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록 법리에 숨을지언정 연료가 없다면 이 철물들은 결국 썩어가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강화도로 향하는 한양의 석탄 길을 모두 막을 것이다! 단 한 톨의 석탄도 이 섬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

동헌의 마당을 뒤흔들던 주어사 임세헌의 악다구니는 검은 석탄재와 함께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금군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강화도 동쪽 자락의 주조소에는 오직 숨 막히는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사흘 뒤.

강화도 주조소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식어 있었다. 임세헌이 공언한 협박은 빈말이 아니었다. 한양 마포나루를 장악한 안동 김씨 가문의 경강상인들은 서해 물길을 오가는 옹기배와 세곡선까지 샅샅이 뒤졌다. 조정의 척신 세력이 사적으로 부리는 수릉군(水陵軍)과 사포(私捕)들이 염하(鹽河)의 목구멍을 틀어막았으니, 강화도로 향하던 무연탄 운반선들은 단 한 척도 물길을 건너지 못했다.

화덕의 불길이 꺼진 주조소 내부는 바닷가 특유의 습한 냉기로 가득했다.

박도만은 굳어버린 쇳물이 엉겨 붙은 도가니를 거친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때 묻은 놋쇠 밸브들이 가압 가마 옆에 쓸쓸히 널려 있었다. 가마의 내화 백토 벽돌은 열기를 잃고 식어가는 과정에서 미세한 균열 소리를 냈다. 찌르르, 피를 말리는 비명 같았다.

"대공 저하."

박도만이 쇠망치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퉁명스럽게 뱉었다. 그러나 갈라진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울분이 서려 있었다.

"한양의 척신 잡놈들이 물길을 모조리 틀어막았나이다. 저 가마 속에 채워 넣을 석탄 더미가 바닥났으니, 이번에 수정한 압력 제어 밸브의 황동 배합을 시험할 화력조차 내지 못합니다. 쇳물은 불이 꺼지면 그저 차가운 돌덩이일 뿐입니다."

옆에 서 있던 민시우가 품에서 한 장의 장계를 꺼내 들었다. 그의 곧은 눈매에 서린 빛이 평소보다 한층 더 차가웠다.

"경국대전 형전의 사송 조항을 들이밀어 법조문으로 어사를 돌려보내기는 하였으나, 유통망을 사적으로 쥐고 흔드는 세도의 물리적 폭거까지 당장 법치로 옭아맬 수는 없습니다. 법은 율례 위에 존재하나, 석탄은 배 위에 존재하니까요. 저들이 서해안의 모든 탄선을 통제하는 한, 이 주조소는 아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어버린 백토 가압 가마의 둥근 전면부를 응시했다.

타인을 믿지 않는다. 과거 동료의 배신으로 뼈에 새겨진 그 불신은, 이진으로 하여금 이 상황을 감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만들었다. 임세헌의 보복도, 안동 김씨의 사리사욕도 그에게는 그저 기계의 오작동을 유발하는 이물질에 불과했다. 이물질이 기어들어 왔다면, 기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물질을 으스러뜨려 연료로 삼아야 했다.

"연료가 없다고 기계를 멈추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짓이다."

이진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주조소의 냉기를 갈랐다.

"저들이 물길을 막았다면, 우리는 땅을 열면 그만이다."

"땅을 열다니요? 강화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옵니다. 이곳에서 석탄이 나온다는 기록은 관청의 지리지 어디에도 없나이다."

민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서류와 선례를 숭상하는 그에게, 기록에 없는 자원을 찾아내겠다는 대공의 선언은 황당한 집착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진은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신경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뇌세포의 시냅스들이 일제히 푸른빛을 발하며 연결되었다.

'골든핑거.'

허공에 보이지 않는 3D 홀로그램이 전개되었다. 현대 기계공학자로서 쌓아 올렸던 수만 권의 지질학 데이터베이스와 한반도 지층 분석도 가시화되었다. 경기 육괴의 서쪽 끝자락, 대동누층군의 퇴적층이 강화도 북단 요새 지형과 겹쳐지며 정밀한 단면도로 재구성되었다.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윽……!"

