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기씨의 도면이 맞다 해도, 이 가마의 진흙 압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한 치도 가지 못해 함께 불탈 것입니다.”

박도만이 내지른 비명은 붉게 달아오른 백토 가마의 포효에 묻혔다. 가압 가마의 아궁이 구멍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열풍은 살갗을 그슬릴 듯 기세등등했다. 가마 내부의 온도는 이미 황동의 녹는점인 천 도를 훌쩍 넘어섰고, 밀폐된 가마 안의 공기는 팽창할 대로 팽창해 진흙 벽을 터뜨릴 기세로 요동쳤다.

이진은 멈추지 않았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비린내를 목구멍 너머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입가로 흘러내린 한 줄기 붉은 피가 가마의 열기에 닿기도 전에 말라붙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청색의 반투명 3D 도면이 실제 가마의 형상 위로 정밀하게 겹쳐졌다.

[보일러 내압: 2.85 bar] [백토 외벽 인장 강도 임계점: 3.0 bar]

임계치까지 남은 압력은 단 0.15바. 가마가 폭발해 사방으로 끓는 놋쇠물과 백토 파편이 비산하기까지 채 일 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진은 오른손을 뻗었다. 가죽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전하! 손이 타들어 갑니다!”

박도만이 경악하여 소리쳤지만, 이진의 귀에는 오직 가마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분자들의 진동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손끝이 가마 외벽의 거친 옹기토 표면에 닿았다. 1마이크론 단위까지 증폭된 초미세 촉각이 가마 벽 내부의 공극을 파고들었다. 열팽창계수의 불균형으로 인해 백토 입자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지점이 손끝을 통해 뇌리로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우측 하단, 세 번째 옹기토 접합부.”

이진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거기서 기포가 차오르며 8마이크론의 미세 균열이 발생했다. 도만, 지금 즉시 짚자루에 물을 적셔 그곳에 안개처럼 털어라.”

“예? 예!”

박도만은 정신없이 양동이에 담긴 물에 짚마루를 담갔다. 그리고 이진이 가리킨 가마의 우측 하단 외벽을 향해 물방울을 거칠게 털어냈다.

치이이익!

자욱한 백색 수증기가 주조소 내부를 가득 메웠다. 가마 외벽에 닿은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기화하며 열을 빼앗아 갔다. 이진은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가마 벽의 수축률을 감지했다.

“멈춰라. 급격히 식히면 백토가 깨진다. 이제 좌측 상단의 환공을 반 푼만 열어라. 내부 가스를 배출해야 한다.”

박도만은 이진의 지시에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에 쥐인 쇠꼬챙이가 가마 상단의 작은 숨구멍을 찌르자, 쐐애액 하는 가공할 만한 마찰음과 함께 고압의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가마 내부의 압력 수치가 완만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일러 내압: 2.40 bar. 안정화 진행 중.]

“지금이다. 권석금 합금 용탕을 주입해라.”

이진의 명령에 박도만이 이글거리는 도가니를 집게로 받쳐 들었다. 구리와 아연, 그리고 고석율 주석 배합비가 정밀하게 조율된 푸른빛의 액체 금속이 백토로 만든 왕복식 밸브 거푸집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쉭, 주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가 이진의 뺨을 스쳤다. 이진은 눈을 감았다. 손끝은 거푸집의 외벽을 짚고 있었다. 주조물이 식어가며 수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부 기포의 위치가 머릿속 도면에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거푸집 상단을 망치로 가볍게 세 번 두드려라. 기포를 위로 밀어 올려야 한다.”

깡, 깡, 깡.

박도만의 정밀한 망치질이 거푸집을 울렸다. 붉은 점들이 상단의 탕구로 모여들며 소멸했다. 내부 밀도가 완벽에 가깝게 균일해지는 감각이 이진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순간, 뇌리를 찌르는 극심한 편두통에 이진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윽…….”

“전하!”

“서라. 거푸집을 해체해라.”

이진은 바닥에 짚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시선을 거푸집에서 떼지 않았다.

박도만이 조심스럽게 망치를 들어 백토 거푸집을 내리쳤다. 파스스 부서지는 백토 조각들 사이로,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은은한 황색과 푸른빛이 감도는 황동제 증기 기밀 밸브였다.

그것은 조선의 그 어떤 장인도 만들지 못했던 정밀함의 극치였다. 표면에는 거친 주조 흔적 대신, 기계로 깎아낸 듯 매끄러운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밸브의 나사산과 내부 피스톤 접합부의 오차는 단 1마이크론 이하. 현대의 정밀 선반 없이, 오직 조선의 옹기 가마와 놋쇠 합금을 제어하여 완성해 낸 최초의 토법 증기 부품이었다.

