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듯한 서해의 염풍이 낡은 창호지를 찢을 듯이 울부짖었다.
강화도 동쪽 구석, 잡초만 무성한 적거지(謫居地)의 골방은 냉골이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한 한기가 겹겹이 기운 무명이불을 뚫고 뼈마디를 시리게 찔렀다. 지독한 고열이었다. 이진은 갈라진 입술 사이로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탁한 가래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목구멍을 턱턱 막아섰다.
빙의(憑依).
그 황당무계한 현상이 일어난 지 사흘째였다. 미래의 하늘 아래서 정밀 기계공학의 정점을 달리던 설계자의 영혼은, 이제 왕실에서 버림받아 사방이 바다로 막힌 고립무원의 섬에 갇힌 무력한 대공, 이진의 육신에 갇혀 버렸다.
스스로 움직이기조차 힘겨운 쇠약한 몸 안에서, 이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다. 동료의 비열한 배신으로 평생의 연구 성과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직전의 기억이 잉크처럼 번졌다. 다시 얻은 삶조차 이토록 가혹한 절벽 위라니.
달그락.
적막을 깨뜨린 것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흙마당의 마른 지푸라기를 밟는 조심스러운 발소리, 그리고 이내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의 문고리가 미세하게 회전하는 마찰음이었다.
이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밤낮으로 적거지를 감시하던 호위 군사들의 둔중한 발걸음이 아니었다. 소리를 죽여 침투하는 자의 은밀한 움직임.
스르륵.
문이 열리며 밤안개와 함께 검은 사막(沙幕)을 뒤집어쓴 사내가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사내의 손에는 작은 백자 주전자와 은잔이 들려 있었다. 주전자 주둥이 끝에서 풍기는 기분 나쁜 단내가 좁은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오염시켰다. 부자(附子)와 비상(砒霜)을 섞어 끓인 맹독의 냄새였다.
사내는 바닥에 누워 있는 이진을 내려다보았다. 사막 너머로 번들거리는 눈빛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도축장에 들어선 백정의 무심함뿐이었다.
“대공 전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진의 귀청을 때렸다.
“조정의 대세가 이미 기울었거늘, 어찌 이토록 모진 목숨을 보존하려 하십니까. 대감마님께서 전하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걷어 가라 하셨습니다.”
김좌형.
조정의 권력을 독식하고 왕실을 허수아비로 만든 안동 김씨의 영수. 그자가 보낸 밀사임이 틀림없었다. 사내는 주전자를 기울여 은잔에 검붉은 액체를 따랐다. 찰랑거리는 독주가 달빛을 받아 불길하게 일렁였다.
이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폐부는 산소가 부족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물리적인 힘에 눌려 독배를 들이켜고 죽을 것인가. 또다시 타인의 손에 명줄을 빼앗긴 채 허망하게 쓰러질 것인가.
‘안 된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역류가 치밀었다. 배신당했던 과거의 분노, 그리고 이 허약한 대공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생존에 대한 갈망이 한데 엉켜 척수를 타고 뇌하수체로 치솟았다.
쿠구구궁!
순간, 이진의 뇌 속에서 수천만 개의 논리 회로가 동시에 정렬하는 듯한 충격이 발생했다. 귀를 찢는 이명이 고막을 울렸고,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신경기반 미래공학 데이터베이스 접속을 개시합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차가운 기계음 같은 환청이 두개골을 울렸다. 동시에 자욱한 어둠 속에서 푸른빛의 광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지독하게 사실적이고 정밀한 정사영(正射影) 도면들이 허공에 부유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관통하는 증기기관의 압력 밸브, 다단 팽창식 피스톤, 야금학적 열처리 공식들이 정교한 3D 홀로그램의 형태로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허억……!”
이진의 입에서 거친 신음과 함께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초월적인 정보의 양과, 현재 조선이라는 시대적 야만성 사이의 인과율적 격차가 뇌 신경망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전선이 타들어 가듯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 가고, 전신의 모세혈관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팽창했다. 당장이라도 뇌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극통이었다.