이진의 이가 맞부딪히며 거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조선의 기술 수준과 미래 공학 데이터베이스 사이의 인과율적 격차는 가차 없이 그의 육체를 갉아먹었다. 뇌세포가 고온의 증기에 노출된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었다. 옹기 가마를 개조하는 수준의 '토법'을 거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지질 정보와 기밀 도면을 머릿속에서 강제로 인출하려는 시도는 영혼을 깎아내는 대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도해의 탐색 범위를 한층 더 넓혔다.

장차 이 서해 바다를 피로 물들일 외세, 영국 해군의 주력 기화선 'HMS 헤스페루스(Hesperus)'호의 내부 설계도까지 강제로 시각화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석탄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가올 파멸적인 침략에 대응할 치명적인 약점을 미리 손에 쥐어야만 했다.

푸른 빛의 도해 속에서 3단 팽창식 증기 보일러의 구조가 입체적으로 회전했다.

영국 해군이 자랑하는 최신형 군함이었으나, 19세기 기술의 한계는 명확했다. 고압 증기를 감당하기 위해 설계된 우현 우회 연로(by-pass flue)의 열팽창 제어 장치. 그 조절판과 안전 밸브의 환기 배관이 연결된 접합부에 미세한 설계 결함이 존재했다. 특정 압력 임계치를 넘어서면 열팽창률의 불균형으로 인해 안전 밸브가 기계적으로 고착되어 버리는 치명적인 취약점이었다.

'우현 우회 연로, 환기 배관의 세 번째 분기점…….'

그 정보를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하는 순간, 이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쿨럭! 큭……!"

이진의 입에서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적갈색 피가 그가 쥐고 있던 조선 백자 발 위에 붉은 꽃처럼 흩뿌려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과 함께 눈앞이 암전되었다.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대공 저하!"

"저하!"

박도만과 민시우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이진을 붙잡았다.

이진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그의 얇은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평소 냉혹하고 기계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진 채 부서져 가는 처절한 육신만이 남겨져 있었다.

박도만은 피 묻은 대공의 손을 쥐며, 거친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이 무슨…… 어찌 이리 스스로를 해치며 철물을 만드신단 말입니까! 저까짓 쇠붙이가 무엇이기에 목숨을 버리려 하십니까!"

민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이진의 맥을 짚었다. 냉철하게 법리만 따지던 서리의 가슴속에서 기이한 격통이 일었다. 이진은 자신들을 그저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냉혈한인 줄 알았으나, 실상 가장 가혹하게 마모되고 깎여 나가던 핵심 톱니바퀴는 이진 자신이었다. 왕실에서 버림받고 세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젊은 대공은 자신의 수명을 등유로 삼아 강화도의 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도만아, 어서 물을 가져오너라! 어서!"

민시우의 목소리가 이례적으로 갈라지며 주조소 안을 울렸다.

잠시 후, 희미하게 눈을 뜬 이진은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두 사람을 차갑게 밀쳐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초점을 잃지 않은 채 번득이고 있었다.

"비켜라."

"저하, 누워 계셔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

이진은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주조소 바닥에 굴러다니던 초안지 한 장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먹을 찍어 거칠게 선을 그려나갔다.

두통으로 인해 시야가 흔들렸으나, 그의 손끝은 여전히 1마이크론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으로 강화도 북단의 산세를 모사했다.

"이곳이다."

이진이 지도의 한 점을 강하게 짚었다. 붉은 핏자국이 묻은 그곳은 강화도 북단, 민가조차 드문 황량한 계곡인 '가위누린'이었다.

"가위누린 계곡 동쪽 절벽 아래를 삼 척만 파고들어 가라. 그곳에 조선의 그 어떤 광산보다 질 좋은 무연탄 노두(露頭)가 묻혀 있다. 흙을 걷어내기만 하면 검은 보물이 쏟아질 것이다."

박도만과 민시우는 이진이 그려낸 지도를 번갈아 보며 넋을 잃었다. 관청의 그 어떤 서조(書條)에도 기록되지 않은 은밀한 광맥의 위치가 대공의 손끝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려진 탓이었다.