박도만은 밸브를 들어 올린 채 손을 떨었다. 평생을 쇠와 놋을 만지며 살아온 장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것이…… 정녕 흙 가마에서 나온 주물이란 말입니까? 서양 놈들의 무쇠 함포에 들어가는 부속도 이토록 매끄럽지는 못할 것입니다. 전하, 이것은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닙니다.”

이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했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조선을 바꿀 첫 번째 톱니바퀴다.”

바깥의 거센 바닷바람이 주조소의 틈새를 파고들어 웅웅 소리를 냈다. 그 바람 소리 사이로, 이질적인 발자국 소리가 섞여 들었다. 주조소의 낡은 목조 문이 거칠게 열리며, 짙은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안개와 먼지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법전과 서책이 가득 담긴 지함이 들려 있었다. 단정한 콧날과 칼로 잰 듯 곧은 눈매를 가진 사내, 강화도 유배지에 은거 중이던 전직 사헌부 지평 민시우였다.

민시우는 주조소 내부를 가득 채운 기괴한 백토 가마와 열기, 그리고 박도만의 손에 들린 황동 밸브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이진의 피 묻은 입술에 머물렀다.

“대공 전하.”

민시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정전의 바닥처럼 딱딱했다.

“사사로이 화기를 제조하고, 조정의 허가 없이 백토 가마를 개조하여 정체불명의 도구를 주조하는 행위는 경국대전 병전(兵典) 군기(軍器) 조항에 의거, 참수형에 처할 수 있는 대역죄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유배인의 신분으로 어찌 이리 무모한 일을 도모하십니까?”

박도만이 황급히 황동 밸브를 품에 숨기려 했으나, 이진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진은 민시우를 향해 느리게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왕족 특유의 오만함과 기계공학자로서의 냉혹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대역죄라.”

이진이 낮게 읊조렸다.

“시우야. 너는 사헌부에서 법을 다룰 때, 그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한다고 배웠느냐?”

“법은 나라의 기강이자, 사직을 보존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성법(成法)이옵니다. 국법을 어기는 자는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치죄함이 마땅합니다.”

민시우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법치에 대한 그의 신념은 굳건한 바위와 같았다.

이진은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소리에는 기만적인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이 담겨 있었다.

“틀렸다. 법이란 강자가 자신의 이권을 합법적으로 약탈하기 위해 만든 껍데기이거나, 약자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움켜쥐는 마지막 동아줄일 뿐이다. 지금 조정의 안동 김씨 일파가 매관매직을 일삼고 삼정을 문란케 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것은 경국대전의 어느 조항에 부합하기에 묵인되더냐?”

민시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입술이 실룩였으나, 이진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압박해 들어갔다.

“영국의 이양선들이 이 강화도 앞바다를 유린하고, 함포를 겨누며 이 나라의 주권을 내놓으라 협박할 때, 네가 숭상하는 성법이 저들의 포탄을 막아주더냐? 저들이 가마를 깨부수고 조선의 사직을 짓밟을 때, 경국대전을 펼쳐 들고 유학의 도리를 읊조리면 서양 오랑캐들이 무릎을 꿇을 것이라 믿는가?”

“그것은…….”

“나는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진의 목소리가 주조소의 벽을 울렸다.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다. 극도로 정밀하게 도출된 결론을 선언하는 기계의 작동음과 같았다.

“나를 죽이려는 세도 척신들의 칼날을 부수고, 이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이양선들을 격퇴하기 위해, 나는 이 섬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완벽한 자립적 기계 요새로 재조립할 것이다. 시우 너는 영리한 자다. 그렇다면 네 그 뛰어난 머리로 나를 탄핵할 조항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합법적으로 이 영지를 무장할 수 있는 법리적 방패를 찾아내라. 그것이 네가 이 가치 없는 세상에서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효용이다.”

효용.

이진은 민시우라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지적 오만함과 법률가로서의 자존심을 자극해 기계의 부속품으로 활용하려 했을 뿐이다.

민시우는 이진의 얼음처럼 차가운 안광을 마주했다. 대공의 눈에는 사리사욕이나 권력에 대한 탐욕이 없었다. 오직 거대한 국가적 파멸을 막기 위해 스스로 톱니바퀴가 되겠다는 무서운 의지만이 존재했다.

침묵이 주조소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민시우는 들고 있던 지함을 꽉 쥐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기다려 주십시오.”

