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덜컹거리는 문고리가 어둠 속에서 자지러지듯 울렸다. 문구멍 사이로 스며드는 붉은 횃불의 그림자가 방바닥에 쓰러진 밀사의 검푸른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발소리가 좁혀왔다. 짚신의 가쁜 마찰음과 가죽 군화의 둔중한 발 디딤이 뒤섞여 적거지 마당을 짓밟았다. 이진은 손에 쥔 종이를 더 꽉 쥐었다. 강화도호부사 한필주의 붉은 관인이 찍힌 삼중 서찰. 서늘한 한지의 촉감이 유배지의 지독한 염풍에 젖어 눅눅했다.

“방을 포위해라! 안에서 시신을 확인하는 즉시 서찰의 지시대로 수습한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군관의 칼칼한 목소리가 문짝을 때렸다.

그들은 대공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치우개들이었다. 안동 김씨의 영수 김좌형이 보낸 살수가 일을 마치고 나면, 자결로 위장해 시신을 태워 없애려던 한필주의 수하들.

콰앙!

거칠게 걷어차인 문짝이 비틀거리며 열렸다. 횃불의 매캐한 그을음과 함께 이조(吏曹)의 푸른 군복을 입은 군관들과 아전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시선이 방바닥으로 향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내, 그리고 그 곁에 등글개를 짚고 똑바로 서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강화대공 이진을 발견한 순간, 군관들의 발걸음이 돌처럼 굳었다.

“어, 어찌…….”

군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죽어 있어야 할 대공은 살아 있고, 암살을 집행했어야 할 밀사는 목뼈가 꺾인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사(府使) 한필주가 보낸 사냥개들이 이토록 성급할 줄은 몰랐군.”

이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방금 전 뇌 신경망을 찢어발기던 도해의 두통은 가라앉았으나, 손끝에는 여전히 미세한 열감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한풀 꺾인 숨을 내쉬며 바닥의 서찰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겠느냐?”

그때, 군졸들의 뒤편에서 화려한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비대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자, 바로 강화도호부사 한필주였다. 그는 방 안의 참상을 목도하자마자 턱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 무슨 해괴한 짓입니까! 전하, 유배당한 처지에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다니요! 이는 명백한 살생이자 역모의 징후입니다!”

한필주는 다급하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소리를 질렀다. 그의 비대한 몸집이 횃불 불빛을 받아 흔들렸다. 겁에 질린 눈빛 속에는 어떻게든 상황을 덮으려는 교활함이 번득였다.

이진은 헛웃음을 삼켰다. 세도 가문 밑에서 마름질이나 하던 지방관의 얄팍한 잔꾀가 눈에 훤히 보였다. 이진은 방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역모라.”

이진은 서찰을 들어 한필주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강화군수 한필주. 그대의 직인이 찍힌 이 서찰에는 나와 내 적거지를 지키는 군졸들을 물리고, 이 밀사가 독약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방조하라는 내용이 아주 상세히 적혀 있더군. 심지어 사후에 내 시신을 신속히 화장하여 흔적을 지우라는 지침까지 말이다.”

“그, 그것은 위조된 것입니다! 음해입니다!”

한필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손을 뻗어 서찰을 빼앗으려 했으나, 이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서찰을 소맷자락 속으로 집어넣었다.

“위조라니. 이 조정의 관인은 매해 예조에서 주조하여 지방관에게 하사하는 고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우측 모서리의 미세한 이 빠짐까지 그대의 관인과 일치하는데, 의금부의 서리들이 이를 구별하지 못할 것 같으냐?”

이진은 한필주의 가슴팍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오직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빈틈없는 논리만이 흘러나왔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혜휼(惠恤) 조항을 알고 있는가?”

한필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갑자기 튀어 나온 경국대전이라는 단어에 군관들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왕실의 친족이자 유배된 종실이라 할지라도, 그 신변의 안전은 관할 수령이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만약 외인이 침입하여 위해를 가하거나 수령이 이를 방조했을 시, 이는 단순한 직무유기가 아니다. 왕실의 권위를 능멸한 죄로 삼족의 관직을 삭탈하고 가산을 몰수하며, 해당 수령은 변방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하도록 규정되어 있지.”

이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에 따르면, 종실을 살해하려 모의한 자는 주모자와 동조자를 막론하고 참형(斬刑)에 처한다 하였다. 군수 한필주. 그대는 지금 안동 김씨 가문이 조정의 법 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군.”

“대, 대공 전하! 어찌 유배지의 죄인이 법률을 논한단 말입니까! 이곳은 강화도입니다! 내 말 한마디면 전하께서는 당장이라도 역모죄로 도성으로 압송될 수 있습니다!”

