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들이 드디어 덫으로 들어오는군."
이진의 나직한 혼잣말은 주조소 내부의 열기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끝에 닿은 황동 밸브의 매끄러운 금속 질감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전, 전하…… 정예 금군이라 하옵니다. 저들은 이조판서 김좌형의 수하들입니다. 법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칼부터 뽑아 들 자들이옵니다!"
전령은 바닥을 기며 이진의 도포 자락을 붙잡았다. 사시나무 떨듯 떠는 사내의 손끝에서 묻어난 핏방울이 주조소의 흙바닥을 검붉게 적셨다. 갑곶나루에서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오느라 발바닥이 온통 찢어진 모양이었다.
민시우는 품에 안은 『경국대전』 사본을 터질 듯이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동결되어 있었다. 법치의 실현을 갈망하는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전하, 아직 성법의 명분이 완전히 조정에 고해지지 않았사옵니다. 저들이 먼저 칼을 뽑아 무력으로 이곳을 짓밟는다면, 사후에 법리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사옵니다. 우선 피하셔야 하옵니다."
"피하라고?"
이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시우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고요했다.
"기계의 톱니바퀴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갈 때만 비로소 동력을 얻는다. 만일 여기서 내가 한 걸음이라도 물러선다면, 우리가 맞춘 톱니의 첫 단추는 영원히 어긋나게 된다. 저들이 칼을 들고 왔다면, 나는 그 칼날이 스스로의 목을 겨누도록 만들 뿐이다."
"하지만……!"
철컥.
민시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조소 바닥에 묵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도만이었다. 그는 평생을 쥐어 온 거대한 주조용 쇠망치를 어깨에 들쳐 메고 있었다. 숯검정이 가득 묻은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고집스러운 장인의 살기가 서려 있었다.
"대공 전하. 이 늙은이의 놋쇠 밸브를 저 잡놈들의 칼부림에 찌그러뜨릴 수는 없습죠.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대가리부터 깨부수겠습니다."
"망치는 쇠를 부릴 때만 쓰는 것이다, 도만아. 개를 잡는 데 아까운 연장을 버리지 마라."
이진은 평온하게 옷자락을 쓸어내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무수한 선과 기하학적 수치들이 홀로그램처럼 교차하고 있었다. 1마이크론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미래 공학 도해가 그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며, 현재 상황이라는 거대한 역학 관계를 실시간으로 분해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주조소의 두꺼운 목제 화덕 문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마당 바깥에서 거친 함성과 군마의 울음소리가 들이닥쳤다.
"사헌부 아문이며, 왕명을 받든 어사의 행차시다! 역모의 수괴와 그 부역자들은 즉시 무릎을 꿇고 포박을 받으라!"
벼락같은 고함과 함께 주조소의 거친 나무문이 형편없이 부서져 나갔다. 먼지 구덩이 사이로 붉은 철릭을 입고 가슴에 백택 흉배를 붙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헌부 분대어사 임세헌.
그의 뒤편으로 서슬 퍼런 환도를 빼어 든 금군 삼십여 명이 주조소를 겹겹이 포위했다. 주조소 내부의 열기와 습기, 그리고 군사들이 몰고 온 바깥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딪치며 뿌연 김을 만들어냈다.
임세헌은 코를 찌르는 석탄 연기와 쇳가루 냄새에 미간을 극도로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주조소 한가운데, 낡은 목제 의자에 마치 옥좌에 앉은 듯 고고하게 앉아 있는 이진에게 닿았다.
"대공 이진. 유배의 몸으로 자중하지 않고, 감히 이 은밀한 골짜기에 철물공장을 차려 사사로이 무기를 주조하다니. 네놈이 마침내 역모의 깃발을 들고자 하는구나!"
임세헌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안동 김씨 가문의 영수, 이조판서 김좌형에게 직접 밀명을 받고 내려온 길이었다. 강화대공의 목을 치거나, 최소한 영원히 재기 불능으로 만들 명분만 잡으면 그의 출셋길은 탄탄대로였다.
금군들이 일제히 환도를 겨누며 이진을 압박했다. 칼날에 반사된 겨울 햇살이 이진의 뺨을 서늘하게 스쳤다.
그러나 이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가볍게 톡, 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타격음이 긴장감으로 터질 듯한 주조소 내부에 기묘한 박자감을 부여했다.
"어사라 함은 전하의 눈과 귀가 되어 지방의 억울함을 살피고 국법을 바로세우는 자리이거늘."
이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으나, 주조소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꽂혔다.
"한낱 사헌부의 하급 관리가 정예 금군을 사사로이 사동하여, 왕실의 종친이자 대공의 처소에 무단으로 난입해 칼날을 겨누다니. 임세헌, 네놈이 쓰고 있는 그 사모가 아깝지 않으냐?"
