현은 윤우의 얼음장 같은 태도에 찔린 듯 입을 다물었다. 윤우의 눈에는 인간적인 두려움이나 다급함이 전혀 없었다. 동료의 부상에도, 자신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기괴한 냉혹함. 태현은 소름이 돋는 피부를 쓸어내리며 서둘러 떨어진 열쇠 중 하나를 낚아챘다.

바로 그때, 열차의 중간 칸막이 문 너머에서 다급하고 얇은 비명이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흐윽, 숨이 안 쉬어져요……!"

서은채였다.

유리창 너머로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의 단정하고 상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헝클어진 머리칼과 공포에 질린 눈망울만이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가냘픈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윤우 씨! 태현 씨! 제발 문 좀 열어줘요…… 저 좀 살려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물기 어린 슬픔과 애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구라도 그 처량한 모습을 본다면 문을 열어주고 싶을 만큼 본능적인 동정심을 자극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윤우는 서은채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위기 상황이 닥치면 타인을 선동해 미끼로 던져주고 자신만 살아남는 '합리적 방관 협의회'의 핵심 인물이었다. 지금 저 우는 얼굴 뒤에는 오직 자신만 살겠다는 차가운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태현이 열쇠를 비상구 홈에 끼우려다 말고 멈칫하며 서은채를 바라보았다. 의심 많은 태현조차 그녀의 처절한 눈물에는 흔간 흔들리는 기색이었다.

윤우는 천천히 서은채가 갇힌 칸막이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손에 쥔 은빛 열쇠를 그녀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열쇠가 필요합니까?"

윤우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시장바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상인처럼 담담했다.

서은채는 윤우의 손에 들린 열쇠를 보자 눈을 번뜩였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창을 긁어댔다.

"네! 네! 제발요, 윤우 씨…… 제발 그 열쇠로 문 좀 열어줘요. 나가면 내가 가진 물품 다 드릴게요. 정말이에요!"

"말장난은 필요 없습니다."

윤우가 열쇠를 쥔 손을 뒤로 슬며시 뺐다. 서은채의 눈동자가 열쇠의 궤적을 따라 절박하게 움직였다.

"이 열쇠를 얻기 위해 내가 지불한 대가가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죠. 서은채 씨, 나와 거래를 하셔야겠습니다."

"거, 거래라니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서은채의 목소리에 아주 잠깐, 날카로운 본색이 섞여 나왔으나 이내 다시 훌쩍이는 울음소리로 덮였다.

"제가 뭘 드리면 되나요? 제발 가방에 있는 비상식량이라도……."

"그런 쓰레기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윤우는 품에서 가죽 장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장부의 한 페이지가 펼쳐지며 붉은 낙인 같은 문자식들이 공중에 미세하게 떠올랐다.

"당신의 생명력 일부를 내 장부에 담보로 지불하십시오. '생명 지불 장 조약'입니다. 계약이 성립되면 당신의 수명 중 일부가 내 장부의 자원으로 귀속됩니다. 동의한다면 열쇠를 넘겨주지."

서은채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수명을 바치라니. 그것은 단순한 물건 거래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깎아내야 하는 잔혹한 요구였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잔인한 요구를 해요? 우리가 같은 생존자끼리 돕지는 못할망정…… 태현 씨! 윤우 씨 좀 말려봐요! 이거 너무하잖아요!"

서은채는 교활하게 태현을 향해 구원을 요청했다. 동정심을 유발해 윤우의 페이스를 흔들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이미 윤우의 기괴한 능력과 냉혹함에 압도당해 있었다. 태현은 서은채의 시선을 피하며 비상구 문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난 상관 안 해. 살고 싶으면 윤우가 시키는 대로 해라, 은채 씨. 여기 온도가 지금 몇 도인지 안 보여?"

실제로 열차 내부의 온도는 이제 가만히 있어도 살가죽이 화끈거릴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서은채가 갇힌 칸에서는 벌써 매캐한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침을 쿨럭이며 숨을 헐떡이는 서은채의 눈에 진정한 공포가 깃들었다.

이대로 고집을 부리다간 계약이고 뭐고 뼈 한 조각 추리지 못하고 통구이가 될 판이었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제발…… 빨리!"

서은채가 비명을 지르며 유리창을 두드렸다.

윤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장부에 손가락을 대고 조약을 활성화했다.

"계약 성립."

장부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붉은 실 가닥들이 유리창의 틈새를 뚫고 들어가 서은채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서은채는 억,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그녀의 고운 피부에서 순식간에 생기가 빠져나가며, 눈가에 잔주름이 돋아나고 머리카락 몇 가닥이 푸석하게 변했다. 장부로 흡수된 그녀의 생명력은 붉은 게이지가 되어 장부 한구석을 채웠다.

윤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열쇠를 문틈 사이로 밀어 넣어주었다. 서은채는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받아 쥐고 허겁지겁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바닥에 고꾸라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윤우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겉으로 부르짖는 감사함 대신, 뼛속 깊이 새겨진 지독한 증오와 독기가 서려 있었다.

윤우는 그녀의 증오를 가볍게 무시했다. 타인의 감정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태현 씨, 열어."

윤우의 지시에 태현이 서둘러 비상구 문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철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탈출구가 열리며 외부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하아, 하아…… 살았다."

태현이 먼저 밖으로 기어 나갔고, 서은채 역시 비틀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윤우는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열차 내부의 뒤틀린 공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기차가 주기적으로 회전하며 왜곡을 일으키는 현상.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붕괴가 아니라 이계의 환경 정보가 실시간으로 재구축되는 일정한 '규칙'에 의한 것이었다.

윤우는 장부를 펼쳐 이 기괴한 공간 왜곡의 기원과 순환 주기를 피로 빠르게 적어 내렸다. 기차가 비정상적인 열기를 뿜어내며 왜곡을 시작하는 타이밍을 장부에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추후 이 공간을 제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환경 정보: '제7 격리 이계 - 뒤틀린 열차의 회전 주기'가 장부에 기록되었습니다.] [영적 열기의 흐름을 일부 관측함. 장부의 한기 거래를 통한 간섭 경로가 확보되었습니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건조한 알림음을 들으며 윤우는 열차 밖으로 발을 디뎠다. 어둡고 축축한 선로 위로 차가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살아남았다. 첫 번째 밤의 가장 가학적인 덫을 장부의 거래를 통해 돌파해 낸 것이다.

윤우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겉옷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손끝이 무뎌졌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을 스치는 기묘한 냄새가 신경을 자극했다.

지독하고 끈적한 피비린내.

열차 안에서 흘린 자신의 피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인위적이고, 기괴할 정도로 농축된 짐승의 피 냄새였다.

윤우는 천천히 자신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겉옷 뒷자락을 만졌다. 손가락 끝의 감각은 무뎠지만, 축축하게 젖어 있는 액체의 감촉과 코를 찌르는 악취는 명확했다.

그의 시선이 저만치 앞서 걸어가며 가늘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서은채의 뒷모습에 닿았다.

아까 칸막이 문이 열리고 그녀가 자신을 밀치며 기어 나올 때.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척했던 그 짧은 순간.

그녀가 윤우의 등 뒤에 묻혀 둔 것은 명백했다. 이 어둡고 붉은 밤, 사방에 널린 괴이들을 미친 듯이 끌어들이는 지독한 유인 향수였다.

서은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우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입꼬리가 기괴하리만치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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