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틀의 유리가 가늘게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강화도 북단 바다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해무를 찢으며, 이 땅의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한 쇳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무쇠 피스톤이 바닷물을 짓이기고, 수천 톤짜리 철갑 선체가 파도를 가르는 가공할 격동이었다. 단순한 상선의 고동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를 지배하는 거대한 포식자의 심장 박동이었다.

이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머릿속 도해에 각인되었던 기화선의 실루엣이 현실의 안개 너머로 겹쳐 보였다.

영국 해군 극동함대 주력 기화선, HMS 헤스페루스호였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박도만이 들고 있던 쇠망치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해무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평생 쇳물을 만지며 거친 소리에는 이골이 난 노장인이었으나, 저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증기 기관의 불협화음은 인간의 지각을 넘어서는 공포를 자아내고 있었다.

"서양 양이들의 철갑선이다. 그것도 가장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이지."

이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헤스페루스호의 내부 설계도가 정밀한 3D 형태로 회전하고 있었다. 3기통 복동식 증기기관, 직경 4미터에 달하는 청동 프로펠러, 그리고 우현으로 치우친 연로의 미세한 균열까지. 그러나 그 정밀한 도해를 오래 유지할수록 관자놀이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이진은 가볍게 마른기침을 하며 머릿속의 이미지를 지워냈다. 아직은 저 괴물과 정면으로 맞설 때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주조소 마당을 가로질러 거친 군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강화대공 이진은 들으라!"

주조소의 낡은 목조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밀려 열렸다. 문을 부수고 들어선 자는 강화군수 한필주였다. 그의 뒤편으로 붉은 철릭을 입은 주 관군 오십여 명이 삼지창과 화승총을 치켜든 채 주조소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필주의 바로 옆에는, 얼마 전 조정의 서슬 퍼런 탄핵령을 들고 왔다가 이진의 법리적 반격에 밀려 퇴각했던 어사 임세헌이 독이 바짝 오른 눈으로 서 있었다.

"결국 꼬리를 잡혔구나, 이 역적 놈들!"

한필주가 관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조소 내부의 가압 가마와 황동 배관들을 가리켰다. 그의 눈에는 탐욕과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바다 너머의 영길리(英吉利) 함대가 조정을 압박하며 강화를 포격하겠다 협박하고 있다! 이 모든 화근이 어디서 시작되었겠느냐? 바로 여기, 은둔종실의 몸으로 조정의 허락도 없이 괴력난신의 기계를 만들고 무기를 주조한 너희 놈들 때문이다!"

임세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품에서 붉은 공명첩과 비변사의 압수수색 영을 꺼내 들었다.

"조정의 안위를 위해, 비변사는 즉시 강화도 북단의 노두 광산과 이곳 주조소의 모든 설비를 몰수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영길리 함대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저들이 요구한 무연탄 공급권을 영길리 동인도회사 장교에게 즉각 헌납할 것이다! 영의 뜻이니라. 군주는 즉시 무릎을 꿇고 광산의 소유권과 주조소 열쇠를 넘겨라!"

매국(賣國)의 절차를 공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꼴이었다. 한필주와 임세헌은 서양 함대의 위협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이진이 일구어 놓은 무연탄 광맥과 증기 주조소를 합법적으로 탈취해 자신들의 공적으로 삼고, 나아가 안동 김씨 가문의 주머니를 채우려 하고 있었다.

박도만이 이빨을 부득 갈았다.

"이 빌어먹을 탐관오리 놈들이 감히 어디라고 발을 들이미느냐! 이 가마와 밸브는 저하와 우리가 피땀을 흘려 만든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을 놈들에게 단 한 조각의 놋쇠도 줄 수 없다!"

"닥쳐라, 천한 주조장 놈이 감히 국법을 논하느냐!"

한필주가 소리를 지르며 관군들에게 손짓했다.

"저 무뢰배들을 모두 포박하고, 가마를 부수어라! 광산의 채굴권 장부를 압수하라!"