기계공학적 지식이 뇌를 태우고 있었다. 20세기의 고압 보일러 도면을 억지로 유지하려 하자, 척수에서부터 전해지는 통증에 전신이 마비될 것 같았다.
‘안 돼…… 지식을 낮춰야 한다. 당대 기술의 한계선 안으로 제한해야 살아남는다!’
이진은 본능적으로 머릿속의 정밀 도면들을 지워 나갔다. 터빈과 발전기, 고압 합금강의 공식들을 폐기하고, 오직 현재 이 환경에서 구현 가능한 가장 원초적인 물리 법칙과 정밀 감각만을 남겨 두었다.
서서히 각혈이 멈췄다. 하지만 신경망이 활성화된 흔적은 고스란히 손끝으로 내려앉았다.
키잉.
손가락 끝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공기의 흐름, 바닥틀의 미세한 진동, 나무의 결 하나하나가 마이크론 단위의 촉감으로 뇌에 직접 전달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빛의 선들은 이제 방 안의 구조를 정밀하게 계측하고 있었다.
밀사가 은잔을 들고 한 걸음 다가왔다.
“순순히 받으십시오. 고통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사내가 이진의 멱살을 잡기 위해 왼손을 뻗었다.
이진의 눈에 비친 방 안은 더 이상 평범한 골방이 아니었다. 천장의 서까래가 가하는 하중의 흐름, 기둥이 받는 압축 응력, 그리고 자신들의 머리맡에 놓인 낡은 서안(書案)의 물리적 구조가 실시간으로 연산되어 푸른색 수치로 떠올랐다.
[구조물 분석: 가문비나무 재질 서안. 가로 820mm, 세로 450mm, 높이 310mm.] [하중 분포 편향율: 74% 우측 경사.] [우측 전면 다리 지지점: 미세 크랙(Micro-crack) 깊이 4.2mm 발견. 한계 전단 응력 120N.]
사내가 몸을 숙이며 이진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은잔의 독액이 이진의 입술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차가운 놋쇠의 감촉과 비릿한 독초의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십시오!”
사내의 손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무게중심을 앞으로 무너뜨리며 이진을 압박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이진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그것은 무인의 신속한 초식이 아니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육체가 낼 수 있는 가장 느리고 가냘픈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 끝은 정확히 서안의 우측 전면 다리, 미세 균열이 집중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1마이크론 단위의 초미세 촉감이 서안 다리의 옹이와 결을 감지했다. 나뭇결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응력 집중점(Stress Concentration Point).
이진은 손가락 끝에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모아, 그 균열의 틈새를 정확히 수직 방향으로 가압했다. 지렛대의 원리를 극대화하는 정밀한 가해였다.
틱.
아주 작은 파열음이 일었다.
동시에 70킬로그램이 넘는 밀사의 체중이 서안 쪽으로 쏠려 있던 하중의 평형이 완벽하게 깨어졌다. 지지력을 잃은 서안의 다리가 먼지를 뿜으며 처참하게 부러져 나갔다.
“어……?”
사내의 신형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예측하지 못한 가구의 붕괴에 사내의 반사신경이 흐트러졌다.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사내가 디딘 오른발이 붕괴하는 서안의 상판을 밟았고, 상판은 회전 운동을 하며 사내의 발목을 안쪽으로 꺾어 버렸다.
우드득!
“크아악!”
어둠 속에서 뼈가 어긋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은잔에 담겨 있던 검붉은 독약이 사내의 얼굴과 바닥으로 사방 무분별하게 흩뿌려졌다. 독액이 닿은 흙바닥에서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유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내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고 이진을 바라보았다.
“네, 네놈이……!”
발목이 부러진 사내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진은 이미 다음 연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서안이 무너지며 튕겨 나간 황동제 모서리 장식(귀장식)이 바닥을 굴러 사내의 무릎 뒤편, 비골신경이 지나가는 급소 바로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
이진은 부러진 서안 다리의 잔해를 발끝으로 가볍게 밀었다. 작용과 반작용. 굴러간 목재가 황동 장식을 때렸고, 황동 장식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사내의 무릎 뒤편 인대를 정확히 찔렀다.
“아아악!”