한필주가 발악하듯 소리쳤으나, 그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압송하라.”

이진이 차갑게 응수했다.

“나를 의금부로 보내라. 그러면 삼사(三司)의 간관들이 이 서찰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 안동 김씨의 영수 김좌형이 종실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천하에 드러나는 순간, 조정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김 대감이 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누구를 꼬리 자르기로 내던질 것 같으냐? 바로 그 서찰에 도장을 찍은 그대, 한필주다.”

정적만이 방 안을 채웠다. 밤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들어와 횃불을 거칠게 흔들었다.

한필주의 이마에서 비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이진의 말은 서릿발 같은 사실이었다. 세도 가문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법. 암살이 실패하고 물증까지 잡힌 마당에 자신은 그저 버려질 소모품에 불과했다. 의금부로 압송되는 순간, 김좌형은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 입을 막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진은 굳어버린 한필주에게 다가가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물증은 내 손에 있지. 그대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한필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비대한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시체와 흔적을 깨끗이 지워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그대는 도호부사로서 내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 내 허락 없이 도성에 장계를 올리지도 말고, 사사로이 서신을 보내지도 마라. 만약 내 지시를 어기거나 딴마음을 먹는다면, 이 서찰은 즉시 사헌부의 강직한 대간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진은 한필주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것은 온정의 손길이 아니었다. 쓸모 있는 부속품을 제자리에 끼워 맞추는 기계공의 손길이었다.

한필주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자존심과 권위는 경국대전의 서슬 퍼런 법리와 자멸의 공포 앞에서 완전히 조각나 있었다.

“소, 소신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전하의 뜻대로 하겠나이다.”

“좋다. 첫 번째 지시를 내리지.”

이진은 한필주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강화도에서 가장 뛰어난 유기(鍮器) 주조 가마를 지닌 장인을 찾아야겠다. 놋쇠를 다루는 솜씨가 귀신같고, 법을 어겨서라도 내 물건을 만들어줄 자라야 한다. 누구냐?”

한필주는 이마를 방바닥에 찧으며 더듬거렸다.

“유, 유기장 박도만이라 하옵니다. 원래 관아의 공물을 전담하던 장인이었으나, 몇 해 전 황동 배합 비율을 속였다는 모함을 받아 몰락하고 지금은 강화도 동쪽 구석의 해안가에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그 자라면 기술은 최고이나 조정에 원한이 깊어 부려먹기 좋을 것입니다.”

“안내해라. 당장.”

이진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유배지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동력원을 주조할 첫 번째 톱니바퀴를 포섭할 시간이었다.

***

강화도 동쪽 끝자락, 염풍이 불어오는 바닷가 절벽 밑에 자리한 박도만의 가마터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사방에 깨진 옹기 조각과 시커멓게 탄 석탄재가 뒹굴고 있었고, 낡은 초가막새 사이로 쉴 새 없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필주는 군사들을 멀찍이 물려두고 이진의 뒤를 따랐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진은 주조소 안으로 들어섰다.

매캐한 유황 냄새와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가마 앞에는 한 사내가 쇠집게를 쥔 채 붉게 달아오른 쇳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씻지 않아 기름때와 그을음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 굵고 단단한 팔뚝에는 수많은 화상 흉터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가 바로 유기장 박도만이었다.

“누가 이 밤중에 남의 일터에 발을 들이미는가?”

박도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군수의 관복을 본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군수 대감, 또 공물을 더 짜내러 오셨소? 이미 가마는 망가졌고, 나라에 바칠 놋그릇 따위는 없소이다.”

“이 무례한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이분은 종실의 대공 전하이시다!”

한필주가 소리를 질렀으나, 이진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진은 박도만에게 다가가 소매 속에서 접어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가마 옆 작업대에 펼쳐 놓았다.

“이것을 주조해라.”

박도만은 귀찮다는 듯 곁눈질로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종이에는 이진이 머릿속 미래 공학 데이터베이스를 시각화하여 정밀하게 그려낸 ‘가압 증기 송풍기’의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밸브의 나사산 각도, 공기실의 곡률, 그리고 압력을 견디기 위한 다이아프램의 두께까지 1마이크론 단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현대적 기계 도면이었다.

박도만은 종이를 집어 들고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곧 차가운 비소를 지었다.

“이런 해괴망측한 물건은 세상에 없소이다. 구멍의 크기와 관의 두께가 이토록 얇아서야, 쇳물을 붓는 순간 식어버리거나 조금만 압력을 받아도 놋쇠가 사방으로 터져 나갈 것이오. 아무리 대공이라 하실지라도, 쇠의 성질도 모르고 도면만 그리면 다 되는 줄 아십니까? 이건 불가능하오.”