관군들이 삼지창을 겨누며 좁혀오는 찰나, 이진의 곁에 서 있던 민시우가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품속에서 낡았지만 서슬 퍼런 기운이 도는 가죽 장책을 꺼내 들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이었다.

"멈추시오."

민시우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묘한 법리적 위압감을 담고 있었다. 관군들이 주춤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군수 한필주, 그리고 어사 임세헌. 그대들은 지금 일국의 대공이자 왕실의 종친을 상대로 감히 대역죄를 범하고 있음을 정녕 모르는가?"

"대역죄라니! 역모를 꾀한 것은 저 이진이다!"

임세헌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민시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경국대전』 형전 사송(詞訟) 조항의 구례를 보라. '변방 은둔 종실의 방어 목적 자가 제조물 사유권 보장(邊防隱遁宗室防禦目的自家製造物私有權保障)'이라 하였다. 이는 세조 대에 제정되어 대전통편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폐지된 적이 없는 성법(成法)이다."

민시우가 책을 들어 올리며 한필주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변방에 거하는 종실이 외적의 침입이나 위급한 사태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가 부담으로 제조한 모든 방어 기물과 그에 수반되는 광산 및 자원은 국가가 임의로 몰수할 수 없으며, 오직 해당 종실의 사유 재산으로 인정한다 명시되어 있다. 강화도는 서해의 관문이자 변방이다. 그리고 저 바다 너머에는 지금 양이의 군함이 위협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 그것은 옛날의 구례일 뿐이다! 지금은 비변사의 전시 명령이 우선한다!"

임세헌이 당황하여 소리쳤으나, 민시우의 반박은 송곳보다 날카로웠다.

"조선의 근본은 법치요, 성법은 비변사의 임시 처분보다 상위에 존재한다. 왕실의 구례를 무시하고 종실의 사유 재산을 강탈하여 외세에 바치려 하는 행위야말로, 국법을 유린하고 왕실의 권위를 훼손하는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한필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법리적으로 완벽하게 가로막힌 것이다. 조선은 명분을 극도로 중시하는 나라였다. 아무리 안동 김씨 가문의 비호를 받는 어사라 할지라도, 대전의 성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를 백주대낮에 자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진은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적들이 칼을 빼 들었을 때, 손목을 잘라버려야 다시는 칼을 쥐지 못하는 법이다.

"시우야."

이진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저하."

"그들이 들고 온 비변사의 명이라는 것, 실상은 안동 김씨 가문과 저 군수 놈이 사적으로 결탁하여 만든 허울에 불과하다는 증좌를 보여주어라."

이진의 명령에 민시우가 품 안에서 또 다른 두툼한 장부를 꺼냈다. 그것은 누렇게 바랜 종이에 붉은 낙인이 찍힌, 관아의 공문서가 아닌 사적인 밀무역 장부였다.

"이것은 강화군수 한필주의 친인척들이 안동 김씨 가문의 가솔들과 얽혀, 강화도 서쪽 해안을 통해 사적으로 세곡 수만 석을 밀수출하고 은화를 챙긴 장부요."

민시우가 장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함풍(咸豊) 몇 년, 은 수천 냥이 이조판서 김좌형의 가솔에게 전달되었고, 그 대가로 강화도의 관할 세곡이 장부에서 누락되었다. 또한, 저 바다 너머의 영길리 상선들과 은밀히 접촉하여 강화도의 철과 무연탄을 밀매하려 한 정황이 고스란히 적혀 있지."

"이, 이건 모함이다! 날조된 문서란 말이다!"

한필주가 비명을 지르며 장부를 빼앗으려 도약했으나, 이미 박도만이 묵직한 무쇠 부지깽이를 들어 그의 앞을 가로막은 뒤였다.

"날조라니요?"

이진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한필주와 임세헌을 꿰뚫었다.