"닥쳐라! 종친의 지위는 이미 박탈당한 지 오래거늘, 어찌 감히 대공의 칭호를 사칭하며 조정을 능멸하려 드는가! 저 사악한 철물 장치들이 바로 네놈이 역모를 꾀했다는 명백한 증좌다!"
임세헌이 삿대질을 하며 주조소 한편에 자리 잡은 가압 가마와 황동 배관들을 가리켰다.
"저 기괴한 쇠 파이프와 놋쇠 통들은 필시 성벽을 무너뜨릴 포탄을 제조하거나 화약을 축적하기 위한 흉기임이 분명하다! 군사들은 즉시 저 역모의 철물들을 압수하고, 대공과 그 부역자들을 압송하라!"
금군들이 군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멈추시오!"
칼날의 숲을 헤치고, 한 사내가 단호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민시우였다. 그의 손에는 낡은 가죽 권당과 함께 관청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공문서가 들려 있었다.
임세헌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네놈은 또 어떤 부역자냐? 감히 어사의 명을 가로막다니, 제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소인은 강화도 전임 서기이자, 대공 전하의 법무를 보좌하는 민시우라 하옵니다."
민시우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포를 여몄다. 그의 목소리에는 법치에 대한 확신과, 이진이 제시했던 정교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지적 오만이 서려 있었다.
"어사또께서는 지금 심각한 국법 위반을 저지르고 계십니다. 헌법의 근간인 『경국대전』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계시단 말입니다."
"국법 위반? 내가?"
임세헌이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역적의 소굴을 소탕하는 어사에게 국법 위반이라니,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네놈이 들고 있는 그 종이 쪼가리가 네 목숨줄이라도 늘려줄 것 같으냐?"
"그렇사옵니다. 이 종이 쪼가리가 바로 조정의 성법(成法)이며, 어사또께서 결코 넘을 수 없는 빗장입니다."
민시우는 공문서를 임세헌의 코앞에 펼쳐 보였다.
"첫째, 이 주조소에서 제작 중인 모든 기물은 무기가 아니옵니다. 여기 강화군수 한필주 대감이 직접 서명하고 관인을 찍은 '강화 요성 화재 예방 및 해안 수방용 기구 설치 허가서'를 보십시오."
임세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문서를 가로채 내용을 훑었다. 문서에는 분명히 강화도의 잦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고압 수방 펌프' 및 '조조용 가압 가마'의 합법적 제조 승인이 적혀 있었다. 한필주의 세세한 수결과 관인까지 완벽하게 찍힌 공식 행정 문서였다.
"이, 이것은 한필주가 대공의 협박에 못 이겨……!"
"협박이라니요. 지방 수령이 영지 내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종친의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경국대전 호전(戶典) 구휼 조항에 명시된 수령의 합법적 권한입니다. 이를 부정하시는 것은 강화군수의 행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조정을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민시우의 압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경국대전』 형전 사송 조항의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둘째, 설령 이것이 방어용 기물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사옵니다. 경국대전 형전 사송 조항과 세조 조의 국조전례를 대조해 보십시오. '변방 은둔 종실의 자가방어 목적 자가 제조물 사유권 보장' 구례에 따르면, 유배지나 외지에 은거하는 왕실 종친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독자적인 방어 기구 및 사유 재산을 주조하고 소유할 수 있는 특례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주조소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금군들의 칼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조정의 명을 따르는 군사들이었기에, '경국대전'과 '성법'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절대적인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조항에 의거하여, 대공 전하께서 이곳에서 주조하시는 모든 기계와 황동 밸브는 국법이 보장하는 완벽한 '자가방어용 사유 재산'에 해당합니다. 어사라 할지라도, 법적 근거 없이 사유 재산을 강탈하거나 압수하는 것은 명백한 '장형(杖刑)'에 처해질 중죄입니다!"
민시우의 낭랑한 목소리가 주조소 천장을 때렸다. 그의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사대주의와 성학의 명분만을 앞세우던 조정의 관료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경국대전의 자구로 바리케이드를 친 것이다.
임세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문서를 구겨 쥐었다.
"이깟 법전의 구시대적 문구 몇 개로 대역죄를 덮으려 들다니! 궤변이다! 왕실의 안위를 위협하는 기물을 만드는 자들을 어찌 사유 재산이라는 핑계로 방치한단 말이냐! 군사들은 내 말을 들라! 저 문서들은 모두 위조된 것이니, 즉시 기계를 파괴하고 대공을 잡아들여라!"
법을 집행해야 할 어사가 명분이 막히자 무력으로 폭주하려는 찰나였다.
"임세헌."