사내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굳어 버렸다. 단검을 쥐려던 손끝에 힘이 풀려 칼이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초자연적인 무공도, 기적 같은 힘도 아니었다. 단지 주변 사물의 인장 강도와 무게중심, 그리고 인간의 생체 역학적 약점을 철저하게 계산해낸 공학적 통제의 결과물이었다. 단 몇 그램의 힘만으로 수십 배의 물리적 에너지를 도출해내는 극도의 지능적 무력화였다.
“하아…… 하아……”
이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손끝 하나, 발끝 하나 움직였을 뿐인데 뇌 속의 신경망이 불타오르는 듯한 극통이 다시금 밀려왔다. 목구멍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핏덩이가 가래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를 현실의 물리계에 접목하는 대가는 이토록 가혹했다.
‘이것이…… 힘의 제약인가.’
당대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인과율을 억지로 비틀 때마다, 기계공학적 연산은 이진의 생명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 즉 백토 가마와 놋쇠 주조 같은 '토법(土法)'을 매개로 삼아 중간 단계의 기술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만 했다. 단번에 미래의 엔진을 만들려 했다간, 기계를 완성하기도 전에 뇌가 녹아내려 즉사할 터였다.
이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쓰러진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부러진 발목과 마비된 다리를 움켜쥔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이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력하게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가냘픈 대공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이진의 눈동자는 마치 정밀하게 깎여 나간 강철 피스톤처럼 단단하고 비정했다.
“누가 보냈지?”
이진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효용 가치를 따지는 기계적인 냉정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대, 대공…… 네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사내가 독기를 품고 소리쳤다.
이진은 대답 대신 사내의 부러진 발목 관절 부위를 발끝으로 지그시 밟았다. 체중을 실은 정밀한 압박이 가해지자, 사내의 비명이 방 안의 공기를 찢었다.
“으아아아악! 기, 김…… 김좌형 대감님이시다! 이조판서 대감님께서 너를 살려두면 화근이 된다 하셨다!”
사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자백했다. 역시 안동 김씨의 영수, 김좌형이었다. 세도 가문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배지에 처박힌 종실의 핏줄마저 확실하게 끊어놓으려는 음독 암살.
이진은 발을 뗐다. 사내의 가치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 사내를 어떻게 처리할지 뇌 속의 기계적 회로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때, 사내의 품 틈새로 삐져나온 두꺼운 한지 뭉치가 이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진은 몸을 숙여 사내의 옷자락을 헤치고 그것을 끄집어냈다.
밀봉된 삼중 서찰이었다.
서찰을 펼치자, 붉은 주사(朱砂)로 찍힌 선명한 관인(官印)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강화도호부사(江華都護府使) 한필주]
이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방관의 최고 우두머리이자 강화도를 통치하는 군수 한필주의 직인이었다. 서찰의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사악했다. 적거지의 감시를 일시적으로 소홀히 하여 밀사의 출입을 돕고, 음독 자결로 위장한 후 신속하게 시신을 화장하여 증거를 인멸하라는 구체적인 공조 지시였다.
중앙의 세도 척신 김좌형의 손길이 이미 이곳 강화도의 행정 및 군사 책임자에게까지 완벽하게 뻗어 있었다. 강화군수 한필주가 이 역모와 암살 기도에 깊숙이 가담했다는 명백한 물증이었다.
그 순간.
스어어억.
적거지 마당 너머, 어두운 대숲 사이로 횃불의 불빛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봐, 방 안에서 비명 소리가 나지 않았는가?”
“조용히 해라! 대감마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저 구경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다급하게 흙바닥을 짓밟는 짚신과 가죽신의 군화 소리가 적거지 담장 너머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좁혀 들어왔다. 방 안에서 흘러나온 비명과 소란을 감지한 아전과 군졸들이 사태를 은폐하고 이진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문밖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열 걸음, 여덟 걸음.
이진은 손에 쥔 한필주의 서찰을 꽉 쥐었다. 뇌 신경망의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아 손끝이 떨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제 유배지의 침묵은 끝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썩어빠진 조선의 법리와 전통의 틈새를 찢고 들어가 스스로 군수(軍需)의 지배자가 되어야 했다.
이진은 문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고리가 다시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