"이 장부에 찍힌 직인은 네 놈의 안방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던 낙인과 일치한다. 사적으로 세곡을 빼돌려 가문의 배를 불리고, 이제는 국경의 위기를 핑계 삼아 나라의 자원마저 외세에 팔아넘기려 했다. 이는 경국대전 대역률(大逆律)에 해당하는 '외경통간(外境通奸)'이자 '군량사기(軍糧私欺)' 죄다."

이진의 음성은 주조소 내부의 가압 가마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어사 임세헌. 너 역시 이 자의 밀수 행위를 묵인하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아 챙긴 정황이 이 장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감히 왕실의 종친을 역적으로 몰아 세도 가문의 죄상을 덮으려 했느냐?"

"저, 저하! 그것은 오해이옵니다! 소인은 그저 조정의 명을 따랐을 뿐..."

한필주가 무릎을 꿇으며 변명하려 했으나, 이진의 냉혹한 판결은 이미 내려진 뒤였다.

"강화도는 유수부(留守府)의 관할이자, 국방의 최전선이다. 국법에 따라, 외적의 위협이 눈앞에 닥친 비상시국에는 종실이자 유수부의 방어를 책임지는 대공의 권한으로, 이 고을의 군권을 대행하고 부패한 관료의 자산을 즉시 몰수할 수 있다."

이진이 관군들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던졌다.

"너희는 조선의 군사들인가, 아니면 안동 김씨 가문의 사병인가! 저 대역죄인들을 포박하라! 만약 명을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역적의 무리로 간주하여 참할 것이다!"

관군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웅성거렸다. 이진이 제시한 경국대전의 법리와 명백한 밀수 장부, 그리고 왕족으로서의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그들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마침내 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장교가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대공 저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 이놈들! 감히 누구에게 칼끝을 겨누는 것이냐! 내가 조정의 어사다!"

임세헌이 악을 썼으나, 관군들은 사정없이 그의 팔을 꺾어 바닥에 메쳤다. 한필주 역시 비명을 지르며 포박당했다. 그들의 관복이 주조소 바닥의 검은 숯가루와 흙먼지로 더럽혀졌다.

"군수 한필주의 관아 창고를 즉시 개방하라."

이진이 민시우에게 서늘한 명령을 내렸다.

"관아에 보관된 환곡 실물과 비축된 은화 일체를 군수 자금으로 압수한다. 또한, 노두 광산의 채굴 인력을 두 배로 늘리고, 채굴된 무연탄은 전량 이 주조소로 운반하라."

"명령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민시우가 깊이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는 이진의 완벽한 법리적 지배력에 대한 깊은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탐관오리들의 탐욕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강화도의 모든 재정과 군권을 합법적으로 통제 아래 둔 것이다. 이로써 주조소의 불을 다시 밝히고, 더 큰 동력을 얻기 위한 군자금이 완벽하게 확보되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 포박당한 임세헌이 얼굴에 흙먼지를 묻힌 채 피눈물을 흘리며 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며 저주의 말을 뱉어냈다.

"으으... 이진... 네놈이 감히 천하를 이길 성싶으냐? 네가 아무리 이 섬 구석에서 법을 논하고 쇠붙이를 만지작거려 보았자 소용없다!"

임세헌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수구 대감들께서 이미 저 먼바다 알렌 제독의 철갑 기선들에게 강화 요충지를 내주기로 서약하셨다! 조정은 이미 너를 버렸고, 이 섬을 버렸다! 조만간 저 양이들의 거포가 이 주조소와 네놈의 머리 위로 불벼락을 내릴 것이다! 흘러간 조선의 법 따위가 저들의 무쇠 대포를 막아줄 것 같으냐!"

그의 광기 어린 외침과 동시에, 창밖의 해무 너머로 다시 한번 헤스페루스호의 육중한 고동 소리가 주조소 대지를 뒤흔들었다.

쿠구구구궁!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거대한 강철 괴물이 마침내 강화도의 심장부를 향해 포문을 열기 위해, 서서히 죽음의 닻을 내리는 소리였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