이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움직이자, 주조소 내부의 공기 흐름이 일시에 바뀌는 듯한 압도적인 중압감이 사방을 지배했다. 이진의 걸음걸이는 마치 거대한 증기 피스톤이 구동하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묵직했다.
그는 임세헌의 눈앞까지 걸어와 멈춰 섰다. 임세헌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진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그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기 때문이다.
"궤변이라 했느냐."
이진의 입가에 차가운 실소가 머물렀다.
"그렇다면 하나만 묻지. 헌종 십이년, 네놈의 조부인 전 이조판서 임백연이 사가에 무기고를 짓고 사병 수십 명을 거느려 탄핵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느냐?"
임세헌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그, 그것이 갑자기 무슨……!"
"당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네 조부를 대역죄로 몰아세웠을 때, 네 조부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올린 소장(疏章)의 내용을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이진은 머릿속 미래 공학 DB의 한편에 저장되어 있던 조선 사초의 기록을 정밀하게 인출해 냈다. 그의 뇌리에서 출력된 텍스트가 그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신(臣) 임백연은 변방의 도적과 가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사가의 방비 기물을 정비하였으니, 이는 경국대전 형전 사송 조항의 자가방어 특례에 부합하옵니다. 이를 역모로 모는 것은 조정의 성법을 모독하는 행위이옵니다.' 당시 영의정 이하 모든 대간들이 네 조부의 상소에 고개를 끄덕이며 탄핵을 기각했지."
이진이 임세헌의 얼굴 바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숨결에서 차가운 금속 냄새가 나는 듯했다.
"네 조부가 사가에 진짜 칼과 창을 쌓아둔 것은 가문의 안위를 위한 '합법적 사유 재산'이고, 왕실의 적통이자 대공인 내가 이 황무지에서 불을 끄기 위한 수방 기구를 만드는 것은 '역모'란 말이냐?"
"그, 그것은……!"
"임세헌. 네놈은 지금 네 조부의 법리를 부정하여 가문을 불효로 몰고 가려는 것이냐, 아니면 조정의 선례를 네놈 멋대로 뒤엎어 국법의 기틀을 송두리째 흔들려는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임세헌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방을 둘러싼 금군들의 시선이 이제는 이진이 아닌 임세헌을 향해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의구심과 당혹감이 가득했다.
조선은 명분과 전례의 나라다. 선조가 세운 전례를 부정하는 것은 곧 효(孝)와 예(禮)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이는 사대부로서 사회적 매장을 의미했다. 특히나 안동 김씨 가문의 비호를 받는 임세헌으로서는, 자신의 가문과 조부의 행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올가미에 걸려버린 셈이었다.
"내가 네놈의 목을 베어 저 바다에 던져도, 조정의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 못할 것이다. 법을 수호해야 할 어사가 조부의 명예를 더럽히고, 국법의 으뜸인 경국대전을 멸시하며 날뛰었으니 말이다."
이진의 냉혹한 판결에 임세헌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구겨진 공문서가 바들바들 떨렸다.
완벽한 사법적 구타였다. 무기 하나 쓰지 않고, 오직 조선의 율법과 역사적 사실만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서슬 퍼런 어사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 것이다.
"군사들…… 칼을 거두어라."
임세헌이 결국 굴욕감에 젖은 목소리로 쥐어짜듯 명령했다.
서릉 서릉.
금군들이 일제히 환도를 칼집에 밀어 넣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눈앞의 버려진 대공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서려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유약한 대공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조정의 생리를 잘 알고, 국법의 틈새를 송곳처럼 파고드는 무서운 권력자였다.
임세헌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대로 빈손으로 한양으로 돌아간다면, 이조판서 김좌형의 불호령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의 시선이 주조소 마당 한편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가압 가마와, 그 옆에 쌓여 있는 소량의 석탄 더미에 머물렀다. 임세헌의 흙빛이 된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가마를 삿대질하며 발악하듯 외쳤다.
"비록 법리에 숨을지언정, 연료가 없다면 이 철물들은 결국 썩어가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강화도로 향하는 한양의 석탄 길을 모두 막을 것이다! 단 한 톨의 석탄도 이 섬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 그 잘난 쇠붙이들이 언제까지 숨을 쉬는지 두고 보자꾸나!"
임세헌은 소매를 거칠게 휘날리며 주조소 바깥으로 걸어 나갔고, 금군들이 그 뒤를 이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불어와 주조소의 깨진 문 사이로 검은 석탄재를 날렸다.
민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진을 바라보았다. 연료 차단. 그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강화도의 증기 영지에게 치명적인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진은 멀어져 가는 임세헌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읊조릴 뿐이었다.
"쥐새끼가 스스로 제 굴을 막아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