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여의도 증권가의 심장부.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칼바람이 파고든다. 당신은 발밑의 가라앉은 제단에 손을 얹는다. 성배에서 수탈한 마력이 제단을 타고 검은 혈관처럼 뻗어 나간다.
"동력원 정상 접속. 장벽 가동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등 뒤에 선 서지우가 홀로그램 단말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속삭인다.
"성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방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단순한 우주 시스템의 일시 오류로 인지한 상태입니다."
당신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강철 제단의 활성 나사를 내리누른다.
"지금이다. 축적된 마력을 거두고 저들이 구축한 권역을 찬탈한다."
"이해했습니다. 장벽 고정 프로토콜, 즉시 개시합니다."
지면이 웅장하게 요동친다. 빌딩 군락의 경계를 따라 솟구친 푸른 광막이 밤하늘을 직격한다. 성좌들이 수 세기 동안 가꾸어 온 거대한 에너지 자원 지대가 일순간 강제로 분할되어 당신의 손아귀에 귀속된다.
하늘의 그물이 찢어지듯 핏빛 번개가 친다. 대기를 삼킨 먹구름 속에서 무수한 전이문이 균열처럼 벌어진다.
"예상보다 반응이 거칩니다. 적들의 본대가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우가 검게 그을린 저격총을 어깨에 밀착하며 포탈의 잔해를 가리킨다. 통로에서 쏟아지는 자들은 끈적이는 타액을 흘리는 마수들만이 아니다. 성좌의 가짜 권능을 받아 그들의 영원한 하수인이 된 광신도 전사들이다.
"가증스럽고 무도한 도둑놈들! 성좌의 신성한 영토를 더럽힌 벌레를 처단하라!"
지휘관인 골리앗 기사가 대검을 추켜세운다. 그 충성스러운 영혼들은 주인의 세뇌 아래 썩어 있다.
"저들의 뇌세포와 영혼은 이미 가짜 신격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지우의 방아쇠에 힘이 들어간다. 당신은 허리에 찬 마검을 뽑아 비스듬히 겨눈다.
"성좌의 손아귀에서 유희처럼 굴러가던 참담한 고기 인형들일 뿐이다."
"동감입니다. 손속에 자비를 남겨둘 필요는 없겠군요."
"정면은 내가 맡는다. 지우 너는 우회하는 화력조를 저지해라."
"알겠습니다. 전방의 퇴로를 부수어 놓겠습니다."
마수들의 발톱이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할퀸다. 동시에 골리앗 기사가 내리누르는 대검이 무거운 풍압을 수반한 채 당신의 정수리를 직격한다. 강렬한 속도와 질량을 정직하게 실은 물리학적 궤적이다.
당신은 머리를 비틀어 대검의 평면을 미끄러뜨린다. 날카로운 긁힘이 섬광을 흩뿌리고, 당신의 검끝은 기하학적인 각도를 그리며 허점을 노출한 상대의 허벅지 관절을 관통한다. 가차 없이 들어찬 마력이 살점을 부수고 뼈를 도려낸다. 갈라진 힘줄에서 비산한 선혈이 공기를 적신다. 기사의 무릎이 기우는 찰나, 지우가 날린 붉은 소총탄이 측면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 뒤따르던 마수의 심장을 단숨에 깨부순다.
"장벽 수치 급감 중! 적들의 누적 충격량이 차단 임계점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원격 무전기를 통해 사냥터를 조율하던 감시 대원들의 고함 소리가 노이즈를 뚫고 터져 나온다. 적들의 물량은 파도와 같다. 하늘의 균열은 끝을 모르고 넓어지며 백색 광휘를 내뿜는 천상의 성투사들마저 지상으로 사출하기 시작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다. 이제 당신이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