박도만은 도면을 거칠게 바닥에 팽개쳤다. 장인으로서의 옹고집과 자부심이 섞인 거절이었다.

이진은 바닥에 떨어진 도면을 줍지 않았다. 대신 가마 옆에 쌓여 있는 황동 주물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스으으윽.

이진의 손가락 끝이 황동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그의 뇌 신경망이 다시 한번 푸른빛으로 진동하며 초미세 촉감 능력을 활성화했다. 손가락 끝의 신경 세포들이 황동 내부의 결정 구조와 미세한 결함을 분자 단위로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황동과 주석의 배합비가 7대 3이 아니군.”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주조소의 열기를 뚫고 울렸다.

“구리 72퍼센트에 주석 25퍼센트, 그리고 아연과 불순물이 3퍼센트 섞여 있군. 표면의 미세한 기포 크기는 평균 14마이크론. 쇳물을 부을 때 가마의 온도가 섭씨 1,050도에 미치지 못했고, 송풍량이 부족해 내부의 가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탓이다. 이딴 잡쇠로 만든 주물은 공기가 조금만 압축되어도 내부 균열을 일으켜 깨지기 마련이지.”

박도만의 쇠집게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장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 말이 틀렸느냐?”

이진은 황동 덩어리를 가볍게 던져 박도만의 발밑에 떨어뜨렸다.

“그, 그것을 어찌 손으로 만져보고 안단 말입니까? 쇳물의 온도와 기포의 크기까지…… 귀신이라도 씌인 것인가!”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오직 수치와 물리적 지식만을 믿지.”

이진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의 눈빛이 박도만의 영혼을 꿰뚫듯 빛났다.

“박도만. 그대의 가문이 대대로 숨겨온 비전이 있지. 왕실의 의례용 종을 주조할 때 쓰이던 고석율(高錫律) 합금비, 이른바 ‘권석금(權石金)’ 주조법.”

‘권석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박도만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것은 가문이 역모나 기술 유출의 죄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붙여온, 주석의 함량을 극도로 높이면서도 깨지지 않게 만드는 금단의 야금학 기술이었다.

“그, 그 법은 이미 대가 끊겼소! 우리 가문은 그런 것을 모릅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이진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대의 가마터 뒤편에 버려진 고령토 도가니 조각들에서 권석금 특유의 푸른빛 산화막을 확인했다. 그대는 지금도 홀로 그 합금을 재현하려 시도하고 있었지.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전통 백토 가마는 내부 압력을 제어할 수 없어, 권석금의 주석 성분이 기화해 버리기 때문이지.”

박도만은 주저앉았다. 자신의 평생 연구와 가문의 비밀이, 이 젊은 대공의 눈에는 한낱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상자처럼 비쳤다는 사실에 온몸이 오싹해졌다.

“그 권석금의 합금비와, 내가 제공할 가압 기술이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이진이 물었다.

박도만은 마른 침을 삼키며 가마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이진의 도면과 권석금의 배합비가 결합하는 장면을 상상한 순간,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양의 무쇠보다 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신의 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나를 거치면 불가능은 없다. 다만, 대가가 따를 뿐이지.”

이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통증을 억눌렀다. 미래의 설계를 당대의 주조법과 타협시키는 과정은 그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으나, 이 장인을 얻지 못하면 조선을 바꿀 동력원은 태어나지 못한다.

박도만은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고집은 꺾였고, 대신 장인으로서의 광기 어린 열망이 그 자리를 채웠다.

“전하, 이 비천한 목숨을 전하께 바치겠나이다. 부디 그 신비로운 주조의 법을 제게 보여주십시오!”

이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부속품이 완벽하게 맞물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박도만이 가마의 붉은 열기를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전하, 권석금을 녹이려면 가마의 온도를 극한으로 올려야 합니다. 이 가마는 진흙으로 만든 백토 가마라, 이 정도의 압력을 가하면 가마 자체가 폭발하여 우리 모두 불타 죽을 것입니다. 이 가마의 진흙 압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가마 안에서 불꽃이 굉음을 내며 요동쳤다. 열기가 주조소 내부를 집어삼킬 듯이 팽창했다.

이진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느꼈다. 미래 공학 도해의 압력 제어 공식을 무리하게 가동한 대가였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이진은 가마의 아궁이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기계의 압력은 인간의 공포보다 정직하다.”

이진은 주저 없이, 붉은 화염이 일렁이는 가압 가마의 뜨거운 아궁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