민시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방패’가 국법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지, 소신이 직접 확인하겠나이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소신은 제 손으로 전하를 의금부에 고발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라.”

이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날 밤, 민시우의 처소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사방이 어둠에 잠긴 강화도의 밤, 세찬 바닷바람이 문창지를 때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민시우는 촛불 아래에서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사송(詞訟) 문서들과 경국대전 주해본, 그리고 역대 조정의 전례(典例)들을 광적으로 뒤적였다.

그의 손끝이 누렇게 바랜 종이 위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자, 동시에 고도의 문서 행정 국가였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쥔 세도 가문이라 할지라도, 성법에 명시된 명분과 판례 앞에서는 함부로 칼을 휘두를 수 없다. 그것이 조선이라는 국가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새벽녘, 닭이 울기 직전이었다.

수많은 서책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민시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것이다…….”

민시우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책장을 소리 나게 넘겼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경국대전 형전(刑典) 사송(詞訟) 조항의 이면, 그리고 세조 대에 확립된 국조전례의 은비(隱秘)된 구례였다.

[변방 은둔 종실 사유재산권 보장조(邊邦隱遁宗室私有財産權保障條)]

그곳에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외적의 외침이 빈번한 변방 구역에 거처하는 종실(宗室)의 은둔 인원은, 가문의 사유 노비와 가산을 동원하여 자가방어 목적의 무구 및 방어 기재를 제조할 수 있으며, 이는 사판(私版)의 사유권으로 인정하여 관청에서 이를 함부로 몰수하거나 죄를 물을 수 없다.’

과거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던 북방이나 왜구의 침탈이 극심했던 남해안의 종실 영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그러나 세도 정치의 그늘 아래 오랫동안 잊혀 있던 법리적 구멍이었다.

민시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책을 품에 안았다. 이 조항을 현재 강화도의 상황에 대입한다면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었다. 강화도는 서양 이양선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변방의 요충지이며, 이진은 왕실에서 버림받아 유배된 ‘은둔 종실’이다. 그가 사비와 박도만의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증기 기계들은 역모의 무기가 아니라, ‘자가방어 목적의 사유 재산’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아침 햇살이 주조소 외벽을 비출 때, 민시우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조소로 달려왔다.

“전하! 찾았사옵니다!”

민시우가 숨을 헐떡이며 책을 이진의 앞에 펼쳐 보였다. 그의 눈에는 지적 희열과 흥분이 가득했다.

“경국대전 형전 사송 조항과 세조 조의 국조전례를 대조한 결과, 변방 은둔 종실의 자가방어 목적 사유물 제조권 특례를 찾아내었사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전하께서 주조하시는 모든 기계와 장치들은 국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벽히 합법적인 ‘자가방어용 사유 재산’이 되옵니다. 안동 김씨들이 무단으로 군사를 이끌고 와 압류하려 해도, 이 성법의 빗장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이진은 민시우가 가리킨 법전의 조항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훌륭하군.”

이진의 냉정한 음성이 민시우의 가슴에 가닿았다.

“사대주의에 찌든 세도가들이 신성시하는 그 경국대전이, 외려 저들의 목을 조르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첫 번째 부속품이 제 자리를 찾았군.”

민시우는 대공의 칭찬에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역모가 아니었다. 조선의 법률과 시스템 자체를 도구로 삼아, 나라를 밑바닥부터 재조립하려는 거대한 설계도의 실행이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여운은 채 일 분을 가지 못했다.

주조소의 낡은 나무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듯 열렸다. 이진의 영지 소작인이자 나루터의 동태를 살피던 전령이 피투성이가 된 발로 주조소 바닥을 뒹굴었다.

“전하! 전하! 큰일이옵니다!”

전령은 공포에 질려 침을 흘리며 이진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한양에서…… 이조판서 김좌형 대감의 심복인 사헌부 아문 임세헌 어사가 정예 금군 삼십여 명을 거느리고 갑곶나루에 당도하였사옵니다! 지금 이 주조소를 역모의 근거지로 규정하고, 보이는 자는 즉시 참하라는 명을 내리며 이리로 진격하고 있사옵니다!”

박도만은 들고 있던 쇠망치를 떨어뜨렸고, 민시우의 안색은 종이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정예 금군 삼십 명. 유배지의 무방비한 대공을 단숨에 도륙내고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차고 넘치는 무력이었다.

하지만 이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손에 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최초의 황동 밸브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그의 얼음 같은 시선이 나루터가 있는 동쪽 하늘을 향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덫으로 들어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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