"이것이…… 참말이옵니까?"

박도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당장 유기장의 장인들과 인부들을 소집해 가위누린으로 가라. 관청의 허가 따위는 필요 없다."

그때 민시우가 지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 다시금 서리 같은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저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안동 김씨 가문이 이 광맥을 알아채고 국유화를 명분으로 압수하려 들 것입니다. 광산은 조정의 소유가 원칙이니까요."

"그들이 법을 들이댄다면, 우리는 더 오래된 법으로 맞선다."

이진은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소매로 닦아내며 민시우를 응시했다.

"민시우. 경국대전 형전(刑典) 사송(詞訟) 조항을 기억하는가."

민시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율법 조문들이 한 줄기 빛처럼 꿰어지기 시작했다.

"……'변방 은둔 종실의 방어 목적 자가 제조물 사유권 보장' 구례를 말씀하시는 군요."

"그렇다. 선대 왕조 시절, 변방에 유배되거나 은거한 종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자가 소비 목적으로 개간한 토지와 채굴한 광물은 조정의 징세와 압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성법(成法)의 예외 조항이다. 비록 사장된 구례이나, 경국대전에 엄연히 등재된 국법이지."

민시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지적 희열이 그의 차가운 얼굴을 채웠다.

"과연 그렇습니다. 강화도는 서해의 요충지이자 외적의 침입이 잦은 변방입니다. 저하께서는 유배된 종실이시니, 외적을 막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가위누린의 탄광을 독자적으로 채굴하는 것은 경국대전에 의해 완벽히 합법이며 결코 역모나 불법 압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한필주 군수나 임세헌이 관군을 이끌고 와도 이 법리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할 것입니다."

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도만을 바라보았다.

"도만아."

"예, 저하."

"탄광이 열리면 화력 걱정은 끝난다. 하지만 가압 가마의 동력을 백 퍼센트 이끌어내려면 놋쇠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합금이 필요해."

박도만이 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다면 역시, 조상들이 왕실의 대종(大鐘)을 만들 때 쓰던 고석율 주조법인 '권석금(權石金)' 합금비를 복원해야 합니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비장(秘藏)의 미세 배합으로 맞추어 식힐 때의 수축률을 제어하는 기예입니다. 제 조부께서 남기신 비책이 있으나, 열기가 모자라 시도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 권석금을 가압 가마의 실린더와 포신에 적용한다. 무연탄이 도착하는 즉시 주조를 개시하라."

"명령만 내리소서. 제 온 목숨을 바쳐 서양 놈들의 무쇠 함포보다 단단한 포신을 짜내겠나이다!"

박도만이 바닥에 엎드리며 맹세했다. 주조소 안의 공기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비록 불은 꺼졌으나, 세 사람의 가슴속에는 세도 정치를 허물고 외세를 격퇴할 거대한 증기 문명의 서막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진은 지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들이 공급을 끊어 자신을 고립시키려 했다면, 스스로 자원을 통제하는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강화도는 이제 단순한 유배지가 아니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무적의 군수 요새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가라. 가서 땅을 열고 검은 불꽃을 가져와라."

이진의 단호한 명령에 박도만과 민시우가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물러서려던 찰나였다.

쩌어어어어엉!

주조소 창틀의 유리창이 미세하게 떨렸다.

동시에 강화도 북단 바다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해무 속에서, 조선의 그 어떤 배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하고 웅장한 금속성의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증기 피스톤이 바닷물을 짓이기고, 수천 톤짜리 강철 선체가 파도를 가르는 가공할 소리였다. 단순한 상선의 고동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를 지배하는 거대한 포식자의 심장 박동이었다.

이진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머릿속 도해에 각인되었던 기화선의 실루엣이 현실의 안개 너머로 겹쳐 보였다.

영국 해군 극동함대 주력 기화선, HMS 헤스페루스호였다.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아직 무연탄 채굴조차 시작하지 못한 이때, 이국의 거대한 강철 괴물이 강화 앞바다를 피로 물들이기 위해 안개를 찢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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